경주석씨(慶州昔氏)
시조 석탈해(昔脫解)는 신라 제4대 왕이다. 경주석씨는 ▲월성석씨(月城昔氏)라고도 한다. 월성은 경주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경주석씨는 2000년 7,996명이고, 월성석씨는 1,522명이다.
탈해왕의 탄생에는 신화가 있다. 왜국의 다파나국의 왕비는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니 알을 궤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우라”고 했다. 기원전 19년 이 궤는 아진포(지금의 영일만)에 닿았다.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궤를 열어보니 용모가 단정한 사내 아기가 있었다.
노파는 처음에 까치가 궤를 따라 왔다하여 까치 작(鵲)자에서 새조(鳥)를 떼어 버리고 석(昔)을 성으로 삼고, 포장한 궤 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탈해(脫解)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탈해는 자라면서 지혜가 뛰어나 남해왕이 사위로 삼고 대보(大輔)로 등용했다. 57년 유리왕이 죽으면서 "왕위를 탈해에게 전하라"고 하여 석탈해는 왕위에 올랐다.
석씨는 신라 56대 왕 중 8왕을 배출했다. 탈해왕을 비롯 9대 벌휴왕, 10대 내해왕, 11대 조분왕, 12대 첨해왕, 14대 유례왕, 15대 기림왕, 16대 흘해왕 등이다.
1세조는 고려조에서 교서랑을 지낸 석재흥이다. 석시종은 고려 때 병부령을, 그의 아들 석운니는 밀직사를 지냈다. 좌복야 석한일의 아들 석정민은 예의시랑을 거쳐 평장사에 올랐다.
조선조에 와서는 부사 석상률과 판관 석용진, 부호군 석광국, 오위장 석병권이 뛰어났다. 석봉혁은 감찰을 지냈고, 석건민과 석우성은 부호군을 역임했다.
경북 상주군 중동면, 충남 논산군 논산읍 취암리, 경북 금릉군 이포면이 집성촌이다. 신라 왕족인 박씨와 김씨의 자손은 번창한 데 반해 석씨는 희성(稀姓)이 되었으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출처] 경주석씨(慶州昔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