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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치기미
그날도 섬에는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곧 바람이 산의 정상을 점령하였다. 그렇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배 씨는 추적추적 걷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왼손을 연신 젓는 모습이 마치 나무 인형이 무대 위에서 뒤뚱거리는 것 같았다. 그 뒤를 조금 떨어져 후 씨가 따라가고 있었다.
“운동하시나 봅니다.”
후 씨는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말했다.
“네에. 그 그림?”
배 씨의 어눌한 발음은 바람 소리에 더욱 흔들거렸다.
후 씨가 이 섬에 들어온 지도 1년이 지났다. 그가 왜 이 섬에 들어온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아니,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생명을 담보로 사는 인생들이기에 바다는 그저 전쟁터였다. 고기를 조금 더 많이 잡으려거나 연안에 설치된 양식장 일들이 그들에게는 우선이었다. 그네들 삶에서 도회지 사람의 생활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가끔, 포구 앞 술집에서 사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후 씨를 안줏거리로 이야기는 했다. 뭘 먹고 사는 놈인지 참으로 한량도 하다고. 그들이 한심하다는 그런 눈초리를 후 씨는 점점 익숙해졌다. 그날도 가학산을 내려온 후 씨가 마침 민박집 배 씨를 만난 것이었다. 사실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은 배 씨의 부인이었다. 그 부인의 억척스러움은 섬에서 유명하였다. 배 씨가 쓰러지고 그 여인의 삶은 거꾸로 변해갔다. 어선 선장이었던 배 씨는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매일 술을 먹었다. 어선도 남에게 넘어가자 배 씨 부인은 포구에서 일했다. 새벽에 하역하는 어선에서 물고기를 손질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낮에는 전복 양식장에 나가 양식장 옆에 달라붙은 홍합을 땄다. 전복의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칸마다 옮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오후에는 산자락에 붙은 다랑이 밭에서 조금이라도 팔 나물을 캤다. 하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육지에 나간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얼마 전에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곳에서 민박업을 시작하였다. 그 민박집에 장기간으로 들어온 후 씨가 요즘 같은 비수기에 유일한 손님이었다. 바람 속을 지나 걸어오는 배 씨를 보고 그 부인은 소리 질렀다.
“이 양반아! 속 좀 작작 시켜.”
“세상에, 이 억센 바람에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 여인의 호리호리한 몸에서 삶의 의지가 번뜩였다.
주섬주섬 차린 점심상 앞에 배 씨와 후 씨가 나란히 앉았다. 그런 그들이 조금 안쓰러웠던지 민박집 여인은 한 마리 옥돔구이를 내왔다.
“후 선생님! 저 양반 에스코트는 고마운데 이달 방값은 언제 낼 거유?”
그 여인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말했다.
“아! 예. 제가 완도 나갔다 와서 드릴게요.”
생선 한 젓가락 뜨던 후 씨는 겸연쩍게 웃었다.
후 씨가 작년 봄에 이 섬에 들어왔을 때 그를 처음 본 것은 배 씨였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부둣가를 서성이던 후 씨에게 배 씨가 먼저 다가갔다.
“민박, 민박, 우리 집.”
배 씨의 발 저는 모습을 보며 따라나선 후 씨는 자신이 앞장선 것인지 그가 나선 것인지 모를 정도로 땅바닥을 보며 걸었다. 길은 언덕을 넘어 꽤 길었는데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흘끔흘끔 뒤돌아보는 배 씨와 그를 따라나선 후 씨는 마치 패잔병이 부대로 복귀하듯 느릿하고 힘없는 모습이었다. 후 씨의 축 처진 어깨 위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날 있었다.
그런 뒤로 후 씨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민박집에서 해주는 밥을 거의 걸러다 싶고 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 화장실에는 밤에만 이용했다. 민박집 여인도 가끔 들리는 어촌계장도 한 마디 묻지 않았다. 단지 그가 후 씨 성을 쓰고 사연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먼저 다가간 이는 배 씨였다.
“서, 선생 님! 시, 식사해요.”
배 씨는 자갈밭을 내려와 작은 해수욕장에 앉아 있는 후 씨를 불렀다. 봄빛이 수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예. 고맙습니다.”
