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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땅꼬.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물땅꼬 에는 여전히 갈대며 억새풀이 우거져있었다. 때문에, 깊이를
알 수없는 물구덩이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산소에
갔다가 꽃뱀에게 호되게 놀란 탓에, 막내는 지레 겁을 먹고 멀찍이 따라왔다. 눈앞의 공터를 발견하고
안도하는데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날개 짓을 하며 요란스레 날아올랐다.
“어, 어이쿠.”
나는 그만 긴장한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조심은 했지만 오래된 기억이라 풀숲에 가려진 녹슨 철조망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아빠, 괜찮아!!!”
한달음에 달려온 막내는 상처를 확인하고 뱀을 찾으려는 듯,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얼른 발밑을 가로지는 철조망을 가리키며 막내를 조심시켰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인적이 드문 강이나 늪지대서 생활하는 오리들이 갈대숲을 선회하다가 지평선
너머로 날아갔다. 한바탕 소란스럽던 늪지대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 이곳은 어디야······?”
나는 그동안 막내와 함께 추풍령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비롯하여 측후소, 장 지헌 사당, 금산, 추풍령고개
등등, 내 고향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뿐인가, 역사가 깊은 시골 역은 고향을 찾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었다. 어쩌다 지나가는 열차
라도 마주치는 날엔, 여행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즐거워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다.
“막내야, 지금의 열차는 어떤 원리로 달린다고 하였지?”
“전기의 힘으로······?”
“맞아, 그렇다면 그 옛날, 증기 기관차는 어떤 방식으로 달렸을까?”
“물을 이용하여······?”
“맞아!!! 바로 그거야, 아빠도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석탄을 이용해 물을 끓여서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린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이곳은, 열차가 장시간 달리다보면 부족해진 물을 공급받는 급수대 라고 생각
하면 좋을 거야.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곳을 물땅꼬 라고 불렀지. 일제강점기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니
8, 90년은 되었을 거야.”
물땅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동안, 마음이 울적했다. 한때는 열차 운행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급수대
이었지만, 지금은 사용을 않는 바람에 건물이 낡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군에서는
지방문화재로 등록만 해놓고 관리는 너무나 허술하다. 때문에 어디가 둑이며 물길인지 경계조차 불분명해,
멋모르고 출입하다가 사고가날 위험성이 다분했다.
“아빠가 너를 이곳에, 무엇 때문에 데려왔는지 궁금하지 않니?”
추석을 맞아 산소를 다녀오는 중에 영문도 모른 채 이곳을 찾은 막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막내의 나이도 어느 덧 열두 살, 초등학교 오학년이 되었으니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 줄때가 되었다.
2. 소싸움.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나이는 같지만 한 학년 높은 내홍이가 소를 몰아 강가로 가면서 나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너럭바위에 커다란 이무기가 나타났다가 불도저에 치여 죽었다더라.”
“뭐라고······? 이무기가 죽었어!!!”
“역전 상회에 심부름 갔다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고속도로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다더라.”
강가에 도착한 아이들은 풀밭을 찾아 소를 풀어 놓은 채, 이무기가 죽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며 내홍이를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어 궁금증은 더해갔다.
그때였다. 서울에서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피부가 하얗고 계집에처럼 예쁘장한 정원이가 성큼 나섰다.
“신문에서 읽었는데, 불도저아저씨가 잠을 자는 중에 수염이 허옇게 자란 할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서,
이제 곧 큰 비가 내리면 이사를 갈수 있다며, 공사를 며칠만 연기시켜달라고 하였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다가, 아무래도 너럭바위를 말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대답했지,
‘저야 어르신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상부에서 허락이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고를 했으나 오히려 혼만 났어, 불도저아저씨는 어쩔 수없이 공사를 강행하게
되었는데 너럭바위를 밀어내는 순간,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우르르 꽝꽝’ 치더니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허리가
동강난 체 죽어가고 있었어.”
1970년,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마을어른들은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소를 돌보라는
말을 남기며 면사무소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징이며 괭가리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으나, 오늘은 이웃한 은편리와 굼보 쟁탈전을 벌이기로 약속한 날이라 구경을
갈 수가 없었다.
굼보란, 북쪽에 위치한 매남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추풍리와 은편리를 경계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넓은 강을 이야기한다.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여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서식할 뿐만 아니라, 들판을
끼고 강물이 흐르다보니 둑을 따라 자연스레 풀밭이 형성되었다.
때문에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힘들여 소 풀을 베는 것보다, 웃자란 풀을 찾아 소를 끌러 놓기를 즐겨 하였다.
이때부터 남은 시간은 온전히 아이들 차지라, 햇살이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모래 벌에 배를 깔고 하루를 보낸다.
더위를 피해 강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 새가 숨겨놓은 새알을 찾는답시고 왼 종일
자갈밭을 헤매는 아이도 있었다.
