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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12일차 : 1월 16일 토요일(트래킹 1일차.페디~담푸스~파타나~데우랄리~톨카
윤상현 추천 0 조회 115 10.09.08 07: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페디에서 트래킹 출발

 2. 담푸스에서 능선길 위의 마을

 3. 담푸스의 아이들. 왼쪽 안나푸르나 오른쪽 마차푸차레.

 4.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5. 산간 학교

 6. 트래킹 채크포인트 입산신고

7. 6. 트래킹 채크포인트 '포타나' 

 8. 능선에서 점심식사 신라면

 9. 에베레스트 롯지

 10. 트래킹 코스 안내지도

 11. 숙박장소 톨카를 가리키는 이정표

 13. 구멍가게의 모자

 14. 산 길을 달려가는 조랑말

 15. 서울대로 유학 온 네팔 국비장학생과. 뒤는 안나푸르나 남봉

 16. 오늘의 숙소 히라 롯지 . 안나푸르나 남봉이 보임

 17. 동네 아이들의 재롱. "기부미 스위트!"

 18. 불면 날아갈 듯한 저녁식사 '볶음밥'

19. 동네 혼사의 댄스파티 

 19. 혼사의 하객들

 20. 댄스 파티

12일차 : 1월 16일 토요일 (트래킹 1일차. 페디~담푸스~파타나~데우랄리~톨카)

드디어 트래킹에 나서는 날이다. ‘히말라야 트래킹’이라 하면 왠지 거창하게 생각되지만 실상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기에 특별한 기술이나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좀 더 가까워진 설산을 바라보고 순박한 산촌(山村) 사람들을 만나보며 오로지 두 다리에 의지하여 하염없이 걷는 일이다. 일상적인 문명을 떠나서 오지를 여행하며 그 무언가 원초적인 것에 다가간다는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인다.

날이 밝자마자 합승 버스를 이용하여 40분 만에 트래킹의 출발점인 ‘페디’에 도착하니 7시를 조금 넘겼다. 깊은 계곡 그늘진 자리의 아침 공기가 썰렁하다. 역시 가벼운 요가로 몸을 푼 뒤 초가로 지붕을 인 휴게실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다. 송아지만한 크기의 검은 빛 잡종 ‘티베트 개(犬)’ 두 마리가 다가와 꼬리를 살랑거린다. 우람한 체구에도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 여간 친근한 게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군음식을 던져주며 한 마리의 목을 쓰다듬어주는 순간 난리가 났다. 예쁨을 받지 못한 다른 한 녀석이 질투를 하여 그만 싸움이 난 것이다. 서로가 목덜미와 귀를 물고서 물러나지 않는데 크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싸우는 기세가 실로 엄청나다. 나의 몇 차례 발길질에도 결코 떨어지지 않던 녀석들이 주인 아낙의 물세례를 받고서야 비로소 물러난다. 인간에게는 한없이 순종하지만 호랑이와 맞서도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는 ‘티벳 견’의 면모를 보았다.

트래킹 시작지점의 등산로 초입부터 당장 60° 정도의 가파른 산길이다.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떴다. 이른 아침의 넓은 계곡에 옅게 퍼져있던 안개도 걷혔다. 잠깐 사이에 등줄기에 땀이 밴다. 건넌 편엔 산간 마을로 이어진 차도가 놓였고 그 길을 빈 트럭이 검은 매연을 뿜으며 힘겹게 오른다. 부실한 무릎을 핑계로 저 차를 얻어 타고 능선까지만 갔으면 하는 게으른 맘이 인다.

쉬지 않고 40분을 올라 첫 쉼터에 도착했다. ‘다울라기리 뷰 호텔’과 ‘벨리 뷰 레스토랑’. 작은 초가 정자 앞에 두 줄기 대나무 기둥에 못질해 둔 간판이 선명하다. 예전엔 ‘롯지’로 사용했던 듯 한데 지금은 비어있다. ‘롯지’란 등산객을 위한 소박한 숙소를 말한다. 쉼터의 이름처럼 ‘타르초’ 깃발아래 펼쳐진 동남쪽 ‘포카라’ 방면의 너른 계곡의 풍경이 눈부시다.

이어서 계단으로 일구어진 논밭을 지나 작은 마을의 돌계단을 밟아 오른다. 이마에 두른 띠로 짐을 진 아낙네가 내려온다. “라마스떼!” 인사를 건네자 “라마스떼....” 되돌아오는 답례에 호의가 묻어난다. 빼곡히 열린 사립문엔 코 흘리게 아이가 빤한 눈빛으로 내다본다. 역시 “라마스떼........”

