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5부 징 8회
꼼수는 손대명만 쓰는 게 아니었다. 사대부들은 제 나름대로 연줄을 대고 사람을 놓아 돌아가는 정세를 살피고 있었다. 그만큼 왕권이 불안 하다는 말이기도 했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변혁으로 꿈틀댄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손대명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양지를 쫓아 움직이는 해바라기들의 분주한 발걸음이다.
“지금 누구라 했는가?”
“가동에 사는 김만익 이라는 선비이옵니다.”
“김만익 이라면 권대감의 여식과 혼인을 맺은…?”
권대감의 사돈이 의병을 모으고 소와 군량을 조달 하였다는 것은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권 대감 쪽 내부에서 시류에 대한 판단이 이미 섰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판단이 섰다? 그럼…?’
무서운 사람들이다. 손대명이가 예측했던 권 대감의 정보력이 아니다. 소를 잡고 장정들을 모아 쌀을 딛고 이 새벽에 동헌으로 왔다면 어젯밤 권대감을 만났을 때 권대감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장정을 모아 왔다고 하나 손에는 칼 한 자루 없고 낫 한 자루가 들려있지 않았다. 싸울 의사는 없고 의병을 모았다는 감투 쓰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들을 중군에 맡겨 황산을 수비하게 하고 군수품 조달 하는 일에 투입 하라 명하고 근민당으로 들다가 기계창(무기창고)을 들린 손대명이 대노하였다. 무기가 절반이라도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창고에도 장부상에도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 된 건가?”
“날이 구지어(좋지 않아) 숯불이 피워지지를 않아 작업이 느려지고 있어 그러 하오이다. 허나 곧 채워 놓을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무리 수백 년 간 태평성대를 살았다 해도 그렇지. 어찌 무기고에서 창검을 빼다 제 배를 채운단 말이요. 아전 놈들이 뒷배를 믿고 썩은 짓을 한다한다 한들 이런 짓거리까지 한단 말이요. 약조한 기일 내에 병기고에 병기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육방 관속은 물론이거니와 네놈의 목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서 내일까지는 없어진 창검의 수를 맞춰 놓아야 할 것이다.”
금은 같지는 않아도 조선에서 쇠는 값진 물건이다. 유기 공방에서 관아에 창검을 만들어 바치는데 이방과 형방 그리고 관련 병기창에서 이를 빼내어 사리사욕을 채워 왔고 그것이 수백 년을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선봉장 박필청이다. 적은 녹봉에 출세도 하고 싶고 가솔도 거느려야 하고 남원 권번에 나가 소리 한자리에 술도 먹어야 했던 그에게 때때로 육방 관속과 병기장이 건네주는 용채(용돈)가 고마웠고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들통 나게 생겼으니 일단은 수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그의 입부터 막고 공방 사람들을 닦달하여 채워 놓을 생ㄱ가이었으나 그게 또 그렇지를 않았다.
손대명 이라고 안 먹었을 리 없다. 허자 지금은 전시다. 전시에 지휘관은 전대자이다. 현장에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죄를 아랫것들에게 물어 목을 친다 한들 그 뒤에 억울함을 누가 말해 줄 것인가. 느긋하던 좌영장이 급하게 서두르며 성질을 부리는 것을 보면 전세가 급박해 진다는 얘기였다. 눈치껏 손실된 수량을 채워 놓아야 했다. 하늘이 준 기회를 이런 이유로 놓칠 수는 없었다.
“동오(다섯 명 단위의 소대) 일곱을 보내 만들어 진 것부터 창고에 들이고 닦달을 하든 뭘 하든 내일까지는 채워 놓아야 한다. 아니면 네놈들 목을 칠 것이야. 알겠느냐?”
마당에 차출된 동호들이 모였다. 병영교사 기패관으로부터 유기촌에 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들은 다음 엎드려뻗친 자세로 몽둥이질을 당하였는데 이유 없이 당한 매질의 화를 품고 유기촌에 가서 임무 완수를 수행 하라는 것이다. 창이나 칼을 들고 옆구리는 박달나무 방망이를 들었다. 우선은 두들겨 패고 반항하면 창검으로 위협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사지를 잘라 응징하여 순종하게 하면 되는 일이다. 그 뿐이다.
“사또 남원에서 지원병이 왔나이다.”
“무슨 소린가? 지금도 병졸이 차고 넘치거늘.”
“예-?”
