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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희 시집 <문풍지> 해설
현실주의와 실존에 대한 탐구
권진희 시인이 첫시집을 낸다. 축하할 일이다. 권 시인과 인연은 그가 까까머리 고교생일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직접 가르친 학생은 아니지만 문학하는 내 제자들과 무리를 지어 선배 시인과 문학청소년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은 같은 울타리에서 공부했다. 나는 대학원생이고 권 시인은 대학생이었는데, 권 시인의 시에서도 간혹 언급이 되지만 80년대 그 혁명적이었던 불의 연대에 학생운동을 통해 뜨거운 불길을 표출하면서 한 시대를 함께 걸어왔다.
권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간간이 뒷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눈이 머문 시들이 있었는데 그런 시에는 분명 그와 내가 공감하는 어떤 경험이나 정서의 일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10대 까까머리 소년이 40대 초반의 중년이 되고 나도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장년이 되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소년 권진희’는 친절하고 영리하고 의협심이 있는 아이였는데, 세월의 진흙 밭을 건너오면서도 그의 그러한 성정은 여전히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돌이켜 보건데 한 시절, 문학이 권 시인이나 나를 열광케 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권 시인은 한 동안 붓을 놓았다. 아마 누구라도 거역하기 어려운 생활의 무게와 문학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그에게 오랜 휴지기를 가져다주었음에 분명하다. 이제 그 긴 휴식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문학의 길로 나선다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기대가 된다.
문학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아마 많은 다른 견해들이 있을 것이다.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그리고 쉽게 헤어나기 어려운 심연을 가진‘괴물’이 문학의 일면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할 것이고 문학청년들은 그 괴물과 싸우면서 청춘을 보냈다. 그 괴물이 한 때는 내 삶에 광휘로운 열정을 부여하고 차가운 이성을 풍부하게 고양시키는 뜨거운 각성제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내 삶을 좌절과 상처투성이의 나락 속으로 밀어 넣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각성을 하거나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마의 눈짓을 보았거나 간에 문학이라는 터널을 통해 청춘을 보낸 인간은 그렇지 못한 인간보다는 훨씬 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 감수성이 풍부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그런 일면을 현재의 권진희 시인에게서 보고 있다.
새삼스럽게 문학원론을 운운할 필요는 느끼지 않지만 좋은 문학은 문학을 통해서 바람직한 인간공동체 형성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이 좀더 삶에 밀착하고 생활에 천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권진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가 청춘기에 쓴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위 80년대 풍의 시들이 많다.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질타, 통일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모색이 많다. 어떻게 보면 조금 철지난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우리 삶의 가꾸고 지켜야할 원칙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새로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권진희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현실주의 시(리얼리즘 시)이다. 풍자를 통해 세계화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 통일과 계급, 사교육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계급고착 같은 예민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실존적인 고민, 어머니의 헌신을 중심으로 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 세 번째는 사랑에 대한 서사가 이번 시집의 큰 뼈대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의 가장 앞부분에 실린 시를 읽어보자.
산은 나라를 세우고 있다
안으로 붉디붉은 피묻은 불덩어리를 품은
산은 사람들의 잠을 털어 내기 위하여
굵은 햇발을 토해 낸다
다시 산은 하루를 고되게 버팅긴 사람의
새로운 노동의 깃발을 펄럭이기 위하여
제 가슴 안으로 타는 불덩이를 삼킬 줄 안다
당신들의 당신보다 앞지른,
제 걸음보다 앞지른 당신들의
푸르른 옷자락과 걸음들은 산은 잊지 않는다
산을 그리하여 매일 매일을
싱싱한 근육을 지닌 아이를 낳고 있다
여태껏 수십 수백 번을 울었지만
산은 한 번도 눈물을 내보인 법이 없다
남에게 노출된 눈물은
금방 식는다는 것을 산은 알고 있으리라
<산공화국> 부분
이 시는 언뜻 80년대 큰 흐름을 형성했던 빨치산의 혁명투쟁을 연상시킨다. 남성적인 톤과 서사적 내용이 그렇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반드시 그런 역사·사회적인 상상력만으로 이 시를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다시 산은 하루를 고되게 버팅긴 사람의/새로운 노동의 깃발을 펄럭이기 위하여/제 가슴 안으로 타는 불덩이를 삼킬 줄 안다"는 구절이나 "산을 그리하여 매일 매일을/싱싱한 근육을 지닌 아이를 낳고 있다/여태껏 수십 수백 번을 울었지만/산은 한 번도 눈물을 내보인 법이 없다/남에게 노출된 눈물은/금방 식는다는 것을 산은 알고 있으리라"는 구절에 오면 마치 시지프스처럼 매일의 고단한 노동을 거역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실존적 삶에 대한 내밀한 고민을 토로하면서 끝내는 그런 고통스런 삶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낳은 인간에 위대한 창조성에 대한 헌신의 시로 읽힐 수 있다.