때로는 고추를 달랑거리며 씨름 시합을 벌이는데 지는 팀은 남의 밭에서 밀이나 감자서리를 하는 것이 벌칙으로
주어졌다. 자갈밭에 모여앉아 얼굴에 검정을 묻혀가며 즐거이 먹다보면, 혹여 어른들 눈에 띠는 수도 있지만
꾸중을 듣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때문에 여름 방학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굼보를 차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오늘처럼 양쪽마을의 소떼를 죄다 몰고나와 모래사장에서 벌어지는 소싸움이었다.
점심나절부터 시작한 시합은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여섯 번의 싸움에서 동률을 이루었기에 마지막
남은 경기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나는 버드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누렁이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안정을 시켰다. 이제 갓
돌을 넘긴 누렁이는 덩치에서 밀리는 것은 고사하고 싸움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시합을
포기할까 망설이는데 누렁이는 마치 나를 위로하는 듯, 기다란 혀로 손바닥을 핥아주었다. 누렁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소가 죽는 바람에 어렸을 때는 내방에서 함께 자랐다. 메, 메, 그리며 엄마소를 찾을 때마다 쌀뜨물을 젖병에
담아 모유대신 먹여서 키웠다. 때문에 집에서는 누렁이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애지중지 보살폈다.
은편리 에서 흑우를 몰고나온 아이는 같은 반 은배였다. 우리는 비록 마을의 명예를 위해 적으로 만났지만
한편으로 절친한 친구라 당당하게 겨루기로 약속했다. 심판을 맡은 준호로부터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흑우는 콧김을 거칠게 내 뿜으며 뿔 치기를 시도했다.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해머로 바위를 내리치는 것처럼
땅이 쿵쿵 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험이 부족한 누렁이는 이마가 찢어져 붉게 물들었다. 혀를 빼물고 헐떡이는 것을 보아,
흑우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렁이는 흑우의 공격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어느 순간, 누렁이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꼬리를 치켜들고 질풍같이 달려가 흑우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흑우가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멈칫거리는 것을 눈치체고 틈을 노린 것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벌엔 침묵이 흘렸다.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던 아이들의 고함소리조차 일순간
들리지 않았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강가에 자리한 갈대 잎이 우수수 흔들리며 바위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섰던 흑우가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요란한 함성소리가 굼보에 울려 퍼졌다. 나는 누렁이에게 달려가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3. 내 친구 멍짱이.
“누렁이 다쳤다고 아버지한테 혼나지 않았나?”
“말도마라. 지게작대기 들고 쫓아오는데 겁나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그보다 멍짱이 한데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자꾸 짖는다.”
“혹시 장발 짱이 돌아온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큰일이다.”
소싸움이 끝 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누렁이는 싸움에 이겼음에도 상처가 많아 아버지가 보살피는 중이다.
덕분에 나는 벌칙으로 매일같이 누렁이가 먹을 풀을 뜯어야했다. 그 많은 양을 혼자서 해결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꾀를 내어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물땅꼬를 찾았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덩치가 커다랗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무섭게 생긴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물땅꼬를 찾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못되게 굴었다. 우리는 그를 만화영화의 주인공하고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하여 장발 짱이라 불렀다. 물땅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길 때문에 사람이 빠져죽었다는
소문이 자주 들렸다. 때문에 어른들조차 좀처럼 찾지 않아 주변에는 소들이 좋아하는 풀들이 지천으로 자랐다.
“멍짱아, 멍짱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분명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어떻게 안 보일 수가 있지.”
“혹시 너구리나 뱀을 만났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개구리랑 장난질 쳤던가?”
“맞아, 우리랑 있는 것이 심심해서 어쩌면 지금쯤 집으로 가고 있을지도 몰라. 올 봄에도 운수봉에 진달래
꺾으러 갔다가 찾느라 애를 먹었잖아.”
“혹시 쥐를 만난 것은 아니겠지?”
“와 하하하, 쥐라고 했나? 맞아, 쥐를 만났을 거야, 하하하.”
우리는 난데없이 쥐 이야기를 나누며 배를 잡고 웃었다. 지난겨울에 벌어진 일명 멍짱이 굴욕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멍짱이는 뒷집 흥원이네 진도견과, 응진이네 검둥이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의 이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쪽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을 보고 멍짱이 라고 불렀는데 성격이 활발하고 용맹스러웠다. 멍짱이가
젖을 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추풍령에는 강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오면 독특한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맑고 투명한 얼음이
어는 때를 기다려 수심이 깊고 물살이 잔잔한 곳에 반도를 설치하였다. 그런 다음 상류에서부터 대나무로
얼음을 두들기면 물고기들이 때를 지어 도망치다가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나면, 대야에
가득히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도 물고기를 잡아 신이 나서 돌아오는 중이다. 우리는
때마침 들판에 쌓아놓은 짚더미를 발견하고 불을 피워 손발을 녹일 생각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때였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달려간 멍짱이의 행동이 어딘지 수상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이야?”
“쉿, 조용히······, 멍짱이가 무엇을 발견한 모양이야.”