남원 수성장 정희는 오도창에게 남원성 수비 계획을 맞기고 황산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오도창 이라는 사람이 유서를 써 놓고 운봉으로 달려온 것이다. 과연 이 사건을 순순히 선비의 우국충정이라 믿어야 할까? 반역 도당을 성토하는 격문이 돌지언정 생사를 건 싸움터에는 나오지 않던 자들이 갑자기 소를 잡고 유서를 쓰고 쌀과 노비를 내어 온다?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때를 놓치면 공을 세워도 공이 아니고 발을 내밀어 걸쳐도 충성이 아닌 것이다. 썩은 고기를 뺏어 먹으려는 들 개 떼들처럼 함양의 반여도당들을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사냥개들을 어떻게 푼다?’
한편 동오들이 유기촌에 들어 닥쳤다. 한 동오 장에 네 명이 배속되어 있으니 일곱 동오면 서른다섯 명이다. 이들이 관아의 이름으로 들이닥쳐 다짜고짜 매질부터 하고본다. 매로 수하를 단속하고 매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이들의 수단이든가. 보련이네 공방이라고 다를까. 들이닥친 병졸들이 아수라장을 만들고 만들어 놓은 무기를 점검하고 나머지 것을 내일까지 만들 것을 독촉하고 때마다 순찰을 돌아 작업을 감독 하겠다 한다.
‘큰일이 아닌 가…, 철이 있어야 창검을 만들지.’
보련이가 허겁지겁 갑석을 찾아갔다. 그래도 기댈 데라고는 갑석이 뿐이다.
“오라비…. 쇠와 숯 좀 빌려 주소.”
“이런 말 허믄 야박 허다만 아재도 저런 디 니가 뭔 수로 유기 방을 허것냐? 나리들께 솔직허니 얘기 허고 유기 방을 치우는 거시?”
“그렇잔애도 얘기 했는디 씨도 안맥케. 니열(내일)까지 못 만들어 내믄 나와 우리 아베 팔 달리를 베-분댜. 나라에서 그리 허락을 받았디야.”
“씨벌 놈의 나라. 나라가 뭘 해줬다고 허락을 허고 말고 지랄들이여.”
“여러 소리 말고. 숯 허고 쐬가 있어? 없어?”
갑석이네 집에서 숯도 얻고 쇠도 얻어 일단 일을 시작 하였다. 그러나 제 몫으로 배당된 수량을 만들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지 제 몫까지 챙겨 주는 것은 아니다. 이집 저집 쇠를 얻으러 다니고 집안에 있는 요강이며 수저를 쓸어다 넣어도 배당 받은 창검이 모자랐다. 다음 날, 밤을 꼬박 새어 만든 창검을 검수한 군졸들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보련이네 공방 뿐 만 아니라 다른 공방에서도 검수를 채우지 못해 창검이 백여 자루 이상 모자랐기 때문이다. 동오들이 화풀이가 필요했다. 아니, 좀 더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들에게 변명꺼리가 필요했다. 닦달한다고 했는데 유기장이 들이 일을 못해서 무기 조달을 제대로 못했다 이런 핑계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더 광분 했는지도 모른다. 때려 부수고 사람을 때리고 불을 질렀다. 쇠를 녹이는 가마는 무너지고 종과 머슴은 산산이 흩어 졌으며 방안에서 끌려 나온 보련이 아버지는 팔이 잘렸다. 주적주적 비가 오는데 팔이 잘린 보련이 아비는 벌건 피를 흘리며 마당에 나뒹굴었지만 시뻘건 군졸들의 서슬에 누구하나 말리지도 사람을 구명하지도 못했다. 보련이가 악다구니를 쓴다. 여자라고 손대지 않던 군졸들도 악다구니를 쓰는 보련 이를 밀치고 짓밟고 때렸다. 아비는 마당에 피를 흘리며 죽고 딸년은 찢기고 터지고 부러지는 참상을 겪고서야 그 흉악한 군졸들은 창검을 들고 그 집을 떠났다. 아~ 이 일을 어쩌랴. 아직 시집도 못간 그 어린것의 앞니가 부러지고 눈 가는 찢어졌구나.
손명 대 좌영장이 진중의 병사와 창의 병을 향하여 소리쳤다.
"누가 능히 함양적가태수 최존서를 잡아 오겠는가?" 그러자 김만광과 김수태가 앞으로 나서며 군사 천명만 준다면 적을 섬멸하고 최존서를 잡아오다 호헌하였다.
