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코미어의 승급 사진, 레슬링 국대 출신인 코미어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도복 주짓수 경험이 많지 않아 브라운 벨트 승급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지난 2월 UFC 169에서 벌어진 헤난 바라오와 유라이아 페이버의 밴텀급 타이틀 매치. 헤난 바라오의 TKO 승리로 마무리 된 이 경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유라이아 페이버의 주짓수 코치인 파비오 프라도의 인터뷰가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경기를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주짓수 블랙벨트이자 팀 알파 매일의 주짓수 코치인 파비오 프라도는 “설령 유라이아 페이버가 헤난 바라오를 서브미션 시키더라고 주짓수 검은띠를 받을 수는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주짓수 갈띠인 유라이아 페이버는 2010년 보라띠로 승급한 후 1년 만에 갈띠를 달고 현재도 계속 갈띠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파비오는 “도복 기술의 디테일을 좀 더 배울 필요가 있다. 유라이아가 지난 1년 간 경기에 자주 출전하는 통에 도복을 입고 훈련할 기회가 적었다. 따라서 도복 훈련을 좀 더 해야만 검은띠를 받을 수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파비오의 인터뷰가 새삼스럽게 주목 받는 점은 주짓수가 보급된 지 15여년에 이른 국내에서도 여전히 ‘승급’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주짓수에서는 일반적으로 파란띠까지 2년여의 수련기간, 검은띠까지는 7~10년여의 수련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J펜 등 일부 선수들은 뛰어난 실력과 입상 성적을 인정받아 빠른 시간 안에 검은띠로 승급했으며, 유도나 레슬링 등 그래플링 종목에서 성과를 이룬 수련자의 경우, 과거 수련 실적을 인정해 보라띠까지 바로 승급하는 경우가 있다.
존 다나하 “주짓수 승급체계의 특징은 “무형식성”과 “보수주의”
그렇다면 브라질 유술의 승급 기준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헨조 그레이시 블랙벨트이자 GSP의 주짓수 코치로 널리 알려진 존 다나하는 한 책에서 주짓수 승급 체계의 특징을 “무형식성(Informality)”과 “보수주의(Conservatism)”로 규정했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된 다나하의 글이다.
“대부분의 무술은 수련생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벨트나 ‘단’과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유술의 승급 체계는 일본에서 건너온 마에다 미츠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주짓수 띠는 흰띠부터 시작해, 파란띠, 보라띠, 갈띠, 검은띠까지 있으며, 주짓수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이들은 레드벨트로 승급하기도 한다. 다른 종목과 비교해 주짓수의 벨트 종류는 상대적으로 적다.
주짓수 수련자들이 승급하기 위해선 다른 무술에 비해 더 긴 시간 수련에 정진해야 한다. 실제로 수련자 중 보라띠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일부이며, 검은띠의 경우 엘리트 체육인 수준의 기술을 갖춘 것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주짓수만의 승급체계를 규정하는 특징은 바로 ‘무형식성’이다. 주짓수 승급 체계에는 엄밀하고 동의된 어떤 규칙이란 게 없다. 주짓수에서는 품새와 같은 승급을 위한 특정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목에서는 승급을 위해 특정 동작을 반복 연습하는 품새가 매우 중요하다. 주짓수에서는 보라띠 정도 수준이 되면 검은띠만큼 기술을 알고는 있지만, 검은띠에 비해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능력은 부족한 레벨이라고 본다.
어떤 경우, 특정 동작만 매우 잘하는 선수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선수는 다양한 동작을 알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적용을 잘 못하는 이들에 비해 더 낮은 띠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까? 이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기준은 그들의 실전 능력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수련자가 스파링에서 대부분의 상대를 제압한다면 분명 더 높은 띠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수련자가 무게가 무겁거나 힘이 매우 센 경우라면, 혹은 스파링은 잘하지만 기술적으로 아직 발전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승급 체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줄 기준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이처럼 극단적으로 형식이 없는 주짓수의 승급 체계는 누굴 승급시킬 것이냐의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일반적인 범주를 결정하는 것이다. 실제 개개의 결정은 경험 많은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수련자의 힘과 체급, 기술에 대한 지식, 스파링과 시합에서 기술을 적용하는 능력, 다른 벨트와의 스파링, 수업 능력 등이 있을 것이다.
주짓수는 일반적으로 승급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주짓수는 싸움의 기술이다. 잘 싸우지 못하는 사람은 승급할 자격이 없다. 게다가 높은 벨트의 수련자가 스파링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체육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무형식성 그리고 보수주의야 말로 주짓수 승급체계를 나타내는 두 개의 키워드이다.