후 씨는 처음으로 배 씨에게 대답했다. 그날 민박집에 방을 구한 날에도 그저 처분에만 따랐다. 민박 여인에게 한 달 치 방세를 치르고 난 뒤에는 그 누구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밥때면 규칙적으로 부르는 여인의 물음에 ‘예’나 ‘아니요’로만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여인은 혀를 한 번 차고 뒤로 돌아섰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배 씨의 태도였다. 오른발을 끌며 다가오는 그의 어눌한 목소리는 후 씨에게 묘한 기분을 만들었다. 비정상인 사람에게서 오는 경계심의 이완처럼 배 씨의 거품 이는 입은 약간의 동정심도 유발했다. 세상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유랑한 후 씨에게 배 씨는 그 어떤 아픔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정확한 동기는 얼마 전 포구 선술집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부들의 취중 이야기는 배 씨의 과거를 알려주었다. 그때, 배 씨가 말아먹은 주식 이야기 대목에서 후 씨의 술잔이 가늘게 떨렸다. 그로부터 후 씨는 배 씨를 선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풍랑 이는 바다에서 돌아오는 젊은 날의 배 씨를 상상하며 후 씨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배 씨는 후 씨에게 지극 정성으로 다가왔다. 자갈 하나 들고 바다 멀리 던지며 후 씨는 배 씨의 뒤를 따랐다.
“애들이 오는데 그만 쏘다녀요.”
민박집 여인은 그들에게 밥상을 내밀며 배 씨를 또 구박했다.
“제 잘못입니다.”
후 씨는 재빨리 말했다.
“아이코! 잠자던 도깨비 말도 하시네.”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인은 한참 동안 후 씨를 쳐다봤다. 수저를 옮기는 후 씨의 흰 손가락을 보며 그 여인은 고생이란 전혀 모르는 도시 샌님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이상을 잠이나 자고 아무 때나 일어나 밥을 먹고 또 밤이면 해안가로 나가는 그를 여인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진짜 주인이라면 당장 내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부스스하게 굴러들어온 손님이 어서 떠나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후 씨는 한 달을 더 연장했고 그럴수록 후 씨는 배 씨와 더욱 친해졌다. 어느 보름달이 훤히 비추던 날에는 그동안 먹지 않던 술 냄새가 배 씨에게서 났다. 이부자리를 펴며 민박집 여인은 남편에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다시는 후 씨와 밤에 나가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오늘도 두 사내의 느린 행보를 보며 여인은 몹시 흥분하였다. 그때, 이장 트럭이 마을 입구에 두 사람을 내려주고 고개를 넘어갔다. 여인은 재빨리 슬리퍼를 신고 도로로 달려나갔다.
“엄마, 아빠는?”
가방을 둘러맨 여학생이 여인의 뒤를 주시했다.
“넉 달 만에 오는 애가 앞에 있는 애미는 안 보여?”
여인은 옆에 서 있는 남자 고등학생의 손을 만지며 웃었다.
“아빠 건강은 어떠셔?”
남학생의 질문에 그 여인은 잡았던 손을 금방 놓았다.
“사고치고 집구석에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이 복도 많아. 자식들이 온통 난리네.”
여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우리 엄마가 최고야.”
딸은 재빨리 여인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날 저녁의 민박집은 오랜만에 소란스러워졌다. 해가 지기만 하면 꺼졌던 가로등이 밤이 깊도록 켜지고 배 씨 부부가 거주하고 있는 별채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름에 반쯤 가린 달을 보며 후 씨는 처음으로 시끄러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동백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 해안가로 그는 발을 옮겼다. 잔잔한 파도는 밀려왔다가 자갈들을 좌르륵 훑고 저만치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달밤에 비친 몽돌들이 더욱 반짝거렸다.
며칠 후, 아이들이 돌아갔다. 아침부터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부부는 마중 나갔다. 배에 오르는 아이들을 보며 여인은 계속 손을 흔들었다. 배 씨도 손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이 몸통과 함께 흔들거렸다. 그의 왼쪽 손이 한 번 흔들리고 오른쪽으로 가고 그러기를 반복하였다. 작은 항구에서 여객선은 경적을 울리며 떠나갔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후 씨는 발걸음을 돌려 가학산으로 올라갔다.
