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록
소설가
1963년 전북 전주 출생.
1987년 ‘파수병 시절’로 제17회
삼성문예상 수상하며 등단.
1988년 장편 ‘칼라빈카’로 제1회 불교문학상 수상.
‘동동’ ‘왕자의 눈물’ ‘풍수1.2.3’ ‘제왕의 길’ 등 장편 다수.
한민족 정체성 찾기와 천·지·인 삼재사상 탐구를 위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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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온갖 색깔의 헝겊 조각을
주렁주렁 매단 '자아라'.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주술적 장식품이다. |
숲의 귀족, 자작나무
토인비는 ‘문명의 시작에는 숲이 있고 종말에는 사막이 있다’고 했다. 시베리아 타이가 숲에는 문명사의
귀중한 유산들이 널브러져 있다. 고고학적 유물들이 속속 발굴되는 우랄 알타이 산맥도 시베리아의 한 부분이며, 칭기즈칸의 고향도 시베리아다. 우주목이라고 일컬어지는 당산나무는 시베리아 숲 어디를 가도 만나볼 수
있다.
뿐인가. 선사시대인들의 태양숭배나 주술의 흔적인 바위그림들도 숲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바이칼 주변의 타이가 숲을 말할 때 ‘소볼’이라고 불리는 검은담비와 갈색 곰, 그리고 사슴을 빼놓을 수 없다. 소볼의 가죽은 아름다우면서도 질겨 모피의 황제
혹은 ‘부드러운 황금’이라고도 불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일찍부터 모피 가공산업이 발달한 이유도 소볼이
있어서라고 한다. 소볼은 발구진에서 나온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발구진은 바이칼에서 가장 커다란 만(灣)이다.
자연보호 측면에서는 모피를 거론하는 것조차 실례겠지만 이곳 시베리아에서는 중요한 산업이다. 그 역사도
오래다. 러시아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애용되기 훨씬 전인 칭기즈칸 시대에도 담비모피 외투가 인기였던 모양이다. 유년에 고아가 돼 궁핍한 인생에서 잡초처럼 얼어난 테무진은 청년시절 콩기라트의 수령 데이 세첸으로부터 담비모피 외투를 선물받는다. 그의 딸 브르테와는 일찍부터 정혼한 사이여서 결혼 지참물로 받은 것이었다. 뒤에 테무진은 이 귀한 외투를 뇌물로 쓴다. 케레이트의 강력한 통치자 토오릴에게 충성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동맹자가 된다. 영웅이
몸을 일으켜세우는 데 담비는 더없이 유용하게 쓰인 셈이다.
마지막 바이칼 여행 때는 곰 사냥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하루 낮을 쏘다니다 그만두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을 차마 잡을 수 없겠다 싶어서였다. 살생을 꺼리는 가풍도 한몫 했다. 하지만 겨울 설원을 누비며 밀림의 왕자를 사냥하는 것은 분명 스릴 넘치는 일이다. 자연보호를 생각하는 인문주의자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찾는 작가의 입장에서 한번쯤 더 시도해볼 생각인데
막상 곰과 맞닥뜨리면 어찌 할지는 모르겠다.
한국인은 녹용과 사향을 최고의 보약으로 친다. 시베리아산이 단연 최상품이다. 우리의 피와 살의 뿌리가 북방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역사서를 보면 왕이 사냥나가 잡는 동물은 사슴 아니면 노루다. 고구려
벽화에도 사슴 사냥 광경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북방민족들은 내남없이 사슴 사냥을 신성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에는 사슴 사냥을 우주 사냥으로
간주하는 샤머니즘의 유습이 있는데, 그 내막에 해당하는 신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옛날에 우주사슴 케글렌이 천상의 숲에서 나와 산정에
있는 태양을 보았다. 우주사슴은 뿔로 태양을 찔러 천상의 숲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자 지상에는 어둠이 계속되었다. 그때 용감한 영웅 마인이 날개 달린 스키를
타고 천상계로 우주사슴을 뒤쫓아갔다. 그가 화살을 쏘아 우주사슴을 죽이고 태양을 되찾아오자 지상에는 낮이 돌아왔다. 하지만 우주사슴은 이내 되살아나 저녁
무렵이면 태양을 숲으로 가져갔고 그러면 마인이 다시
태양을 찾아오고, 이런 일의 반복으로 지상에는 낮과
밤이 교차하게 되었다.
사슴뿔은 대지의 초목들과 같이 돋아나 자라고 빠졌다가 다시 돋아나는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 곧 계절과
생명과 우주의 순환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제왕들이
사슴 사냥을 즐겼던 까닭은 자신이 우주사슴을 쫓는 사냥꾼으로서 세상을 밝히고 만물의 재생과 부활을 이끌어내는 존재임을 확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사슴 사냥은
신성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시베리아 사슴은 자작나무와 함께 우리 역사에 값진 유물을 남긴다. 곰과 호랑이가 단군신화의 모티프가 되었다면 이들은 화려한 유물에 그 자취를 남겨 놓았다. 신라 금관과 천마도가 그것이다. 신라 금관에는 사슴뿔과
나뭇가지 모양의 입식(立飾)이 있고, 그 입식에는 자작나무 이파리가 달려 있다. 가을날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를 보면 신라 금관이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금관의
이 자작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우주목이며, 이에 대한
집단기억을 모사해 놓은 것이다.
