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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촌역
김용락시선집
∎목차
제1부 시간의 흰 길(1996~2000)
눈 내린 숲속의 밤__9
물띠미에서__11
60년__14
80년대식__16
흰 구름__19
야간산행__21
경주 남산에서__22
겨울 동봉__24
시인__26
그 사내__28
장미__30
십우도__31
단촌역__33
이미자쇼__36
배호노래__39
고운사 풍경__41
염색__43
지리산 반야봉을 오르며__44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 사진__46
제2부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1987-1996)
녹두밥__51
인동초__53
빵__55
나이를 먹는 슬픔__57
무꽃__59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__60
별__62
무명의 노래__64
귀가길__66
단촌 숲__67
조탑동__69
돌나물__71
와이셔츠__73
신 끈을 졸라매면서__75
목련__77
대구의 페놀 수돗물__78
지상의 방 한 칸__80
산1__83
애국 군인__84
대덕산__86
팀스피리트__88
제 3부 푸른 별(1980~1986)
푸른 별__91
고향__93
손국수__94
귀향자의 노래__97
송실이 누님__99
미루나무__102
옥수수__104
봄 강__106
아침 강__108
검둥이__110
이 가을__112
단촌 장날__113
단촌 양파전__115
단촌국민학교__120
공업고등학교의 시__122
귀가__124
4⋅19날 육사 시비 앞에서__126
관 선생__128
보충수업 10년__130
아버지__132
제자여__134
신탄리__136
2⋅28탑__139
슬픔 없는 곳__140
누님__142
망월동__144
벼__147
후기__149
해설/ 이강은
김용락의 시와 시 속의 김용락__151
제1부
시간의 흰 길
(1996~2000)
눈 내린 숲속의 밤
물띠미에서
60년
80년대식
흰 구름
야간산행
경주 남산에서
겨울 동봉
시인
그 사내
장미
십우도
단촌역
이미자쇼
배호노래
고운사 풍경
염색
지리산 반야봉을 오르며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 사진
눈 내린 숲속의 밤
그 해 겨울
정대 숲 건너편에 있는 어느 중견 작가의 별장에
신춘문예 예심을 보러 간 일이 있다
아침부터 내린 눈은 초저녁이 되기도 던에 결빙되어
팔조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가창 댐 입구에서
순찰차를 탄 경찰들이 통행을 제한했다
나는 그들이 내린 지시를 무시하고 산 속으로 낡은 차를 몰았다
마치 내 인생의 초입에서 문학하겠다는 나를
말리는 어머니의 충고를 무시한 것처럼 그렇게,
댐의 수면이 내린 눈의 눈부심으로 허옇게 빛났다
깨어있는 영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않고
제 홀로 저렇게 빛나리라
이렇게 다소 상투적인 생각을 하다가
산모퉁이를 몇 구비 돌고 댐의 상류쯤 어디엔가
엉금엉금 기어가던 차를 멈추었다
나는 담배를 빼 물었다
그리고 숲 속 내린 하얀 눈 위에다 뜨거운 오줌으로
가위표도 그리고 하트와 별 모양도 그렸다
오줌 줄기가 대지에 닿기도 전에
은밀하고 싱싱한 기쁨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태초에 신의 손길이 지상의 모든 물상에 닿았을때도
아마 이런 느낌이었으리라
눈 내린 천지는 마치 불을 밝힌 듯 환했다
잠들지 않은 숲의 정령들이 마구 소리치며
뛰어가는 것이 눈에 뚜렷이 보였다
나는 그 공간 속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았다
가야할 길이 바쁘거나 누군가와 약속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내 가여운 정신이 그날 밤의 풍경을
온전히 지탱하지 못했다 생애 처음 맛본 듯한
동굴처럼 깊던 그 눈 내린 밤하늘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청춘이 내게는 이미 없었다
어둠 속으로 난 시간의 흰 길이
그렇게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던 눈 내린 밤이었다
물띠미에서
물띠미의 강물에 내린 아침햇살을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는 사내는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강 주위에 널려 있는
허옇게 황을 뒤집어 쓴 사과마누 둥치나
剪枝로 여린 가지가 다 잘린 포도나무의 늙은 허리도
그 사내에게는 애인이다
아니 물오른 숫총각의 그것처럼 무성하게 치솟고 있는
파밭의 검푸른 성욕조차도
사내에게는 어쩔 수 없는 동경이다
나무와 열애 중인 사내
반짝이는 금빛 물결로 여울지는 아침 강과
더욱 혹독한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사내
그 사내에게는 지금 동쪽에서 대구지선으로 갈라져 나온
중앙선 열차의 굉음도 지울 수 없는 옛사랑의 기억이다
차창에 봄 빗방울이 빗금을 치면
그는 주문을 외듯 이미 오래된 마음 하나를 불러 낸다
봄 날 오후의 샛바람이 잦아들고
저녁 어스름이 중앙선이 지나는 산골마을마다에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줄 때
서쪽 하늘에 막 뜨기 시작하는 샛별을 쳐다보면서
작은 시골 역 플랫포옴에서 나무벤치에
하염없이 앉아있던 그 17세 청년을 기억해 낸다
방금 떠나 온 대도시로 되돌아갈까
아니면 그냥 시골집 품안에 안길 것인가
끊임없이 망설이던 청춘의 고민이
불혹 중년기의 그 사내를 다시 휘감아 가고 있다
마음속의 어둔 그림자가 봄 강물에 떠오른다
아침에 부르는 이 悲歌는
가진 것이 없는 이의 마음의 그림자는 아니지만
인생이 한 때 아침햇살에 빛나는 강물이었다가
어디론가 말없이 흘러 가버리는 것이란 사실을
잠시 잊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게 막무가내 세월은 죽음 쪽으로 돌진한다는 것을
잊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띠미 : 대구 하양 인근의 지명
60년
생일 날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조탑 권정생 선생 회갑 잔치가 안동에서 열렸다
안동 전교조와 참꽃문학회가
완강하게 싫다는 선생을 반 강제로
안동대 운동원 출신 상숙이
친오빠가 운영하는 안동시 태화동 홍천뚝배기 식당으로 모셔왔다
봉화에서 전우익 선생님 나오시고
서울에서 가농 사무국장하는 정재돈 형이 내려오고
안동대학의 임재해 이효걸 한양명 선생 나오고
전교조 조영옥 헌택 영민 선생이 떡하고 전도 부치고
참꽃문학회 상학 상현 재현 등이 수고하고
승균 무식 태서이 누님 너구리 상숙이 등
80년대의 안동대 구 운동권들 다시 모이고
나는 빈손으로 대구에서 털래털래 내려갔다
아무에게 알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백여 명이 족히 넘게 모인 이 행사에
어찌 술과 노래가 빠질 것인가
우리 모두는 오른 손을 어깨 위에 올려
투쟁 투쟁 선창을 먹이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고
80년대 풍으로 노래를 불렀다
역시 세월은 가도 사랑은 가도 사람은 남는가 보다
아니 사상은 남는가 보다
그날 밤 소주에 취해 착시 불능인 내 눈에는
눈발이 흩날리는 목성동 성당 언덕배기를 내려오는
허리가 구부정한 헐벗은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검정 고무신이 유난히 헐거워 발에서 벗겨지고 있었다
80년대 식
-배남효 형님께
그는 80년대 식이다
그는 오랜만에 내가 만나 大德이다
그는 가야산 자락에서 태어나
소위 홀대받는 하도를 벗어나고자 대구로 전입해왔다
그는 그 점에서 계층상승을 노리는 전형적인 도시빈민이었다
경북고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에게도 그 때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유신 때 긴조로 빵가고
출옥 후에도 개전의 정은 보이지 않고
서노련이다 현중이다 노동판을 좇아다니며
80년대와 청춘을 낭비(?)했다
그의 서울 유학동기는 지방검찰청의 부장검사이고
큰 증권회사의 대구지점장이다
그는 마흔 둘 아직 미혼이고 권력도 돈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무엇인가 있다
그러나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한다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그는 이미자의 지평선은 말이 없다를 자주 부른다
어디메 계시오지 보고픈 어머님은
이 구절을 마구 토해낼 때
그의 눈가에 잡히는 옅은 물기를 보면
그가 정말 강철같은 혁명가였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요즘
낡은 배낭 차림으로 혼자 산 속에서 혹은
심야 불법영업 노래방에서 그는 자주 목격된다
사유의 폭과 대중성을 넓히려는 전략이라고
주변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이 회피할 수 없는 인생이고
무거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봄날 등산의 땀을 말리면서
내 인생에서 진정한 희망은
운동에 몸담고 부터였다고 그가 고백했을 때
그것이 상투적으로 들리기보다는
그의 몸에서 꽃이 활짝 피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80년대 식이었다
그는 청산주의자가 아니었다
흰구름
칠곡 대구예술대에서 경산 영남대까지
중앙고속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또 지방도로까지 두 번을 바꿔 타고도
차가 막히지 않아야 한시간 거리이다
이 거리를 나는 시간 품 팔러 다닌다
상품은 ‘문학’이라는 심연이다
3월 중순이지만 고속도로 위의 햇살은 이미 뜨겁다
