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머금고 떠돌다 온 구름은
열린 숙박계 빈칸을 꽉 채우고도
비를 뿌렸다
섬은 파업 중이다
고깃배들도 갈매기떼도 방파제에 늘어서 있는 하루,
불거진 관절을 끌고 포구로 피신할 때면
장기투숙객들은 골방으로 안채로
썰물처럼 밀려나야 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들숨 따라 소식이 전해왔다
자고 나면 부푸는 해안선에
수초로 흔들리는 사람들
젖어서 메마른 바다를 지켜본다
습관처럼 음식을 시키고
그들이 내놓은 그릇이 섬처럼 떠오른다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갇힘 사이를
흐르는 비,
나도 해안도로를 흘러내리며 폐곡선으로 갇힌
내 안의 길을 더듬는다
이대로 사나흘만 더 내려준다면
저 잡념으로 거품 문 파도를 끌어안고
바다 건너 가 닿을 수 있을까
손에 든 새우깡을 갈매기에 모두 털리듯
불량한 카드는 자꾸 기한을 독촉받고,
모텔 캘리포니아
비에 떠밀려 조금씩 바다로 간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새로운 섬이 된다.
-「모텔 캘리포니아」(『모텔 캘리포니아』), 전문인용-
고경숙 시인의 1시집『모텔 캘리포니아』의 표제작이며 그녀의 대표작인 작품이다. 시의 정황상 「모텔 캘리포니아」는 섬 한쪽에 자리 잡은 숙박업소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텔’이란 단어의 속성이 유희적이고 일회적인 성의 향락과 매매가 이루어지는 퇴폐적 공간인데 반해, 시 속에 드러난 “모텔 캘리포니아”는 “파업 중”인 “섬”에 자리한 황폐하고 고독한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모텔 캘리포니아”에 투숙한 시적 화자 역시 “손에 든 새우깡을 갈매기에 모두 털리듯/불량한 카드는 자꾸 기한을 독촉 받” 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떠돌이 신세임을 알 수 있다.
타관의 여관방에 몸을 의탁한 장기 투숙자인 시적 화자는 현실에서 퇴출당한 자이며, 몸 하나만을 이끌고 도착한 모텔 캘리포니아에서 “고깃배들도 갈매기 떼도 방파제에 늘어서 있는” 피폐한 섬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타자들과 만나고 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이 “폐곡선”처럼 닫혀버린 시적 화자가, “메마른 바다를 지켜” 보는 절망에 빠진 타자와의 동질성을 통해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이때 내리는 비는 소통이 단절된 시적 화자와 세상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물로 나타나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갇힘 사이” 사이에서 시적 화자는 현실의 압박에 갇혀 있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대로 사나흘만 더 내려준다면/저 잡념으로 거품 문 파도를 끌어안고/바다 건너 가 닿을 수 있을까” 라는 고백과 함께, “흐르는 비”의 ‘스밈’과 ‘흐름’을 통해 자신이 건너와 버린 지난한 삶 속으로 다시 건너가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렇듯 “모텔 캘리포니아”는 시적 화자의 현재의 심경이 투사된 “바다”라는 거친 현실을 건너려는 의지의 발현 공간으로, 시적화자의 희망과 의지를 드러내 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