경주 천마총에서는 금관 말고도 하늘을 나는 말그림이
발굴되었다. 백화수피(白樺樹皮), 곧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장니(障泥)에 그려진 이 백마는 흰 구름을 헤치고
하늘로 힘차게 날아가고 있다. 그래서 천마도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도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본래부터 부패를 이기는 힘이 있지만 내구성을 더 기르기
위해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 말려 판각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다. 자작나무는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북방에 대한 집단기억이나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 속에 뚜렷하게 자리했다. 국문학사에서도 자작나무는 저승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설시조 ‘장진주사’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중략)/억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숲에 가기곳 가면/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회오리바람 불제/뉘 한 잔 먹자 할꼬/하물며 무덤 위 잔나비 휘파람 불제/뉘우친들 어떠리.
백양숲은 죽어서 가는 곳, 북망산이다. 저승의 상징이다. 시베리아 샤먼의 신목이 영계로 환치되는 놀라운
일이 이 시조에 나타나고 있다.
놀라운 일은 더 있다. 우리는 결혼식을 두고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 또한 북방에서 살다 내려온 우리 조상들의 집단기억의 유산이다. ‘화’(華)자는 자작나무 ‘화(樺)’자의 의미가 변형돼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촉은 바로 자작나무 껍질을 말아 태우는 횃불을 일컫는다. 자작나무 껍질에는 기름 성분이
함유된 진이 있는데 이 수지(樹脂)는 불을 오랫동안 잘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화촉은 당신들의 자손이 이렇게
남방에 내려와 오늘밤 새 짝을 짓고 있다고 조상들의
영에 고하는 의식인 것이다. 내가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에 매료되는 것은 이러한 문화유산에 기인한다. 더구나 나는 옛 시베리아의 주인공인 스키타이인들이 그토록 숭배했던 황금에서 연유한 김(金)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자작나무로 만든 공예품이나
그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얼레빗이나 목걸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 여러 문양을 새겨
넣은 작고 예쁜 함과 접시 등은 싸고 좋은 선물용품들이다. 껍질의 질박한 미학을 그대로 살린 커다란 물통도 일품이다. 뜨거운 물만 붓지 않으면 방수도 되는데
그 속에 담긴 물이나 음식은 좀처럼 부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나 박물관 혹은 공공건물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이어 붙이고 거기에 성화나 풍경화를 그려 넣은
대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러시아 시인들은 이 백색가루가 묻어나는 향기로운 껍질에 연서를 써서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5월 말경, 해동기에 받아 마시는 자작나무 수액은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둥치 부분에서 자라는 챠카
버섯(나무의 혹)은 신장 기능을 강화하고 항암 효과가
있다 하여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챠카 버섯은 아주 싸고 흔해 약재로 여기지도
않는다. 근래에는 자작나무에서 자일리톨을 추출해 껌이나 음료를 만들어 충치 예방제로 쓰기도 한다. 자일리톨이라는 말은 자작나무 주헬리(Zuxeli)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핀란드에서 수입한 원료로 만든 자작나무
껌을 씹고 있는 지금도 자작나무 천국인 시베리아의 러시아인들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말린 송진 조각을 씹는 것으로 치아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별반 효과가
없는지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치아가 누렇고 충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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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작은 함과 접시들. |
물의 天國, 바이칼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숲길을 달려 그대로 바이칼 호수에 뛰어든다. 몸에서 쨍그렁 소리가 울린다.
넓고 깊고 차다. 이 단순함 속에 바이칼의 역사와 생명의 자궁이 모두 함축돼 있다. 이 바다는 언제나 신비한
빛에 휩싸여 있다. 희끗한 구름과 햇살에 빛나는 물빛이 혼융하는 지점에 바이칼 산맥의 연봉들이 내달린다.
해발 2,000m급 봉우리도 여럿이다. 나이부스샤야는
2,840m나 된다.
더운 사우나에서 나와 호수에 담근 몸이건만 이내 한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넓이에 비해서는 너무 냉정한 호수다. 하여 한여름에도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나 같은 광신도나 거추없이 뛰어들 뿐이다. 다시 이 먼 북방 물의 나라에 와서 몸과 영혼을
씻는다. 성욕(聖浴)이다. 이로써 새로운 영혼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바이칼은 거듭난 내 영혼의 피정지(避靜池)이며 거룩한 자궁이다.
갑자기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하고 치솟았다. 싸늘한 바이칼 물에 체온을 빼앗고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누웠는데, 그 와중에도 내면 어디엔가 숨어 있던 생명의 난로는 여전히 타고 있었던 모양이다. 코가 시큰거린다. 입안으로 흘러드는 체액이 짜다. 눈물이었다. 내 속에 스며 있던 눈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막을 도리가 없다. 성장한다는 것은 눈물을
함부로 보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던가. 그래서
나는 눈물을 참아왔던 것이고, 그러다 여기 북녘 바이칼 호수 가에 알몸으로 누워 있다 그만 눈물 항아리를
깨뜨리고 만 것인가. 후련했다. 나는 평생 울어야 할 눈물 항아리를 통째로 다 쏟아버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발구진이나 사르마 같은 산골짜기에서 몸을 일으켜 주변의 모든 물을 빨아들이는 바이칼
호수의 여신 품에 귀의한다. 여신은 그 바람들을 품고
있다 때로는 훈훈하게 때로는 드세고 차게 대지의 뭇
생명들을 향해 입김으로 뿜어낸다. 그 사품에 잠자던
동토가 깨어나기도 하고 일어섰던 풀들이 눕기도 하며
짙은 물안개가 피어나기도 한다. 생명의 시원(始原)은
이 바이칼 여신의 입김인 바람이다. 태고적 비밀을 머금은 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사시사철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기에 바이칼은 언제나 처녀 같은 순수성과 생명을 잉태해낼 수 있는 자양분을 지니는 것이다.