모두들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눈앞의 짚더미가 들썩이고 있었다. 순간, 멍짱이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놈은 당황하여 짚더미 속으로 몸을 숨기려다가 이미 길목이 차단당한 것을 눈치 채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놀랍게도 몸집이 커다란 들쥐였다.
“우와, 우리 멍짱이 잘한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는 들쥐를 포위한 체, 멍짱이를 열심히 응원했다. 멍짱이는 응원에 힘을 얻었음인지 몸집이 사발 만 한
들쥐의 사나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싸워 승리했다. 그날이후, 우리는 틈만 나면 들쥐 사냥에 나섰으며
멍짱이는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그날은
멍짱이가 평소보다 작은 들쥐와 싸움이 붙었다.
그동안 많은 경험으로 멍짱이는 여유만만 했다. 상대 쥐를 충분히 제압할 기회가 왔음에도 쉽사리 끝내지
않고 장난을 즐겼다. 우리는 멍짱이의 화려한 개인기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판에 울렸다.
“깨갱, 깽, 깽깽.”
“아니, 저, 저, 저······?”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리던 들쥐가 멍짱이의 코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때문에 멍짱이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논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동안 들쥐와의 싸움에서 백전백승하던 멍짱이라 마음 놓고 구경하던 우리는 갑작스런 사태에 우왕좌왕 했다.
마침내 들쥐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물었던 코를 놓아주며 짚더미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아 눈을 닦고 살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몇 번이나 들쥐와 재 시합을
주선했지만 멍짱이는 지레 겁을 먹고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날 뿐이었다.
“그보다 아버지는 유치장에서 언제쯤 나오시는데?”
“아직 모른다. 엄마도 아버지 걱정 때문에 밤마다 운다.”
“고속도로휴게소가 은편리에 들어서면 어떻고, 고개 넘어 광천리에 들어서면 어떻다고 어른들이 화를 낼까?”
“우리가 사는 추풍령은 충북이고 고개 넘어 광천리는 경북이란다. 그런데 이름만 추풍령휴게소로 해놓고 정작
경북에다 건립하면, 우리는 이다음에 휴게소에 취직하기도 힘들뿐더러 걷어 들인 세금도 김천에서 모두
가져가버리기 때문에 손해가 많다고 들었다.”
그동안 마을에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면사무소에 모였던 사람들이 고속도로공사장에 몰려가 몸싸움을
벌이다 몇 몇 사람이 경찰서에 잡혀간 것이다. 추풍령은 서울, 부산간 국도를 비롯하여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때문에 열차운행이나 차량운송을 통하여 마을이 발전했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국도에는
차량통행이 줄어든다며 걱정이다. 마을 사람들이 추풍령휴게소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린나이라 어른들이 하는 일을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어라, 이상하다. 낚싯줄이 안 딸려 온다.”
“정말이네, 이야!!! 저번처럼 팔뚝만한 가물치가 잡힌 모양이다.”
“낚시 줄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당기자.”
우리는 소 풀을 베기 전에 낚시 바늘에 미꾸라지를 꿰어 깊은 물에 던져놓았다. 그렇게 하면 재수가 좋은 날엔
가물치나 뱀장어, 혹은 메기처럼 큰 고기가 낚였다. 하지만, 오늘은 기대와는 달리 뜻밖의 물건이 올라왔다.
다행히 기름종이로 단단히 밀봉이 되어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썩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 친구들과 함께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에이, 이게 뭐야? 무슨 수첩 같은데.”
“여기 사진도 있다. 이야!!! 칼을 차고 있는데, 멋있다.”
“그런데 국군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니, 이 사진은!!!”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다 놀라고 말았다. 빛이 바래어 불분명했지만 사진속의 얼굴을, 아니 이와 같은 사진을,
분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다.
4. 밝혀지는 비밀.
“너, 너······, 이 사진을 분명 물땅꼬 에서 건져냈단 말이지?”
“예, 아버지, 낚시 줄에 걸렸어요.”
“오! 오! 어떻게 이런 일이······, 아, 아버님.”
나의 물음에도 아버지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 하신 체,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수첩에 적힌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첩 속에는 전혀 본적이 없는 글이며 지도와 기호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나는 그 순간, 멍짱이가
집에 오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눈치를 살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때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는 벽장문을 황급히 열어젖혔다. 어느새 손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작은 나무상자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 이 사진이 어떻게······?”
아버지께서 건네준 사진은 물땅꼬 에서 건져 올린 사진과 같았다. 놀라운 것은 사진속의 인물이 일제강점기하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일본군대에 강제 징집되어 추풍령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조부 되는
분이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일본 군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본 군인으로 근무하셨던 아버지의 이력은 늘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을 비관하며 매일처럼 술에 취했다.
엄마가 너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네 형이 집을 나간 것도,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 잘못이거늘, 지금껏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여기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무엇 때문에
오지인 추풍령에 철도를 개설하였으며, 일본군부대까지 주둔시켰는지, 상세하게 적어 놓았더구나.”