여름이 되자 민박집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해수욕장은 바로 옆에 붙어있었는데 이름 없고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았다. 그리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섬에도 성수기가 찾아왔다. 민박집 여인은 온종일 침구 정리와 음식 준비로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보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자고 일어나면 쓰레기가 넘쳐났다. 그래도 그 여인의 남편은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쓰레기를 치웠다. 그런 뒤에 운동장에 붙어있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한쪽 손발이 불편하여도 청소는 언제나 깨끗하였다. 민박집 손님들도 처음에는 불편하였으나 하루가 지나면 당연히 배 씨가 치울 거라는 것을 알고 의식 없이 쓰레기를 버렸다. 잔디 운동장에는 아침이면 그들이 버린 것들로 넘쳐났다. 한 번은 후 씨도 쓰레기를 줍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배 씨가 기겁하며 말렸다. 언제부터인가 후 씨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민박집에 들어온 지 두어 달여 만에 그는 그림 도구를 그의 작은 방으로 사들였다. 그렇게 후 씨가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어느 날 배 씨는 잠자코 옆에 앉았다. 바다에 정박한 배와 저녁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 씨가 갑자기 왼손에 머리를 묻고 울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후 씨는 그림을 중단하고 그를 달랬다. 한참 후에 머리를 든 배 씨의 눈에는 붉은 기가 돌았다. 그 후부터 배 씨는 더듬거리며 후 씨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피서철이 지나자 섬은 다시 조용해졌다. 피서객들의 차량이 떠나가고 섬은 다시 경운기와 트럭 소리가 차지하게 되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해송 숲을 끼고 도로는 한결 한산해졌다. 민박집에서 걸어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전망대가 하나 있었다. 지명이 ‘물치기미’라는 곳인데 노화도와 보길도가 지척이며 당사도를 넘어 희미하게 추자도가 조망되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 바다 아래 작고 붉은 등대 하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후 씨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장애 선장이 후 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후 씨의 붓이 잠시 쉬는 동안 그는 떠듬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이 아래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앞섬에서 오는 배에 60여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뒤집혔다고 했다. 풍랑 부는 배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탔었다고 그는 침을 튕기며 말을 했다. 그 순간 후 씨는 뒤통수가 명징하게 울리는 전율을 느꼈다. 오랜 과거 장인어른의 사고 소식이 떠올랐던 거였다. 아내가 코흘리개 시절, 소녀는 노화도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1974년도 어느 가을날에 그녀의 아버지는 친구 선장의 부탁으로 이 섬까지 배를 타고 갔다고 했다. 그다음 날 그녀의 아버지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익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저 붉은 등대가 그 사건 뒤에 세워진 것이라는 말에 후 씨는 좀처럼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가슴이 요동을 쳤다. 후 씨는 계속 그릴 수 없어 화구를 정리했다. 노을 지는 남해에 붉고 길게 빛나는 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돈을 그렇게 벌면 행복해?”
아내는 병상에서 힘없이 말했다. 아내의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해지고 입술은 파랗고 바짝 말라 있었다. 가는 팔목에는 링거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병실 창에는 도시의 불빛이 흔들거렸다. 후 씨는 더는 말을 못 했다. 그저 그녀의 가늘고 살점 없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선생 님, 천천히 드세요.”
배 씨의 말이 갑자기 크게 들렸다고 후 씨는 생각했다. 그는 말없이 연거푸 막걸릿잔을 비웠다.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아내는 노화도에 묻혔다. 유방암이 폐로 전이되고 결국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만에 운명하였다. 주식의 호황기, 그는 테헤란로가 내려다보이는 전용 사무실에서 나올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매수와 매도를 하고 저녁이면 회원들과 회식을 하였다. 주말에는 골프장으로 나갔다. 그때, 1인실 아내에게는 전담 간병인을 고용시켜 가끔 시간이 나면 전화로 상태를 물었다. 아내의 항암 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호전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가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그녀의 마지막 말은 비수가 되어 그를 사방팔방에서 찔러왔다. 이 섬에 오기까지 2년을 그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졸업한 미대 교정에 핀 목련은 그녀가 가장 좋아했었다. 후 씨의 막걸릿잔이 또 한 번 흔들거렸다. 배 씨가 얼른 잔을 받쳐줬다. 길게 한숨을 쉬고 후 씨는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달 없는 밤길에 배 씨가 그를 호위했다.
