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통산랭킹 1위, 월드컵 최다 우승국, 월드컵 최다 출전국 등등
월드컵에 관한한 거의 모든 기록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는 브라질이
기에 브라질 국민들에게 있어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제1
종교"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축구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쌓아올린 국
가가 바로 브라질이기에 브라질의 국민들은 물론 매스컴들이 자국의
축구역사와 전통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은 실로 엄청날 수 밖에 없습
니다.
게다가 역대로 이번 2002 월드컵 남미 예선이 펼쳐지기 전까지 남미
예선 사상 단 1패만을 기록하였을 정도로 남미에서 절대강자의 위치
를 고수해 온 브라질의 지난 이력에 비추어, 이번 월드컵에서 그간
한 수 아래로 치부되어 온 국가들에게까지 수모를 당하며 무려 6패
나 기록했다면 대표팀을 바라보는 브라질 국내의 여론이 어떠할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지난 2년간 브라질대표팀의 끝없는 추락으로 말미암아 대표팀의 부진
을 질타하는 브라질 국내의 비난여론은 이미 비판의 수준을 넘어서서
거의 폭발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자국의 축구에 대한 남다
른 자부심을 바탕으로 경기결과는 물론, 그 내용까지도 완벽한 수준
에 이를 것을 요하는 브라질의 정서상, 내용은 고사하고 결과마저 형
편없었던 최근 대표팀의 초라한 성적은 브라질 국내의 여론을 들끓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전력에 비추어 도저히 패할 수 없는 상대로 인식되어 온 남
미의 중하위권 국가들에게 연이어 덜미를 잡히는 상황은 브라질 전체
를 거의 공황의 상태로까지 몰고 갔었으며, 대표팀의 끝없는 추락에
분노하는 브라질 내의 성난 여론은 실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였습니다.
또한 베네수엘라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상당수 매스컴들은
경기장소가 오지의 마라녕州에 위치한 쌍 루이스 임을 문제삼아 이곳
이 바로 호주로 가는 출발지라는 식의 극단적인 비난도 서슴치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 경기가 열리기 일주일 전에 있었던 대 볼리비아전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패배의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탓인지 대표팀과 스콜라리
를 바라보는 매스컴의 태도는 거의 적대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성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오죽하면 펠레까지 나서서 이제는 차분
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표팀을 성원해 주어야 할 때라며, 브라질
국민들과 매스컴에게 대표팀에 대한 비난의 자제를 호소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기도 했었습니다.
2.월드컵 본선진출의 약속을 지킨 스콜라리감독
"브라질을 월드컵으로 이끈 루이장!" (가제따 에스뽀르띠바誌)
레앙의 뒤를 이어 대표팀 사령탑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콜라리 감독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대표팀의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하여 그 누구보다
도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했습니다.
선수선발에서부터 작전구사에 이르기까지 감독 자신의 독자적인 대표
팀 운영을 어렵게 할 정도로 대표팀에 가해지는 온갖 간섭과 이로 인
한 극심한 심적 압박은 스콜라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게다가 남미예선 4위로까지 처지며 예선통과마저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 하에서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게된 스콜라리는
경기 때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국내외의 비난여론에 맞서 브라질의 본
선행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느라 절치부심해야 했었습니다.