사실 어려운 자본주의 현실을 견결히 살아내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불덩이와 눈물을 말없이 삼킬 수 있는 크고 든든한 가슴을 가져야 하는가. 이 시는 이런 생존의 어려움에 대한 치열한 시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인다면 이 시는 시인이 대학 3년 때 쓴 시로 당시 전국대학생을 대상으로한 공모전인 계명대 계명문화상에 당선작으로 뽑힌 시이다. 고은 시인이 선자로서 칭찬한 작품이다. 이밖에 시인은 효성여대 예지문학상에도 당선 하는 등 실력을 뽐낸 문학청년 시절을 보낸 바 있다.
다음 시를 보자.
빗줄기가 땅에 어떻게 부서지는지 보려고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물 고인 언덕배기에 코 박고 지샌 적이 있었다 땅에 박히는 순간 네댓 개의 작고 여린 물방울로 쪼개져서 빗방울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느 하나 솟아오르지 않는 빗방울은 없었다 쪼개지고 부서지며 무수히 피어오르는 토끼풀 같은 빗방울을 보며 나는 창대(倉竹)를 생각했다 솟구친다는 것은 대죽 엇자른 날카로움으로 쏘아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떨어뜨린 하늘을, 하늘 밑에 깔린 먹구름을, 너머에서 환히 빛살 내리쬐고 있는 해를 비웃는다는 것이다 파문으로 일다 금새 아랫녘으로 아랫녘으로 뭉쳐 흐르는 물살에 제 몸을 보태는, 세상의 아랫도리로 옹골차게 제 몸 실어 흐른다는 것이다.
<빗방울> 전문
날카로운 서정이 있는 소위 80년대 민중시의 우의적인 수법이 엿보이는 시이다. "땅에 박히는 순간 네댓 개의 작고 여린 물방울로 쪼개져서 빗방울은 솟아오르"는 모습에서 "창대를 생각"하는 것은 저항의지의 고전적인 상징 수법이다. 이 시 뿐 아니라 <통일전망대> 연작이나 <죽어도 백두산 안가고 만다>에는 통일운동에 대한 시인의 의지가 표현돼어 있다. 지금 읽어보면 다소 철이 지난 듯한 그런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80년대 그 어려웠던 시기를 역사적 책무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온 권진희 시인의 정신적, 시적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시로 읽을 수 있겠다.
까짓 사진 몇 장 본다고 통일되나
겨울 백두산보고 온다고 통일할 수 있나
사진보고 백두산 본다고 통일되었을 것 같으면
니미럴, 벌써 열 번은 통일됐겠다!
속으로 혼자 열이 받치면서
나는 다짐한다
올 겨울에는 백두산 안 간다!
돈 내고 비행기 타고 안내 받으면서는
죽어도 백두산 안가고 만다!
<죽어도 백두산 안가고 만다> 부분
한 때 유행하던 중국을 통한 백두산여행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통일은 문화여행이나 사진전과 같은 나이브한 형식으로는 안되고, 뭔가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한다는 항의로 읽힌다. 사실 그렇다. 이 시가 씌어지고 한참 후 6.15남북공동선언(2000)이 발표되면서 남북 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개성공단 협력사업, 금강산 여행 등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진일보 한 것은 틀림없다. 최근에는 문학평론가 백낙청 선생이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안에 대한 국민적인 논의가 깊어지면서 통일이 결코 먼일이 아닌 가까운 미래로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 이렇게 통일을 두고 민족적 상황이 호전된 데는 권진희 시인의 위와 같은 시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밖에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박된 삶을 살아가는 윤락여성들에 대한 비유나(<나는 가끔씩 눈물이 난다>) 근래 노벨문학상 수상여부 문제로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대시인에게 편지 보내는 형식을 통해 문학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역시 " 값싼 돈에 한 시대를 팔고있는 저는 고개 수그리고 술을 마시며 형님께 편지를 씁니다" 라고 자탄(?)하고 있는 (<고은 형님에게>) 시들에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팍팍한 정서를 읽을 수 있다.
학원강사에게서 모든 부모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일주일에 두 차례, 한 번에 두 시간씩
일류학원 강사를 집으로 모셔올 수 있는 부모와,
학원비 낼 돈은 어떻게든 있어서
학부모 생색이라도 낼 수 있는 부모,
......