수첩에 적힌 글을 요약하면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내리던 정기는 추풍령에 모였다가 경상, 충청, 전라, 3도로
뻗어나갔다. 추풍령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힘이 모아지는 배꼽부분에 해당하며 이것을 풍수용어상 ‘과 협’
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하에 우리나라의 혈을 끊기 위해 전국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쇠말뚝을 추풍령에
꽂았다. 수첩에 적혀있는 지도와 기호는 쇠말뚝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었으며 몇 가지는 알 수없는 용어로
적혀있어 시간을 두고 살펴보아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설명은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졌지만 나는 오직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멍짱이를 걱정할 뿐이다.
“일어났느냐?”
“예, 아버지, 혹시 멍짱이 못 보셨어요?”
“멍짱이 라니······, 어제 네가 데리고 가지 않았느냐?”
멍짱이는 아침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멍짱이를 찾으러 물땅꼬에 갈 수는 없었다. 앞으로 반달후면 대통령께서 추풍령을 방문하는데
대대적인 행사가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방학 중임에도 오전에는 학교에 가서 예행연습을 해야 했다. 작은
시골마을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일은 극히 드문 사례였지만, 고속도로 완공을 눈앞에 두고 늦어지는,
추풍령에서의 공사를 독려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몽하야, 멍짱이를 찾아야 되는데 나 좀 도와줘.”
“나는 오후에도 학교에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응진이도 집에 일이 있어서 바쁘다는데, 큰일이다.”
나는 어쩔 수없이 혼자서 물땅꼬를 찾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털이 곤두섰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큰소리로 떠들며 막대기로 풀숲을 헤치며나갔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내 어깨를 거칠게 휘어잡았다.
“누, 누구세요?”
“이놈, 묻는 말에 바른대로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흐흐흐.”
나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다가온 장발 짱은 나를 붙들고 칼을 겨누었다.
그는 내 눈앞에 물땅꼬 에서 건져냈던 기름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소름이 끼치도록 인상이 험악했다.
“이 안에 들었던 물건은 어떡했지?”
“아아, 저, 저······.”
나는 너무나 무서워 온몸이 ‘덜덜’ 떨리며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장발 짱은 더욱 화를 내며 멱살을 잡고
다그쳤다. 위기의 순간, 갑자기 장발 짱이 비명을 질렀다. 눈을 떠보니 갑자기 나타난 멍짱이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장발 짱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무작정 도망쳤다. 멍짱이의 비명소리가 오래도록
귀청을 울렸지만, 장발 짱에게 붙들리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5. 아버지.
“아버지, 멍짱이가······, 멍짱이가······, 나 때문에, 엉, 엉엉.”
나는 신발이 벗겨져 달아나는 바람에 돌멩이에 채인 발가락에서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 않고 집을 향해 달렸다.
마당에 들어서다가 아버지를 마주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막을 들은 아버지는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물땅꼬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나는 멍짱이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다. 마음이 초조해
질 때마다 멍짱이가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저녁 무렵, 멍짱이는 다행히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나는 멍짱이를 끌어안고 울다가 쓰러졌다. 우리 집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멍짱이를 묻어주었을 때는, 깎여나간 금산위로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멍짱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 아버지, 뭐, 뭘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를, 한 번도 다정스럽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늘 술에 취해, 이유 없이 마을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형이 집을 뛰쳐나간 것도, 모두가 아버지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오늘처럼
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기억조차 없는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열네 살 때 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에는 왠지 무섭고 서먹서먹했지만
이내 정이 들었어. 뿐만 아니라, 사진 속에서처럼 기다란 칼을 차고 군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아버지가 잠든 때를 기다려 칼을 차고, 모자를 쓰고, 군화를 질질 끌며 마을을 돌아다녔지. 그때 생각으로는
멋진 모습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게야.
하지만, 그 때문에 평생 후회하는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 엉뚱하게도 일본군 앞잡이라고
놀리던 상대와 시비가 붙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만, 상대가 칼에 찔리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던 게야,
나는 흥분한 사람들에게 붙들려 집으로 끌려갔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사과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지.
아버지는 다음을 기약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오래지않아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 거야.
모두들 기쁜 마음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부르는 중에 나는 우연히 칼에 찔렸던 상대를 마주치게 되었지.
그가 나를 향해 일본군 앞잡이 라고 소리치며 돌멩이를 던졌어.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날아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깨어보니 어머니께서 내 몸을 감싸고 죽어있었어.
그때 어머니와 창녕에 살던 때라 추풍령에 가면 아버지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게지.”
이야기를 듣는 중에 나는 어느새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었다. 아버지의 몸에서는 분명, 담배와, 술 냄새가
코를 찌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멈추었다. 하지만, 짐작과는 달리 봄이면 들판을
파랗게 물들이는 풀잎 같은 향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돌아서서 등을 내밀었다. 나는 그만 쑥스러워하며 망설이다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얼른 업혔다.
“아버지······.”
“와······?”
“그냥······.”
“원, 녀석도, 싱겁기는······.”
