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더바틈’에 가입하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클럽에 가입해야 해.”
그게 더바틈의 리더, 드레곤이 내게 한 말이다. 그의 주위에는 더바틈 애들이 서있었다. 티오피 애들과는 달리 더바틈 애들의 별명은 거북이, 메기, 흑곰 등등이다. 신기하게도 다들 그런 동물들과 흡사하게 생겼다.
난 제임스와 영어선생의 스킨쉽 사진이 있다고 해서 그걸 사러 (매우 창피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바틈카페로 간 것이다.
“그래, 그럼.”
난 그게 도서관 열람증을 발급받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비디오를 대여할 때도 멤버십 카드를 만들지 않는가? 그런 카드를 만드는 것과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입을 하겠다고 한 거다. 대학 때도 여러 클럽 활동을 한꺼번에 병행했던 나다. 더구나 영어선생의 애인이 제임스라는 소문을 들었으니 내가 크라운 최고의 파파라치가 찍었다는 그 사진을 안 보고 싶겠는가 말이다.
가입비로 만원을 내고 회원선언문 같은 것에 서명을 하고 단돈 5천원에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난 아무래도 내가 직접 고안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고등학생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사진은 완전 대 실망이었다. 제임스가 영어선생에게 골프채를 함께 잡고 자세를 잡아주는 장면이었다.
“이건 골프 수업 책에 실릴 만큼 너무나 모범적이고 건전한 사진이잖아?”
내가 이렇게 불만을 토해내자 더바틈의 파파라치인 메기가 화를 냈다.
“내 사진이 맘에 안 드는 인간은 영혼이 썩었다는 거야. 뭘 기대했던 거야? 어? 19금을 기대했다 이거지? 내 사진은 예술이지 외설이 아니야!”
조금 찔린 건 사실이다. 애들은 아직도 맑은 영혼을 가진 꽃다운 열아홉 살이고 난 이 아이들보다는 세상의 때가 더 켜켜이 쌓인 24살이 아니던가...타락한 성인의 눈으로 아이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려 했었다니...
밤에 ‘더바틈’의 신입회원 환영식이 열렸다. 환영식이라면 대학 신입생 환영회처럼 신발에 소주를 부어서 마시는 정도로 상상했던 나는 홀로 밤 12시에 학교 뒷산 공동묘지를 파면서 내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벌거벗은 채 학교 운동장을 열 바퀴 뛰거나 밤 12시에 이 학교 이사장의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를 파서 더바틈 아이들이 환한 대낮에 미리 숨겨놓은 회원 뱃지를 찾아오거나. 난 물론 공동묘지를 파헤치는 쪽을 택했다. 애들 앞에서 벌거벗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와,...”
하고 아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부분 발가벗고 학교 운동장을 도는 쪽을 택했지 공동묘지를 택한 아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밤 12시의 공동묘지는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영화 ‘링’이 떠올랐다. 하얀 드레스에 검은 생머리 여자를 매력적인데 왜 하얀 한복에 머릿결이 많이 나쁜 검은 생머리 여자는 무서운 걸까?
작은 꽃삽으로 간신히 묘지의 바로 앞을 파내고 있을 때 분명 뭔가 소리를 들었다. 상상이 맞는다면 귀신이 지금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저 바람소리이거나...
난 미친 듯이 땅을 팠다. 아무리 파고 또 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잡혔다. 단단하고 ..손전등을 비추자 플라스틱 봉지에 잘 보관되어 있는 뭔가가 보였다.
봉지의 지퍼를 열자 내용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두꺼운 책이었다. 빨간 표지에 숫자 ‘7’ 이 금색으로 찍혀져 있었다. 더바틈 아이들이 내게 찾아오라고 말한 것은 분명 그 클럽의 뱃지, 드레곤 문양 뱃지였지 책이 아니었다. 난 우선 그 근처를 다시 팠다. 뱃지를 찾아가지 못한다면 난 벌거벗고...
30cm쯤 파 내려가자 보석상자가 보였고 그 안에 더바틈의 뱃지가 있었다.
‘살았다!’
라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아아악!!!!!”
내 입을 귀신의 손이 막았다.
“조..조용히 해. 애..들이 듣겠어.”
아니, 그건 귀신의 손이 아니라 모노의 손이었다.
모노가 내 입에서 손을 치웠다.
난 모노를 꽉 끌어안았다.
“모노야. 내가 걱정되어서 와준거구나. 역시 넌..”
모노가 나를 떼어 놓았다.
“그거 내놔.”
“안 돼. 이 뱃지 안 가져가면 난 발가벗고 운동장을 돌아야 해.”
“뱃지 따위는 관심 없어.”
모노가 내 옆에 버려져있던 빨간 책을 집어 들었다. 모노는 말없이 책을 가지고 떠나려 했다.
“그 책 뭔데? 너 거야?”
모노가 돌아보았다.
“근데 왜 이게 무덤 속에 묻혀 있었던 거야?”
모노가 내게 물었다.
“책을 펼쳐 보진 않았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모노가 책을 가지고 사라졌다.
뱃지를 가지고 산을 내려갔다. 드레곤은 뱃지를 내 옷깃에 달아주었다.
