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의 리허설/ 베를린 필 한국 초청공연 공식홈페이지 겔러리 사진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내한 둘째 날 공연을 관람했다.
21년만의 내한 공연이라는 세계적 교향악단의 거장을 만난다는 것은 내겐 가슴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첫날의 베토벤 교향곡 3번과 같은 친숙한 연주곡 대신 한국 초연인 토마스 아데의 '어사일러(피난처들)가 연주되는 둘째 날을 택했다. 이날 연주곡은 아데 이외에 하이든의 교향곡 86번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였다.
특히 현대음악의 시금석으로 주목받고 있는 1971년생 젊은 작곡가인 토마스 아데의 '피난처들'은 동원된 악기며 음악적 색채가 동 서 음악이 절묘하게 혼화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곡은 래틀이 2002년 9월 47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작품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이 곡은 현대 음악의 십대의 감성과 이십대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50살의 싸이먼 래틀과 딱 맞아떨어지는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웅장함과 가슴을 파고드는 타악기의 울림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를, 불협화음의 조화같은 독특한 금속성 음색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가 연상되었다.
아데의 작품을 연주하기 전 첫 곡으로 연주한 하이든의 '교향곡 86번'은 아데의 현대음악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고전음악을 보여주는 듯 했다. 래틀의 경쾌하고 날렵한 온 몸으로의 지휘는 이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낙천적이고 경쾌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었으며, 현악기와 타악기군의 선율이 가을 하늘 만큼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휴식시간이 끝난 뒤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는 연주가 끝 나자마자 관객의 기립박수(앙코르 곡 요구성?)를 이끌어 냈다. 이 곡 '영웅의 생애'는 전날 연주 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함께 사이먼 레틀과 베르린 필이 선택한 두 영웅중 하나였다. 세 사람의 트럼펫 주자가 대기실로 들어가 내는 숨은 소리가 이채로웠다.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 카라얀 이전 시대의 베를린 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중후했던 무게감이 역동적인 젊음과 날렵함으로 변신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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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으로 불린다. 베를린 필의 위상과 비중은 그만큼 높고 크다. 래틀은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1974년 존 플레이어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25세 때인 1980년 런던 외곽의 시골 악단인 버밍엄 심포니를 맡아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로 탈바꿈 시키고 명 지휘자의 반열에 오르며 2002년 문턱 높은 세계 제일의 베를린 필 단원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로 베를린 필의 6대 감독에 선출됐다. 전임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반세기 가까이 군림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죽음 이후 그의 지휘봉을 물려받아 12년간 베를린 필을 이끌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했다. 그는 전통과 혁신을 아우르는 신구조합의 레파토리를 선보이며 "계몽시대오케스트라"를 통한 고전음악의 조련사로 또한 현대음악의 전도사로 고전과 현대에 대한 통찰력이 공존하는 21세기 거장으로서 그 개성적이고 강렬한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바보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은 두 배로 어리석다”면서 "고전음악부터 바로 어제 작곡된 음악까지 연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었고 베를린 필 첫 연주에서 아데를 선택했다.
Thomas Ades, Asyla 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