나는 오늘따라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한다는데
한편으로 겁이 났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예행연습을 맡치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하였다. 나는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형이 중학교를 보내주지 않는다며 집을
뛰쳐나갔을 때였다. 수업중인데도 불구하고 교실이 술렁거리며 아이들의 눈길이 온통 창밖으로 쏠렸다.
나는 궁금증이 일어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일어섰다. 운동장 저편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도 아버지였다. 헝클어진 머리, 때가 꼬장꼬장하게 묻은 옷, 삿대질에 욕설까지······, 나는 그 순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흉내를 뒤로한 체,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찾아 나설 때까지 나는 학교조차
포기한 채, 며칠 동안이나 친구 집에 머물렀다.
“아버지······.”
측백나무 울타리에서 모습을 나타낸 아버지는 하얀 고무신에 검정두루마기를 입은 체, 중절모를 손에 들고
멋쩍어 하셨다.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깔끔하게 다듬어 만약 길에서 만났더라면 몰라볼 정도로 단정한 모습이다.
친구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아버지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달려가 손을 잡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6. 용의 전설.
“연락을 받고 급히 너럭바위로 달려갔는데 굵기가 어른 몸집만한 것이, 어림잡아도 길이가4~5미터 는 족히
되겠더군. 뿐인가? 온몸이 비늘로 덮여, 마치 갑옷을 입혀 놓은 것 같더군. 그런 거대한 구렁이가 불도저에
몸통이 잘린 체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니······, 오죽하면 불도저기사가 일이고 뭐고 팽개치고 고향으로 달아났겠어.
나는 그때 현장을 목격하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이 아직까지 악몽에 시달린다네.”
아버지는 수첩에 적혀있는 집안의 웃어른을 뵈러 일제강점기하에 우체국장으로 계셨던 분을 찾았다. 연세가
높으신 분이 뿔테안경을 써서 그런지 인상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는 잘못을 저질러 교감선생님 앞에 섰을
때처럼 주 녹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침까지 삼키며 너럭바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애야, 너는 추풍령에 전해 내려오는 용의 전설을 알고 있느냐?”
“용의 전설이요······?”
“그래, 추풍령에는 오랜 옛날부터 동, 서, 남, 북, 네 방향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기위해, 때를 기다리는
거대한 구렁이가 살고 있다고 전해져왔다.
“우리 학교에서도 너럭바위에서처럼 유사한 일이 일어났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소풍을 간다거나 운동회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지, 네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거대한 고목나무가 운동장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단다. 마을 사람들은 고목나무를 신성시 여기며 너럭바위와 마찬가지로 해가 바뀔 때마다 재를 지내곤
했었지. 그랬던 것을, 일본선생이 미신타파를 빙자하여 마을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목나무를 잘랐지.
그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더니, 거대한 구렁이가 나무에서 떨어졌단다. 일본선생은
사건이 일어나고부터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르신, 그럼 남은 두 곳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본인들이 돌산이라 이름 붙여놓고 절반이나 훼손한 금산이라네. 금산은 본시 백두의 정기를 지리산으로
잊는 백두대간의 봉우리였어, 일본인들은 이곳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쇠말뚝을 꽂으며 기를 누르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철도개설을 구실로 산을 절반이나 들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네. 물론 금산은 지금도
잘려나가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거대한 구렁이가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는군.”
“그래도 아직 한군데가 남아있네요. 마저 들려주세요.”
“눌의산 에는 오랜 옛날부터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고 알려졌지, 그 때문인지 철로나 국도를 따라 운항하던
비행기들이 눌의산 정상을 지나다가 원인 모르게 폭발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네. 오죽하면 일본인들이
눌의산에 밤낮으로 빛을 내는 유리 탑을 설치하여 비행을 금지 시켰을까? 지금도 그곳을 둘러보면 일본부대가
주둔하던 막사 터며, 밤이면 스스로 빛을 내는 유리파편들이 발견된다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곳에서도
용이 되지못한 채, 일본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거대한 구렁이가 있었다네.”
“어르신, 수첩에 적혀있는‘오룡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하였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인지요?”
“오룡 이란 지금의 사부리를 뜻하는 옛말이라네, 이곳은 임진왜란 때 2천 의병과 함께 순국하신 삼괴 장 지현
장군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곳이지. 장 지현 장군은 왜군 1만 명이 김천을 경유하여 추풍령으로 물밑 듯이
쳐들어오는 것을, 장작이 실린 소달구지에 불을 붙여 기선을 제압한 다음, 파상공세를 펼쳐 주력부대를
패퇴시켰지. 이에 격분한 왜군은 금산으로 우회하여 2만의 병력이 추풍령을 재차 침입하였다네. 결국 화살이
다하고 칼이 부러질 때까지 맞서 싸우던 장 지현 장군은 2천 의병과 함께 장렬히 전사 하였다고 전해진다네.”
“그럼, 그 일이 오룡 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군들이 장 지현 장군의 시신을 찾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네. 그 이후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에 용처럼 생긴 핏빛 바위가 생겨났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장군의 혼이 용이 되어
나라와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지.”
