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
<ㅅ간 뒤>를 읽어보란다. 예쁜 문화관광해설사가. 눈치없는 나는 겨를도 없이 뇌까려버렸지만 그 언니는 짐짓 모르는척하고 다른 사람들보고 읽어보라 재촉한다. 간뒤? 뒤간? 아 뒷깐... 그제서야 서로 웃고 그 뜻을 이해한다. 보통 절집에서는 잘 없는 형식인가보다. 남,여가 달리 용변을 보게 해놨으니.
선암사엔 해우소가 3종류가 있다. 측간(또는 칙간)과 변소, 그리고 화장실인데 천년이 넘은 선암사창건이래 가장 오래 되었다는 뒷간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 그런데 이 언니 보고 싶거든 가보란다. 나는 남자니까 남성용으로 갔더니 우리 일행 여자가 많아서인지 온통 남자뒷간으로 몰려든다. 아 이게 뭔가 다 뚤려있으려니 생각은 했지만 그 깊이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 손님이 오셨다 똥을 누면 서울에 도착했을 때 똥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더니 그말이 허튼말이 아니다. 내말을 못믿겠다구? 가보라!!!
우리일행이 도착해서 대웅전에 들르지도 못한 건 난생처음이었다. 왜냐니까 총무원장스님이 스님들을 대상으로 설법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현시대에 맞는 불교로의 변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예를들면 불경의 한글화와 사부대중에 맞는 예불형식의 도입등이었던 것 같다. 그래야지...
선암사는 조경과 수목배치를 아주 여성스럽고 예쁘게 꾸며놓았다. 특히 남도지역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을 많이 배치해놓았고 매화, 벚꽃, 영산홍, 자산홍, 백일홍, 삼나무, 측백나무, 등등 계절별로 꽃과 열매를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심어놓았다. 조금만 일찍왔더라면 단풍과 은행나무잎의 낙엽을 흐드러지게 밟으며 주변풍치를 완상할 수 있었단다.
그래도 무엇보다 보성과 하동과 비교야 안되겠지만 야생차나무를 심어 늘 음복할 수 있도록 해놓았고 우리일행은 행운스럽게도 다도시범과 야생차마시기에 참여 할 수 있게해주었다. 맛은 뭐...그렇죠. 다만 예법에 맞게 술마시듯만 마시지 않으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껴?
<낙안읍성을 들러보며 향수에 젖은 엄마>
“어머 이게 뭐야. 목화아냐?”
어머니의 낮은 탄식소리에 나도 고개를 돌리니 과연 읍성입구에 목화밭이 있었다. 예로부터 3백이라 하여 쌀, 목화, 소금은 우리네 살림에 무엇보다 소중하였는데 문익점(우리나라 최초의 밀수꾼)선생이 도입한 이래 일제의 수탈정책에 얼마나 많은 민중의 피와 땀이 바쳐졌을까.
어머니는 어렸을적 목화따기가 그렇게 싫었단다. 어머니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가 솜틀게 목화따라시면 꽃은 따먹어도 말이죠. 그때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한테 “시집갈 때 솜이불 안해갈껴?”하고 혼났다고 한다. 지금도 그 솜이불은 우리집장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일년에 한두번(추석때와 구정때)나올똥 말똥 한데도 말이다. 되게 무겁다. 지금도 어머니는 잠꼬대를 하면 엄마 엄마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달이면 칠순인데 말이다.
밭가운데 감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장대도 있길래 한 번 따볼까요 여쭤보았다. 목화도 따줬으니 한 개라도 따보란다. 허락을 받았으니 해봐야지. 아니 이게 웬걸 장대를 들고 목표조준하기도 힘들었다. 감나무 가지에 걸려 옮기기도 힘든판에 감을 건드렸더니 후두둑 대봉시가 아깝게끔 땅에 툭 떨어진다. 다 익은 감이 애기 똥을 싸듯 떨어지는 거다. 거참... 지나가던 젊은 친구가 자기는 시골출신이라며 나무에 올라가서 따보겠단다. 아니 그건 안되지, 장대로 따보슈. 이 친구 장대를 보더니 대나무 조각을 끼우고 감을 피해 줄기를 돌려 세송이가 달린 감숭구리를 척 따네는 것이다. 이거 원...다 요령이 필요한 거구나. 어머니 하나 드리고 또하나는 신혼부부에게 기념으로 건네주었다.
아시다시피 낙안읍성은 현지 주민들의 실생활을 보여주는 민속마을이다. 마침 가는 날이 이엉을 얽는날이었는데 볏단을 만들고 지붕에 올라 새끼꼬아 묶는데 뭐 척척이었다. 나는 새끼 가닥도 여태 못꼬는데 어머니는 내가 새끼를 얼마나 잘 꼬았다고 하시더니 그 탓에 서방이 집안안팍의 일도 다 맡기도 밖으로만 돌으셨다며 쓴 웃음을 지으셨다.
첫댓글 참 정겨워 보입니다.....어머님이 정정하셔서 여행도 다니시고 .^^
실세방장님의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의 선조중에 효자가 계셨거든요. ㅎㅎ. 그땀시 효자동이 생긴것 아시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