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하자’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게 다른 사람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늘 떠오른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혹자는 ‘성경을 읽어야 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좋은 말이고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편지이다. 연인들이 편지를 서로 주고받고(요즘은 카톡으로 다 하겠지만) 할 때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따라 살기로 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할’ 무엇인가로 여기는 것이 못 마땅하다. 우리가 너무 성경을 읽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반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안타깝다. 마찬가지로 소위 'Q.T'라고 불리는 경건의 시간(제대로 번역하면 조용한 시간)도 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당연히 사람이 밥 먹고 살 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그 누구도 밥을 먹어야할 의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경 읽는 것을 소홀히 할까. 심각하게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 본다.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성경책이 없어서? 글자를 읽지 못해서? 아파서? 전부 틀린 것 같다. 올바른 대답은 ‘그냥 안 읽는다’이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없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없다. 마치, 저 포로 전후기 예언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던 대상이었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에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하듯 성경 읽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것도 성경 읽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도해야지’라는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숨쉬어야지’가 되는데 숨을 쉬어야겠다고 의무감에 쉬는 사람은 없다. 최현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옳다. 기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에베소서를 읽을 때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후반부에는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 말씀이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성경을 읽기만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수많은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 지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던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하나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를 하나된 몸으로 만드셨는데 우리는 이미 하나 된 교회를 다시 하나되게 하려고 헛된 노력을 한 것은 아닐까.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좋은 일 좋은 행사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간에게 칭송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수없이 되묻고 있다.
학자들은 성경을 ‘성서’라고 부른다. 성경은 그들에게 하나의 경전이 아니라 책일 뿐이다. 목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학문을 가져다 목회에 적용하려고 한다. 경영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으로 말이다. 성경은 동서양의 진리가 담겨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경을 통해, 특별히 목회자가 성경을 읽고 올바르게 설교하는 것을 통해 교회가 회복된다고 역설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냥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은 성경읽기에 달렸다.
첫댓글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