바이칼은 남북 640km, 가장 넓은 곳의 폭이 80km, 가장
좁은 곳은 27km, 면적 31,500㎢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넓은 담수호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637m에 이른다. 지구상 민물의 20%, 그중 식수만 따진다면 무려 80%를 담고 있다. 외부에서 물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더라도 인류 전체가 40년을 마실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호수와 그 주변에는 2,600여종의 생물이 살고, 그 가운데 1,200종의 동물과 600종의 식물은
오직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이다.
2,500만~3,000만년 전에 생성된 지구상 최고령 호수이기도 하다.
예부터 물이 모여드는 곳은 복지(福地)로 통한다. 바이칼도 주변의 모든 물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인다.
336개의 강에서 물이 흘러들어 오직 앙가라 강으로만
빠져나간다. 336개의 강에서 유입되는 물이 모두 마르더라도 앙가라 강은 무려 400년을 더 흐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바이칼은 물의 광장이며 물의 나라다. 지상에서 가장 맑은 물들이 하나로 모여 이룬 물의 천국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여러 가지 수치를 동원해 이 거룩한
여신의 호수를 담아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바이칼은 그
어떤 세세한 수치로도 파악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우선 그 생김새부터가 한편의 시학(詩學)이다. 컬러 지도에서 시베리아를 찾아보면 초록 바탕에 파란 초승달
하나가 떠 있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초승달은 검은 밤하늘이 아닌 푸른 초원 위에
두둥실 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이 지상의 초승달을 들여다보노라면 누구라도 꿈을 꾸게 된다. 달은 밤이고 물이며 신화이고 전설이다. 꿈꾸는 전설을 싣고
타이가 숲을 떠도는 조각배가 바로 바이칼이다.
바이칼의 신비는 계속된다. 모든 오래 된 호수들은 빙하기를 거치면서 퇴적물이 쌓여 사라지는데 오직 바이칼만은 노화할 줄 모르고 처음과 같은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비밀이다. 바이칼은 대양으로의 생성 단계를 밟고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 증거로 해마다 2cm씩 해변이 팽창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바이칼 호수 밑바닥의 깊이 패인 부분에서는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며 내부 지진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해마다 강도 7의 지진이 발생하고, 강도 8의 지진도 5년에
한차례씩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1862년에는 강도 10의
지진이 발생하여 바이칼의 북쪽지역 세렌카 삼각지대
200㎢가 여섯 개의 마을과 함께 호수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때 1,300명이 사망했으며 지금의 쁘로발 만이 생성되었다. 미세한 지진은 거의 매일 발생하여 연평균
2,000번 가량의 지진현상이 일어난다. 바이칼은 이런
이면을 품은 채 오늘도 시원의 생명수를 담고 있다.
바이칼은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이칼이 늘 신선한 것은 무엇보다 그 차가움에 있다. 수심
400m 지점의 온도는 항상 영상 4도를 유지하는데 이것이 수질의 변질을 막는 비밀 가운데 하나다. 바이칼에서 섭생하는 생물들도 수질 정화에 한몫 한다. ‘에삐슈라’라고 불리는 새우와 갑각류의 일종인 ‘보카플라프’ 그리고 ‘구브까’라는 해면동물 등 30여종의
생물이 바이칼의 청소부 혹은 필터 역할을 한다. 특히
에삐슈라는 수심 50m층에 있는 모든 물을 한해에 세번이나 깨끗이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구브까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생긴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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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껍질에는 기름 성분을 함유한 진이 들어 있어 불을 잘 받아들인다. |
눈이 쌓이지 않는 섬, 알혼
바이칼에는 ‘네르파’라는 바다표범이 산다. 민물에
사는 유일한 바다표범이다. 어떻게 해서 바다표범이 이곳 바이칼 호수에서 살게 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는 빙하기에 북극해에서 예니세이와 앙가라를 거슬러 올라와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때의 동행자가 ‘오물’이라는
청어라고 한다. 바이칼에는 약 10만마리의 바다표범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능이 뛰어난 이 바이칼
바다표범은 수명이 길기로도 유명하다. 거의 60년을 산다고 한다. 바이칼에만 사는 어류 가운데 ‘골로미얀카’(Golomyanka)라는 물고기는 기름 성분이 40%에 달하는 투명한 물고기인데 글자 위에 대고 보면 아래 글자가 보일 정도라고 한다.
1992년부터 바이칼의 물은 생수로 판매되는데 인기가
높다고 한다. 미네랄이 과다하지 않고 인체에 이상적인
양만큼 함유돼 있으며 많은 양의 산소가 용해돼 있다는
것이다. 물은 수심 400m에서 채취한다. 1m 이상 꽁꽁
얼었던 물이 깨어나는 봄철에는 투명도가 뛰어나 수심
40m까지 볼 수 있다. 다른 호수들에 비해 10배나 높은
투명도라고 한다.
