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연하게 강남 부촌 이미지를 떠올리며 찾아갔는데, 강북의 어느 오래된 주택가와 다를 게 없는 동네가 나옵니다. 저에게는 정겹지만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울지도 모르는 1990년대 정서를 머금고 있습니다.
동네 분위기처럼 정겨운 이름을 지닌 달터공원을 앞에 두고, 개포로38길과 30길이 만나는 모퉁이를 3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십자가와 교회 간판만 없으면, 영락없는 다세대주택인 이곳이 바로 그루터기교회입니다.
강대상 오른편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체임버(chamber) 멤버들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장년 연주자들이 젊은 연주자들과 어울려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보면대를 골똘히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호흡을 맞추는 이들의 연주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교인들이 하나둘 빈자리를 채워 가고, 여기저기서 반가운 낯으로 소곤소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훈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부르심과 나아감', '아룀과 사귐', '말씀과 응답', '다짐과 파송'이라는 4개의 틀로 짜여진 그루터기교회의 예배 순서
성가대장의 인솔하에 집례자와 성가대가 함께 입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배 시작을 알리는 오르간 연주가 흘러 나오자, 집례자인 목사가 설교대 앞으로 나옵니다.
오래된 예배당,
짜임새 있는 예배 순서,
의미 있는 노랫말로 고백되는 신앙
목사가 올린 참회의 기도에 이어 온 교우가 눈을 감고 각자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사죄 기원송을 부르는데, 떼제 성가 '주여, 주 예수여(Jesus, remember me)'를 개사한 노래입니다.
교우 대표의 '교회의 기도', 다 함께 부르는 '주기도문송'과 '평화의 인사' 순서가 이어집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교우들이 일어나 양손을 뻗어 노래하며 서로를 축복합니다. 앞자리에 앉은 교우 일부는 의자 밖으로 나와 몸을 돌려 뒷자리 교우들을 향해 손을 뻗기도 합니다.
벌써 네 곡째 함께 부르는 찬양이었는데, 이후로도 다섯 곡을 더 불렀습니다. 말씀을 위한 노래, 설교가 마친 뒤 부르는 응답 찬송, 봉헌송, 성찬 전 부르는 찬송, 성찬 후 부르는 찬송까지 총 아홉 곡을 다 같이 부릅니다. 일반적인 개신교회의 예배에 비해 두 배가량 많은 편인데,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루터기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성찬을 합니다. . 분병과 분잔을 시작하기 전 목사가 교우들을 성찬으로 초대하는 말씀도 깊이 와닿았습니다(성찬 초대 메시지는 매번 바뀐다고 합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점심 애찬과 소그룹 모임이 이어집니다. 출석 교인의 80%가량이 돌아가지 않고 함께 식탁 교제를 한 뒤 오후 1시 30분부터 소그룹으로 나뉘어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조당 15~20명씩으로 구성된 9개의 소그룹(청년부 포함)이 있습니다. 매주 애찬을 준비하는 조도 8개로 편성되어, 당번조에 속한 교인들이 예배 시작 전에 미리 식사를 준비해 놓습니다.
이날 애찬 메뉴는 김밥과 수박이었습니다. 주방이 있는 교회 2층이 배식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2019년까지는 밥과 국, 간단한 반찬을 준비해 함께 먹었는데, 팬데믹으로 한동안 애찬이 중단되었다 올해 다시 시작하면서, 샐러드·김밥 등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는 중이라고 합니다.
10대부터 그루터기교회를 다닌 30대 교우가 "코로나19 이전의 애찬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 이야기를 미루어 볼 때, 교인들이 애찬 준비에 진심인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민주적 교회
1996년 4월, 고 이귀선 목사와 교인 30여 명이 세운 그루터기교회는 처음부터 평신도 중심의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를 지향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담임목사는 설교와 목양에만 집중하고 교회 행정과 운영은 교인들에게 일임했습니다.
"창립 당시 모인 사람들의 화두가 '한국교회 개혁'이었어요. 교회 숫자 하나 더하려고 이 교회 세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컸죠. 창립 목사님은 기복신앙·외식주의·세속주의를 가장 많이 비판하신 분이었어요. 성공을 하든 못 하든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교회를 해 보자는 마음으로 목사님과 교인들이 의기투합한 거죠. 그래서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목회와 행정을 분리시켰어요. 목사님은 설교와 목양에만 집중하고, 재정 집행이나 교회 운영 전반을 운영위원회 총무가 책임진 거예요."
초대 운영위원회 총무였던 당시 나이는 37세였다고 합니다. 젊은 교인들이 부서장으로,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 리더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이지요.
현재 그루터기교회가 사용하는 건물은 창립 멤버 중 한 분이 기증한 것인데, 그분은 당시 연배가 높은 장로였고 재정적인 기여를 가장 많이 했음에도 교회 운영에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뒤로 빠져 묵묵히 지원만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목회와 행정 분리, 당회와 운영위원회의 권력 균형
초교파 교회로 시작한 그루터기교회는 2000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 가입했습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교단에 속해 있지 않으니 부교역자 초빙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였다고 합니다.
운영위원회는 남녀가 비슷한 수로 구성되어 있고, 교인의 평균 연령보다 더 젊습니다. 교육부·예배부·선교부·관리부·친교부·멀티미디어부·봉사부·재정부 등 각 부서마다 부장과 차장이 주도적으로 부서 활동을 이끌어 가지만, 중요한 사안들은 운영위원회 총무와 조율하며 진행합니다
민주적 역량과 개방성을 갖춘 교회
"'회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토의 시스템 만들어지길"
. 2018년에는 애찬 준비 방식을 놓고 중·고등부 청소년들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인용하며 어른들에게 "왜 애찬 준비를 하는 역할이 성별에 따라 달라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배제와 소외를 최소화하는 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
"코로나19가 득이 된 것 같아요"
첫째, 주일성수를 강조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둘째, 헌금 방식입니다. 그루터기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무기명 헌금을 원칙으로 정해 지켜 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교인이 계좌로 헌금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원래 새벽 기도회가 없었는데, 작년부터는 아침 큐티 모임을 화~금 오전 6시 30분에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다고 합니다.
소명을 다하는 삶을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그루터기교회는 지역 교회가 아닙니다. 등록 교인 200명가량이 서울 경기 지역 곳곳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매주 충남 아산에서 출석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플로팅·SBNR 크리스천들 주로 교회에 상처받거나 소진된 사람들,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지만 존재의 뿌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그루터기교회와 같은 교회를 만나 쉼을 누리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