스콜라리가 대표팀을 맡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역시 그동안 브
라질 축구의 부진의 한 원인으로 제기되었었던 수비불안을 해소시키
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간 브라질 축구의 전통적인 시스템인
4-4-2 전형을 버리고 쓰리백을 기용하는 3-5-2 전형을 과감하게 구
사하여 이러한 대표팀의 전형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대 베네수엘라
전에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종래 브라질 축구를 주도해왔었던 전통적인 전형을 버리고
새로운 수비시스템을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따라 심한 기복
을 드러내는 불안정한 전력때문에 기대했었던 만큼의 성과가 따라주
지 않게 되자, 이전의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스콜라리의 지도력 또한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간 스콜라리가 취해왔었던 선
수구성이나 경기전략은 비난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의 베네수엘라 전에서는 특히 포워드라인의 구성이 브라질의 매
스컴들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에디우손과 투톱을 이루는 최전방 포
워드로 브라질의 매스컴들은 슈퍼스타 호마리오의 기용을 요구했었
지만 최근 그의 부상에 따른 컨디션 난조의 문제를 들어 호마리오의
기용을 거부하고 대신 코린티안스의 루이장을 기용하게 되자 브라질
국내는 다시 한번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루이장이 비
록 코린티안스의 주축 골잡이인 점만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최근 몇
달동안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제대로 출전한 적이 별로 없으므로 브
라질의 운명이 걸리다시피한 마지막 경기에 그를 출전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도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콜라리는 부상에서 회복한 루이장이 컨디션을 회복했다는
판단 아래, 과거 코린티안스가 세계클럽선수권을 제패할 당시 에디우
손과 더불어 투톱을 이루어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점에
주목하여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루이장을 주전으로 기
용하는 뚝심을 보여주었고, 이에 부응하여 루이장은 두 골을 엮어내
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브라질을 본선으로
이끈 최고의 수훈갑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갖은 우여곡절과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칫 사상 최초로 브라
질이 본선진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우려를 씻어내고 스콜
라리는 "본선진출에 실패한 사상 최초의 브라질감독이 되지는 않겠
다"는 취임 당시의 약속대로 브라질을 사상 17번째로 본선무대에 올
려 놓았습니다.
3.대 베네수엘라 전의 히어로, 에디우손과 루이장
이번 대 베네수엘라 전의 최고의 수훈갑이라면 단연 브라질이 얻은
세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에디우손과 선제
골과 추가골을 터뜨리며 깜짝스타로 떠오른 루이장일 것입니다.
에디우손은 최근 대 칠레 전을 필두로 남미 예선의 세 경기에 계속
주전 포워드로 기용되어 뛰어난 순발력과 센스있는 골감각 그리고
현란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모든 선수들 중에서 가장 인상
적인 활약을 펼치며 예선통과마저 장담하기 어려웠었던 브라질을
사상 17번째로 본선으로 이끈 최고의 수훈갑이 되었습니다.
특히 예선 마지막 경기였었던 베네수엘라 전은 에디우손의 스페셜
무대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특출난 개인기의 소유자인 에디우손의
현란한 개인기가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은 한 판이었습니다.
브라질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선제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그러한 선제골을 터뜨리기 위
해서는 득점을 만들어낼만한 포워드라인의 세밀한 플레이가 절대적
으로 요구되었는데, 그러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낸 선수가 바로
그림같은 드리블로 상대의 문전을 휘저으며 세 골을 모두 어시스트
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친 에디우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콜라리 사단에 처음으로 기용된데다 아직 국제무대에서 그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관계로 브라질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었던 루
이장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스콜라리에게 보답이라
고 하듯 침착하고 냉정한 플레이로 두 골을 엮어내는 선세이션을 불
러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 루이장은 브라질을 본선으로 이끈 일등공
신으로 떠오르며 졸지에 매스컴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선수가 되었
습니다.
예전같았으면 베네수엘라 전의 승리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결과로 치부되었겠지만 최근의 브라질은 남미의
어느 팀을 맞아서도 손쉬운 승리를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조를
보여온데다 최근 놀라우리만치 향상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베네수엘
라의 상승세는 경기가 펼쳐지기 직전만 하더라도 섣부른 경기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브라질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루이장의 회심의 선제골에 이은 추
가득점은 그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 사상 최초로 본선진출을 의심받던
브라질을 본선으로 이끈 귀중한 득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실로 남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다.
4.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전력의 베네수엘라
지난해 정도의 베네수엘라의 전력이라면 스콜라리나 브라질 국민들이
그토록 마지막 경기에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네
수엘라는 최근 남미예선에서 4연승을 거두며 뒤늦은 상승세를 타고
있을 만큼 요즘 남미팀들 중에서 최고의 호조를 보이는 팀이어서, 이
러한 상승세의 베네수엘라를 상대한다는 것은 최근 상대팀에 따라 심
한 기복을 드러내는 브라질의 입장에서는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
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브라질이 당연히 베네수엘라를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이지만, 요즘의 브라질은 기본적인 전력에 관계없이 약체로
평가되던 팀들에게마저 덜미를 잡힐만큼 전력이 들쑥날쑥한 상태인 관
계로 뒤늦은 베네수엘라의 상승세가 몹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예선 10라운드를 기점으로 일찌감치 본선
행 티켓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하여, 최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는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진지하고 또 한결 여유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경기를 거듭
할수록 조직력이 살아나고 팀웍이 안정되어 최근에는 이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팀의 짜임새가 갖추어져 물고 물리는 치열한 남미
예선에서 어느덧 캐스팅 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전력
이 급상승하였습니다.