바이칼은 이처럼 자연의 신비가 그대로 살아 꿈틀대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성소다. 그래서 풀 한포기, 돌 하나, 바람 한줄기도 예사롭지 않다. 그것들은 저마다 알 수 없는 빛을 발하며 미묘한 기운을 지녔다. 사람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기운을
감지한다. 시베리아 원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래인인 백계 러시아인들도 바이칼을 성스럽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자연을 정복해 온 역사가 곧 인간의 문명사라고 하지만
이곳 바이칼만큼은 예외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바이칼의 장엄함과 시원의 생명력 앞에 머리 숙여 경배한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환경파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베리아인들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단결력과 발 빠른 대응으로 바이칼을 지켜냈으며 앞으로도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할 것이다. 그린피스 회원들의
활동이 이곳 바이칼에서처럼 눈부신 예도 드물다. 그들은 이미 공산 치하에 있던 1986년 바이칼 환경오염 반대 시위를 벌였다.
1996년 유네스코는 이 성스러운 작은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을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 생태학적 보고(寶庫)로 공인한 셈이다. 남미 아마존 강 유역의 정글이 지구의 허파라면
이곳 바이칼과 시베리아 타이가 숲은 북반구의 허파이며 나아가 북방문화의 자궁이다. 바이칼은 수많은 북방종족들의 신화가 탄생하는 정신의 오아시스이기도 하다.
2,000년전 흉노족들은 바이칼을 ‘텡기스’(Tengis)라고 불렀다. 하늘의 물, 곧 천지(天池)라는 뜻이다. 텡글은 알타이어 계통에서 하늘을 가리킨다. 흉노족은 왕을
‘텡리고도’라고 하는데 하늘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도 하늘의 계시를 받는 샤먼을 가리키는 우리말 당굴의 어원을 텡그리에서 찾은 바
있다.
바이칼의 이모저모를 보려면 역시 여름이라야 제격이다. 4월이 돼야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바이칼의 봄은 너무 짧아 여름의 서막에 그친다. 보통 6월15일에서 8월15일까지를 여름으로 치고 이 시기가 여행의 최적기다.
이때는 일기도 화창하고 여객선도 규칙적으로 다닌다.
숲과 호수와 백야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여름에도 여전히 물이 차가워 수영이 어렵지만 나처럼 뜨거운 피를
지닌 사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언제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이칼 성수에 손을 씻으면 5년, 세수를 하면 10년이나 젊어진다는 덕담까지 있는 마당이다. 목욕을 하면 30년은 너끈히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르쿠츠크를 떠난 지 여섯 시간. 알혼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바이칼과 만났다. 여러 차례 바이칼을 봤지만 이때만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석양
무렵의 바이칼은 이미 지상의 호수가 아니었다. 물안개는 수면 위에서 피어올라 서서히 이동하며 호수 가장자리 구릉지대를 더듬고 있었다. 물안개 아래로 파도치는
짙은 물빛과 비상하는 하얀 갈매기 그리고 사르마 협곡에서 바이칼 호수로 거대한 아치를 그린 무지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여지없는 선경이었다.
밤 11시30분, 버스에 탄 채 바지선에 올라 어둠의 흑막에 가린 알혼으로 들어간다. 그 길에 비가 내린다. 샤머니즘의 본향을 찾아가는 데 물이 없을 수 없다. 영계 여행에서 물을 건넌다는 것은 차원을 달리한 세계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긴 여정에 지친
몸은 의례를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목감기 기운 때문에 말하기조차 불편할 정도인데 차안의 더운 공기가 숨통을 막는다. 머리가 흐려지고 생각이 멎는다. 게다가
사방은 짙은 어둠뿐, 오직 버스 전조등만이 길을 더듬고 있다. 비몽사몽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다.
차체가 한번 크게 흔들렸으니 알혼 섬에 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알혼 섬에 들어와 이렇게
야간주행을 하고 있는데도 몸이 편치 않으니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까스로 눈을 뜨려 하면 이내 밀려드는 수마(睡魔)! 어쩌면 알혼의 알 수 없는 기운이 우리 영혼에 주박(呪縛)을 가하는지도 모른다. 머리 속이
깊은 물속처럼 흐리다. 버스가 다시 심하게 흔들린다.
그 사품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버스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모랫길로 내려선다.
“다 왔습니다.”
가이드가 딱딱한 어조로 말한다. 둥근 천막 몇채가 전조등 불빛에 드러났는데 모두 불이 꺼져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냉기가 엄습한다. 고함치는 소리, 부산떠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요한 밤의 알혼이 깨어나고 여기저기 램프가 켜진다. 단잠에 빠져 있다 우리가 들이닥치자 비상이 걸린 눈치다. 새벽 1시30분. 이 새벽에 우리가 올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숙소가 정해지고 짐을 옮겼다. 천막은 전통 이동 주거양식인 ‘유르타’였는데 급조한 까닭에 램프도 없고
난로도 텅 비어 있다. 송판을 켜 만든 벽채에서는 소나무 향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침대는 조잡하고 실내는
춥고 을씨년스럽다. 부랴부랴 램프를 구해 달고 나니
그제서야 천장이 뻥 뚫린 유르타의 전모가 눈에 들어온다. 지름 1m는 족히 될 만한 커다란 천장 구멍으로 별들이 반짝인다. 별바라기라면 사족을 못쓰지만 이때만큼은 공포로 다가왔다. 꽉 잠긴 목, 불도 피우지 않은
난로, 휑하니 천장에 구멍이 뚫린 유르타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할 판이었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었다.