남쪽 지방에 있는 섬의 짧은 겨울은 바람의 색깔로 알 수 있었다. 열대의 우기처럼 흐릿하고 회색으로 변한 바람은 사방에서 연신 창문을 흔들었다. 눈이 잠깐 오다 녹으며 양지바른 곳에서는 철 이른 파란 새싹이 돋아났다. 동백 잎은 더욱 짙어지고 이른 봉오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민박집에는 손님이 끊겼다. 유일한 손님인 후 씨는 방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배 씨가 가끔 들려 문을 두드리면 겨우 얼굴만 내밀어 답을 하곤 곧 문을 닫았다. 하지만 배 씨의 아내는 더욱 바빠졌다. 오전에는 포구로 내려가 어선에서 내린 생선들을 정리하며 일당을 벌었다. 전복이 출하되는 날에는 크기별로 나뉘어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아 차에 싣기도 하였다. 민박집에 들러 잠시 몸을 쉬는가 싶더니 바로 가두리 양식장으로 돌아가 오분자기 작업과 비닐 막을 씌우는 일에 동참하였다.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후 씨에게 상을 차려주고 방에 들어가 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가끔,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생활이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는 나날에 그녀는 지쳐갔다. 방학으로 얼마 전에 왔던 자식들은 그다음날 바로 돌아갔다. 하루 얼굴만 보고 딸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광주로 갔으며, 고등학교 아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큰아버지가 있는 목포로 돌아갔다. 그날 용돈을 충분히 주지 못한 사실이 마음에 걸려 밤새도록 남편을 괴롭혔다. 배 씨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아침이 오자 배 씨는 정리할 것 하나 없는 운동장을 쓸었다. 그리고 틈틈이 걷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차츰 빨라졌으며 오른손의 힘도 강해졌다. 무거운 짐은 왼손으로 척척 들었다. 어려운 삽질은 힘겨운 오른 손목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수월히 뜰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몇 년 만에 내린 수북한 눈을 치우고 도로까지 쌓인 눈을 밀기도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장님!”
“아, 네, 선생 님”
운동장 한편으로 있는 나무 의자에 배 씨가 앉아 쉬고 있었다. 후 씨의 바깥 출현에 배 씨는 화들짝 놀랐다. 무엇보다도 후 씨의 옷차림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대충한 차림이 아니고 얼굴 수염도 깔끔하게 밀어 있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산에 간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멀어지는 후 씨를 부르려다가 배 씨는 손을 내렸다. 오랜만에 옥돔 매운탕을 아내가 끓여났는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운동장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배 씨는 갑자기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됐다. 눈발이 흔들흔들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후 씨는 도로를 따라 산허리를 돌아갔다. 그리고 동백 숲이 우거진 작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주위는 갑자기 바람 소리가 끊기고 조용해졌다. 나무숲은 빽빽하고 다니던 길도 흐릿했다. 작년 여름에는 가는 길마다 살모사가 날름거리고 있던 길이었다. 후 씨는 마른 나뭇가지를 밟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지울 수 없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미대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미술 학원을 차리는 일이었다. 결혼 전에 아내에게 임신을 시켰기 때문에 그 일이 가장 빠른 순서였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퇴직금을 미리 결혼 비용으로 받고 일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학원은 하루가 멀다 않고 학생 수는 줄었으며 태어난 아이들은 금방 둘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시작한 주식이 처음에는 수익도 있었으나 그 회사가 부도가 나자 곧 깡통계좌로 변했다. 집을 줄여서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또 주식을 했다. 하지만 곧 아내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런 어느 날부터 주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바다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투매에 대한 공포와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욕심이 함께 일어났다. 과거에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 그리고 어쩌다 빨간 상승에서 얻게 되는 기쁨의 순간도 잠시, 곧이어 나타나는 긴 음봉의 출현은 또다시 그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그렇게 그는 가끔 일어나는 좋은 날의 기쁨과 나쁜 날의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이러한 모든 감정과 이성을 경험하고 난 뒤부터 점점 주식에서 얻는 수익이 복리식으로 계속 불어나는 희열을 누리고 있을 즈음에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후 씨가 산의 8부 능선을 오르니 갑자기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저 아래 바다에 가두리 양식장이 떠 있었다. 수많은 바둑판을 바다에 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작은 배들이 지나가고 섬을 잇는 교량이 세워지고 있었다. 노화도가 보였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그는 휘청거렸다. 이곳에 오르는 동안 흘린 땀이 등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후 씨는 돌무더기가 있는 정상에 앉아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내의 마지막 말은 다시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내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잊으려고 끝없이 노력하였다. 캄캄한 바다에 혼자 앉아 수없이 후회도 하였다. 그럴수록 머리카락 하나 없는 아내의 얼굴이 더욱 또렷이 생각났다. 아침이면 술이 깨어나기 바쁘게 배낭을 메고 밤늦도록 해안 도로를 걸었다. 기억나는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려면 자신의 육체를 고단할 정도로 학대해야 했으며 그것으로 인해 그날밤에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때 검은 구름이 지나가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는 노화도에 먼저 들리지 않고 이 섬으로 들어왔다. 이 산에 올 때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노화도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는 지금쯤 나를 용서했을까. 하얀 목련을 닮은 사람. 그는 비가 섞인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육지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후 씨는 설거지하고 있는 배 씨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부인은 얼른 뒤돌아보았다. 말끔한 모습에 잠시, 자신이 알고 있는 후 씨가 맞나 의심스러워했다.