천막을 두른 타이탄 한 대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뒤로하고 도로 위를 질주한다
그 뒤를 무심코 따라가는데
이제 갓 물이 들기 시작한 봄 딸기가
아스팔트 위로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딸기를 피해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아스팔트에 으깨진 보드라운 속 살결이
다시 내 차바퀴에 짓밟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딸기 배달하는 운전사가
한낮의 졸음을 참지 못하는지
뒤에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알아먹지를 못한다
시커먼 고무타이어와 아스팔트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스러져 가는 것
그 위를 끔찍한 적요가 흐르고 있다
흰 구름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야간산행
예술마당 <솔>의 지리산 문학 팀과
지리산 야간산행을 했다
흩뿌리는 빗방울을 뒤로하고
저마다 반딧불 같은 불빛 하나씩을
이마와 가슴에 붙이고
가파른 밤 산을 걸러 올랐다
산의 상봉에 다다랐을 때 비는 개이고
숲 속으로 보이는 달과 별빛은 분명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다
다음날 아침 산행에서 일행 몇몇이 길을 잘못 들었다
돌길 가파르고 가시덤불 우거진
그 길 언저리에는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여름 산수국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산행에서 길을 잃고서야 마주하게 된
한 무더기 꽃을 보면서
길을 잃어야만 볼 수 있는, 그것도 지극히 눈부신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경주 남산에서
경주 남산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말없이 바라보는 일이
사람이 나서 그냥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대지의 가슴에 안겨주는 일이라는 믿음을 준다
사랑하는 일과
청저히 자신을 지우는 일은
저녁 식당에서 묵묵히 밥알을 씹는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관습과 싸우거나
혹은 바퀴벌레 때문에 지치고 외로울 때
5월의 낙조를 바라보는 일처럼 세상도 풀밭처럼 서정적이지는 않다
목이 부러져 달아난 아기 부처나
귀퉁이가 절반 이상 잘려나간 석탑의 오랜 내력이
라일락 향기처럼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생의 환희를 결코 약속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경주 남산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해떨어지기 전 농부가 소를 몰고
터벅터벅 논둑 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인생에 대한 그런 그림 한 폭쯤은 기꺼이 선사해 주는 것이다
겨울 동봉
눈 내리는 오후
수성못 가에 앉아 수면 위로
소리 없이 녹아, 사라지는 함막눈을 본다
물의 표면은 얼어있지 않고
사람에 빠진 연인들의 어깨처럼
부드럽게 율동하고 있다
그 미세한 듯한 부드러움이
강철같은 겨울 추위를 다 빨아드렸는지도 모른다
못 가에 앉아 도시 주변의 산정을 바라본다
흰 눈을 덮어 쓰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평상시보다 훨씬 가까이 내 곁에 와 있다
멀리 있는 것들이 때로 더 그립고
깊을 때도 있는 법인데
눈 내린 오후 팔공산 동봉이
백발노인의 성성한 표정처럼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그 실체를 환하게 드러냈다
함박눈은 땅위의 모든 것을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아름답게 살려주기도 한다
내 마음의 상처를 물 무늬로 드러내 주기도 하고
평소 잊고 지내던 동봉의 이마를 장엄하게 빛나게도 한다
시인
막 받아든 배창환 시집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을 읽으니 눈물이 난다 도시빈민의 많은 형제가 운데 하나, 오직 머리 하나로 지방 국립사범대를 졸업했으면 1급지 발령 받아 보충수업 몰아하고, 남의 눈 피해 부잣집 아이들 족집게 과외도 하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더라면 이제 오십 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작별하고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 장만하고 2000cc 중형승용차 굴리면서 신 중산층 계층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는 왜 그 길을 피해 갔을까
그는 왜 그 쉬운 길을 한사코 피해 어려운 길을 걸었을까
독재정권과 맞서고 민중시 쓰고 전교조 10년 해직 후 복직되고 대구의 변방 경북 성주군으로 이사가고 하루 출퇴근에만 두 시간 이상 허비하고 건강 엉망이 되어 20대, 그 패기만만하던 ‘배창환 시인’의 모습 대신 중늙은이 얼굴 하나를 목 위에 달고 힘겨워하는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
정대호가 그의 시집 발문에 영락없는 담박지사라고 썼다 지사?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말인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말인지 배창환은 안다 지사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오늘 하루 나도 남들처럼 좀 편안하게 살아봤으면 하는 유혹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수시로 그를 찔렀을지도 모른다
그도 인간인 이상 그것이 참기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런데도 그는 왜 그 길을 갔을까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시인이어서? 모를 일이다 남들이 피해 가는 그 길을,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을 읽으며 나는 그의 흔들리는 생각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읽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내
새벽마다 담배 피우는 사내가 있다
아파트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마치 달팽이처럼 등을 돌그랗게 구부리고
아편쟁이처럼 두 손을 모으고 피우는
그의 두 손이 나직이 떨리고 있다
쩍쩍 갈라 붙은 머리칼과 새까맣게 때가 낀 손톱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그의 순탄치 않은 삶의 이력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언제나 자정이 넘으면 나타났다가
새벽녘 주민들의 눈을 피해 사라지곤 하는 그 사내
가끔 장마비가 올 때는 밤 열 시가 조금 넘으면
그 계단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한때는 이 아파트 주민,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
제법 잘 나가는 중소기업체의 사장이기도 했지만
I M F 부도로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등 소문만 무성한 사내
그의 낮 생활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동네 공원 벤치 위에 신문을 덮고 있더라
혹은 달성공원 앞 무료급식소에서 봤다더라는
풍문만 떠돌아다니는 그 담배 피는 사내
장미
한 늙은 사내가 심야에 죽었다 아무도 그 늙은이의 이력을 모른다 아파트 앞마당 쓰레기장에서 발목의 정맥이 끊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임종한 사람은 없었다 새벽 별과 도둑고양이가 그의 외로운 죽음을 지켜 보았을런지 모른다 그는 쓰레기통 속의 공병을 경비원 몰래 훔쳐가서 생계를 꾸리던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당연히 그의 작업은 지상의 모든 것이 눈을 감는 심야일 수밖에 없었다 찬 겨울밤 바람이 플라스틱 쓰레기통 밑에 깔려 뭉개진 마른풀들의 한 생애를 두드리고 지나갈 즈음 어둠속에서 공병을 더듬는 그의 발목을 깨어진 날카로운 병 조각이 선명하게 빗금을 긋고 지나갔다 그는 도둑놈이었기 때문에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얼굴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묻었다 다음날 아침 119구급대가 아파트주민들에게 낯선 주검 하나를 싣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늙은 사내가 누워 있던 자리에 싱싱한 붉은 장미가 수줍은 듯 태양을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구제금융시대의 삽화였다
십우도
사월 초파일 날
대구 대덕산 귀퉁이에 있는 작은 절에 燈 달러 갔다
제법 엄숙한 마음을 하고 빈자일등이
평등 세상을 넓고 깊게 비추리라 옷깃을 여미었다
그러나‥‥‥
절 앞에 위세 당당하게 버텨 선 종각의 몸뚱이에는
일세를 풍미한 군사독재자와 그 가족의
안녕을 비는 기원문이 쇠를 깍고 녹인 깊이만큼이나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매단 이만 원짜리 주름잡힌 종이등은
절집 입구 산비탈 작고 왜소한 소나무에 걸린 채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다 사라지지만
