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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랑팔 (Rampal, Jean-Pierre)
1922년 1월 7일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난 그는 마르세이유 음악원 교수이자 마르세이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제1플루트 주자였던 부친, 조제프 랑팔에게서 13세부터 플루트를 배웠다.
그후 18세 때 일단 의과 대학에 입학한 후 3학년 재학중 당시 나치 점령군의 강제노동 동원을 피하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겨 1945년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진학, 무아즈를 사사하며 5개월만에 1등으로 졸업하였다.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플루티스트로서의 탁월한 실력을 검증받은 랑팔은 그해 1947년 비시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입단하였고, 1955년에는 파리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윈드 퀸텟과 파리 바로크 앙상블을 조직하여 실내악 주자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최근 들어서는 지휘자로서도 그 입지를 확고히 해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몬트리올 심포니, 피츠버그 심포니, 세인트 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등을 지휘하였으며 워싱턴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정기적으로 지휘하기도 하였다.
주요 수상경력을 보면 아카데미 샤를르 크로, 프랑스 디스크 아카데미, 에디송 상, 몽뒤알 뒤 디스크상 대상 등이며 프랑스 정부 및 기관으로부터 받은 레종 도뇌르 훈장, 문예훈장, 로르드 나시오날 뒤 메리트 훈장과 레오니 소니상 등이 음악가로서의 업적과 위상을 충분히 대변해 준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명 레이블로 300여장이 넘는 레코딩을 한 그를 위해 파리 시 당국은 1987년 파리 시 대상을 수여하였고 이를 기념해 국제 플루트 대회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황금 플루티스트라고도 불리우는 랑팔은 실제로 두 개의 황금 플루트 소유자였다. 100년 된 명기와 자신이 특별 주문 제작한 황금 플루트를 연주 곡목에 따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또한 그는 화려한 음색과 초인적인 테크닉, 풍부하고 다채로운 표현력을 구사함으로써 '플루트 제왕'(San Francisco Examiner), '플루티스트들의 모범'(The New York Times)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18세기 음악과 그 정통적 연주 스타일을 사랑하며 표현력도 다채롭다. 레코딩도 많지만 바하의 '모음곡 제2번'이 특히 걸출하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오케스트라나 실내악단의 협주악기로만 여겨졌던 플루트를 독주 악기로 인식시켜 '플루트의 다양화, 대중화'를 일구어 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골웨이 (James Galway)
제임스 골웨이는 클래식뿐 만이 아니라 모듬 음악을 넘나들며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고의 플루티스트이다. 그의 왕성한 대외 활동에는 50여 개가 넘는 RCA Victor 레이블로 음반을 발표한 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TV 출연 등으로 세계 무대를 사로잡고 있다.
영국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골웨이는 로열 칼리지와 런던의 길드홀 뮤직 드라마 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이후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그는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연주하기 시작, 이후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피콜로 주자로 활동 한 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1969년 드디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임명된 골웨이는 1975년에 솔리스트로서 연간 120여 회의 공연을 펼치면서 그의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이후로 그는 세계 전역을 돌며 주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실내악 연주, 마스터 클래스, 독주회등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현대 작품의 초연을 포함하여 그를 위해 쓰여진 작품과,또 그에 의해 쓰여진 플루트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1993년에 그는 영국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데이비드 히쓰의 작품을 초연하였고, 로엘 리버만이 작곡한 플루트 협주곡을 세인트 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조지 니콜슨의 협주곡, 진드리치의 플루트, 피아노,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취리히의 톤 할레 오케스트라와 초연하였다.
1997년에 골웨이는 그가 최근에 가장 왕성한 연주를 펼치고 있는 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의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몇몇 주요한 이벤트와 방송에도 수차례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91년 7월에는 영국 여왕과 왕실의 가족 앞에서 연주를 했는가하면, 세계적으로 방영되기도 한 베를린 장벽에서의 “ the wall” 공연에도 출연하였고 미 대통령의 초청으로 수차례 백악관 콘서트에 출연하였다.
1998년12월에는 전세계에 대대적으로 방영되었던 노벨 평화상 기념음악회에도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었다.
1999년에는 그의 60회 생일을 기념하여 영국 에드워드 왕자가 참가한 가운데 버킹검 궁에서 독주회를, 또한 영국 최고의 공연장인 바비칸 센터의 독주회를 포함,영국 전역에서 독주회를 한달간 갖기도 하였다.