어머니 포장마차 접는 새벽 세 시까지는
자기라도 그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고
학원에 오면 맨 날 잠만 와서
전문대고 뭐고 씨팔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복판상고 일진, 니 녀석 부모는
부모도 뭣도 한참 아니다
<네게 하지 못한 말- K에게> 부분
근래 한 언론보도를 보니 현재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연간 13조8천억 원이라고 한다. 연간 예산이 2조5천억 원 정도 하는 대구시 예산과 비교해보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세간에는 학생의 성적은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등식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쉽게 말해 가난한 집 '개천에서 용' 나는 시기는 이제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국립명문대나 거대사립대에는 대부분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것으로 여러 사회지표가 가리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것도 새벽 세 시에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포장마차를 접기 위해 가야하는 K라는 학생을 시적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는 여러 가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주장하는 부모의 역할, 또는 학생의 태도는 반드시 이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가 포박하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이런 야만적인 거대 시스템 안에서 시인 자신의 몸부림이란 큰 연못 안의 작은 파문 정도에도 못 미칠지 모른다. 이런 사실을 시인은 안타깝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집 1부에서는 모순되고 어긋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사색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시집의 2부에 실린 시에 깊은 감동과 공감을 느꼈다. 시에서 어머니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는 영원한 시적 주제인 것 같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문풍지를 발랐다
윗목에 놓아둔 자리끼에 살얼음이 서린 다음날
물에 밀가루 풀을 개어서
구멍나고 찢어진 문종이와
문 아래 위쪽, 바깥쪽에
반 뼘 너비의 종이를 고루 덧댔다
과연 그 날 밤은 온통 훈훈해져서
팬티 입고 쏘다니는 아파트만큼은 못되어도
맘 맞는 여자 있다면 옆에 뉘어놓고
홀라당 벗어 던져도 추울 게 뭔가
얼빠진 자신감마저 갖게 해준 것도
밤새 바람 막아내 준 문풍지 덕이었다
닳고 해진,
문풍지가 있었다
사 남매 半生 숭숭 구멍 날 적마다
알지 못하는 밤새 머리맡 지키고 서서
찢기운 자리를 메워오다가
이제 문 떠나가시려는
사윈 문풍지, 어머니
<문풍지>전문
지난 겨울에
어머니는 유자나무를
집안으로 들여놓지 못했다
십여 년 사이
하나 둘 당신의 가지를 떠나보내신
어머니는 일상의 무거운 뿌리도 줄이셨을까
겨우내 화분 밑둥부터 우듬지까지
두터운 비닐을 감싸놓았지만
올 봄 더 이상 꽃을 내밀지 않던 유자나무는
굵은 동백꽃 떨어지는 어느날
언 물을 흘렸다
"차라리 산에다 심어놀꺼로
겨울 되기 전에 물을 못 버리가 안 이렀나
땅에 심어놨으마 이래 안 됐을끼로"
끌끌 혀를 차시는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다보며
나는 당신이 맞았을 그 수많은 겨울들과
그때마다 당신이 버렸을 생의 무수한 희망들을
곰삭여 본다
어쩌면 당신을 유자나무가 아니었는지 몰라
벌새 날아드는 향기 가득히
굵은 열매 내보내놓고선
자신에게는 뿌리내릴 땅 한 평 지니지 않으신
감싸줄 비닐도 없이 지샌
겨울 유자나무가 아니었는지 몰라
<겨울나무> 전문
시 두 편은 일부러 전문을 인용했다. 참 좋은 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적 진정성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권진희 시인의 자당님을 뵌 적이 있다. 무슨 일로 대구 달서구에 있는 한옥집에 찾아 뵈었을 때 이 시의 제재가 된 유자나무를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는 시의 영원한 주제이다. 어머니의 다른 이름은 '사랑' '헌신' 같은 단어들이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우주를 통해 이 세상에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모든 이들의 존재의 모태이자 기반인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문풍지와 유자나무에 비유한 시가 <문풍지>이자 <겨울나무>이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쾌하며 구체적이다.