드디어 능선에 올랐다. 초입에 ‘담프스’ 사원을 중심으로 제법 큰 마을이 자리 잡았다. 무화과나무 너른 잎사귀 뒤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잇는 산줄기가 손에 닿을듯하다. “기브 미 스위트!”, “기브 미 볼펜!” 조무래기 아이들이 이방인을 반긴다. 산골 아이들인지라 무척이나 순박하다. 촬영 제의에 즐겁게 포즈를 취해주는 것은 물론이요 디지털 카메라 안의 자기 모습에 너무나도 신기해한다. 고도계는 1,700m를 가리킨다. 한줄기 바람도 구름도 없이 따뜻해진 날씨는 겉옷을 벗게 한다. 뉘라서 짐작 했으리요. 이 겨울에도 히말라야의 능선에서의 옷차림이 반팔 셔츠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능선 따라 드문드문 포실한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제법 넓은 운동장을 갖춘 학교도 보인다. 하얀 벽면에 하늘색 창틀을 가진 학교 교실이 설산과 어울렸으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방목 된 소들도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우리의 발걸음이 터덜대는 사이로 붉은 통치마차림의 아낙들이 무거운 식량 자루를 매고서도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간다.

해발 1,990m ‘포타나’ 11시 30분. 트래커들의 입구 쪽 ‘체크포인트’다. 미리 발급받은 허가증을 내고서 입산 등록을 한다. ‘퍼밋’ 없이 다니다간 자칫 나라 망신시킬 수도 있고 또한 두 곱의 벌금을 물어야한다. 아직은 갈 길이 먼데도 불구하고 워낙 청정지역인지라 시계(視界)가 너무도 좋아 설산의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시야가 툭 트인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마련한다. 버너를 피워 미리 준비한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였다. 히말라야 능선 기슭에서 먹는 한국라면의 맛이 기가 막히다. 바로 옆의 그늘 깊은 숲속에서 무엇에 놀랐는지 수많은 새들이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그 종류도 다양한 것이 과연 새들의 천국이라 하겠다. 거칠어진 손톱의 까끄레기와 곯은 자리가 여전히 귀찮게 한다. 쉬는 김에 손톱 발톱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 견딜만하다.

산군(山群)이 점점 다가오니 한층 가까워진 ‘남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에베레스트 롯지’가 자리 잡았다. 우리가 지체한 사이에 먼저 와 있던 다른 몇몇이 이곳의 쉼터 그늘에서 기분 좋은 점심식사 중이다. 산행 중의 산중 음식이 주변 경관에 합쳐졌으리니 그 맛이 오죽이나 좋으랴. 그 표정들이 행복하다.

이제부터는 다시 내리막길이다. 벌써 다리와 무릎이 아파오는데 애써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려니 아깝기 그지없다. 응달진 길가에는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가득하고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열매들이 점점이 붉다. 가파른 돌계단 따라 저편 아래 홀로 선 ‘아차나 롯지’에도 먼저 온 일행들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나의 발걸음이 풍경 촬영에 정신을 빼앗겨 어지간히 늦었나보다. 보통은 여러 채의 ‘롯지’들이 함께 모였는데 이곳만 외딴집이다. 허름한 상품 진열대의 물건들도 너무나 소박하다. 생수 몇 병에 약간의 과자 봉지들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가는 걸음 따라 고도는 더욱 낮아진다. 높은 고도에서는 트래일 주변의 삼림이 가을빛을 띠었더니 이제 이 아래는 다시 여름 색깔이다. 한 모퉁이 돌아드니 폐쇄된 건물의 붉은 널빤지 위에 화살표와 함께 ‘톨카(TOLKA)’라는 지명이 선명하여 반갑다. 바로 오늘 우리가 묵어갈 ‘롯지’가 있는 마을이다.

출렁다리 놓인 작은 계곡을 건너니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다시 이마에 땀이 돋을 무렵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한 구멍가게의 계단에 엄마와 아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앉았다. 부(富)한 몸매에 맘씨 좋아 뵈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오더니 대뜸 나의 나이를 묻더니만 “나이에 비하여 무척이나 젊어 보인다.”는 말을 건넨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이곳에서는 강렬한 자외선도 한몫을 하여 사람을 더 늙게 하리라. 같은 나이라면 이곳 사람들보다는 우리가 훨씬 젊어 뵘을 알겠다.

다시 그림 같은 산간 마을을 몇 개 지나니 ‘안나푸르나’의 모습이 점점 거대해지며 그 아래 펼쳐진 계곡은 더욱 넓어진다. 그 계곡을 배경으로 잘 가꾸어진 ‘나마스떼 롯지’의 잔디밭이 예쁘다. 비질하며 문 앞을 청소하던 여주인은 다음 기회라도 꼭 들려 달라 당부한다. 한적하던 능선 길에 갑자기 급한 말 발굽소리가 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순간, 벌써 사람 태운 조랑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내 곁을 통과해간다. 울퉁불퉁 자갈길인데다가 도처에 돌계단이 있어 그냥 끌고 가기도 힘이 들텐데 저렇게 달릴 수 있다니, 정말이지 이곳 사람들의 승마 실력에 혀를 내두르겠다. 이곳은 짐 운반부터서 농사에 이르기까지 조랑말이 아니면 생활이 안 되는 곳이다.