삼만 원짜리 등은 대웅전 뜰에
오만 원짜리 연등은
대웅전 부처님 바로 코 앞에 매달려
일 년 동안 불을 밝히다가
이듬해 같은 날 약간 인상된 금액의 등과 교체될 것이 분명하다
빈자일등이 온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는 날
매판자본가와 독재자의 등은 무쇠에 새겨져
그 절이 이 산자락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천 년 만 년을 갈 것이다
초파일날 나는 연등 불빛과 범종 소리의
수풀 속에 발목이 빠져 온종일을 헤매었으면서
십우도는 구경도 못하고
자본주의 더러운 사타구니만 더듬다가 하산했다
단촌역
늙은 측백나무가
반쯤 대머리가 된 회색 빛 건물 뒤편 변소 입구에서
사색하듯 말없이 서 있는 단촌역
붉은 색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대합실 나무 의자가 카바이트 불빛 아래서
힘이 다한 노인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북 의성군 단촌역
개찰구에 한쪽 다리는 약간 저는
소아마비 역무원 馬주사가
어긋나버린 자신의 인생을 끼워 맞추듯
금속성 표찰기로 꼼꼼히 기차표를 찍어주던
중앙선의 작은 시골 역
여름이면 붉은 사루비아가 홍운보다 더 짙던
그 역의 낡고 좁은 문을 통해
나는 안동 50리 길을
아니 청춘 수만 년의 미래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중학교 3년을 통학했지만
미안하게도 역장님 이름을 알지 못했네
가끔씩 바람 드센 날
국기 게양대의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찢어지고
밤새 눈이 한 길이 넘게 내려
힘에 부친 측백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상처 위에도
소독약가루처럼 하얗게 눈이 쌓이고
무릎이 빠지는 눈 쌓인 논둑길을 걸어와
수십 분이나 연착한 아침 통학차를 간신히 탔을 때도
말없이 청춘의 우리를 격려하던
시골에서는 보기도 드문 왜식 목조건물
내 유년이 그 주변에서 끝나고
대구로 유학 나와
일요일 저녁이면 쌀자루 둘러메고
멸치조림 봉지 옆 허리에 꿰차고 대합실을 나설 때
점점이 멀어져 가던 어머니의 아련한 뒷모습
가슴 아프던 단촌역
나는 오늘 별 볼일 없는 중년의 사내 되어 홀로 그곳에 가보지만
지나간 세월처럼 혹은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낡은 驛舍 위로 흰 구름만 말없이 흘러가는
내 실존의 먼지 같은 단촌역
내 쓸쓸한 영혼의 집
이미자 쇼
경주 현대호텔 이미자 디너쇼
내가 일상사 팽개치고 거금 10만 원 쳐넣으면서
구경가서 눈물 흘리고 온 일은
나에게는 적어도 순결과 관계되는 일이다
동백아가씨로 시작해 두 번째 황혼의 부르스를 부를 때
이미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지금은 슬레이트 기와가 삭아 고드름처럼 뚝뚝 떨어지는
내 살던 옛집 우물가에 잎은 벌써 지고
메마른 씨방을 매단 박태기나무의 불규칙한 곡선이
차가운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그 집에 오늘은 싸락눈이 내리는 것일까
두 살배기 딸애가 젖달라고 칭얼거리다가
일흔 아버지의 등에 코를 쳐박고 잠드는
외풍 센 방 천장 한구석에 거미줄은 여전할까
그 곳에는 한 때 나와 닮은 청년 같은 아버지가 살았다
낡은 전축으로 동백아가씨를 자주 듣고
소꼴 베러가거나 공책을 잡고 숙제하러 가는
자기의 모습을 닮은 소년에게 쭈그러든 양은주전자를 들려
막걸리를 길어 오게 하던 그에게
세월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형편없이 쭈그러든 주전자와 같은 슬픔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별이 총총 쏟아지던 날 밤
공터에서 흘러나오던 가설극장의 질 나쁜 스피커 소리
광목 천막 안으로 흐릿하게 비치던
내 청춘의 미래는 지금 어떤모습으로
불면의 거리를 서성일까
오늘 문득 그 추억의 또 다른 이름이 세월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하는 이와 이렇게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가설극장의 불빛처럼 따뜻한 일인지도 모른다
좌판에 나 앉은 잘 여문 채소처럼 세상에 안심하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오늘 이 현대호텔에서 이미자를 만나는 건
나에게는 이미 없어져 버린
바로 그 순결을 다시 찾는 일이다
늙은 가수의 노래에서 생의 위엄을 보는 것도
사랑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움이란 그렇게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배호 노래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고
케이비에스 티비 가요무대를 본다
오늘은 스물 아홉에 요절했다는 배호 특집이다
낮은 저음의 그의 노래를 가수들이 흉내내는 것을 보면서
예술만이 아니라 인생이야 말로 모방이라는 생각을 불현듯 해 본다
언제였던가 그 언제였었지
집수리 하기 전 문턱 높았던 시골집 상방
높은 나무문턱 아래 내가 배 깔고 누워 무언가 하고 있을 때
새하얀 칼라 여고생 세 째 누나가
당시 여고생인가 학원인가 하는 학생잡지에 나온
배호 추모특집인지 그의 여동생 수기인지를 읽고
너무 불쌍해! 하고 울 때 나는 그게 너무 이상했다
쟤는 왜 저의 부모가 죽은 것도 아닌데 저 야단이람
그 누나에게도 세월과 인생이 따로 있어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는 딸애와 재수생인 아들이 있다
그때가 60년대 후반쯤인가 잘 기억되지 않지만
포장 안된 도로 위로 이따금 트럭이 지나갈 때면
한바탕 풀썩 먼지가 일고 자갈이 튀어 오르고
길가 미루나무가 미끈한 허리에 무성한 잎을 마구 흔들어대던
내 삶의 원형질이던 시기였다
나에게도 이제 열 살짜리 딸애와 세 살배기 딸애가 있다
신라 향가에서도 노래한 바 있어
이미 정서의 유구한 전통이 되었지만
같은 줄기에서 태어난 나뭇잎이 하나는 서울에서
다른 하나는 대구에서 그 가지에 다시 어린 나뭇잎을 치고 있다
아파트 창 너머로 초생달을 막 벗어난 달이 파랗게 비친다
저 달빛 아래서 야윈 어깨를 추위에 웅크리고
시오리가 넘는 밤길을 걸어 도회지로 나갔던
나의 유년이 이 밤 요절가수의 노래에 낮은 저음으로 흐느끼고 있다
마흔이 넘어 머리에 허연 실타래를 수도 없이 달고서
고운사 풍경
등운산 골짜기가 온통 5월의 뻐꾸기 울음소리로 도배질 한다
고운사에 와서는 학문자랑 말라고 한 때도 있었다던데
화냥끼를 느낄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한 단청
이미 고운사는 옛 고운사가 아닌가 보다
할머니가 이른 새벽 쌀 한 되박을 머리에 이고
30여 리 길을 걸어가 늦은 점심공양하고 해 저물녘 돌아오던
산판장에서 송이를 얻어왔다고 밤이슬을 털며
수군거리던 아버지의 음성을 잠결에 흘려듣던
국민학교 6년 소풍은 쌀 반 되 허리에 꿰차고
단풍나무 숲 속을 걸어 허공에 뜬 것 같던 가운루에서
하룻밤 자고 오던 그 추억 어린 단촌 고운사
져녁 연기처럼 가늘고 질긴 끈으로 나를 묶고 있다
살다가 이승의 한 쪽 다리가 늪에 실족해
인생의 용맹정진 다시 일으키키 위해 들러보니
뻐꾸기 소리만 허공에 메아리 칠뿐
내가 찾는 부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염색
일흔 둘의 노모가
양지바른 수돗가에 앉아 염색약을 개고 있다
솔이 뻐드러진 칫솔과
깨어진 면경 조각을 앞에 놓고
빨래판에 쭈그리고 않아 있다
그 앞에는 분유 깡통에 심어놓은
지난 가을 黃菊 한 포기
겨울 추위에 형체가 없이 뭉개져 있다
폭설이 내린
산길 같은 어머니 머리 결을 따라
아래위로 칫솔질을 하다가
나는 문득 아득한 생의 심산유곡에 갇혀
그만 길을 잃었다
지리산 반야봉을 오르며
양력으로 칠월 칠일
음력으로 오월 스무 이튿날
지리산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을 오른다
흰 구름이 저 멀리 산 아래 깔리고 있는
오늘은 내 생일날이다
만개했다가 이젠 꽃잎이 다 시든 채 가지에 달려 있는
산목련 몇 송이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늙은 어머니를 생각한다
자신의 운명을 토해내듯 꽃을 피우고
마침내 향기도 없이 흉하게 일그러진 저 모습이
내 어머니의 몸이 아닐까
생일날 아침 일찍 산행 떠난다고 얹잖아 하는
처와 딸애의 눈 흘김을 뒤로하고
깊은 산중에서 혼자 걸으며
생일날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새삼 생각해 본다
대지의 어머니, 영원한 모성의
지리산에서 불현듯, 아니 비약적이게도
나는 광활한 우주의 힘을 느낀다
그 우주 깊은 자궁 속으로 무한정 빨려 들어가고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 사진
늦가을 들어 찬바람 불면
내 마음이 절로 찾아가는 곳이 있다 낡은 오두막,
톨스토이의 한 평 땅 우화를 생각나게 하는 곳
그 곳에는 정말이지 내가 톨스토이라고 믿고 있는
한 사내가 궁벽하게 살고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까 말까 한 그 흙집 좁은 방안 벽에
수 년 간 언년이 삐뚤 크레용 그림이 붙어 있던
그 자리 그림이 어느 사이 바뀌었다
물총새 두 마리가 어미와 새끼인 듯한
새 두 마리가 긴 부리로
물고기 한 마리를 서로 나누고 있다
그 사진은,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물총새 두 마리의 아름다운 광경을 통해
인간들에게 나눔과 섬김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지만
나에게는 차라리 다른 무엇이 보인다
두 개의 날카로운 부리 사이에서
몸을 뒤트는 물고기의 고통스런 몸짓이 가슴을 찌른다
남에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되어주기 위하여
