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7호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를 강타하여 많은 피해를 주더니 그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제9호 태풍 ‘말로’가 우리나라를 지나간다고 합니다. 비록 소형 태풍이고 남부지방으로 지나간다고 하나 그냥 조용히 아무런 피해없이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난 달 평소 아끼던 우리 모임의 막내 가운데 하나로부터 애교섞인 항의를 받았습니다. “자비(길잡이)님은 사람이 별로 없는 오지만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열세차례의 길여행 가운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걷거나 도심을 통과하는 곳을 가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달 동해안 바우길 제5구간이 그나마 가장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걸어던 곳일 뿐 동강, 굴목이재, 지리산둘레길, 승부역길 등 어디를 찾아봐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비교적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하였습니다.
(9월에 추진하려고 했던 제주도 올레길 탐방은 상황적 물리적인 사유로 인해 부득이 연기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드리니 이해바랍니다.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고 가장 좋은 시간(시기)에 갈 예정이니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달은 한국의 명절 ‘추석' 연휴가 있는 관계로 시간 뽑기가 그리 넉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정이 허락되는 길벗들과 함께 길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가급적 시간을 내시어 가을로 접어드는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함께 걸어보기를 권합니다.)
o 일 시 : 2010. 9. 18(토) A.M 07:00 ~ P.M 07:00
o 장 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기행’)
※ 집결장소 : 용산역 대합실 (기차로 가는 곳이기에 반드시 시간 엄수... 오전07시...)
o 대 상 : 워커홀릭 전회원
o 회 비 : 25,000원(정기회비 납부하였을 시, 2명일 경우 60,000원...미납부 시 1인 35,000원, 2인 70,000원)
o 걷는코스 : 강경역 ~ 미냇다리 ~ 논산천 웅녀봉 ~강경나루(젓갈 점심식사) ~ 팔쾌정(이중환이 택리지를 쓴 곳) ~
중림서원 ~ 강경역 (총 소요시간 6시간 이내)
o 준 비 물 :: 배낭, 간편한 복장, 모자, 간식, 음료, 강우 대비 우비 또는 우산, 기타
o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537-306612 정수용 (동아리 공식통장)
◇ 참고사항
- 식사는 걷는 도중 강경의 유명한 먹거리인 '젓갈정식'으로 할 예정
- 햇볕이 몹시 뜨거울 경우를 대비하여 얼굴에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햇볕가리개(얼굴을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
※ 다시 한번 젊은 시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의 한 구절을 적어봅니다.
세월이 가 머리에 서리가 내리면 우리의 산하를 걸었던
그리하여 우리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소중한 추억들이
우리 삶의 활력을 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일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은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중에서 -
택리지를 따라 옛 도시(古都)를 걷다.
“은진은 웅천 상류에 위치하였는데, 상선이 모여들고 물화가 많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나라 안에서 이利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임천·한산 사이는 모시로 유명하다.”고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 실려 있는 은진의 서쪽에 그 이름 높았던 포구인 강경이 있다.
“강경장에 조기배가 들어왔나?”라는 속담은 강경장에 조기배가 들어왔을 때 소란하듯이 시끄럽다는 말을 뜻하는데, 이중환은 '택리지'에 그 강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강경은 은진의 서쪽에 있으며 들 가운데 작은 산 하나가 강가에 불끈 솟아나서 동쪽을 향해 있고, 두 줄기 큰 강(금강과 논산천)을 좌우로 마주하였다. 뒤로 큰 강이 조수와 통하지만 물맛이 그리 짜지 않다. 마을에는 우물이 없어서 온 마을에 집마다 큰 독을 땅에 묻은 뒤 강물을 길어 독에 부어 둔다. 며칠 후에는 탁한 찌꺼기는 밑에 가라앉고, 윗물은 맑고 서늘하여 오래두어도 물맛이 변하지 않는다. 오래될수록 더욱 차가워지며 10년 동안 장질(藏疾)을 앓던 사람이라도 1년만 이 물을 마시면 병의 뿌리가 없어진다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섞이는 곳에 반쯤 싱겁고 짠물이 토질(土疾)을 고치는 데 가장 좋은데, 이 강물이 첫째이다’라고 한다.”
충5-5 강경시장 풍경
조선시대의 대구․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상세가 컸던 강경은 금강 하구에 발달한 하항도시(河港都市)로 내륙교통이 불편하였던 때에는 물자가 유통되는 요충지였다. 이중환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금강 남쪽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고 강경을 평하면서 “바닷가 사람과 산골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한다. 매양 봄여름 동안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는 때에는 비린내가 마을에 넘치고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두 갈래진 항구에 담처럼 벌려 있다.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리는 큰 장에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화물이 모여 쌓인다”고 기록하였다. 가깝게는 금강 상류의 공주․부여․연기․청양지방과 멀리는 청주․전주지방까지 포함되는 넓은 배후지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편리한 수운에 힘입어 큰 교역의 장소로 발달하였던 강경포는 크고 작은 어선과 상선의 출입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의 이름은 강경포였고 “은진(지금의 논산)은 강경덕에 산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던 곳이다. 그 무렵의 층청도는 물론이고 전라도․경기도 일부까지 강경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 금강연안 일대의 가장 큰 포구였고 원산․마산과 함께 대표적인 어물 집산지였으며 충청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기도 남부까지 큰 상권을 형성하였던 강경은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육로나 수로를 이어주던 강경이 한적한 읍내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1982년 강경읍에서 발행한 읍세일람(邑勢一覽)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해방 후부터는 군산 국제항이 황폐화되고 설상가상으로 6.25 동란 시 시가 중심지의 7할 이상이 파괴되다 보니 황량한 돌바람이 더욱 장연한 바 있었으니……”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는 문경새재와 강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 끼어 있는 바닷사람과 내륙의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교역이 활발하였다. 봄과 여름 동안은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느라고 비린내가 넘치고 5월의 황새기젓과 7월의 새우젓이 풀릴 때는 오륙십 척의 배가 몰려들어 화장들이 내뿜는 연기로 포구와 하늘은 암회색의 바다였다.”
오늘날 강경포구에는 젓갈만 남아있다. 김주영이 객주에서 묘사했던 강경 포구는 몇 척의 배와 낚시꾼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첫댓글 참석 2명
기차표 예애해야지요?
빨리 등업합시다.
감
갑니다
2명 참석
저 혼자 갑니다
미치겠네요... 추석연휴 관계로 열차표를 14표만 확보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이번엔
선착순입니다. 미안합니다.
아참, 피그말리온 님과 무궁화 님도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감
2명신청했는데 누가 짤랐나요 칵! ...
한번만 더 그러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