이 독주 공연 이후에는 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와 함께 런던 페스티벌과 BBC프롬즈에서 공연을 가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공연을 포함하여 수십회의 미국 순회 공연을 펼쳤다.
그의 이러한 연주활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독주회와 실내악 활동, 그리고 주요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과 미주지역에서는 수십회의 자선 공연을 펼쳐 좋은 성과를 걷고 있다.
골웨이는 BMG RCA RED SEAL 레이블로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며 수십종의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음반에는 그래미 상의 영광을 안았던“ 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 각종 클래식 차트를 석권하였던 “Masterpieces”, “ James Galway at the Movies”, “Dances for Flutes”, “Lark in the Clear Air” 등이 있다.
그의 음반들은 그랑프리 뒤 디스크 상, 올해의 음반상, 빌보드 차트 랭크, 미국 내 플레티넘 음반상 등 각종 수상을 자랑한다.
막상스 라뤼 (Maxence Larrieu)
1935년 10월 27일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난 막상스 라뤼는 마르세이유 음악원에서 죠셉 랑팔을 사사했다.
16세에 마르세이유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 장 피에르 랑팔을 사사하고 18세 때인 1953년에는 입학 2년만에 파리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같은 해에 뮌헨 국제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54년 제네바 국제 콩쿨에서 2위에 입상하면서 국제 무대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막상스 라뤼는 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과 파리 오페라 코미크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활동하면서, 장-피에르 랑팔에 이어 일급 악단인 '앙상블 바로크 드 파리'(Ensemble Baroque de Paris) 단원으로도 활동했다.
62년에는 사중주단을 결성하는 등 실내악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장 피에르 랑팔, 볼프강 슐츠, 피터 루카스 그라프 등과 함께 현존하는 플루트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막상스 라뤼는 이들 가운데 가장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라토, 필립스, 데카, EMI, 데논, 카시오페 등 다양한 레이블에서 녹음한 음반의 종류만도 70여 장에 이른다. 아르투르 그뤼미오, 이 무지치, 장 피에르 랑팔 등이 라뤼와 함께 음반 녹음을 했으며, 뮌헨, 콜로뉴, 몬테카를로, 프라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음반을 녹음, 발매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테크닉,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작품 해석 스타일로 특징지워지는 라뤼의 연주는 나긋나긋하게 울려퍼지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플루트 소리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목가풍의 연주로 독일 및 프랑스 계통 레퍼토리에 모두 능통하다.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액상 프로방스, 몬트리올, 오사카 국제 음악 페스티벌 등 세계 유명 음악제에 솔리스트로 초청받아 참가한 바 있다.
샤를르 크로스 아카데미에서 13번째 대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공로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제네바, 로마, 파리, 고베 및 쾰른 국제 콩쿨의 심사위원 역임했고, 리옹 국립고등음악원과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제네바 음악원 명예교수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공연으로는 97년 2월에 독주회를 가졌고, 99년 5월에 내한해 독주회 및 플루티스트 윤현임과의 듀오 리사이틀을 가진 바 있다.
앙드라스 아도리앙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앙드라스 아도리앙은 56년에 덴마크로 이주한 후 줄곧 이곳에 거주했고, 64년엔 덴마크 국적을 취득했다.
1964년부터 니스에서 장 피에르 랑팔을 사사했고, 프라이부르크 음악 아카데미에 진학, 오렐르 니콜레를 사사했다.
치과의사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인 앙드라스 아도리앙은 1968년에 코펜하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같은 해에 역시 코펜하겐에서 '야콥 게이드 상Jacob Gade Prize)'을 수상하고, 몽트뢰(Montreux)에서 열린 국제 플루트 콩쿨에 참가, 2위로 입상했다.
1970년부터 스톡홀름 왕립가극장 관현악단 수석 주자로 활동했고, 71년에 개최된 제1회 파리 국제 플루트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전통적으로 플루트의 대가를 많이 배출해온 프랑스 음악계와 국제 사회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도리앙은 73년부터 남서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74년부터 88년까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플루트 주자를 역임했다. 스톡홀름, 콜로뉴, 바덴-바덴, 뮌헨에서 관록있는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활동해왔다. 정상급 실내악단, 교향악단과의 협연과 함께 활발한 실내악 활동을 해온 앙드라스 아도리앙은 록켄하우스 페스티벌, 몽트뢰, 모스크바, 뉴포트, 슐레스빈-홀슈타인, 뷔르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 등 세계 유명 음악제에 초청 음악가로 참가했다.