“할아버지, 그럼 여의주는 무었을 뜻하는 가요?”
“안 그래도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그전에 너에게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구나?”
할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머뭇거리셨다. 나는 아무래도 난처한 질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멍짱이를 찾으러 물땅꼬에 갔다가 누군가에게 붙잡혔다고 들었다?”
“예, 할아버지. 장발 짱한테요.” 나는 대답하는 도중에 갑자기 멍짱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네가 그곳에서 건져 올린 수첩은 황금을 숨겨놓은 곳을 표시한 지도였다. 네 할아버지가 간직하던 것이
어떤 연유로 물땅꼬에 빠지게 되었는지, 조사를 해보면 차차 밝혀지겠지.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장발 짱이라는
사람은 수첩의 비밀을 알고 있는듯하구나.”
“하, 할아버지, 방금 보물지도 라고 했나요?” 나는 너무나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7. 황금을 찾아서.
“추풍령을 황금 면이라 부르거나 이웃한 곳을 황간면이라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단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사금이 많이 채취되었다. 소문에는 일제강점기하에 지맥을 탐사하던 일본인이
오룡동에서 멀지 않은 금보 마을에서 금맥을 발견하였다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일본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기에 사실여부를 확인 할 수는 없었지.
수첩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일본이 갑작스럽게 패망하는 바람에 다행히 이곳에서 채취한 사금을 본국으로
옮겨가지는 못했다네. 때문에 이곳에서 책임자로 근무하던 일본군대좌는 사금을 은밀한 장소에 보관하다가
일본에서 인연이 있었던 자네 부친에게 뒷일을 부탁했던 모양이더군.
당시 부관으로 근무하던 일본군 소좌는 이런 사실을 눈치 체고 상관을 협박하던 중에 다툼이 일어 살해하게
되었다네. 추측하건데 자네 부친은 지도를 빼앗으려는 소좌를 피해 달아나다가 물땅꼬 부근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 같더군.”
“그럼 아버님을 죽인 원수는 장발 짱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렇다네, 지도에 미련이 남아 물땅꼬 부근에 머물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린 것 같다네.
또한 수첩이 발견될 당시에 기름종이에 꼭꼭 쌓여 있었다는 것은, 사금을 숨겨놓은 장소가 물속이거나 그
주변일거라는 짐작이드네.”
“할아버지, 그럼 어떻게 해야 황금을 찾을 수 있나요?”
“수첩에 그려진 지도를 살펴보면 추풍령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마치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비상하는 거대한
용과 같이 표현 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룡동은 위치적으로 용의 머리가 되고 용 바위는 여의주가 되는
것이야. 이곳은 물살이 거세어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으며 장 지현 장군의 사당이 있어 신성시 여기는
곳이란다.”
“저는 단순히 쇠말뚝을 표시한 지도인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쳤더라면 큰일 날 뻔 했군요?”
“행여나 수첩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그렇게 한 것 같더구나.”
“어르신, 큰일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르신 덕분입니다.”
“장발 짱이 지도를 찾은 것을 알고 있다면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른다네. 자네는 항상 몸조심 하게.”
나는 매일처럼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가 할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며
자랑스러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겠다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달도 별도 없는 깜깜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오룡동에
위치한 용바위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친구들이랑 함께 가고 싶은 마음에 응진이랑 몽하를 찾았지만 선생님이
불러 학교에 갔다는 말을 듣고 섭섭했다.
나도 공부를 잘했더라면 선생님께 사랑도 받고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많았을 텐데, 그동안 공부를 못한 것은
아버지를 닮아서라고 생각했는데 핑계일 뿐,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 잘못 이었다.
“이리야, 이리야, 쯧쯧쯧.”
소싸움이후에 며칠 동안 마구간에 갇혀 지냈던 누렁이는 모처럼의 외출에 신이 나는지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나는 달구지에 올라앉아 아버지흉내를 내며 고삐를 신나게 흔들었다. 오룡동을 가는 길은 비포장이라 덜컹거렸지만
시원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누렁이를
나무그늘에 묶어놓고 짐을 챙겼다. 장 지현장군 사당 근처에 위치한 용바위는 지형이 험악하여 접근이 어려웠다.
추풍령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금보에서의 물줄기가 합쳐져 위력이 배가된 강물은 난데없이 불쑥 솟아올라 앞길을
가로막은 용바위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부딪쳤다. 때문에 용바위 근처에는 고막을 찢을 뜻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세어진 물살은 무섭게 소용돌이 쳤다. 나는 바라만보아도 현기증이나
바닥을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아버지를 따랐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이곳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물살이 거세어 걱정이구나?”
“아버지, 그럼 물속을 들어가야 되잖아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구나. 그나저나 함께 가면 위험할 테니 너는 이곳에 기다리렴.”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당은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삐거덕 거렸다.
또한 주변에는 몇 백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져있어, 바람이 불때마다
울긋불긋한 깃발이 펄럭거린다.
