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최고 지성 이어령교수가 향년 89세로 엊그제 세상을 떴다.
아래 글은 제가 9년 전에 쓴 글을 여기에 올리며 회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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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가 쓴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독후감과 최근에 그의 딸
故이민아변호사가 쓴 책“땅끝의 아이들”, 또 여러 잡지에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인이
된 소개자료를 읽고 이를 종합하여, 간증형식으로 아래와 같이 요약 정리하여 본다.***
이어령 교수는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분으로 우리 시대의
최고 지성인이다. 무신론자요, 종교를 하나의 문화로 보았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그에게는 딸 민아(변호사)가 있는데 그 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이다. 수술을 두 번 받았지만 암이 재발했고,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특수 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나서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하와이로 건너 갔을 때 자신의 망막이 파열되어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망막박리 판결을 받았다. 아버지 이어령 교수는 딸의 전화를 받고 급히
하와이로 가서 딸이 하와이 원주민들이 예배 드리는 작은 교회를 가자고 하여
거절하지 않고,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함께 교회에 갔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교회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기적을 내려 달라고 기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의 별 지상의 꽃을
보는 것이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매일매일 우리는 당신께서 내려주시는 기적 속에 삽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그 기적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딸의 망막박리를 은혜로 고쳐주셨다.
이어령 교수는 딸이 실명으로 앞을 보지 못하고 가족의 얼굴도 볼 수 없는 딸을 위해
아버지로서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런데 딸이 수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시력을 회복하여 새벽기도를 가는 것을 보았다. 딸이 기뻐 뛰면서
새벽기도를 가는 모습이 유치원 갈 때의 모습처럼 예뻐 보였다.
“민아야, 나 세례 받는다고 해, 목사님께 말해,” 만약 내가 세례를 받는다고 하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딸에 줄 수 있다. 인간에게 거의 불가능한
그 완벽한 행복을 내 한마디면 줄 수 있다. “민아야, 나 세례 받는다고 해.”
이어령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말했다.
딸의 질병을 통해서 최고의 지성인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 딸의 질병을 통해서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절망도 해보았다. 절망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 딸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는 유익함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는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았다.
그가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니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비난과 조롱을 했다.
“당신이 지성인인데 집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서를 읽고 기도하면서 책 읽으면 되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예수 믿는 티 내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 제가 하는 말이 있다.
“배가 고프면 어디에 가지?” “식당에”
“뭔가 알고 싶을 때는?” “도서관 가면 되지.”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 보면 돼.”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
“그럼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 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하면 어디를 가나?”
“그게 뭔데?” “배고픈 것처럼, 갈증 나는 것처럼 영혼이 굶주려 있을 때”
그러면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그럴 때 가는 곳이 교회란 말야.”
그러면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욕을 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식당이라고 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던가. 병원 간다고 다 의사가 명의라 병이 낫던가.
극장에 가면 재미있는 명화만 트는가. 그래도 배고프면 식당 찾아가듯이 모든 교회가
다 탈속하고 영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시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 찾아갈 곳은 교회가 아닌가.
부패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죽었으니
병이 나도 병원 가지 말라는 말과 같은 거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편 4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