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후의 여향/ 목정배 이사장
자연의 위력
봄바람이 잔잔하게 불면 사람의 걸음걸이도 사뿐하게 거닐게 된다. 겨울 눈보라가 거세게 북어 닥치면 사람들은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갈까 엄두를 내지 못한다. 광풍질주 속에 방향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연묘를 구할 수도 없다.
사람은 자연의 섭리 속에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다. 뭐랄가, 우풍순조가 제일 삶을 도웁는 연유가 될것이다. 비 .바람이 사계절 고루게 내리고 불어주면, 봄에는 씨 뿌리고 여름에 꽃 피어 가을에 탈곡을 거워드릴 수 있는秋收冬藏(추수동장) 이 될 것이다.
이러하기를 바라지망, 자연은 저절로 그렇게 돔인데 그 저절로는 자연 그 자연만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으로 어느 철인도 그 위대한 능력을 감기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공부를 깊개 하고 모든 것을 계탁할 수 있게 되어 생활에 필요한 과학적 부산물을 창의하여 발명하였다하더라도, 자연의 그 비의를 헤아리지 못한다.
태풍의 향방을 계측하는 기기가 발명되어 가상예보를 어느 정도 하고는 있지만, 자연적 태풍의 진행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향상 예보나 예측뿐이지 태풍의 진로나 피해를 걱정하게 계측하지 못한다.
이뿐인가. 해일, 지진, 토네이도, 화산, 허리케인, 사막, 황사, 해빙, 폭염, 냉해, 폭설, 폭우, 폭풍, 용암, 화산재, 산불, 범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연적 재해가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하여 사람 쪽에서 원망을 하지만 이것은 인간 쪽에서 할 구 있는 넋두리요, 비극이지만 그 자연은 그냥하고 지나가고 있는 자연인 것이다. 만약 자연속에 이렇게 하면 인간에게 패해를 중다. 거러니 나 자연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가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자연 자체적 위력과 능력이 있어 일체적 반향의식이나 비극생출의 양태가 있음을 계감하는 것이 나니라. 무몰식의 자연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위력에서 인간이 비극적 시말을 적게 감수하고 생명유지하려면 인간이 천부덕 재능을 발휘하여 자연과 동거할 ㅅ 있는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자연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다 거주지를 장하지 않고, 그래도 이러한 곳이면 위협을 모면 할 수 있는 곳에다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선별한 최상의 자연겅지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연은 자연되로 활동하면 또 피난처를 구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지만, 자연에 비하면 별스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골 냇가를 보통 때는 마음 놓고 건너기도 하고, 물이 조금 불어나면 돌다리를 놓고 징금징금 건너기도 하지만 횃대장마치면 강물이 넘치면, 강 건너만 쳐다볼 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도 인간이 아닌가. 그리하여 교량을 건설하였건만 태충, 폭우에 그 강한 교량도 무너지고 엮어가기는 하지만 자연을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마음을 곱게 맑게 밝게 간직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보우를 받는 삶을 영위하여야 한
다. 앞서 만물의 영장이라 의미는 자연 생출의 만물중 사람이 영이하다는 것이지 자연보다 영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의 국치에 이른느 길도 자연의 심오한 비법을 예견하는 능력을 함장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은 자연을 비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직시하면서 자연의 길을 살펴가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철학을 겸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거러나 요새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살려고 한다. 그 정복이 제 주검의 길인지도 모르고, 자연을 극복하고 자연의 정복이 인간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생각하는 마음과 지금 사람의 생각이 천리현격으로 차이가 나버렸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자연의 승엄한 위력을 마음 속 깊이에서 우러러 섬기는 마음을 길러가면서 지금의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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