혹은 배경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비트는 고통을 감수하는 가련한 물고기처럼
그렇게 평생을 산 인간도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그 물총새 사진을 보면서 나는 알았다
물고기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제2부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1987~1996)
녹두밥
인동초
빵
나이를 먹는 슬픔
무꽃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별
무명의 노래
귀가실
조탑동
돌나물
와이셔츠
신 끈을 졸라매면서
목련
대구의 페놀 수돗물
지상의 방 한 칸
산 1
애국 군인
대덕산
팀스피리트
녹두밥
-전성용 선생님께
그날 녹두밥을 먹었습니다
재활원 식당은 늦가을인데도 파리가 있더군요
나는 그 파리들이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냥 장애도 아니고 겹장애라는
중증장애아를 살펴보다가
바로 전날 아침에 누군가가 버리고 가서
새로이 데려 왔다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비틀어진 그애의 손을 가까이 잡으며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몹시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그 말고 투명한 눈망울에 어린
슬픔이랄까 묘한 표정이 그날 이후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돌아가신 지 이십년이 넘은 할아버지 옛모습 같기도 하고
어릴적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아니, 전쟁통에 월남해 평생을 폐병쟁이들과 보낸
어떤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산비탈의 재활원을 내려오면서
그날 새 식구가 되었다는
아이를 내내 생각했습니다
녹두밥 속에 비벼져 내 입속으로 무심히 들어간
후생의 내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인동초
녹색평론 독자모임 겨울 산행을 대구 인근의
비슬산에서 가졌다
겨울비 속에서 단청이 바랜 용천사 뒤뜰을 지나
산 초입에 이르자 부도탑들이 큰 반점처럼
산허리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다
영생의 빙표 같은 그 돌덩어리를 그냥 지나쳐
좁은 산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사람의 손이 채 닿지 않은 돌배와 다래를
따 주머니에 갈무리 했다
그리고는 다시 정상을 향해 쉬지 않고 걸어올랐다
누군가 인생이란 길이 없는 숲*이라고도 했지만
길이 가파르고 산바람 세차질수록
나에게 인생이란 출구 없는 욕망의 늪처럼 느껴졌다
흐린 겨울 하늘이 산골짝 깊숙이 가라앉은
그날 빗속에 전신을 맡기고 떨고 있는 풀 한포기를 보았다
마치 추위에 질린 듯 파란 얼굴색을 하고 있는
그 풀잎 이름이 인동초였다는 것을
산을 다 내려온 후 나는 알았다
인동초처럼 세월을 버팅겨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았다
빵
새벽 집 밖에 나가보았다
초저녁 벌집처럼 눈 떠 있던 아파트
그 불빛 다 지워지고
사방은 어둠속에서 적막하다
이따금 불면으로 불을 밝히던
한두 집에서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는 소리가
희미하게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아파트 단지 상가 제빵점에서는 여지껏
빵 굽는 일꾼들의 발놀림 소리가 요란하다
양팔의 굵은 알통 근육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번들거리는 땀을 훔치며
빵틀을 들어 나르는 청년들의 모습과
막 구워져 나온 껍질 두꺼운 빵을 보며
나는 슬픔을 느낀다
빵틀을 안고 가는 젊은 사내의 등뒤로
새벽 별빛이 떨어진다
아침이면 분명 누군가가 저 빵을 먹을 것이다
빵의 부드러운 속살과 함께 땀방울도 그의 입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것도 가난한 삶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빵 굽는 한사람의 사내를 성장시키는데
며칠간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약간의 슬픔이 필요하듯이
빵 하나를 익히기 위해서도
밀밭을 스치고 가는 한줄기의 바람과
한올의 태양이 필요하다 한점 별빛과 땀방울이 필요하다
새벽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또 한사람의 발길이 필요하다
나이를 먹는 슬픔
뜨락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세월이 흐르고 한두 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잎이 청정한 나무처럼
우리가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한껏 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잔하고 영혼이 늙어서가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마음속 깊이 믿었던 사람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무심히 그냥 흘려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나
혹은 그 반대의 강고한 운동의 전선에서
잠시나마 정을 나누었던 친구나
존경을 바쳤던 옛 스승들이
돌연히 등을 돌리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나이를 먹기 전에는 모르던 일이었다
돌아서는 자의 야윈 등짝을 바라보며
아니다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하며
세상살이의 깊이를 탓해보기도 하지만
나이 먹는 슬픔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처럼 오늘도 나를 가두고 있다
무꽃
봄날에
녹평 사무실에서 건너다 뵈는
뒷산비알의 노란 무꽃을 보면서
세상일에 너무 쉽게 화낸 자신을 뉘우친다
지켜보는 이 없이도
꽃들은 저리도 타오르는데
채마밭 같은 고향에서 튕겨 나와
도시 외곽을 전전하면서
누군가를 섣불리 사랑하고
또 성급히 아파한 마음의 골짜기엔
산새 소리가 남아 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소리가 듣고 싶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음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
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밀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어느날 바로 그날 밤
양철 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
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 양이면
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별
겨우 쌀 한말 이고도
이젠 헛다리가 짚인다고
혼잣말을 나직이 삼키시면서 골목길을 빠져나와
승용차 뒤트렁크 옆에다
쌀자루를 대동댕이치듯이 내려놓는 어머니
벌써 나이 일흔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
면 소재지에서 읍내 중학교로 대도시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놓고
주말이면 쌀 몇말쯤은 거뜬히 머리에 이고
양손에 간장병 김치통을 들고도
도리어 내 걸음을 재촉하면서
오리는 족히 되는 기차역까지 당당한 걸음으로 걷던
젊은 시절 여장부이시던 어머니가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짧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면서
헛다리를 짚어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것을
나는 어둠속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구태여 당신이 쌀자루를 이겠다고
고집하시는 어머니
교통체증 차 밀린다고 좀 편하게 돌아가시겠다고
굳이 명절날 새벽같이 처자식 데리고
대처로 떠나는 나를 지켜보고 서 있는
어머니 어깨 너머로 나를 지켜보고 서 있는
어머니 어깨 너머로 눈물같은 파란 새벽별 하나 떠 있다
무명의 노래
무명은 아름답다
그러나 무명과 무관심의 한계는 명백하다
이 사실을 나는 그녀를 통해 알았다
중년을 위한 고급사교장 대립관에서
나는 처음 그녀를 보았다
가수협회 지방분회 회원증조차도 없는
단지 22세의 싱싱한 육체가 무기일 뿐인
그녀는 노래부른다 진지하게 열창한다
휘황한 조명과 무드있는 음악을 배경으로
노래부르고 있는 동안은 그녀가 이 홀뿐만 아니라
세상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노랫소리에 맞춰 정장 차림의 신사도
일수놀이 아줌마도 열여덟 놀량패 아가씨도
몸을 흔든다 고함을 지른다
뽀얀 번지와 굉음 속에 뒤섞여
방금 전에 먹은 삼겹살 콩나물비빔밥 보신탕 냄새가 뒤섞여
혼 안을 진동해도 아랑곳하지 않듯이
현실사회주의가 망하고
문민정부의 개혁이 불발해도
또는 장기수 김선명 씨가 43년 만에 감옥에서 출옥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세상은 어차피 그렇게 흘러가는 것
오로지 관객들은 무대 위의 그녀를 향해 열광하고
밴드가 끝나면 흩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철저히 무명이닌까
그녀가 바로 세상이닌까
귀가길
햇살 좋은 가을날
선배 서점에서 차를 마시다가
불현듯, 애기 목욕시키러 집으러 향한다
결혼하고 애기 낳아 기르는