우선 난로를 피우기로 했다. 나무 욕심을 내서 잔뜩 안아다 밤새 지질 생각이었는데, 웬걸 이제야 장작 패는
소리가 들린다. 밥부터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유르타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예 난로조차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드디어 음식이 나온다. 따뜻하고 구수한 야채스프 ‘보르쉬’나 구수하고 앙증맞은 시베리아 삘맹이 만두국,
훈제 꼬치구이 ‘샤실릭’ 등을 몽상했는데 정작 음식은 국물도 없이 차가운 흑빵뿐이다. 애걸하다시피 하여
따뜻한 커피 한잔씩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전에 보다 꼼꼼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떴다. 새벽 바이칼에 목욕을 하기로 했다. 유르타 옆에는 몇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었고 그 아래 비탈진 모랫길을 내려가면 바로 호수가 철썩거리고 있다. 간밤에는 몰랐는데 빼어난 풍광이었다.
험난한 여정과 불편한 잠자리는 어느새 잊혀졌다. 지금은 또 다시 성스런 씻김의 시간이다.
찬란한 햇살이 알혼 섬을 빛나게 한다. 물안개가 거대한 백조의 날개처럼 수면 위에서 띠를 이루며 피어오른다.
호수 전면에 서린 원시의 생명력이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낸다. 차가운 물속에서 자맥질을 한다. 바이칼은 다시 신화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유르타로 돌아와 활활
타는 난로에 머리를 말리니 날아갈 것처럼 상쾌하다.
감기 기운도 한결 나아졌다. 찬물에 목욕하는 충격요법으로 주춤 뒷걸음쳤을 것이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알혼의 꽃, 바이칼 정기의 핵인 불한바위를 향한다.
‘불한’의 ‘불’은 ‘밝음’ 혹은 ‘해’의 의미가
있고, ‘한’은 ‘칸’이기도 하며 ‘간’이기도 한데
몽골의 칭기즈칸이나 신라의 마립간에서처럼 왕을 뜻한다. 따라서 불한이란 밝은 신 곧 천신(天神)이며 바이칼의 영이다. 이 불한에서 밝은 임금, 곧 단군이 나왔음이다. 북방문화의 자궁 바이칼은 언제나 거룩한 빛, 그
밝음의 미학이 자리한 터다. 여름에는 백야가 있어 저녁에도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겨울에는 빛이 스러지고 어둠이 지배한다. 그래서 바이칼의 신은 백색
아니면 흑색이다. 물론 그들은 각각 선과 악을 주관한다.
알혼은 바이칼에 떠 있는 26개의 섬 가운데 제일 큰 섬이다. 섬은 바이칼의 축소판처럼 초승달 형태를 띠고
있다. 브리야트인들의 시원지인 이 알혼은 의외로 메마르다는 의미를 지닌다. ‘오이홍’이라고도 하는데 ‘오이’는 숲을 뜻하며 ‘홍’은 작다는 뜻이다. 따라서
메마른 섬, 작은 숲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이지만 강수량이 적고 ‘사르마’라는 바람이 시속 160km로 섬을 휩쓸고 다닌다. 겨울에 눈이 내려도 바람에 날려 섬에는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바이칼은 풍요롭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이 섬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이 섬에는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고도 한다. 브리야트인들만 아니라 거개의 북방종족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직간접으로 이 지역을 거쳐갔다고 한다. 고구려의 조상격인 고리족의 원거주지가 이곳이라는 설도 있다. 알혼에는 무수한 유적이 있고 고고학적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무너진 옛 성채도 상상력을 달리게 만든다. 현재 이 섬에는 4,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500여명이 브리야트인들이란다.
과거 스탈린 시대에는 이 성스러운 섬 전체가 수용소로
쓰였다고 하니 무지한 독재자에게는 대자연도 그 속에
깃들인 종교적 성스러움도 한낱 고도(孤島)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숙소에서 숲을 끼고 10여분 달리니 목조가옥이 즐비한
마을이 나타났다. 크후지르 마을이다. 1,500여명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동쪽으로 나가니 넓은 구릉지대가 나타나고 그 아래는 바다
같은 호수가 펼쳐진다.
아! 이것이었구나. 이것 때문에 성소가 되었던 것이로구나. 구릉에서 바라본 바이칼은 빛과 색의 천국이었다. 작열하는 원시의 햇살과 그 아련한 빛을 날리는 순결한 바람, 쪽빛으로 하늘빛으로 순백으로 반사하는 물빛!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물빛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뼈에 스밀 것만 같다.
용머리 형상으로 파란 물을 둥그렇게 감돌아 용출해 뻗어나간 바위 봉우리! 미쓰불칸이다. 미쓰란 반도를 뜻한다.
신들의 궁전은 섬의 끝자락에 불끈 솟구친 바위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속적인 삶에 찌든 이라도 금방 범상치 않은 장소임을 간파할 수 있다. 눈이 부시게 흰 빛은 바로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영기를 머금은 빛이란 바로 지금 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지상의 빛이 아니라 하늘의 빛이며 영혼의 빛이었다.