실력은 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트에서 운동한 시간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승급은 고된 훈련과 다른 수련자와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게임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유능한 주짓수 코치이자 철학 박사 학위를 지녀 주짓수계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존 다나하
그렇다면 국내의 지도자들은 승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에 주짓수를 처음 보급하고 제자 중 현재까지 검은띠만 13명을 승급시킨 존 프랭클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존 교수는 “흰띠와 파란띠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모든 상황에서 주짓수다운 움직임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여부가 파란띠 승급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기간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파란띠야말로 진정한 ‘주짓수 수련자’로의 등용문임을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시합과 띠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존 프랭클 교수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물론 시합에서 성적이 우수하면 승급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국내 시합이나 지역 대회 우승 정도로는 승급을 논하기에는 이르다. 팬암이나 문디알급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면 바로 승급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시합에서 이기는 것보다 시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시합에서의 승패는 나의 실력보단 상대의 실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1회전에서 매번 꼬브링야나 멘데스를 만나 탈락한다면 그 사람이 검은띠 자격이 없는 것인가? 시합에서는 운도 작용하기 때문에 시합 성적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시합과 승급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밝혔다.
존 프랭클 교수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주짓수다운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존 교수는 또 “기간과 주짓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없다면 평생 흰띠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승급을 위해 고려해야할 기준은 3~5가지 정도 된다. 모든 부분을 25%씩 골고루 만족한다면 좋겠지만, 어떤 수련자는 스파링 실력은 좋은데 지도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수련자는 지도력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좋지만 나이나 신체적인 문제로 시합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개개인의 상황을 종합해서 승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며 자신만의 승급 기준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엘리트 체육인들의 빠른 승급에 대해 “유도 국가대표나 레슬링 국가대표인 선수들이 주짓수를 시작하면서 보라띠부터 매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팀에 들어와서 운동하는 친구라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주짓수의 기본이 몸에 익을 때까지 흰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며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더불어 “노기 블랙벨트란 말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노기 그래플링을 하는 사람에겐 띠가 필요 없다. 주짓수 띠는 도복 주짓수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도복을 입고 수련해야만 띠 승급이 의미가 있다.”라고 밝히며, 주짓수의 벨트 체계는 도복 주짓수만의 고유한 것임을 역설했다.
이정우 한국주짓수협회 대표 “증명만큼 중요한 것은 오랜 수련을 통한 경험!”
현재 한국주짓수협회 대표이자, 본 주짓수의 수장인 데라히바 검은띠 이정우 대표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시합에서 입상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합을 준비하면서 연습하고, 감량도 해보고 진지하게 운동을 대하는 자세를 통해 얻는 경험이 승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하며 시합과 띠의 상관 관계가 승패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정우 대표는 “많은 제자들이 ‘주짓수는 왜 꼭 나보다 낮은 띠를 이겨야만 하는가? 증명이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젊은 흰띠와 중년의 파란띠의 스파링에서 중년의 파란띠가 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로 따지면 구형 BMW와 신형 K5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신형 차가 더 잘 달린다고 하더라도, 구형 BMW의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주짓수 기술로 상대를 컨트롤 하는 능력, 자신의 디테일을 설명하는 능력은 신체의 젊음으론 결코 얻을 수 없는 주짓수 만의 움직임이다. 본인이 잘하는 것과 본인의 경험이 많은 것은 천지차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띠와 스파링 실력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부분을 명확히 짚어냈다.
엘리트 체육인의 승급에 대해선 “실력이 강한 사람들은 인정받아야 하는 부분이 마땅하다. 다만 ‘본인이 잘하는 검은띠’와 ‘지도자로서의 검은띠’는 분명 다르다고 본다. 어떤 분들은 기술을 잘 몰라도 과거 유도나 레슬링 경력으로 본인 실력이 좋은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짓수 지도자’로서 의미를 지닌 검은띠가 되려면 주짓수만의 움직임을 배우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국내외 지도자들의 의견을 통해 종합해볼 수 있는 것은 주짓수에는 주짓수만의 특수한 승급 체계가 명백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파링 실력을 통해 증명 가능하다는 점에서 객관적이지만, 다른 무술처럼 체계적인 단계가 없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다나하의 글 그리고 존 프랭클 교수와 이정우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 하나는 주짓수 승급을 위해서는 다른 무술이 아니라 ‘주짓수 적인 기술과 움직임’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 주짓수가 보급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가짜 주짓수’ 속에서도 기존의 주짓수 지도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리 가려도 가릴 수 없는 ‘진짜 주짓수’가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