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 경전이 되기까지
강우현
원뿔을 올리면
설계가 끝난 것
그들의 계획이 진행되는 신호다
대물림한 유전자에
온도나 습도가 맞아떨어지고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기초공사가 마무리된 것
눈부신 지상을 뚫는 일이
어디 만만한가
정확한 위치와 문의 크기를 표시해
스케치한 몸을 대보고
바람의 속도까지 계산한 도면대로
눈을 질끈 감고 한판 붙는 일이다
그늘이 마음 놓고 지경을 넓히는 곳이면
휑한 허공은 모두 길이 되어
하룻밤 키에도 물이 오른다
어디서 정점을 찍을지 밤새도록 별은 깜박거리고
바람을 껴입는 댓잎은 초록으로 흔들린다
뿌리를 뻗는 것들은 흙의 자식,
단단한 집을 짓고 나온 기억으로
치솟으며 마디마디 바람의 경을 필사한다
----강우현 시집 {竹, 경전이 되기까지}에서
대나무는 볏과에 속한 식물이며, 그 키가 30m까지 자라고, 볏과 식물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 건축재와 가구재와 낚시대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어린 싹인 죽순은 식용으로 사용되지만, 그러나 이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서 그 명성이 더 높다고 할 수가 있다. 사군자란 학문과 덕행, 즉, 앎과 행동이 일치하는 선비를 뜻하고, 대나무는 아름다움과 올곧음과 실용성 이외에도 한겨울에도 그 푸르름을 유지하는 선비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선비란 전인류의 스승이며, 그의 앎과 행동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은 언제, 어느 때나 우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선비의 가르침이 담긴 책이 경전이며, 우리 인간들은 이 경전을 끼고 살면서 새로운 사상과 이론을 창출해내고, 미래의 인간의 이상과 그 역사를 새롭게 써나간다.
이 세상에서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은 없다.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트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가 달린다. 열매가 달리면 곧 그 열매가 익고, 열매가 익으면 그 식물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 삶과 죽음의 운행에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고, 그 어떤 개체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든 생명의 역사는 더욱더 거룩하고 장엄한 투쟁의 역사이자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의 역사하고 할 수가 있다.
강우현 시인의 [竹, 경전이 되기까지]는 ‘대나무 경전의 찬가’이며, 온몸으로, 온몸으로 경전을 쓰는 삶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대나무는 시인이 되고, 시인은 선비가 되고, 선비는 전인류의 스승이 되어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의 경’을 필사한다. 대나무가 죽순의 “원뿔을 올리면/ 설계가 끝난 것 ”이고, 따라서, 대나무라는 종족의 임무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할 수가 있다. “대물림한 유전자에/ 온도나 습도가 맞아떨어”진 것이고, 그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기초공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의 역사는 일엽편주와도 같은 배로 그토록 거칠고 사나운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도 같고, 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 속에서 그 모든 일에 대한 계획과 그 비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눈부신 지상을 뚫는 일이” 절대로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고, “정확한 위치와 문의 크기를 표시해/ 스케치한 몸을 대보고/ 바람의 속도까지 계산한 도면대로/ 눈을 질끈 감고 한판 붙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늘이 마음 놓고 지경을 넓히는 곳이면/ 휑한 허공은 모두 길이 되고”, “하룻밤 키에도 물이” 오르게 된다. 요컨대 언제, “어디서 정점을 찍을지 밤새도록 별은 깜박거리고/ 바람을 껴입는 댓잎은 초록으로 흔들”리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 사나운 비바람과 모진 추위와 싸우며 수많은 인간들과 함께, 생존경쟁을 한다는 것, 그 가운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남기며 죽어간다는 것----, 이것은 온몸으로, 온몸으로 자기 자신의 경전을 쓴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경전은 언제, 어느 때나 가장 아름답고 멋진 신세계이며, 시간이 흐르고 역사의 깊이가 두꺼워질수록 더욱더 새롭고, 더욱더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상낙원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경전은 한줄기 빛이고, 태양이고, 경전은 모든 인류의 젖줄이며, 영원한 지혜(마음의 양식)의 텃밭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강우현 시인의 [竹, 경전이 되기까지]는 대나무 경전의 역사이자 그가 온몸으로, 온몸으로 쓰고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상의 꽃들 9권 수록시인 명단
반칠환 박준 유계자 김늘 김혁분 박방희 조순희 조옥엽 권예자 이주남
정재규 김진열 송찬호 장인무 김순일 최서림 오현정 박금선 신혜진 김종삼
전민호 이복규 최혜옥 정호승 이순희 황인찬 최병근 홍문식 신용목 기혁
김미연 권혁재 김영수 송유미 이현채 김광섭 박용 김혜영 서정란 김도우
조재형 이문재 황지우 박언숙 김기택 이선희 김정원 박은주 이수 이은희
남상진 안지순 정해영 어향숙 공광규 채만희 한현수 유홍준 이향아 유채은
최승자 홍명희 62명
사상의 꽃들 10권 수록시인 명단
최승호 이정옥 이병연 정상하 황규관 김종겸 신수옥 박해성 채만희 한현수
이서빈 김명이 어향숙 박정원 송경동 이병률 이향아 조영심 유채은 김찬옥
김진열 최금녀 안희연 공광규 최승자 홍명희 유홍준 김병수 김효선 황지우
함민복 한이나 김연종 윤성관 정해영 정해영 반칠환 유계자 조옥엽 송찬호
오현정 이복규 박금선 이순희 최병근 김순일 함기석 김영수 한명원 오성인
박남희 박방희 채의정 박형준 최연희 정채원 박성우 김광선 최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