그 빛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이상하게도 중력을 느낄
수 없다. 제사유적을 발굴한 장방형의 흔적이 보이고
그 남쪽으로는 신성한 숲이 자리잡고 있다. 무당이 죽으면 이 숲속에 들어가 화장한다고 한다. 이 신성한 숲을 ‘아이하’라고 한다. 주변의 나무와 덤불에 ‘세멜가’라는 부적을 매달았다. 오직 무당만이 이 신성한
숲에 출입할 수 있다.
드디어 용머리를 향해 내려간다. 가파른 길 언저리에
‘세르게’, 곧 당산나무가 서 있다. 커다란 낙엽송 둥치에 흰 자작나무 두그루가 자아라에 의해 묶여 있다.
자아라의 흰색 헝겊은 건강을, 붉은색은 장수를, 파란색은 평화를 소망한다고 한다. 노란색은 태양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지옥을 상징한다고 한다. 크후지르 마을에
살고 있는 현지 가이드 청년의 설명인데 민속학자나 책자를 통해 검증하지는 못했다.
세르게를 뒤로 하면 불칸 바위가 금방 눈앞에 솟구친다. 브리야트인들은 이 세상에 모두 99위의 신이 있다고 믿는다. 55위의 선신과 44위의 악신이 그들인데, 그
가운데 13번째 선신이 주석하는 곳이 바로 이 불칸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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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 섬으로 건너가는 포구의 장터.앞에 보이는 물고기가 빙하기에 바다표범과 함께 바이칼로 유입된 청어의 일종'오물'이다. |
시원의 흔적, 샤먼스카비쉐라
불칸 바위에 오른다. 변성암과 화강암 그리고 퇴적암이
켜켜이 층이 진 바위산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다. 남동쪽 기슭에서 북서쪽 기슭으로 넘어가니 중간쯤에 작은 동굴 하나가 나타난다.
아! 바로 여기였던가. 그토록 먼길을 돌고 돌아 찾아온
내 영혼의 시원, 그 흔적. ‘샤먼스카비쉐라’. 폭 2m,
높이 2.5m의 불규칙한 천연동굴. 잔잔한 전류가 전신을
훑고 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천천히 입구로 들어선다.
서쪽 입구는 넓고 하늘이 빠꼼이 내다보이는 남쪽은 좁고 위로 뚫려 있다. 무너져 좁아진 것인지 상층부에 버팀목이 가로놓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동굴에는 여자 무당의 두개골과 개의 뼈들이 굴러다녔다고 한다.
동굴로 들어가 잠시 가부좌를 틀었다. 순간적으로 서로
연결되지 않는 상념의 조각들이 모여들었다 흩어졌다.
편안한 일상보다 뜨거운 혼을 태우는 예술가로 살고 싶어하는 내 피 속에도 샤먼의 유전자가 들어 있지는 않을까. 내가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대자연의, 아니 하늘의 빛과 우주의 원초적 기운이지 않던가. 일개
시정의 주술사든 나랏일을 보는 국사든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든 그 본질의 궤는 같다. 삼국시대 초창기까지만 해도 임금은 큰무당이었다고 한다. 하늘에 제사하고 그 계시를 받아 백성을 다스렸던 것이다. 선사시대의 유습인 샤머니즘을 지금 거론해 무엇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샤머니즘의 시원인 불칸 바위의 동굴에서 우리 고유의 정신사를 더듬어 보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매우 소중한 의식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달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동굴을 나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순백의 밝음이 펼쳐져 있었는데 어느새 동굴
밖은 순식간에 피어오른 운해로 발끝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쯤 되는 곳이니 신이 주석한다고 할 것이다. 약간의 애니미즘을 믿는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조복’(調伏)이었다. 아래쪽에서 조심해
빨리 내려오라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바위절벽을 내려와 세르게 아래에서 보니 운해가 휙휙 골을 져 흐르고
있다. 다른 곳은 여전히 밝은데 불칸 바위 중턱에서만
운해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은 이제 그 명맥이 끊기고 하나의 문화적 시위 형태로만 남아 있다. 불칸 바위 또한 신성을
잃었다며 얼마 남지 않은 무당들조차 외면하는 실정이다. 근대에 이르러 시베리아 샤머니즘은 러시아 정부나
다른 고등종교들로부터 핍박받았다. 1930년대에 스탈린은 수백명의 샤먼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처넣었다. 살아남은 샤먼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공산정권에 핍박받기는 불교도 마찬가지였지만 샤머니즘은 이들 불교도들에게조차 박해받았다. 언제인가 한 라마승은 동굴을 비우라며 불칸 바위를 지키던 샤먼을 활로 쏘아 죽였다. 그뒤 샤먼들은 이 거룩하고 웅장한 천연의 기도처를 버리고 바이칼을 맴돌아야 했다.
