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의 기본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자립생활운동의 출발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죠셉 드 쉐피로, 1996. 에이타 야시로 외, 1993:27-32, 275-278)
미국에서, 1960년대는 각종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서, 흑인민권운동, 여성운동 반전·반문화 등 자유주의와 진보적인 이념과 활동들이 왕성했다. 이 격동의 시기에 1962년 가을 에드 로버츠(Ed Roberts)라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60년대 미국 사회운동의 진원지였던 버클리대학에 입학했다. 호흡보조장치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 그의 입학은 미국 장애인권운동의 출발이 되었다.
로버츠는 버클리대학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환경 때문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강의실은 접근이 불가능했고 식당과 도서관은 계단이 있었다. 로버츠는 교내의 코월병원에서 기숙하며, 보조자나 친구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을 겨우 해나갈 수 있었다. 당시, 버클리대학에는 로버츠가 유일한 장애학생이었으나, 다음해에는 로버츠의 소식을 듣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존 헤슬러(John Hessler)등 몇몇 장애인이 입학하였다.
그들은 함께 모여 버클리 대학에서 중요한 이슈였던 언론자유운동, 반전시위, 정치적 사건들을 토론하고, 민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로버츠는 여성민권운동을 장애인의 권리회복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했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미지가 이권에 이용되고 동정과 차별을 초래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의 모임은 차츰 장애인으로서 당면하는 문제로 초점을 모아가게 되었다. 교실에서의 접근의 어려움에서부터 교통수단의 부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장애물의 제거방법을 논의했다.
1968년, 그들의 학교생활은 주정부 재활국에 의해 코웰병원 입원환자 프로그램으로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코웰병원에서의 환자로서의 생활은 독립심이 강한 그들에게 불만이었고, 카운셀러 및 재활당국의 각종 간섭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서로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지원그룹을 모색하게 된다.
1969년 가을에 로버츠와 몇몇 장애 학생들은‘자립생활을 위한 전략(Strategies of Independent Living)’으로 불리우는 모임을 조직하여, 중증장애 학생들이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서비스를 개발하였고, 다음과 같은 사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철학 이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1) 장애인의 욕구와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할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장애인 자신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도움'을 '관리'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
2) 장애인은 시설에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생활해야 한다.
3) 장애인은 치료받아야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이도, 그렇다고 숭배해야할 신도 아니다.
4)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다.
5) 장애인의 욕구는 다양한 서비스를 망라하는 포괄적인 프로그램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다.
1970년 가을 주체성, 자립성, 통합성 그리고 사회적 문제로서의 장애라는 이념과 원칙을 바탕으로‘신체장애학생 프로그램(The Physically Disabled Student Program: PDSP)’이 구성된다. PDSP는 연방정부와 버클리대학으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운영되었다. PDSP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주거와 학교생활에 용이하도록 개호인(personal assistant)를 확보하고 지원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시각장애학생들의 요구도 수용하여 대독서비스도 포함되었다. 버클리에서의 PDSP는 대단한 호응을 얻어, 100명의 학생이 등록하고 코웰병원에 있던 학생들은 그곳으로부터 나와 PDSP의 지원으로 독립적인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PDSP는 당시로서는 기존의 재활적 관점에 비해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 장애에 대한 의학적 모델은 신체의 기능이 얼마나 회복 되었는가로 그 자립성을 측정하였는데, 이것을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가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로 개념을 전환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자립성이라는 것은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과업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얻으면서 할 수 있는 삶의 질로 측정한 것이다.
버클리 장애학생이 이 프로그램을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하자, 학생이 아닌 지역 일반장애인들도 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당국에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PDSP로 서비스를 제공받던 학생들이 졸업 후 서비스가 중단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로버츠와 허슬러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지역사회를 포괄하여 일반 장애인들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미국장애인의 권익실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CIL)는 탄생하게 되었다.
버클리에 자립생활센터가 최초로 세워진 이후, 70년대를 통하여 자립생활운동은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특히, 1973년 재활법이 개정되며 자립생활센터와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게 되며, 자립생활서비스는 장애인 정책의 중심축에 위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977년 시행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미국장애인들의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서야 비로소 개정 재활법은 실질적인 효력을 갖게 되었으나, 1970년대는 분명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의 획기적인 발전기였고, 그 과정에서 미국장애인 정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전세계장애인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산 ADA(장애를 가진 미국인법)의 제정도 이 시기의 성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