특히 <겨울나무>는 어머니의 사랑이 단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퍼붓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차라리 산에다 심어놀꺼로/겨울 되기 전에 물을 못 버리가 안 이렀나/땅에 심어놨으마 이래 안 됐을끼로" 같은 부분에서는 자연의 순리에 대한 어머니의 지혜를 본다. 산속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물을 다 버린다. 겨울에 얼지 않고 월동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책인 것이다. 따라서 맑고 깨끗한 얼굴을 가리켜 '추수'라고 하는 데 이는 인품의 정도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을 따른 것이다. 우리 옛말에도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생이 장연에 접어드는 불혹 이후에는 탐욕과 이기심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로 자신의 인품을 닦아라는 경구인 것이다. 동양사상의 정수인 장자(莊子)에의 '추수'(秋水)편에서도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께서 장자를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생활 속에 묻어난 경륜과 철리를 체득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이런 훌륭한 말씀이 청년 권진희를 시인으로 만든 게 아닐까? 덧붙여 <아버지의 방문>에서 열 여섯 살 이후 이십여 년 만에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와 화해하는 모습을 통해 한 단계 더 깊어진 시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저녁해 막아설 이파리 없는 물푸레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사이로
젖은 노을이 지나간다
죽음이란 이렇게 낱낱이 앙상한 것이었구나
그리움으로 키워온 이파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피와 땀과 무위(無爲)들이 노을빛으로
나무의 곁을 휙휙 지나가고 있다
지금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카시아 온갖 잡풀들도
세월만큼 욱닥거리는 5월 저녁 숲에서
물푸레나무의 젖은 실루엣처럼
어디서 저녁새 운다
새들은 어디서 날개를 접는가
오늘의 새 울음은 아무래도 어제의 새 울음이 아니다
물푸레나무는 자유로운가
나는 무엇으로 서 있었던가
울다가 생이 다해서 죽은
새가 보고 싶다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부분
찌가 솟아오르고
낚싯대를 잡아챘을 때
그때 너는 몸부림치는
한 마리의 야생성 자유였다
그 날 밤, 미친 듯이 어항 안을 오가며
유리에 대가리를 처박아대던,
자유롭고 싶었다면 그때
너는 어항 속의 금붕어들과 결별했어야 했다
마르지 않는 푸른빛으로
하빈지로 돌아갔어야 했다
...........
어쩌다 내가 밥을 줄 때
이젠 물 위에 둥둥 뜨는 먹이를 먹기 위해
날렵하게 금붕어를 재치며
내 손길을 좇아 지느러미를 흔드는,
기억으로만 남은 야생아
나는 너와 무엇이 다르냐.
<붕어밥> 부분
인용한 두 편은 풋풋한 젊음과 이데아, 그리고 현실적인 속박과 실존적 고민을 청년기의 시인의 몸부림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이다. "물푸레나무는 자유로운가/나는 무엇으로 서 있었던가//울다가 생이 다해서 죽은/새가 보고 싶다"에서나 "그때 너는 몸부림치는/한 마리의 야생성 자유였다//그 날 밤, 미친 듯이 어항 안을 오가며/유리에 대가리를 처박아대던,/자유롭고 싶었다면 그때"에서나 시인의 관심사는 자유이다. 이때의 자유는 정치적 의미뿐 아니라 실존적 의미까지 포함하는 자유에 더 가깝다.
청춘의 이데아를 추구하며 한없이 자유롭고 싶은 청춘기에 그 젊음을 옥죄는 기성의 관념과 체제, 거기다가 80년대 군부정치의 정치적 억압까지 더해지는 시절을 통과하면서 시인이 느끼는 부자유나 부자연스러움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상황이다. 그 부자유를 이렇게 시로 표출하면서 시인은 어항 안의 붕어에 자신을 비유하면서 "나는 너와 무엇이 다르냐."고 외치고 "울다가 생이 다해서 죽은/새가 보고 싶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런 시인의 처지에 공감한다. 권진희 시인에게 있어서 80년대는 정치적 의미의 저항 뿐 아니라 실존적 의미의 저항기였다고 할 수 있다.
숲에는 산짐승의 길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는데도
나는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려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른다
외로움이
기다림을 낳고
그리움은 기다림을 길러서
문 밖 내다보느라
하루내 무르팍이 아프다
<범종 소리-연곡사 편지 4> 부분
강물이 흐르고 달이 뜨고 네가 오지 않더라도, 너는 네가 아니어도 좋다 生이 쓰지 못하게 구겨진 일기장같은 것이라 한들 어쩌랴. 왕시리봉 분교 운동장 가에서 나는 이제 곧 별과 이별할 것이므로, 언 눈에 드러누운 내 귓가 쟁쟁 울리고 가는 바람소리어도 너는 괜찮으리.
<새벽편지> 부분
인용한 두 편은 사랑의 사상실과 그리움의 기쁨을 노래한 시이다. 애틋하고 절절한 서정이 권진희 시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같다.
옛말에 '깊은 골짜기 난초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 향기를 그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앞서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청년 권진희는 향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뜨거운 청춘의 나날을 학생운동의 대의와 실존의 자유를 향한 방황과 모색으로 보내고 이제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10여 년의 창작 휴지기를 끝내고 새로운 문학적 창조를 꿈꾸고 있는 권진희 시인의 시세계가 10여 년 시력과 더불어 좀 더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시와 함께 인간도 더욱 크고 깊어져 골짜기 난초처럼 보다 많은 향기를 주변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