“네. 그러세요.”
여인은 얼른 대답했다. 후 씨의 면도를 한 얼굴이 훤해 보였다. 갑자기 남편의 투박한 얼굴이 눈에 떠올랐다. 문 넘어 보이는 배 씨는 열심히 운동장으로 뭔가를 나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후 씨가 부드럽게 웃는 바람에 여인은 또 한 번 놀랐다. 항구로 내려가는 후 씨의 뒷모습을 보며 배 씨 부인은 이 섬에 처음 왔을 때의 그를 생각하며 머리를 갸우뚱하였다. 자신이 타박하던 후 씨가 오늘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배 씨 부인은 하던 일로 돌아섰다. 오후에는 바다에 나갈 약속이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딸의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배 씨는 여름 장사를 위해 나무 의자를 손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항구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전복 운반선이 포구에 정박하는 도중에 가득 실은 전복 상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밑에서 작업을 하던 아낙들에게 물건들이 쏟아진 것이었다. 마침 아래에서 전복을 분리하던 배 씨 부인이 발을 다쳤다. 날은 어두워서 완도로 가는 배편이 없자 사람들은 보건소로 배 씨 부인을 이송했다. 나이 많은 간호사 소장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다친 부위를 소독하고 부목을 대고 붕대로 감았으며 진정제와 포도당 수액을 그 여인의 팔목에 꽂았다.
“큰일 날 뻔했네요. 날이 새면 뭍으로 나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 것 같아요. 발목이 많이 부었네요.”
소장은 배 씨 부인을 진정시켰다. 그 옆에서 배 씨는 안절부절못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보건소를 떠나갔을 때 후 씨가 물어물어 찾아왔다. 왼발에 하얀 붕대를 감고 있는 배 씨 부인을 보고 후 씨는 안타까워했다. 배 씨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후 씨에게 의자를 양보했다. 그러자 후 씨는 다시 배 씨를 그 자리에 다시 앉혀놓고 그 부인을 돌아봤다.
“이 밤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머리숱도 듬성듬성한 그 부인은 담담한 척 말했다.
“아닙니다. 목포에 들르는 바람에 며칠 늦었습니다.”
후 씨는 그 여인의 남편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협소한 공간을 둘러보며 쾌유를 속히 빈다고 하고 일어섰다. 물론 밖까지 나오는 배 씨를 문안으로 다시 밀어 보냈다.
다음 날 저녁에 배 씨와 그 부인은 어촌계장의 차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그 여인의 왼쪽 발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석고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다행히 단순 골절이라고 해서 수술 없이 6주 후에 석고를 풀면 된다고 했다. 치료비와 약간의 보상은 젊은 양식장 주인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일을 못 한다는 생각에 배 씨 부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옆에는 배 씨가 연신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후 씨는 그런 배 씨 어깨를 두 번 토닥거리며 그 집을 나오는데 안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후 씨는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수없이 반짝거리며 은하수가 보였다. 가학산 위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봄은 어느새 더운 날씨로 변해갔다. 주위는 온통 꽃들과 파란 들판으로 바뀌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출렁거리고 하늘은 맑았다. 배 씨 부인은 제법 목발을 짚고 밖으로 나왔다. 차츰 안정을 되찾았으며 목발 하나로도 포구까지 다녀왔다. 그럴 때마다 배 씨는 옆에 따라갔으며 가끔 서로를 보며 소리 내 웃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후 씨도 웃음을 짓고 그림 도구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 가끔 후 씨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작은 담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산 넘어 작은 항구에도 갔다. 그늘에 늘어진 강아지는 점점 어촌의 한가함은 보여주고 있었다. 후 씨가 지나가면 짖던 개들이 본 척도 안 했다. 그만큼 동네 개들도 후 씨의 냄새를 알아봤다. 그렇게 마을과 포구를 돌아다니다 후 씨는 도시로 출하되는 커다란 전복을 한 상자 사 왔다. 그날이 배 씨 부인의 석고붕대를 푸는 날이었는데 집안은 온통 잔치가 벌어졌다. 어촌계장은 싱싱한 황돔 세 마리를 풀어놓고 돌아갔다. 오랜만에 배 씨 부부와 후 씨는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배 씨 부인은 다시 정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흥분하였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막걸리를 마시며 밤을 보냈다. 후 씨는 그날 즐겁도록 취했다. 이번에는 배 씨 부인도 모른척하였다.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배 씨 부부는 마을 이장 차로 동진리에서 생긴 상갓집에 갔다. 배 씨가 안 가려는 것을 그의 부인이 억지로 차에 태웠다. 상갓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으며 뭍에서도 고인의 친척들이 찾아왔다. 배 씨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악수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술에 취해 있던 동진리 친구가 말했다.