선봉장 박필청은 자신이 선봉장 직을 맡았으니 의당 먼저 나가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손명대는 김만광에게 군사 천명을 내 주며 나가서 공을 세우라 했다. 관군을 제쳐두고 의병에게 선봉을 내 준 것이다. 박필청이 그 분을 참지 못하고 손명대에게 따졌으나 손명대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팔랑치를 굳건히 지키라는 명령만 되풀이 할 뿐이다.
“손장군. 분을 삯히게 이게 어찌 내 뜻이겠는가. 권대감의 의중이 그러하니 나도 어쩔수가 없네.”
황산에서 팔랑치까지 만여 명이 늘어섰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반군은 팔랑치의 험준한 지세와 엄청난 병사들의 수에 기가 질려 후퇴하고 말았다. 한편 관군 독전장(싸움을 독려하는 장수) 박기룡은 김만광 등과 함께 현주로 일 배 한 다음 북향을 향해 네 번 절한 후 죽음으로 하늘에 맹세하는 예를 올린 다음 군사를 독려해 함양군으로 진격하였다. 반군이 군사를 모을 때는 풍성한 먹을 것과 삯도 주어 인심을 얻는 것이다. 돈 받고 전쟁 질 하는 놈들이 무슨 충성 났다고 목숨 걸고 싸우겠는가? 한번 군기 빠져 후퇴를 하게 되자 반군의 병졸 들이라는 것들이 그저 손 놓고 내 빼기에 바쁘고 그러다 보니 관군은 물밀듯이 함양 관아를 들이쳤다. 방안에 담배를 빨던 최존서는 뒷문으로 도망쳤다. 방안에 담배 연기가 있는 것을 본 김만광이 관아 내에 숨어 있을 것이니 샅샅이 뒤지라고 소리쳤다. 예상치 못한 진압군의 재빠른 공격에 미쳐 몸을 피하지 못하였음이 분명하였다. 관아 내에 숨어 있을 것을 짐작하고 군사를 독려하여 관내를 샅샅이 수색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윽고 군사들이 관청 뒤 대밭에 숨어 있는 최존서를 발견했다. 부장 김만광이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생포하려 했다. 그러자 최후 발악을 하는 최존서가 김만광의 왼쪽 허벅지를 찌르며 달려들었다. 김만광은 급히 몸을 돌렸으나 창끝을 피하지 못하고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군사가 달려들어 창을 빼앗고 최존서를 사로잡고 이곳저곳에서 붙잡은 포로들이 수십 명이 되었다. 이로서 허망하게 반군은 진압되고 말았다. 그 뒤 이인좌 함께 반란을 주도했던 정희량이 경상도관찰사가 지휘하는 관군에 토벌 당했다.
“나으리 배왈대라는 자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라하라.”
손명대 좌영장이 방에서 일어나 배왈대를 맞았다. 그는 두서없는 시류 이야기를 하며 임실 호미산 이라는 지명을 써 내었다. 그러자 손명대가 서둘러 소리쳤다.
“어영청정장을 들라 하라.”
고개를 끄덕인 손명대 좌영장이 어영청정장을 불러 동오 이십을 내어주라 명하고 그 작전 지휘권을 배왈대에게 주었다. 배왈대는 그 길로 일백의 관군을 데리고 임실로 떠났다.
“지금의 공도 작다 할 수 없으나 전공이란 눈에 보이는 게 우선인 법, 가서 잔당들의 목을 베어오게.”
통인이 권대감에게 줄행랑을 놓았지만 배왈대 라는 자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갔는지도 모르는 쓸모없는 소식 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제 사람을 공적에 올리고 싶은 욕심을 접어야 했다..
“내가 여우 새끼를 키운 게야. 여우새끼를…”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보련이가 악몽을 꾸는지 고함을 치다가 잠을 깼다. 밤이었다. 입을 열고 나온 개구리가 간혹 가다 소리 내어 울고 부엉이가 소리죽여 우는 적막한 밤.
“세상에 이렇게 분하고 억울한 일이 있는가. 도적질은 제 놈들이 하고 덤터기는 우리한테 씌우고 그러다 수틀리면 또 죽여 버리니 이렇게 원통하고 분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죽여 버릴꺼야. 죽여 버릴꺼야.”
보련이가 아비를 죽게 만든 사건의 발단과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자행한 악행을 꿈으로 알게 되었다. 아비가 죽은 후로 겪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보련이게게 나타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