아도리앙은 힘을 구사하는 연주자로서 빛이 나는 속도감과 무게있는 음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플루트가 가진 불완전함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운지법을 구사한다.
현대에 대부분 사용되는 금속제의 뵘식 플루트도 연주하지만, 목재 플루트를 연주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음악사에서 잊혀지거나 묻혀버린 곡들을 발굴하여 재해석하고 연주·녹음하는 작업을 통해 학구적인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벤다(Benda), 블로흐(Bloch), 단치(Danzi), 도플러(Doppler), 훔멜Hummel), 메르카단테(Mercadante), 모셸레스(Moscheles), 슈포어(Spohr) 등의 작품이 아도리앙에 의해 새로운 빛을 보게 되었다. 또한 에디슨 데니소프(Edison Denisov),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스벤 에릭 베르너(Sven Erik Werner) 같은 동시대 작곡가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한 영감을 주어 플루트 곡을 작곡하게 하고 초연하는 등 현대음악에 대한 신선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데논, 에라토, 오블리가토, 오르페오, RCA, 코흐-슈완, 버진 클래식스 등의 레이블에서 음반 녹음을 했고, 1988년에는 독일 음반 비평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도리앙은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서 마스터클래스 개최하고 있으며, 1987년 콜로뉴 음악원의 교수로 선임되었고, 1998년 이후 현재까지 독일 뮌헨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연주로는 지난 해 8월에 열렸던 플루트의 거장 알랭 마리옹 서거 1주기 기념 '플루트 앙상블의 밤'에 출연한 바 있다.
드보스트 미셸 (DEBOST, MICHEL)
1934년 미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드보스트는 10세에 플루트 공부를 시작했다.
20세에는 파리 음악원의 플루트와 실내악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프라하, 뮌헨, 제네바, 로마등의 플루트 경연 대회에서 입상하였다.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 여러 유럽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독주자로 참가했으며 Salzburg, Aix-en-Provnce, Menton, Bach Festivals of Anspach등의 음악제에 초청되었다.
드보스트는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주요 멤버로서 활동하였으며 1967년부터 파리 관현악단의 수석 연주자로 뮌쉬, 카라얀, 솔티, 바렌보임등의 명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하였다.
드보스트는 플루트의 주요한 레퍼토리의 전반에 걸쳐 녹음을 하였는데 그 형태는 오케스트라와 협연, 피아노, 하프시코드, 쳄버 앙상블과의 연주등 다양하다. 현재 오벌린 칼리지(Oberlin College)에서 플루트 교수를 맡고 있다.
그라프 피터 루카스 (GRAF, PETER-LUKAS)
PETER-LUKAS는 쥬리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플루트 주자인 앙드레 요네(Andr Jaunet)와 마르셀 모이즈(Marcel Moyse), 그리고 로저 코르테(Roger Cortet)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그는 파리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휘자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53년에 뮌헨 국제 음악 경연대회에서 플루트 연주자로 1위에 입상했고, 1958년에는 런던 H. Cohan 국제 음악상에서 Bablock상을 수상했다.
1950년부터 1957년까지 그는 Winterthur & Festival-Orchester Luzern에서, 그리고 1960-65에 Kpm Operluzern에서 수석 플룻티스트로 활동하였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는 루체른 극장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스위스를 비롯한 각국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였다.
그는 1973-95년에 걸쳐 Musikakademie Basel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국제 심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 교육과정의 리더이면서, 솔리스트와 chamber-musician과 지휘자이기도 하였다.
GRAUWELS, MARC (1954 브뤼셀, 벨기에)
7세에 플루트를 시작하여 벨기에에서 기초를 다진 다음 런던에서 제임스 골웨이, 파리에서 크리스티안 라르데 에게 사사 받았다.
1976-1978년 브뤼셀 국립가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플루트 주자로 활동했으며 후에 벨기에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플루트 주자를 맡았다. 그는 또한 실내악 연주자, 솔로 주자로 세계 각지에서 활동함과 동시에 벨기에 브뤼셀 왕립 음악원 플루트과 교수이기도 하다.
구미와 카나다 등 세계 각국의 주요한 음악제에 솔로 주자로 많은 출연을 하고 함부르그 필하모닉 관현악단, 프라하 실내 관현악단등 과 협연하였으며 상당수의 음반도 발표하고 있다.
고전음악에서 현대,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와 음악성과 오락성을 함께 갖춘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장점으로 한다.