새로울 것 전혀 없는 평범한 일상사가 지금의 내게는 벼랑 끝을 걸어온 마음이다
검정고무신 신고는
소풍가기 싫다고 보리밭에 숨어서 울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덧 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 소소하고도 감격스런,
골목길 응달 한구석에 빼꼼히 목을 내민
풀 한포기 그 연한 섬유질이
새삼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가만히 다짐도 해보는 어느 가을날의 귀가길
이렇게 하여 이젠
사는 것이 절로 시가 되기도 하는가보다
단촌 숲
봄이면 할머니 화전놀이에 따라가
개장국 얻어먹고 막걸이 몰래 훔쳐 마시고
북소리 꽹과리가락 좇아 어개 들썩이다
미루나무 그늘에 쓰러져 잠들면
끝내 술취한 할머니가 내 새끼 새끼하며
집까지 업어 오곤 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십리는 족히 넘는 그곳까지 봄 소풍 가을 소풍
때로는 멀고 지겹기도 했지만
그 숲속에서 나는 건어물집 충열이와
계집에 때문에 싸운 일을 화해하기도 하고
중학생 때는 새로 산 텐트를 치고 싶어서
숲속에서 여름 한철을 다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 단촌 숲이 어느 해인가 하천 정리사업으로
흔적없이 사라지고 대신 괴물 같은 큰 석조 제방이 들어섰다
이후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던 그 숲을
지난 일요일 다섯 살배기 딸애와 아내와 함께
향토 작고 서양화가 유작전이라는 긴 이름의 전시회에 갔다가
현대식 대리석 건물 속에서 다시 만났다
어느 무명화가의 유화「단촌 숲」은
내가 지금의 내 딸애 나이였을 적에
술취한 할머니 등에 업혀 오면서 뒤로 남긴
바로 그 숲의 모습이었다
조탑동
-권정생 선생님께
운산동 버스 주차장 내려
조탑가는 입새로 접어들면
멀리 기차 굴다리 너머에서
성큼 푸른 하늘이 먼저 열린다
경고! 늘어선 붉은 노을 사이로
5월의 구름 몇 점
삭일 수 없는 피멍울인 양 뜨고
흰 능금꽃이 산등성 길목 따라 점점이 이어지면서 피어올라
이 강산
황해도 안악
황주가지 이어지는 게 훤히 보인다
대구로 가면
아니, 남도 땅 광주로 가면
이 봄 미치도록 지천으로 돋아난다는
평안도 땅 초산의 압록강변으로도 가보자
빵덕이 데리고 몽실언니와 함께
흰 치마저고리 흥겨운 조선춤도 한마당 추어가면서
그렇게 웃으면서 가보자
영변 약산 진달래 뜯어 모으고
철늦은 압록강변의 약쑥도 한움쿰씩 뜯어
이 봄 스스로 아픈 이들에게
더 큰 아픔 한아름씩 안겨줘보자
설운 5월
조탑동 입새에 들면
자기 몸을 온통 불태우며 벙그는
흰 능금꽃 들꽃들이 북쪽으로 이어지며 피어나고 있다
돌나물
입춘 지난 윤유월 막바지에
허름한 골목식당 막걸릿집에서
멀리서 공장 다니다 온 후배와 늦은 저녁을 든다
장찌개 뚝배기를 상 위에 올려놓고
시종 말이 없는 녀석의 마른 어깨 너머로
아무렇게나 구겨져 뒹구는
석간의 붉은 환자가 눈을 찌른다
이젠 물난리 장마가 끝나려는가
파업과 농성이 다시 행간을 이운다
쓸쓸한 저녁
입 다문 여석의 쫓겨난 시간은 어떠할까
어디서쯤 그 흐름을 유예한 채 녀석을 기다려줄까
생각하는 사이
빈한한 찬 종류가 상 위에 덧 오르고
그 몇가지 중에서도 나의 눈길은
돌나물 무침에 멈춘다
내 고향에서 돌쩌귀라고도 불리며
가끔씩은 물김치나 비빔밥거리고 먹히기도 하던
뒷산 시커먼 암벽 틈서리에서
연초록빛으로 조심스럽게 불어나던 그 생명줄
오늘은 고춧가루에 깊게 절여서도 여전히
연초록이다 봄의 눈빛이다
숨길이다
나는 갑자기 후배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너의 고향에도 돌나물 있니? 힘 좀 내봐
그러나 갑자기 진한 그리움과 슬픔이
내 전신을 마구 흔들었다
와이셔츠
섬세하고 보드랍던
목덜미의 섬유질이 보풀보풀 피어오를 만큼 해진
동양어패럴 짧은 와이셔츠
수년 전 노동자문학회에서 만난
와이셔츠 하청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영양 촌놈 석철이가
“형님 이건 내가 직접 미싱 밟아서 만든 거요”
하며 두 장 건네 주던 것을
나는 마누라가 백화점에서 사다 준
고급 브랜드보다 더 즐겨 입는다
세상이 불안하고
노동자사상이 흔들리고 모두가 반성주의자 되어가는 올여름에도
변함없이 이 셔츠를 입고 다니며 자랑했다
신문사에서도
대학 강의실에서도
“이 옷은 내 노동자 친구가 만들어준 것이다”
반농인 아버지의 자식에다 노동자의 친구인 나는
껍데기는 번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분명 노동자이다
같은 공장에 다니는 살결 곱고
얼굴 동그란 아가씨와 연애하더니
어느새 동거에 들어간 석철이 녀석이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이 즐겨하는 시대적 반성을
주제넘게 노동자인 제 녀석도 하는 건 아닌지
틀어박혀 끙끙대는 건 아닌지
신 끈을 졸라매면서
등산화 끈을 졸라맨다
강경대 학생 추모 및 민자당 해체 가투가
대구역 광장에서 있는 날이다
양복을 벗고 청바지를 입으면서 생각해보았다
곧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딸까지 둔 애 아비가
그렇다고 열렬한 투사도 못 되면서
그 독한 최루탄 가스를 마시러 연일 거리로 나가는
자신이 다소 겸연쩍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나간다
거리에는 붉은 태양이 있고 오월의 하늘이 있다
그곳에서는 오래 못 보던 옛 제자도 만나도
노동자문학회의 동료들도 만나고
해직된 선배 선생과 교수도 만나지만
그냥 눈웃음만 주고받으며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도 어제처럼
한일로를 점거한 시위대 중에서
누군가가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외칠 것인가
“대구시민 여러분 양심을 회목하시고 시위에 동참 하십시오”
그러면 지나가던 행인들은 가운데서 간혹
“미친 놈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지랄하네”
이 희극과 같은 공방전 위로
펑펑 굉음을 내며 지랄탄이 비 오듯이 쏟아질 것인가
시인 김남주는 오늘
입만 살아 중구난방인 참새떼를 질타했다
혹시 나는 참새 같은 지식인이 아닐까
다시 자신을 되돌아본다
박종철과 이한열을 죽이고
궅한 학생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무엇인가
파쇼권력의 폭력인가 소시민의 침묵인가
아니면 그 추상적인 역사의 필연인가
낡은 등산화 끈을 졸래매며 나는 오월의 거리로 나간다
목련
사월에 피는 목련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속에는 내가 거리를 해매며 이름 부르다가
울며 떠나보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목련이 하얗게 망울지면 잠시 작별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되돌아 온다
메말랐던 나무의 잔등이 부풀어오르고
황량했던 겨울 식탁의 언저리가 초록빛을 발하지만
이제 목련이 지고
오월이 와도 끝내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허옇게 눈 부릅뜨고 죽어간 사람이 있다
그 봄날 저녁의 신화 같은 사람이 있다
목련이 피면 또 목련이 지면
대구의 페놀 수돗물
그날 그 도시에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영문도 모르게 설사와 구초 피부병을 시작했고
임신중인 산모들이 태아를 유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괴기 공포 영화에서 있을 법한 일이
그 도시에선 현실이었다
나찌는 2차 대전중에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페놀주사를 포로들의 심장에다 직접 꽂아
보다 신속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그 페놀을 재벌 기업이 상수도 수원지에 쏟아부었고
시민들은 즉각 생수를 사먹고 차를 몰고
물을 떠 나르기 위해 인근 산속에서 법석을 떨었다
그건 중산층의 손쉬운 이기심이었다
생후 10개월짜리 갓난 딸애를 가진
염색공장 노동자 김이박 씨
생수 사먹을 여유가 없는 저임금의 노동자
물 뜨러 시외 나갈 승용차 한 대 없는 김이박씨
공단에서 퇴근해 월셋방에 돌아와
우유 탈 물을 못 구해 쩔쩔매는 아내를 부여안고
그는 울부짖었다 짐승처럼
“이젠 마시는 수돗물마저 계급적이어야 하나”
지상의 방 한 칸
-대구 경실련 창립을 위하여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한평, 아니 한 뼘의 땅이라고 있다면
우리에게 방이 있다면
비록 비탈방일말정 두 다리만 쭉 펼 수 있는 방 한 칸이 있다면
일상의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고
어린 자식들과 살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우리에겐
뿌리 내릴 한 뼘의 방, 방 한 칸의 공간도 없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민희 아빠 나 같은 여자 없는 것으로
생각해주세요. 애기들 잘 봐주세요. 이 길밖에 없습니다. 방도
없고 돈도 없고‥‥‥”
이사할 집 방세 50만원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철거대상 지역
대구시 북구 읍내동 1190-2번지 최순희 씨(29세)가 1990년 3월
27일 스타킹으로 벽 옷걸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벌써 15명째이다
우리는 아침이면 번들거리는 근육 무쇠같이 질긴 힘줄의 두팔과 몸뚱어리를 가지고
일터로 간다
삽을 뒨 두 팔은 편편한 평지를 고르고
망치 잡은 두 손으로는 뚱땅거리며 고층건물을 쌓아올린다
그러나 그 평지는 누구의 땅인가
그 빛나는 고층건물 속에는 과면 누가 사는가
노동자의 땅인가
자본가의 땅인가
일하는 자가 사는가
놀고 먹는 자가 사는가
아! 이 시대의 경제여
이 땅의 정의 실천이여
우리들의 영원할 지상의 오직 방 한 칸이여!