“이제부터 우리 사이엔 어떤 비밀도 있어선 안 돼.”
그렇게 말하며 그가 살짝 나를 안아주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고 그런 생각이 든 내가 한심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드레곤, 나 다른 클럽에 또 가입해도 되는 거지? 여기 뭐 클럽 많던데. 테니스 클럽도 있고 골프 클럽도 있고.”
드레곤이 입을 열었다.
“티오피만 아니면 돼.”
드레곤의 앞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는 유리잔이 있었다. 그가 칼로 손가락을 베자 선명한 피가 포도주잔에 떨어졌다. 그가 칼을 내게 주었다. 호러영화의 한 장면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난 아주 약간, 칼로 손가락을 ‘톡’ 찍었다. 피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살살 찔렀던 것이다.
드레곤과 아이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칼이 잘 안 드네.”
난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을 칼에 살짝 갖다 댔다.
손가락은 멀쩡했다. 드레곤이 말했다.
“그러다 밤새우겠다. 내가 도와줘?”
드레곤이 내게서 칼을 빼앗자 그제야 없던 용기가 불쑥 올라왔다.
“아..아냐!! 내가 할게.”
눈을 질끈 감고 ’톡’하고 찌른 후 다른 한손으로 손가락을 쥐어 짜냈다. 간신히 피 한 두 방울이 맺혔다. 아이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포도주잔에 내 소중한 내 피 두 방울을 떨어뜨렸다. 포도주잔이 돌아가고 아이들은 마치 영성체를 모시듯 내 피와 드레곤의 피가 섞인 그 포도주를 돌아가며 조금씩 마셨다.
드레곤이 아직도 살짝 피가 맺힌 내 손가락을 잡았다.
그가 내 손가락을 빨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의 시선을 피해서 벽에 붙여 있는 포스터를 쳐다보았다. 반쯤은 벗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영화 포스터였다. 옆에 메기를 쳐다보았다. 메기의 코 옆으로 길게 나있는 수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왜 더 바틈 아이들은 기숙사에 있지 않는 거야?”
환영식이 끝나고 오토바이들을 타고 돌아가는 더바틈 아이들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던 것이다. 드레곤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저주받은 기숙사에 우리처럼 순수한 영혼들은 어울리지 않아.”
기숙사로 돌아오며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모노가 가져간 ‘7’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던 그 빨간 책은 무엇일까?
둘째, 더바틈 클럽에서 탈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댓글 제 6 장 분량이 작은 이유가 있었죠? 이번 주부터 3 장씩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와 ~ 감사합니다 ^^ 담주 기대할께요 ~
ㅋㅋㅋ 일주일에 세번ㅋㅋ 아이 좋아라;; 그럼 애나님을 일주일에 3번 보는거네요. 애나님 화이팅!! 이렇게 리더들이랑 의사소통하면서 소설을 쓰면 얼마나 좋아요ㅋㅋ 네ㅠㅠ 슬프지만 기숙사 A동 B동 기숙사가 있는데 슬프게도 A동은 티비가 없네요;; 2인 1실이라서 그런가; 근데요;; 애나님 내니 스쿨에 직접 다니셨나요? 자세히 아시네요;; 그래서 몇가지 궁금한게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봐도 되나요;; 그리고 답글 하실때에는 옆에 있는 답글 꾸욱 클릭 하고 답글 해주세요;; 아니면 답글하셨는지 안하셨는지 모르거든요ㅋㅋ 아 근데 왜 모진이는 다시 바틈에서 더 탈퇴하려고 하는 거에요? 7이라고 적힌 책은 뭘까요? 이번편에 모진이가
왜 모노를 의심쩍어하는지 궁금증을 풀어줄줄 알았는데;; 아니네요ㅠㅠ 그리고 모노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들어요;; 혼자 외롭게 자란 아이 mono, 모노ㅋㅋ 이런 의도가 아니시려나ㅋㅋ(아니면 철썩 철썩;; 혼나는건가요ㅠㅠ)
애나님 열혈팬맞아요!! 진짜 번개팅 달려봐요?ㅋㅋㅋ 보이매그넛부터 이거이거 심상치 않은 소설 나올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애나님ㄴ 소설은 늘 즐겁고 기대 되요!! 애나님의 드레곤 소중히 간직하세요;; 모진이가 언제 훔쳐갈지 몰라요ㅋㅋ
오클랜드 대학에서 유아교육 전공했죠. 내니스쿨에 대해서도 좀 아니까 궁금한거 물어보세요. 모노라는 의미도 캐치하시고 센스가 짱이시네요.
메기 수염에서 빵 터졌어요 !! ㅋㅋㅋ ㅋㅋㅋㅋㅋ 너무 재밌어용! 항상 기다린답니다...
터지길 바랐던 지점에서 터지셨다니 휴우~ 감사하네요. 재밌다는 여러분이 있어 힘이 납니다.
다음주까지 잘 기다려 주실꺼죠?
너무 기다리게 해서 항상 죄송한 마음도 있는거 알아주세요. ㅎㅎㅎ
재밌습니다 ~ 다음주 기대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