크후지르 마을의 초등학교에는 알혼 섬의 역사민속박물관이 있다. 크후지르 중학교 역사교사인 레비아킨이
세웠다고 한다. 일요일이어서 문이 잠겨 있었는데 박물관장 집을 찾아 관람을 요청했다. 박물관장은 중학교
교장 리트미너바 여사로, 예순이 넘어 보였지만 매우
열성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박물관은 소박하지만 다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다. 바이칼에 서식하는 동식물,
어패류를 비롯해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사냥 도구와 고기잡이 도구, 샤먼의 복식과 의기들도 있다. 석기 유물들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알혼 섬에는 이미 선사시대
때부터 인간이 거주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1974년, 알래스카를 발굴한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이듬해인 1975년 러시아 학자들과 공동으로 알혼 섬을 발굴했다고 한다. 구석기 유물들이 불칸 바위 샤먼 동굴에서 나왔고, 연구 결과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 이곳 알혼에서 건너간 것으로 판명되었다. 실제로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시원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의 유력한 원류가 이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아담한 단층 목조 박물관에서 나는 흥미로운 유물들에
정신이 팔렸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을 매는 말뚝 형태로 된 세르게였다.
브리야트인들이 집집마다 뜰에 나무기둥을 깎아 세우고 천을 매달아놓던 것을 재현해 놓았다. 높이는 2m 가량인데 상층부를 3단으로 깎았다. 맨 위 마름모꼴은 하늘을 뜻하고 중앙 역삼각 뿔은 땅을, 맨 아래 역삼각 뿔은 지하세계를 뜻한다. 중간에 감아놓은 천은 우리가
왼새끼로 금줄을 치는 것과 똑같이 왼쪽으로 감아 나를
놀라게 했다. 기둥 밑에는 나무·풀·흙·철·그물 등을 비치해 두었다.
풍요를 상징하는 곡물도 있고 지나는 길손들이 무사한
여행을 비는 노잣돈도 있다. 영락없는 우리의 성황당이었다. 게다가 상층부의 삼단 조각은 천지인 삼재사상의
표현이 아닌가. 150년전 신성한 숲에서 장사지낸 어데건이라는 여자 무당의 무구들도 눈에 띄었다. 팔찌와
반지, 담뱃대, 북채, 요령, 그리고 ‘트레조베츠’라는
삼지창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삼지창은 우리의 것과
똑같이 생겼다.
알혼의 일몰은 그 숱한 전설을 머금고 멀리 아득한 수평선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며 찾아온다. 붉기만 한 것이 아니라 푸르기도 하며 연둣빛도 띤다. 오늘의 일기는 청명하여 백야를 볼 것이다. 밤 11시를 넘겨야 비로소 저 노을빛은 회색을 거쳐 검은 빛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의식을 치를 것이다. 그 의식을 집행할 샤먼 발렌틴 크하그다예프는 노을을 몰고 왔다.
건장해 보이는 43세의 브리야트인 사내는 머리를 뒤로
묶었는데 옆집 아저씨같이 소박하고 서글서글하다. 이름의 뜻은 브리야트 말로 ‘소망’이라고 했다. 알혼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옐란치 마을 근처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며 민족사나 종교, 언어교사 노릇도 겸하고 있었다. 샤머니즘과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연구한 석사학위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는 단순한 샤먼이 아니라 엘리트였으며 브리야트 마을의 촌장 같은 지도자였다.
저녁을 먹자마자 발렌틴은 북과 무구들을 챙겨들고 바이칼이 잘 조망되는 구릉으로 올라가 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사목 한 그루가 드높게 선 자리 아래
터를 잡았다. 신이 내리는 우주목이 선택된 것이다. 그는 브리야트 전통복식을 걸치고 자작나무와 낙엽송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세속의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불이자 영을 불러오는 불이었다.
브리야트족들은 불을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의 불꽃이라고 믿는다. 모닥불 없이는 어떤 축제도, 행사도 성사될 수 없다. 브리야트족뿐 아니라 예넷족이나 네넷족에게도 불에 대한 애니미즘이 있다. 이웃 천막에 불을 보낼 때는 그곳에 가까운 친척이 살고 있을 경우에만 허락되었다. 더욱이 옛날에는 장남이 먼 여행을 떠날 때
재와 깜부기불을 화로에 담아 간다고 한다. 그가 결혼해서 양친을 떠나 자신의 천막으로 옮겨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신성한 불이 성스러운 바이칼 알혼 섬의 구릉 위에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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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 섬에서 바라본 백야. 밤 11시가
지났음에도 휘황한 노을이 호반을 감싸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낸다. |
샤먼 발렌틴과의 한바탕 굿판
발렌틴은 그 불꽃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런 다음, 북이며 요령 따위의 무구들을 불 위로 둥그렇게 감돌면서
씻고 사방에 절을 올렸다. 하늘을 향해 우유를 뿌리고
다시 사방을 향해 뿌렸다. ‘사사리’라는 행위였다.
그리고는 북을 치면서 춤을 추었다.
둥 두둥 두두둥!
북소리가 황혼의 호수를 뒤흔들었다. 불꽃은 타오르고
발렌틴의 춤사위는 커져간다. 북이 떨리고 몸동작이 빨라진다. 우주목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만 같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응시한다. 그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는 분명 핏줄의 원류를 찾아 떠날 것이다. 원(原)은
한 조상이로되 그 류(流)는 조금씩 달라 마침내 말도 유전자도 많이 달라져버린 우리가 모닥불 주위에 모였다.
그는 볼 것이다. 우리가 나뉘기 전의 그 뿌리를, 남으로
내려가 북방을 그리워하고 살아가는 우리 영혼의 본향을….