산1
-전우익 선생님께
그 몇 해 동안은 구천산과 조탑산 그늘에서 온통 살았습니다
그 산이 대구까지 따라와, 오늘도
백발의 성성한 산 기운은
붉게 마을까지 뻗치고
맑은 날에도 속이 보이지 않던 산이
빗속에서는
그 처절한 울음 속에서는 더욱 속을 보여주지 않던 산이
새벽에
내장까지 뚜렷이 다 내어 보입니다
산의 깊이가 천길 만길 맑아져 하늘로 이어집니다
선생님
저 산속에서도 심지 굳던 뭇 사내들이
그렇게 풀더미에 덮였겠지요
애국 군인
가난한 도시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길이 막혔을 때
그냥 가난을 숙명으로만 알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성적 덕분에
육군 위탁 장학생으로 공고에 진학했다
공고에서 노동의 역사도 읽고 전태일도 읽었다
꿈 많던 푸른 시절을 질곡과 모순에 대한 분노로 보내고
드디어 육군 하사로 입대 복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공고 3년을 장학금으로 다닌 피할 수 없는 의무였다
그리고 월급으로 받는 적은 액수의 돈에서 반 정도를
매달 어디론가 보냈다
양심 선언을 하지 않았고 몸으로 앞장서지고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혁운동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애국군인이었다
대덕산
산이 우뚝하다
일몰의 석양에 비껴 산은 더욱 뚜렷하고 엄숙하다
하지만 서정적이다
그 서정성 다북솔 밑으로, 혹은 억새풀밭 사이로 이 도시의
청춘과 사랑도 스며 있다
그러나 서정과 청춘의 대덕산정에 단 한 방이면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미군의 핵탄두가 있다
단 일격에 우리의 심장을 여지없이 할퀴고 갈
제국주의의 발톱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우린 무심하다
우리의 무신경이 계속되는 동안
주둔군의 미사일기지가 영원한 동안
우리들의 가짜 행복도 안녕하다
부자들도 안녕하다
친미파 친일파 TK사단도 안녕하다
식민지도 영원히 안녕하다
아 가공할 조국의 산정이여
두려움의 서정이여!
팀스피리트
미국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 살육과 죽음이 있고
군수산업 자본가들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팀스피리트 훈련은
지상 최대의 전쟁 연습이라고 하고
남한은 반대가 없는 훈련의 가장 최적 지역이라고 한다
실제로 팀스피리트 훈련을 위해 도착한 미군 병사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남쪽의 작은 항구고기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적도 있고
내륙 도시에서는 임신한 여교사를 윤간하여
정신이상으로 죽게 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팀스피리트는 방어 훈련인가 공격 훈련인가
이 땅은 과연 미국의 땅인가 식민지인가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침략자의 창백한 유령
전쟁이 있는 곳엔 미국이 있고
미국이 있는 곳엔 언제나 살육과 죽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제 3부 푸른 별
(1980~1986)
푸른 별
고향
손국수
귀향자의 노래
송실이 누님
미루나무
옥수수
봄 강
아침 강
검둥이
이 가을
단촌 장날
단촌 양파전
단촌국민학교
공업고등학교의 시
귀가
4⋅19날 육사 시비 앞에서
관 선생
보충수업 10년
아버지
제자여
신탄리
2⋅28탑
슬픔 없는 곳
누님
망월동
벼
푸른 별
안마당
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
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
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 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마지막 남은 목숨 모깃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초저녁 샛별이 뜨고
연기 맵고 모기 극성스러울수록
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
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
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
울 여린 멍석 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 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
밤이슬에 반짝이고
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
누나들의 발짝 소리가
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의 숨결을 마저 이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못내 잠이 들면
“밤이슬은 몸에 해롭다
방에 들어가서 자그래이”
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
내 누웠던 그 자리엔
덩그러니 별 하나 떨어져 누워 있지요
나는 푸른 별이지요
풀물 배어나오듯
미칠 그리움과 설움으로 익어온
나의 시도 푸른 별이지요
고 향
뒷울타리의 산유수꽃
흙담장 아래 코딱지꽃
부황든 들판의 보리꽃
수챗구멍의 지렁이꽃
누이 얼굴의 버짐꽃
빚 독촉 아버지의 시름꽃
피는 봄밤에 몰래 집 나왔었는데
이젠 다시 살구꽃 피는
고향 그리워
손국수
비가 오는,
장마비가 미류나무 가지처럼 휘어져 내리는 날
퇴청마루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듯
어머니는 손국수를 민다.
수대를 물려 내려온 나왕목 국수안반을 놓고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있는
어머니의 손놀림은
마치 줄넘기를 하는 듯 천진난만하고 경쾌하지만
연로한 어머니의 주름살은 밭이랑처럼
너무나 깊게 패여져 있다.
무엇을 생각하며 국수를 미는지
안반 위 밀가루 반죽의 한 귀퉁이가 엷게 뚫어지자
어머니는 재빨리 바가지속의 밀가루 반죽을 떼어
습관처럼 뚫어진 곳을 다시 때운다.
저렇듯 무심한 어머니의 노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가난한 어머니의 평생을 반추해본다.
열여섯 나이에
가난한 소작농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큰소리 한번 없이
육남매 키우시면서
숱한 우여곡절 굽이마다 눈물로 넘어
다리 한번 마음놓고 편히 쭉 뻗지 못하시는
농사꾼 어머니,
무엇이 그토록 어머니를 마음 졸이게 했을까.
자식들이라는 것이 고작
장마 끝물에 달린 개똥참외보다 나을 것도 없는
우리들의 삶이 저렇듯 손국수의 밀가루 반죽처럼
때론 어이없이 뚫어져버린 허술함으로 가득찰 때
어머니는 자신의 살점을 뜯어
우리들의 뚫어진 곳을 채워주며 살아오시지 않으셨던가.