마치 붉고 푸른 귀신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에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속에 뛰어 들려는 아버지를 붙들었다.
“아, 아버지, 나도 함께 데려가요.”
“원, 녀석도······,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무서움을 타서야, 쯧쯧쯧.”
아버지는 비료포대에다 불소시게며 성냥을 담아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그런 다음
어깨에 멜빵을 하고 내 몸에 나일론 줄을 길게 묶어 놓았다. 나는 궁금증이 일어 줄을 흔들어 보였다.
“아버지, 저는 누렁이도 아닌데 고삐처럼 묶어놓고 혼자가시면 어떡해요?”
“이 곳은 일 년에 몇 차례씩 익사 사고가 날 정도로 물이 깊어 급류에 휩쓸리면 위험하단다. 내가 먼저 물속에
들어가 굴을 찾으면 신호를 보낼 테니 그때 줄을 잡고 헤엄쳐오너라.”
물속으로 뛰어든 아버지는 소용돌이치는 급류에 휩쓸리며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바위에 앉아 신호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묶여있는 줄을 마구 흔들었다. 그때였다. 느슨하던 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버지로부터 신호가 왔다고 기뻐하는 순간, 누군가로부터 머리를 심하게 맞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강물에 떨어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8. 장발 짱의 최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척였다. 상처부위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만져졌다. 그 순간, 인기척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렁이는 횃불사이로 아버지의 모습뿐 아니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아버지······?”
“다가오면 안 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이놈, 어서 칼을 내려놓아라, 만약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네놈의 자식부터 죽여 버리겠다.”
우람한 덩치에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 소름끼치는 목소리, 그자는 바로 멍짱이를 죽였던 장발 짱이었다.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장발 짱이 내게로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 이보시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금은 모두 가져가시오, 그 대신 아이는 죄가 없으니 돌려보내 주시오.”
“흐흐흐, 내가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는가? 네놈들을 살려두면 비밀은 새나갈 것이며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 우선 아이부터 처치하고 네놈은 천천히 죽여주겠다.”
“아, 아버지······, 아버지, 무서워요.”
나는 장발 짱이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목격했던 터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때문에 장발 짱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손가락조차 까딱하지 못했다. 장발 짱의 손에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죽기 전에 잘 들어라, 본래부터 이곳에 숨겨놓은 사금은 우리 대 일본 제국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을 멍청한
대좌 놈이 사죄가 어떻고 하면서 네놈 애비에게 넘겨주었다. 때문에 나는 대좌를 현장에서 처형하고 사금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네놈의 애비가 비밀리에 빼돌린 뒤였다.
늦기 전에 본국으로 철수하자는 부하들의 주장을 묵살한 채, 나는 네놈의 애비를 끝까지 추적하여 물땅꼬 에서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네놈의 애비는 지도를 넘기기를 거부하고 반항하다가 총을 맞고 물땅꼬에 몸을 던졌다.
나는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도를 찾기 위해 변장을 한 채, 수 십 년을 기다렸다.
“그,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요?”
“그렇지, 하지만, 이제는 그놈의 자식까지, 아니 손자까지 모조리 내 손에 죽게 생겼다. 그뿐 아니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금조차 내손에 들어왔으니, 지하에 있는 그놈이 지켜보고 있다면 얼마나 원통해
할까? 우 하하하.”
“네 이놈······.”
장발 짱이 방심한 틈을 노려 아버지는 고함을 치며 곁에 있던 투구를 힘껏 던졌다. 그 순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던진 투구를 정통으로 맞은 장발 짱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비명은 장발 짱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에서도 동시에 들렸다. 나는 용기를 내어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엉엉엉.”
“어서, 어서······, 잘못하면 동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치거라.”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얼른 주변을 살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곳곳에서 물이 스며들기 시작한
동굴은 언뜻 보기에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발 짱이 아버지를 향해 발사한 총소리 때문에
천정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머리위로 연신 떨어졌다. 나는 돌멩이를 피하기 위해 아버지를 감싸며 몸을
움츠리는데 상자를 쌓아놓은 곳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힘을 이기지 못한 낡은 나무 상자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누런 사금이 마구 쏟아졌다. 그 순간, 동굴 안은 횃불에 반사되는 사금으로 인해 찬란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금을 쌓아놓은 상자들이 하나 둘씩 급류에 휩쓸리다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우 아아아, 안 돼, 안 돼, 으 흐흐 흑······. 내가 그동안 얼마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데.”
어느새 깨어난 장발 짱은 실성한 사람처럼 불어난 강물에 사금이 휩쓸려 가는 것을 바라보며 마구 기어갔다.
울다가 웃는 것을 반복하던 장발 짱은 웃옷을 찢어 사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장발 짱의 행동을 안타까운 듯,
지켜보던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총에 맞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굴 안쪽 깊숙이 몸을 피했다. 오래지않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동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위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버지를 따라
정신없이 달아났다. 끝없이 이어지던 동굴은 어느 때부터 조금씩 좁아지더니 허리를 숙이는 것도 모자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였다. 무릎이 벗겨져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헉!!! 어떻게 이런 것이······?”