약간의 뭉게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구비마다 모습을 바꾸는 무리 진 설산들이 신비롭다. ‘최고의 전망대’라고 써 붙인 ‘램 롯지’에 이르자 마을에 둘러친 돌담이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이제는 오늘의 목적지 ‘톨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돌담 위에 걸터앉아 ‘안나푸르나’의 여러 봉우리들을 차례대로 짚어 가는데 웬 젊은이가 너무도 유창한 한국어 솜씨로 우리의 오류를 바로 잡아준다. 알고 보니 그는 이 산간 오지마을에서 네팔 정부의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 약학과에 유학 중인 학생으로 이름을 ‘안신’이라 하였다. 마침 겨울 방학 중이어서 이 골짜기 고향 마을에 다니러 왔다가 우릴 만난 것이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또한 옆에 있는 아우와는 대학 동문이 되니 역시 반가운 일이다. 약간의 환담과 함께 서울에서의 재회를 약속하고 가던 길을 이어간다.

얼마 안 있어 네 시가 가까울 무렵이 되어 숙소인 ‘톨카’마을의 ‘히라 롯지’에 도착했다. 계곡을 끼고서 산허리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곳인지라 우람한 설산이 손에 잡힐 듯이 건너다보인다. 워낙에 산골인지라 벌써 해가 뉘엿하다. 저물어가는 태양과 함께 기온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몇몇 코흘리개들이 다가오며 손을 벌린다. ‘텐 루피!’, ‘기부미 캔디!’, ‘기부미 볼펜!’. 우리들의 어릴적 초상(肖像)이다.

1층의 3인실을 배정받았다. 따로 복도가 없고 마당에서 바로 진입하는 구조다. 창틀은 맞지 않아 바람이 숭숭거리고 딱딱한 나무침대는 어설프기만 하다. 이층이나 옆방과는 전혀 방음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밤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마음자리가 편안하다. 우선 침낭을 펼쳐 잠자리부터 정리하고서 후원(後苑)으로 나서보니 저 위의 하얀 설봉(雪峰)엔 황금 빛 석양이 와 닿았다. 아까의 조무래기들이 찾아와 재롱을 부리기 시작한다. 늘 변함없는 산골인지라 우리처럼 낯선 이방인이 퍽이나 반가운 모양이다. 한 녀석이 느닷없이 물구나무를 서며 재주를 자랑하다가 흘러내린 바지 때문에 엉덩이가 다 나왔다. 짐짓 그걸 놀리자 저희들끼리도 웃고 난리다.

작심하고 옷을 벗어부친 뒤 계곡물로 머리를 감았다. 남들은 놀라는 눈초리인데 정작 난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보다는 계곡 물이 그리 차갑지 않다.

주문한지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내어 온 ‘볶음밥’이 불면 날아갈 듯하다. 이곳에 늘 숙박 손님이 있는 것이 아닌지라 사전 준비가 부족하다. 우리의 음식을 장만한다고 이웃집에서 식재료들을 얻어오느라 보통 난리가 아니다. 앞집에서는 계란 몇 개 꿔오고 부추는 옆집에서 얻어오고 뭐 대략 이런 식이다. 소박한 밥상이나마 감사하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갑작스레 이웃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적막한 산골 마을에서 앰프까지 동원하여 온 계곡이 울릴 정도로 볼륨을 높였다. 동내에 혼사(婚事)가 있단다. 결혼식 전날 하객들이 미리 모여 밤새도록 댄스파티를 하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란다. 파티의 참관을 요청하니 혼주(婚主)는 흔쾌히 환영한다.

달빛도 없는 캄캄한 골목길에 손전등 밝혀가며 혼가(婚家)를 찾아가니 아래편 공터 대형 천막 아래엔 남정네들이 한담(閑談)중이고 방 안에는 주홍 빛 전통 의상으로 곱게 차려입은 아낙네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異邦人)들의 방문에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마루 한 편을 비우고 방석을 내오며 앉기를 권한다.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마당에는 남녀 하객들의 춤판이 한창이다. 리듬 보다는 멜로디 위주의 네팔 음악이 무한정 이어진다. 우리도 그냥 구경꾼노릇만 하기에 뭔가 좀 부족하다.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이 그 춤판에 합세했다. 같은 음악에 서로 다른 춤사위가 어울려 이내 한 마당이 된다.

느닷없이 춤판 곁에서 개싸움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 틈을 어슬렁거리던 두 마리의 커다란 개가 무슨 일 때문인지 서로 죽일 듯이 물어뜯으며 싸우자 잔치 마당이 문자 그대로 ‘개판’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단 한 번도 싸움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사람은 물론 개까지 싸운다. 으르렁 거리는 큰 소리에 질겁하는 우리와 달리 이네들은 웃기까지 하며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일들이 일상적인지 잠깐의 개싸움이 끝나자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춤판이 이어진다. 하지만 우린 흥이 깨졌다.

마냥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다. 되돌아오는 길의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롯지 앞마당에 모닥불을 비우니 한기도 잦아들고 운치가 좋다. 재 안에 묻어둔 감자가 고소하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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