사내 나이 이십대 후반이 다 지나가도록
여전히 나는 저 무심한 듯한 어머니의
노동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면서
비가 오는 장마비 속에서 뜨거운 손국수를 후루룩 먹으면
가슴속이 먼저 뜨거워지고 종내
아무 상관도 없는 듯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고,
귀향자의 노래
절기도 입동이 지나갔다
들판의 벼낟가리는 어디론지 실려가 흔적이 없고
그 자리에 빈 그루터기만 남아
올 가을의 생채기 같은 추곡 수매가격을 달래고 있다
우리들은 비교적 볕이 잘 드는 사랑채 뜰 앞에다
헌 가마때기를 깔고 넓적한 궁뎅이를 마주대고 않아
이 늦가을에 파종해야 할 씨마늘의 쪽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제 정신과 몸뚱이를 얼지 않게 잘 마무리하며
새봄이 오면
파릇파릇 곧은 뜻으로 진실되게 돋아나는
조선 토종마늘씨만을 골라 쪼개서
그 중에서도 낱알이 굵고 실한 놈을 이쪽으로
좀 못한 놈은 저쪽으로 모으고
아주 쓸모없는 것들은 돼지 구정물통에 미련없이 던져버린다
이렇듯 마늘쪽 나누기에 열중하다가
아는 문득 맞은 편에 앉아 여축없이 실한 놈만 골라내는
습관같은 아버지의 손놀림을 바라보면서
만약에 우리들도 저렇게 등위를 나누게 된다면
나의 전부는 어디로 가서 처박히는 것일까
문중답 서너 마지기마저 남몰래 팔아서
대학 학비 대느라 피땀흘린 아버지의 뜻과는 너무나 다르게
판검사 고급 공무원은 그림자도 못 밟아보고
개똥은 약에라도 쓸 수 있다는데
개똥보다 형편없이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시 나부랭이나 끌적이는
나의 이 미련함은 돼지 구정물 속에라도 던져질 수 있을까
화해할 수 없는 삶은 갈수록 깊어지는데
이 늦가을 어느 날에 씨마늘쪽을 나누면서
참으로 쓸쓸하고 쓸쓸하게 불러보는
처연한 귀향자의 노래여
송실이 누님
시오리 갑티재 넘어
달밤의 박꽃같이 환한 얼굴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 속에서는
할상 물고기 몇 마리쯤은 넉넉히 기를 여유를 갖고 사는
송실이 누님
태어나던 기축년 그 이듬해 여름 전란통에
젖배 곯고 돌림병 돌아 벌써 죽었을 목숨
아직도 그때 흔적으로 코밑에 두어 개 마마자국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가끔씩 부끄럽지 않느냐고 내가 묻기라도 하면
콩타작하다가 넘어져서 생겼다고
슬쩍 웃어넘기는 재치도 보이곤 하던 누님이
시집가던 날
나는 집 모퉁이 흙담벽에 얼굴을 묻고 참 많이도 울었었지
마을을 몇 개 지나고 큰 강을 건너
실배기 마을 송가 성을 가진 더벅머리와 혼인을 치르니
드디어 송씨 가문의 지체 있는 맏며느리요
그 호칭도 송실이 바뀌었는데
더벅머리 총각 마음씨 순박하기가 또한
시월 첫서리에 무른 감 홍시 같으니
두 사람은 필시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
날마다 밤마다
서로 어르고 위하여 아들딸 낳고
한 살림 일궈 푸른 들판의 쑥대같이 사는데
어느 날부터 마을에 이상한 풍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드디어는 물 막고 댐을 만들어
온 마을이 물속에 잠긴다고 하니
정든 집 땀흘려 가꾼 논밭전지 두고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하루아침에 수몰민 신세 된 송실이 누님
어린 남매 손목 잡고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타향이 다 타향인지라
그래도 친정집 가까운 갑티재 넘어
갈대 마을에 터를 잡으니
제값 제대로 받은 보상금은 아니지만
시골에서는 난생 만져보기 힘든 큰 몫돈이라
괜히 마음 설레어
마을 주막에 출입을 시작하던 송서방이
어깨넘어로 배운 솜씨로 노름판에 끼어들어
하룻밤 새 전재산을 몽땅 털리고
풀죽은 모습으로 돌아와 며칠을 앓아 누워도
묵묵부답 상한 속마음을 나타내지 않고
다시 논밭 일궈야겠다며
집안 식구들 뒷바라지에만 열중하던
속 넓고 이해심 많던 누님
나는 그 송실이 누님을 볼 적마다
어쩐지 한국판『여자의 일생』을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기도 하지만
오늘도 갑티재 위로 흰구름이 떠가고
갈대꽃이 바람에 춤추는 것이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살 줄 아는
송실이 누님의 지혜를 보는 것만 같다
미루나무
어머니,
예순이 다 되신 이젠 상할 대로 상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절룩절룩이시며 손수
용하다는 의원 찾아 경주, 대구 등지로
침도 맞고 쑥찜 등 한방을 하기도 하셨지만
결국은 언짢아하시며 믿지 않으시던 콘크리트 10층 최신식 병실에
두러누우신 어머니
그 큰 키에
귀밑머리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리시던
가을날의 잎 진,
바람에도 너그럽지 않게 흔들리는 미류나무처럼
쓸쓸하고
온몸에 눈물 그렁그렁 달린 어머니,
농사철 바쁜 틈 내서
재너머 큰누님은 입맛 잃은 어머니 입맛 되돌린다며
큰 플라스틱 보시기에 보리밥 가득 담아오고
서울 막내누나
어린 조카들 손목 잡고 천리길 병문안 와서는
어머니 아픈 다리 부여잡고
엉엉 소리내어 울며
콧물을 슬쩍 치마폭에 시집보내느라고
고추보다 더 매운 팔월 폭염 아래서
대엿 뙈기 훨씬 넘는 고추밭 혼자서 다 풀 뽑고 김매느라고
환갑도 전에 벌써
이렇게 고장이 났네, 어쩌고 엉엉 우는 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정말
올해도 고추값은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똥값!
옥수수
생명이라는 것은
저렇게 퍼덕거리며 소리치는 것일까
우리집 텃밭에서 자라는 옥수수 잎사귀를 보면
마치 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도 들지만
일평생 동안 고기 한번 제대로 못 먹고 채식만 해오신
아버지의 이빨이 환갑도 되기 전에 다 빠져버리고
평상에 앉아 잘 여문 옥수수 열매를 다듬다 보면
내가 남의 집 머슴 살아서라도 너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울면서 악쓰시던
가난했던 울 아버지의 가지런한 틀니가 다시 보인다
울 아버진 나 학교 시킨다고
질긴 고기 한점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도
왜 그 싱싱하던 이빨이 환갑도 되기 전에 틀니로 바뀌어야만 했을까
팔월 방낮의 저 불같은 햇살은
실핏줄 같은 우리들의 목숨줄인데
남쪽 땅 전주에선 어떤 농부가
하전 부지에 심은 옥수수 수십그루 때문에
농약 먹고 비판 자살했다나
누가 그 농부를 죽였을까
누가 울 아버지 이빨을 모조리 죽여버렸을까
뱀같이 살아 움직이는 잎사귀 속에 숨어 있다가
비수처럼 나의 정곡을 찌르는
저 살인 옥수수
저 살인 농정.
*추수 때가 다 된 하전 부지의 옥수수 수십 그루를 시청 직원이 강제로 베어버리자 그에 비판하여 자살한 전주 박대원(51세)씨 사전이 19867월 16일자 각 일간지에 크게 보도됨.
봄강
간밤의 비에 허옇던 강줄기가 묻히면서
강은 십년 묵은 구렁이처럼 움직인다
우르렁우르렁 소리내어 울면서
혹은 훌쩍훌쩍 남모르게 속으로 울면서
서로으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의 울음소리를 엮으면서 흘러내리는
봄 강
너의 넉넉한 힘 앞에는 이미 적은 없다
우리 앞에 규정된 이 모든 울음들은
하루에 수십번이라도 속으로만 삭이는
분노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그 골짜기마다 얽힌
말 못할 사연
숱한 매듭을 풀어내면서
산업체 부설학교를 나온 막내누이는
이 봄이 가기 전에 또 어디론가 버들잎처럼
흘러가겠지
딸자식과 버드나무는 앉힘을 잘 해야 한다는데
세상의 물결을 따라 떠돌다가
너는 어느 척박한 강 기슭에서
비로소 제 연약한 뿌리를 내릴는지
강죽의 풀잎까지 흔들며 봄비가 내려
그 미세하고 별볼일 없는 힘들이 모여
우르렁우르렁
이렇게 힘차게 끈질기게 흘러내리면
얼어붙은 겨울 강 줄기가 풀려
뿌리를 더욱 낮은 지반으로 뻗은
저 일년생 무명초들의 서러움도 함께 풀릴까
봄 강은 소리죽여 울며 흐르는데
아침 강
농민회관에서 꼬박 밤을 세우고
가을 들풀들이 널브러져 있는 강죽에 올라
아침 강을 바라보았다
간반의 무성했던 논의들로
아침놀을 받은 강은 부챗살처럼 부름작히고
부지런히 모가지를 물속에 처박고 있는 물오리떼 깃털 위로
강은 물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한 폭의 서정을 바라보며
둑길을 걸을 때
풀잎 난간에 얹힌 아침 이슬은 달그락달그락
발길에 채이고
지난 밤 울분에 찼던 복합영농이니
밑가는 추곡수매가격은 간데 없이
바짓가랑이와 팔소매 끝에는
도꼬마리랑 도깨비풀씨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주렁주렁 붙었다
반변천 둑길을 다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에 당도해
나는 온몸에 붙은 풀씨들을 뜯어내면서
길지 않은 더 둑길을 걸어나오듯
일생을 살아가보면
불필요한 물욕들도
더러는 이들 풀씨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붙으리라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속으로 다짐하면서
계속 풀씨를 뜯을 때
반변천을 가로질러 아침 무지개가 황홀히 비껴
떠오르고 있었다.
검둥이
닷새마다 서는 난장터에서
일금 삼만 원을 주고 사온 검둥이
사오는 날은 속고 샀다고 아버지로부터 은근한 질책도 받았지만
이젠 내가 제 곁에 서기만 하면
마치 수십년을 섬겨온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두 발을 쳐들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온갖 교태를 다 부린다.
이것이 개들의 처세나 윤리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러는 이놈이 전혀 달갑지 않아
속으로 이렇게 꾸짖어보았다.
주인이 바뀐 지가 겨우 수삼일밖에 되지 않는데
벌써 새 주인에게 그렇게 충성을 맹세하는
너의 그 교태나 얼러주자고 비싼 돈을 들여 너를 산 게 아니고
유월 초복 지나고 중복쯔음 가서
살오른 네 뒷다리하며 너의 그 어울리지 않는 교태까지도
몽땅 큰 가마솥에 넣어 푹 고아 먹는
보신탕 감으로 너를 고른 것이니
너는 네 위치를 제대로나 알고 그렇게 까부는 것이냐,
물론 나의 이러한 흉중을
이놈이 눈치챌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이봐 젊은 주인, 너희 두 발로 다니는 인간들 중에서도
개보다 더 빨리 자세를 바꿔 개밥보다 더러운 밥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이 무릇 얼마냐라고
낑낑거리며 항변한다면
나로서는 도대체가 할말이 없겠다는 데까지 미치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속 한목판의 양심이란 물건이
자꾸만 근질근질해져서
야 이놈 더러운 똥개야 하고 검둥이를 발로 냅다 차버리고
나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고 말았다.