햇살이 비추어 동굴이 끝나는 줄 알고 급히 다가간 아버지는 헛바람을 삼켰다. 바깥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다름 아닌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나무 둥치였다. 경악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굵고 거대한 허물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 동굴을
벗어났다. 그때였다.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지축이 흔들렸다.
“쿠쿵······.”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용바위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바위의 압력을 못 이겨 물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넓게 퍼져나갔다.
다리에 총을 맞아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아버지는 누렁이가 당겨주는 밧줄을 타고 나무둥치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돌아오던 그날,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9. 역사는······,
나는 아슴아슴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막내를 돌아보았다.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억새풀사이로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아버지, 그럼 그곳에 있던 황금은 모두 어떻게 되었나요?”
“글쎄다. 동굴이 무너지면서 강물에 휩쓸렸으나 일부는 아직까지 강바닥에 잠겨 있을 수도 있고, 금강으로
흘러가는 모래에 섞여 있겠지, 어쩌면 강물 따라 흐르다가 지금쯤 바다에 다다른 것도 있을 거야.”
“장발 짱한테 투구를 던졌다고 했는데 투구란 옛날 병사들이 갑옷과 함께 머리에 쓰던 것이잖아요.”
“그렇지, 할아버지가 굴속에서 장발 짱과 대치하면서 손에 칼을 들었다고 하였지?”
“네, 맞아요, 그렇다가 곁에 있던 투구를 던졌다고 했잖아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장 지현 장군님의 시신을 끝까지 못 찾았다고 했는데, 동굴에서 발견한 갑옷이며
투구와 칼이 모두 장군님이 쓰시던 유품으로 밝혀졌단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몽하라는 친구가 대통령각하께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함께 전해 드렸지. 덕분에 갇혀있던 마을 사람들도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고······, 속을 썩이던 고속도로공사는 장 지현 장군님 사당이 위치한 곳은 지반이 약한
것을 깨닫고, 터널을 뚫어 무사히 완공할 수 있었단다. 물론 장군님의 사당은 1978년도에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 말끔하게 단장했단다.”
“아빠, 나무둥치에서 거대한 허물을 발견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용이 정말로 존재 한다는 뜻인가요?”
“아빠가 직접 확인하지 못 했기 때문에 무어라 단정 지을 수는 없구나. 다만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어느
지방 할 것 없이 용에 대한 전설이 무수히 전해내려 온단다.
때문에, 과학이 발달 하였다고 용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미신이나 전설로 ‘치부’하기보다, 용의 힘을 빌어서라도
탐관오리를 벌한다거나, 외적의 침입에 강력하게 대처할, 상상 속의 동물을 만들어 냈으리라 짐작된다.
막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나는 라이트를 켠 채, 경부선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 불빛의 끝자락에 위치한 추풍령휴게소는 밀려드는 차량들로 불야성을 이루며, 밤낮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00년대 까지만 하여도 조용한 산골마을로 알려지던 추풍령은 1905년 경부선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의 요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한때 인구 8천을 자랑할 정도로 호황을 맞이하던 추풍령은 1970년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 지금껏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내야, 추풍령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 당시에 추풍령휴게소는 당연히 은편리에 들어선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추풍령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에 건립되는 것을 지켜보며 힘이 없어 빼앗겼다며
지금까지 억울해 하고 있단다.
이제 또다시 35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5년, 이번에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추풍령사람들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추풍령고개위로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설치하여, 서울,
부산 간, 4번 국도를 완공했단다.
때문에 추풍령을 지날 때마다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국민에게 사랑을 받아오던 고개는 옛 정취를 잃어버린 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다. 때문에 추풍령사람들은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공사가 끝난 지금까지도
분개하고 있단다.
만약 사람들이 추풍령의 상징인 고개위로 4번 국도가 통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지난 일을 거울삼아
한마음 한뜻으로 강력하게 대처하였더라면, 아무리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라 할지라도 단결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고개를 훼손하는 무례한 행동은 못 하였을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였다.’ 과거에 연연한 채, 지금부터라도 다가올 미래를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십 년, 또는 몇 백 년이 지난 어느 날에는, 아름다운 내 고향 추풍령은 지도에서조차 이름이 지워진 채,
골프장으로 바뀌어 있거나 또는 쓰레기장으로 변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글을 배우며 고향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장편 동화라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넓으신 아량으로 ㅎㅎㅎ 올해는 주로 동화를 많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오늘밤이 지나면 가족과 함께 중국 해남도로 사박 오일 여행을 떠납니다. 다녀와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늘좋은날 되세요.
오랫만에 좋은 글 가지고 오셨군요? 건강하시죠?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여행 잘 다녀오시길 바라구요. 다녀 오셔서도 좋은 이야기 보따리 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멋진 글도 남겨놓고 해남도에 여행 가서 즐겁게 시간 보내고 있겠네요. 많은 것들도 보고서 생에 활력소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