북소리가 잦아들더니 발렌틴의 춤사위도 그친다. 그 사이 하늘은 더 붉어졌고 우주목은 실루엣처럼 더 짙은
선을 그리고 있다. 자작나무 불꽃은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른다. 발렌틴은 음유시인처럼 구성진 목소리로 깊어가는 바이칼의 유래와 명칭과 역사에 대해 말한다.
알혼 하늘에 독수리 날아오르네/ 그들의 집은 산정(山頂)에 있고/그 높은 곳에서 세상을 살펴본다네/ 만물이
뿌리내린 대지에서 유목민들이 양을 치네/일찍이 이 땅
위에서는 수많은 종족들이 살았네/ 흉노와 선비·오환·퉁구스·에벤키·키르키스가 그들이라네….
시 암송을 그친 발렌틴은 무구들에 대해 설명했다. 놀랍게도 그가 지닌 무구들 가운데 전통적인 것이라고는
북과 작은 목기, 니히리트라고 부르는 작은 옥도끼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이방인들이 선물로 주고 간 것들이었다. 이것이 샤머니즘의 본질 아닐까.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힘! 그래서 모시는
신도 유일신이 아니라 무수한 정령들이다. 해도 달도
나무도 물도 바위도 모두 신으로 받들 수 있는 것이다.
발렌틴에게 예수는 이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무수한 권능자 가운데 하나다.
나는 한국이 놀라운 인터넷 왕국으로 부상하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의 유전자 안에 흐르는 샤머니즘의 끈끈한
유습을 본다. 세계 곳곳 안 가는 곳이 없고 외래문화에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쉽게 휩쓸리고 마는 특이한 문화접변 태도도 그 동기는 샤머니즘에 있다고 본다. 게다가 풀이 죽으면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모르던 사람들이 신바람만 나면 놀라운 폭발력으로 세계 제일도 곧잘 해내는 기질에 가서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샤먼의 후예들인 것이다.
샤먼 발렌틴은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모닥불 주위를
둥그렇게 돌면서 춤을 추자고 한다. 강강술래다. 바이칼이 붉게 물들어가는 알혼의 구릉에서 우리는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춤을 추기 직전 그는 또 시를 읊었다.
그러면서 암송 중간 중간에 ‘아이두세 요하르, 아이두세 헤이브룰라’를 함께 후렴하도록 했다. 아이두세는
하늘에 기도를 많이 해서 승천했다는 전설적인 여자 이름이며 요하르는 노래와 춤, 헤이브룰라는 승천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강강술래가 끝나고 다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밤은 이슥해져 있었고 서녘 하늘에는 희미한 노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노을빛은 거머무트름한 바이칼 수면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색조를 띠었다. 창공에는 말 젖을 뿌려놓은 것 같은 은하수가 흐르고 그 주위로 뭇별들이 빛났다. 발렌틴과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어떻게 샤먼이 되었는가.
“나는 세습무다.”
― 당신의 신통력은 어느 정도인가.
“시베리아 샤먼에게는 아홉 단계의 등급이 있다. 나는
네번째 단계를 통과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섯번째 단계에 와 있으며 통찰력이 남다르다. 아홉번째 단계에
이르면 공중을 날 수 있고 변신술도 쓸 수 있다. 그런
최고의 샤먼을 자아린이라고 한다.”
― 그런 샤먼을 본 적이 있는가.
“보지는 못했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샤먼은 영계를
날아다니는 존재들이니까.”
― 사람들은 무슨 부탁을 하며 굿을 청하는가.
“주로 건강 문제로 찾아온다. 질병을 고쳐달라고 오는
이가 많다. 점을 보러 오는 경우도 있다.”
― 굿을 하면 병이 낫는가.
“종종 낫는다. 나는 병원치료를 먼저 받게 한다. 병원에서도 못고치겠다고 손을 들면 그때서야 내게 오라고
한다. 나는 영적 치료사니까.”
― 브리야트인들은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믿는가.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가는 길은 두가지다. 좋은 길과 나쁜 길이다. 다른 세상에서 식물로 태어나든지 동물로 태어난다.”
― 바이칼에는 영이 있다고 하는데?
“물론이다. 나는 물의 신의 감정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
발렌틴은 검은 바이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안락한 잠에 들었다. 숙소로 찾아온 발렌틴과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다 난로에
장작을 배부르게 던져주고 청한 잠자리였다. 바이칼의
영이나 알혼의 독수리가 꿈길에 찾아와 주기를 기대했으나 단 한조각의 꿈도 꾸지 않았다.
알혼을 빠져나올 때, 유르타 식당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소녀 샤샤와 나냐는 해맑은 미소로 작별해 주었고 그들의 남자친구는 기타 줄을 튕겨 작별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불편한 잠자리였고 거친 음식이었지만 그들의 달콤한 미소와 아름다운 노래는 부족한 것들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우리 인간은 역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정을 먹고 사랑을 먹고 축복의
노래를 먹어야 만족하는 작은 신이다.
샤머니즘의 본향, 인류 최고(最古)의 종교 발원지 알혼을 뒤로하면서 나는 마하트마 간디의 금언을 떠올렸다.
“종교는 종국에는 하나의 종착점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다. 결국 공통의 목적지에 도달하거늘,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을 지니면 좀 어떤가. 이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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