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소리없이 온다. 그러나 떠날때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새 해를 몇 분 앞둔 1996년의 마지막 날, 떠들썩한 런던거리를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전복되면서 차 안에 있던 두 남녀 허항생과 연루는 서로를 껴안은 채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두 사람의 아들 데이빗과 딸 수지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런던으로 온다. 함께 죽었지만 허항생은 미국에, 연루는 홍콩에 각각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홍콩에 함께 지내던 집이 있었고, 그 집을 정리하면서 수지와 데이빗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한 추억들과 만나게 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의 종을 뺏으러 가던 날,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 종을 들어 올리던 '허항생'은 환한 미소를 터뜨리던 긴 머리의 여학생 '연루'를 만난다. 사랑의 시작... 그리고 어둠이 내린 교정에서의 첫 키스.. 첫 눈에 서로에게 빠져든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갔다.
학내시위로 체포돼 경찰서에 끌려간 항생. 면회를 간 연루는 그에게 작은 녹음기를 선물한다. 그녀가 부른 'Try to Remember'가 녹음된 테이프와 함께. 그 후 그 사건은 항생의 삶게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유학을 결심한 항생은 파리로 떠난다. 연루는 홍콩에서 항생은 파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전화로 사랑을 확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바쁜 일상 속에 사랑은 서서히 멀어져 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중국반환을 앞두고 있는 홍콩의 중국어 학원에서 항생과 연루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항생이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 남편이 된 그들은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못한다. 그때 카페 주인인 친구의 요청으로 항생은 그가 즐겨 불렀던 노래를 연루에게 들려준다. "Try to Remember' 연루가 항생에게 불러준 그 노래였고 두 사람은 사랑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날 이후, 항생은 연루를 잊지 못해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고, 연루는 항생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연루의 창문을 바라보던 항생은 20년 전 그가 연루에게 만들어준 자신의 손 모양 조각상을 발견한다. 망설임의 시간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는데...
영화 “유리의 성City of Glass 1998)”은 “가을날의 동화”로 한국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장완정 감독이 속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애태우면서 10년만에 연출한 정통멜로영화다. 20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며 안타까운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애틋한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