LARRIEU, MAXENCE (1935 마르세이유,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립 음악원에서 장-피에르 랑팔의 아버지인 조셉 랑팔에게서 플루트를 배웠다. 16세에 마르세이유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다. 2년 만에 파리 국립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54년 제네바 국제 콩쿨에서 1위로 입상하여 전문연주자로 데뷔하였다.
장-피에르 랑팔에 이어 앙상블 바로크 드 파리(Ensemble Baroque de Paris)의 단원으로 활약하기도 하였고, 일본,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제네바, 로마, 파리, 고베 및 퀠른 국제 콩쿨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도 있다.
현재까지 약 70여종의 음반을 발표하였다.
장-피에르 랑팔, 볼프강 슐츠, 피터 루카스 그라프와 함께 현존하는 플루트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맑고 부드러운 소리와 표정이 풍부한 음색을 표현하는 연주자로 테크닉과 음악적 처리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MILAN, SUSAN
수잔 밀란은 왕립 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존 프란시스(John Francis)에게, 길드홀 음악학교(Guiddhall School of Music)에서는 제프리 길버트(Geoffrey Gilbert)에게 그리고 스위스의 보스윌(Boswil)대학원 과정에서는 대가 마르셀 모이즈(Marcel Moyse)에게 배웠다.
그녀는 본머드 신포니에타(Bournemouth Sinfonietta)의 플루트 수석으로 데뷔하여 1974년에는 로얄 필하모닉의 플루트 수석 주자가 되었다. 이후 솔리스트로서 일본, 미국,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리고 많은 유럽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키웠다.
수잔 밀란은 바로크, 고전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폭넙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으며 R.R. Bennett, C. Davis, N. Sohal, R. Sayton, J.R. Smith, D. Morgan, R. Walker, O. Schmidt등의 작품을 초연하였다.
런던 퀸텟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왕립 음악대학의 교수를 맡고 있다. 매년 여름에는 하인드헤드 음악학교(Hindhead School of Music)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다.
첫댓글 거의다 남자네요ㅠㅠ;
왜 필립부클리가 없어 ㅠㅠㅠㅠㅠㅠ 말도 안돼 ㅠㅠㅠㅠㅠ
제임스 골웨이가 제가 있는 앤아버 Hill Auditorium에서 공연해요~ 3월 14일인데요~~기대 너무 되는거 있죠~~!!!! 55불 주고 티켓 샀는데요~~사진 찍고 올릴게요!! :)
넵 ^ ^* 사진 많이 찍어서 올려주세요 ㅎㅎ
그냥 동영상 찍어서 동영상으로 +_+;;
헉!!! 우리과외선생이 예전에 파리갔다가 larrieu, maxence만났는데... 손에 키스하는 옛날프랑스인 같이 행동한다고 하던데... 놀라워...
베이커 선생님이 안계시네요 ㅜ ㅜ 좋은 분이신데...
^ ^*
언젠가는..... 우리나라 사람도 세계적인 플루티스트가 나오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근데 막상스 라뤼가 두 번 나오네요~ ^^;;
ㅎㅎㅎ @_@
우와~!장피에르랑팔+.+ㅎㅎㅎ한명빼고 다 남자넹~
랑팔....왜 벌써 죽으셨나요~~당신의 그 따뜻한 소리를 아직 라이브로 듣지도 못했는데...ㅠㅠ
-.-;;; 랑팔이 여잔가? +_+
임마누엘 파우드도좀 올려주세요
와,, 대단하신분들..; 언제쯤이면 저분들 가까이 갈수 있으려나ㅜㅜ
수잔밀란만 여자 입니다
랑팔은 남자입니다..81년도쯤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한적이있는데 소리가 무지 크더군요 덩치도..친구랑 녹음하다들켜서 다뺏긴 기억이...
할일 많다는 핑계로 오늘 레슨도 빠지고 이것저것 하다가 얼마나 멋진 연주를 하길래..하고 몇곡 찾아서 들어봤는데 정말 혼자 듣기에는 너무 좋아서 옆에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게 안타까울정도인거있죠.. 이렇게 멋진분들 소개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한국인 플루트 대가도 나오시면 좋겠어요 ^^ 혹시 저희 인연에서???
헐 엠마뉴엘 파우드가 빠지다니요 현존하는 최고의 플륫티스트라고 꼽는분인데요 제임스 골웨이보다 7살어린나이로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이되어서 세상을 놀라게했습니다 22살에정도였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