특히 노리에가, 파에즈, 모란을 주축으로 하는 최전방 공격진들의
문전기습능력은 웬만한 남미의 중위권팀들의 발목을 낚아챌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어서 남미예선이 시작될 무렵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한 전력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의 대 베네수엘라 전에서도 이러한 이들의 급성장한 모습은 그
대로 발휘되어 브라질의 강한 프레싱과 치열한 몸싸움이 없었더라면
홈에서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쉬운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후반전에 들어서서 브라질이 더이상의 골욕심을
버리고 선수들 간에 호흡을 맞추는 패싱게임으로 돌아선 점도 한 원
인이 되었겠지만, 지키는 축구에 역점을 두어 추가실점을 당하지 않
는 모습은 분명 과거와 같이 선제골을 허용하면 무려 다섯, 여섯 골
씩이나 무더기로 허용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지던 모습은 아니었습니
다.
전반에 얻은 브라질의 세 골은 모두 브라질 공격진들의 강한 집중력
을 바탕으로 한 세밀한 문전돌파에 기인한 것으로써, 이전처럼 허약
하기 짝이 없는 베네수엘라의 구멍 뚫린 수비력에 편승한 것은 아니
었습니다.
5.강력한 프레싱과 확실한 골결정력으로 승리를 낚다!
전반 시작 무렵만 하더라도 브라질은 본선진출을 놓고 쏟아지는 국
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부담이 된 듯 전에 없이 긴장하는 모습이었으
며 상대팀인 베네수엘라의 전력마저 이전처럼 그리 만만치는 않았습
니다.
종래 브라질 팀이라면 압박을 가해오는 상대를 맞아 한 수위의 개인
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진영에서 볼을 돌리며 천천히 경기를 풀어
갔겠지만, 이 날의 브라질은 과거의 브라질 축구처럼 그렇게 여유있
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긴장한데다 그라운드에 쏟아
지는 국내외의 그 엄청난 시선들이 부담이 된 듯 이전과 같은 릴락스
하고 경쾌한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엄청난 심적 부담감 때문에 브라질은 이전과 같이 여유있는 몸놀림
에 의한 리듬을 타는 부드러운 축구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단단한 정신무장으로 종전과 달리 미드필드에서부터 강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타이트한 축구로 격렬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경직된 브라질팀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 것은 이 날의 히어로
인 에디우손의 문전에서의 예리한 몸놀림과 확실한 결정력으로 이른
시간대에 골을 터뜨려준 루이장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의 맹활약이 없
었다면 브라질은 경기내내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이 날 대단한 활약을 펼쳐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이들의 캐리어가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에디
우손은 일찌기 코인티안스 시절부터 현재의 플라멩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챔피언 결정전을 무수히 경험해 본 선수로써, 원래 큰 경
기에 임해서는 자신의 기량이상으로 맹활약을 펼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선수입니다. 또한 루이장은 비록 에디우손에 비해 경험면에
서는 뒤지지만 확실한 득점기회에서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볼을 처리
해내는 선수로 브라질 내에서도 유명합니다.
따라서 엔트리에 뽑힌 선수들 중에서 최근의 컨디션을 비추어 에디
우손과 루이장이 확실한 득점루트라는 판단 아래, 여론에서 그토록
기용을 강요하던 호마리오와 같은 월드스타를 제외하면서까지 스콜
라리는 브라질의 본선행을 가름할 중요한 경기에 이들을 기용하는
뚝심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부진할 때를 대비
하여 스콜라리는 이미 호나우딩요와 데니우손이라는 또다른 카드를
준비해 놓고 있었지만 기대한 대로 이들이 이른 시간대에 득점에 성
공하면서 브라질은 모처럼 편안한 경기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에디우손의 절묘한 드리블과 루이장의 잇따른 득점으로 두 골차의
우세를 보이자 드디어 브라질은 전반 초의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
특유의 세밀함과 개인기술을 발휘하며 이후에는 종래의 브라질처럼
상대를 압도하며 여유있는 경기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