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골집에서도 설날 명절에는 할머님께서 조청을 만드시느라 엿을 고은적이있습니다.
흔히 조청은 음식할때도 쓰지만 가래떡이나, 시루떡에 찍어먹으면 그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설탕이 없거나 ,귀한시절 (제기억으로는 당원과 사카린이 설탕이전의 단맛을 차지하고있을때..)
조청은 그집안의 품위와 격, 그리고 세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할아버님이 공화당원시절 대전 , 조치원등지로 감투투쟁을한사이
한해 한해 전답은 줄어들었고 , 11남매의 뒷바라지와 그 많은먹성은
제 기억으로도 그 맛있던 조청의 추억은 그리 오래지속되진 못했던것 같습니다.
저희가 장손집이라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배려로 수용되지않은 연기군의 10여마지기 물려밭은 논에서
엊그제 , 쌀 20키로 20개가 올라왔습니다.
엄니는 택배회사가 40키로 10개를 20키로 20개로 자기들 멋데로 나누었다고 역정을 내십니다.
시골 저울은 눈금이 넉넉한데 택배회사는 정확해서 남는쌀은 그들이 뺀다는거예요.
엄니의 쌀에는 택배회사의 불신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저도 성화에 못이겨 쌀 두자루를 가져오는데 무쟈 무겁드군요.
배고픈 시절 , 햇쌀로 밥을하면 쌀밥에 간장만 찍어서 먹어도 그리 맛있을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햇쌀밥의 기억보다는 무겁다는 귀찮은생각이 쌀의 변천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네요.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 겨울로 가는 시골의 추억들이 하나씩 반추됩니다.
다음 여행길에서는 황골엿맛좀 보고와야 겠습니다.
산길 -신영옥
첫댓글 저도 엄마한테 어깨너머로 배운기술로 가끔해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