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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표 2019년 01월 19일. | |||
06:30 |
반포대교 남단 |
기업은행 앞 집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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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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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0 |
인제 휴게소 |
15분 간 정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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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
휴게소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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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 11:00 |
양양 성당 |
참례(묵상, 기도, 미사는 협의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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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12:00 |
디모테오 기념관 |
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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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13:00 |
점심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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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
양양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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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분소요 |
13:30 |
설악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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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 |
비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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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
설악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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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 |
미시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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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 |
인제 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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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 |
가평 휴게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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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
반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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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 명단 | ||||
김정륭 안드레아 |
김종식 파스칼 |
이국희 모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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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데레사 |
최옥련 말가리다 |
김애경 벨린다. |
노병금 바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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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erino |
유영재 마틸다 |
김광희 아나타시아 |
진연자 엘리사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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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친구. |
김순분 프란치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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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순 가브리엘라 |
김정란 마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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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 신부의 순교 혼이 살아 숨 쉬는 영동 지방 믿음의 고향인 양양 성당은 우리 민족과 교회가 겪은 수난과 고통을 함께한 성당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교 길에도 남을 위해 헌신한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의 기념관은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양양 성당에는 6·25 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李光在, 1909~1950, 디모테오) 신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교각과 기념비가 있다. “마지막 순교 길에도 목마른 수감자에게 물을 떠다 준 가톨릭 사제의 희생은 한줄기 빛처럼 위대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8일 천주교 박해로 원산 형무소에서 순교한 이광재 신부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한중경 목사의 증언이다
양양 본당은 영동 지방 신앙의 모태 같은 믿음의 고향이다. 영동 지방은 백두대간이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지형 탓에 타지방에 비해 복음이 꽤 늦게 전파되었다. 마지막이자 가장 혹독한 박해인 병인박해(1866년) 당시 더 숨을 곳이 없던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 신자들은 백두대간을 넘었다. 그때 형성된 ‘범뱅이골(양양)’, ‘싸리재(속초)’ 등의 교우촌에 뿌리를 두고 1921년 설립된 성당이 양양 성당이다. 인근 홍천군에 5개, 인제군에 4개 성당이 있지만 양양군에는 아직까지도 양양 성당이 유일하다.
양양은 지금도 모든 면에서 외진 곳이다. 또한 우리 민족과 교회가 겪은 수난과 고통을 함께한 성당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일본군이 성당을 빼앗는 바람에 신부와 몇몇 성당 식구들은 성당에 붙어 있는 쪽방에서 살아야 했다.
해방 후에는 소련군이 들어와서 성당을 또 짓밟았다. 성당 지대가 높아 무전실로 사용하기 안성맞춤이라며 막무가내로 빼앗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양양은 38선 이북에 속해 있었다. 이광재 신부는 성당 안에 있는 비밀 다락에 성체를 모셔 두고 미사를 드리다가 그마저도 발각돼 성당 아래 부속 건물로 쫓겨났다. 소련군이 물러가서 성당을 되찾았는데 이번에는 또 인민군이 들어와서 성당은 물론 부속 건물까지 모조리 차지했다. 공산 정부를 수립한 북한 공산당의 종교 탄압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월남을 결심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38선과 가장 가까운 양양 성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연길, 함흥, 원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사목자들이었다. 삼엄한 감시를 따돌리고 이들을 남으로 내려 보내는 일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신부는 끝까지 남아 성당을 지키다 6·25 전쟁 발발 하루 전날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리고 그해 가을밤 움푹 패인 방공호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엉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아비규환의 집단 살육 현장에서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찾자 시체 더미 속에서 “응, 내가 물을 떠다 주지. 응, 내가 가지요……. 내가 가지요…….”라는 신음 섞인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24시간 이상 숨이 붙어 있던 이 신부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집단 처형 상황과 이 신부의 최후 순간은 아비규환 속에서 생존한 한준명 목사와 권혁기 라파엘 씨가 생생한 증언으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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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병금 바울라님
김정란 마틸다...신청합니다
좋습니다. 두 자매님의 선택 탁월하십니다. 총무님 수고 많으십니다.~~^&^
류남수 헬레나님 신청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An- severino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쉽지만 ~~~~이번 트래킹은 결석입니다
@helena 아하~~ 그런 일이..... 아쉽습니다..
진연자엘리사벳님 신청합니다~*♥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