“선일아! 오랜만이다.”
그렇게 아는 채를 한 이는 혀 꼬부라진 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선일호가 다시 팔렸다.”
상갓집 고인이 선일 호를 3년 전에 배 씨로부터 샀다. 친구의 말을 들은 배 씨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하지만 곧 배 씨는 머리를 끄떡이며 왼손으로 잔을 들었다. 고인은 자신이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에 그가 뱃값을 더 쳐주고 사 갔다. 그때 그런 사실을 안 뒤로 배 씨는 더욱 술을 찾았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배 씨 부인이 음식을 나르다 배 씨 어깨를 툭 쳤다. 술을 더는 마시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그 배 주인 말이여.”
“처음 보는 사람이여.”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다.
“서울에서 왔다고 했지. 아마?”
배 씨는 부인이 빈 그릇을 들고 가자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왁자하게 떠들다가 힘이 장사인 고인을 회상하였다. 또 한편에서는 소란한 윷판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등불 환하게 켜진 동네는 부산하였으며 먼저 온 사람들이 일어서면 한 무리의 다른 사람들이 다시 상 앞에 앉았다. 그렇게 상갓집은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늦게 민박집에 돌아온 배 씨 부부는 주위에 인기척이 없음을 이상해하였다. 신발 없는 후 씨의 방문을 배 씨가 두드리다 열었다. 하지만 방안은 평소보다 깨끗하였다. 침구는 가지런히 구석에 정리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두툼한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때 뒤를 돌아보던 배 씨는 갑자기 놀라고 말았다. 바닷가 창문을 마주 보고 표구된 그림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후 씨의 그림이라는 것을 배 씨는 금방 알아차렸다. 배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선실 안에서 왼손으로 키를 굳게 쥐고 남자가 파도치는 바다를 주시하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여인이 그물의 고기를 정리하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방안으로 들어온 배 씨 부인이 편지 봉투를 열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배 선장님께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노화도에 며칠 들렀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돌아오고 있지요.
이렇게 인사도 없이 떠나감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밀린 방세와 저의 작은 정성도 놓고 갑니다.
항상 두 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후 씨 드림
그곳에는 배선일 앞으로 된 어선 매매계약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잔금이 완불되었으며 배의 인도일은 바로 내일이었다. 남편이 다시 선일호의 주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빳빳한 지폐들이 편지와 함께 있었다. 선장이 편지를 받아보고 읽더니 갑자기 책상에 엎드리고 말았다. 부인이 다가가자 얼굴 묻은 그의 어깨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섬을 차지했던 바람이 가학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첫댓글 미둔작가의 작품 다시 만나서 고맙습니다
보잘것없는 글에 이렇게 답을 주시니 너무나 황송합니다. 반면에 멀리 계신 큰형님의 존안을 여쭙는 것도 죄송합니다. 부디 올 한 해도 무탈하시고 강건하시길 빕니다. 큰형님!
형님을 이곳 카페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조작가의 글솜씨를 다시
맛볼 수 있어서 좋고....그나저나 저는 게을러져서 그런지 도통 글을 올릴
의욕이 없으니 참 한심한 일입나다.
이 카페가 여기까지 온 것은 회장형님 덕분입니다. 앞으로 계속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건강도 챙기시구요. 형님!
소안도는 일제 독립운동의 섬이지요. 1974년에는 풍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는데 정부에는 쌀 몇 되 정도의 위로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보길도와 노화도가 바로 옆에 있구요. 태극기 섬이고 친구 녀석과 관련이 있는 섬이기도 합니다. 2014년 초여름에 가 본 섬입니다.
사진의 앞섬이 보길도고요, 그 당시 물치기미의 낙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