이 가을
그립그립 들국화 밭둑 위에 그리웁게 피고
군데군데 붉게 살점 묻어나오듯 뒷산 단풍잎 물들면
우렁우렁 우렁껍질 밟으며 벼이삭 주우러 가던
아름아름 아름다운 우리 가을은 어디로 가고 없는지
파꽃같이 목이 긴 막내누나는 서울로 가고
흙먼지만 하늘과 땅사이로 이 가을을 묻어요.
단촌 장날
단촌 장터
평일에는 그 넓은 공터에 먼지와
라면 봉지만 날리고
군데군데 개똥도 무더기져 있는 마늘전 입구는
응달 속에서 개머루만 쑥쑥 키가 커 갈 뿐
정오가 다 외어도 여전히 응달지고
장꾼들은 붐비지 않는다
들리는 소문에 정부에서는
이번에도 또 고추 마늘을 수입한다는데
어디서는 누구가 또
수억 원어치를 매점매석하다가 발각되고
혹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고추 마늘 값이 계속 오름세라는데
소문만 무성히 나돌 뿐
여전히 본격적인 장은 서지를 않고
마늘 대엿 접을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하루해를 다 보내는
아버지의 깉은 주름살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꼬투리 마늘이라도 팔아야
막내녀석 운동화라도 한 켤레 사줄 수가 있을 텐데
‘나이키’는 못 사줘도 보기좋은 흰 운동화라도 사 신겨서
읍내 학교로 내보내야 할 텐데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여름 한나절 해는 소쩍새 소리에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허기져 눕는
닷새마다 쉼없이 애간장을 녹이는
단촌 장터에서
단촌 양파전
요즈음 저자거리에 나서 보면
별스런 사건, 희한한 소문으로
온통 똥구린내가 천지 진동하여 코를 들 수 없으니
국민보건을 위해서라도
그 전모를 발본색원하여 공개 응징해야 마땅하겠으나
구린내라는 게 원래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손으로 건들면 건들수록 더욱 고약히 풍겨나오니
세상 사람들 누구 하나 감히 엄두를 못 내더라
여기에 시정 물정 모르고
평생을 농사일로 손마디가 굵은 촌부 하나가 있어
겁 없이 코를 벌름거리며
많은 구린내 중에서 하나를 골라 천하에 공개하니
눈 있고 코 있는 사람은 모두가 한번씩 와서 보고
느 높은 뜻을 기리기 바라노라
경상도 의성땅에 단촌이라는
산 좋고 물 좋기로는 소문난 마을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그 빼어난 산수와는 달리
예로부터 수천년래 가난은
행주 아지매 앞치마처럼 너덜너덜 기워져
도통 걷힐 줄 몰라
춘궁기만 되면 보릿고개 초근목피에 시달리는데
어느 해 어느 날 갑자기 오색 깃발 나부끼고
꽹과리 소리도 요란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어
무슨 운동 무슨 개혁
많고많은 개혁 끝에 들판의 파종개혁이라
해마다 겉보리 서 말밖에 추수하지 못하는
재래종 보리 파종은 그만하고
수익성 높은 양파 심어 고소득하는 새마을이라는
구호정치 구호농정 아래
가을 추수 후 갚기로 약속하고
양파 씨앗은 농협에서 융자 맏고
씨앗 키울 땅은 소작하여
마을 사람들 앞다투어 양파 씨앗 파종하니
낯선 연장 서툰 기술은 오로지 농민들의 정성
엄동설한 강추위는 오로지 그들의 체온으로 막아내어
이듬해 새봄이 돌아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모두가
농민들이 흘린 땀이요 희망이라
두렁마다 거름 넣고
개구리알처럼 호호 불러 애지중지 키웠더니
꽃샘추위도 살그머니 비켜가고
한여름 불볕더위 아래 뜻밖의 대풍작이라
그 생김새도 둥실넓적한 게
순박한 시골 인심 그대로요
그 맛 또한 허드레한 세상사에
일침을 가하는 따끔하게 매운 맛이라
이름도 단촌 양파로 불리며 갑자기 유명하게 되었는데
오호, 칼 물고 죽을 애지라
이게 웬 마른 하늘의 날벼락인지
추수가 끝나기 무섭게
그 여우 같은 농협조합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터무니 없이 수매가 책정하고
그것마저도 자금사정 창고사정 핑계대며
전량수매를 거부하니
힘없는 농민
당장 저장할 곳 없고 판로도 없어
결실을 그대로 논바닥에 쌓아두니
금세 그 값이 똥값으로 폭락해 발길에 채이고
애타는 가슴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하늘 비마저 내리니
처량하다 단촌 양파여
그대로 썩는구나 마구 썩는 양파 파동이구나
하지만 우리도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수 없다
마을 사람들 힘을 모아 농협에 항의하고
당국에 건의햇으나
줄 없고 힘 없는 농민의 말이라 가는 게 모두 함흥차사되니
돌아오는 그 발길 분노로 달아올라
그런 똥값에 결실을 넘기느니
차라리 썩히겠다는 항거의 뜻을 모아
논바닥에 그대로 방치해두니
양파 써는 구린내는 바로 농민들 가슴 썩는 냄새라
원래가 죄없는 가슴 썩으면
구린내도 더 심하게 풍기는 게 세상 이치인지라
마침내 단촌 양파 썩어서 내는 구린내가
한 마을을 덮고 이 나라 전체를 덮어도
자기 뱃속 썩는 냄새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사람들
모르는 체 외면하니
이 시대는 정녕 농사 천하대본의 시대가 아니라
가난대본의 시대라
눈먼 이 나라 신문 방송 이농대책 시급하다 말로만 방정떨 때도
인건비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 지어 무엇하나
한 사람 두어 집 점차 마을을 떠나니
그 유명하던 단촌 양파도 드디어 사라지고
그 대신 저자거리에는 온통
양파 썩는 구린내만 천지 진동하여
세상 사람들 코를 들고 다니지 못하더라는
가슴 아프고도 분통할
어느 산골의 양파 파동 이야기 한 토막
단촌국민학교
뿔새가 서편 하늘에 수를 놓으면
은버드나무 그늘이 교정을 안개처럼 하얗게 덮고
게단 밑의 살구나무가 신열을 앓듯이
살구꽃 향기를 보리밭으로 흘려 보내던
단촌국민학교
콧수건을 접어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땡땡땡
사변 때 포탄껍질로 만든 쇠종소리에 발도 맞추면서
검정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공차기도 하고
달빛과 어우러져
측백나무 울타리 밑을 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하던
내 유년의 성터에서
모두들 어디 갔을까
이젠 모두들 어기 갔을까
장다리꽃처럼 키가 껑충하던 첫사랑 내 여선생님도
샘이 유난이 많던 짝궁 순이도
손풍금소리에 맞추어 울면서 어머님 은혜를 따라 부르시던
백발의 울보 교장선생님도 이젠 없는
흰구름만 둥실 떠가는
단촌국민학교
모두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20년 만에 서본 운동장은 텅 비어 쓸쓸하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물개구리처럼 뛰고 배우던 우리들의 학습
그 싱싱하고 물빛으로 반짝이던 희망의 이름들
자유, 진리, 정의, 민족, 평등, 민주주의, 사랑, 평화
그 이름들이 아직도 교정 구석구석에 남아 있을까
손때 묻은 책장에서 어린이들은
여전히 꿈을 가지고 그 이름들을 쏭알쏭알 외면서 푸른 하늘을 향해
그들의 키를 쑥쑥 키울까
추억과 현실의 단촌국민학교
그립고 아름다운 내 사랑의 파편.
공업고등학교의 시
등록금 미남으로 등교정지 끝에 제적이 되어
또 한 아이가 학교를 떠났다
경상북도에서는 오지로 손꼽히는
청송에서, 혹은 영양 입암에서
분명 뼈저리게 가난한 농민의 두세 째 아들쯤으로 태어나
자식새끼만은 농사를 짓지 않게 하겠다는
어느 아버지의 그 가련한 희망의 마지막 끈일지도 모르는,
자취생활의 영양부족으로
언제나 양 볼때기에 마른 버짐이 노랗던
네가 결국 학교문을 나섰을 때
명색이 선생인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구교사옥 양지바른 곳에 서서 양복 어깨위에 내려앉은 분필가루만 털었다
평소 그 가볍고 미세하던 입자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지
아무리 털고 또 털어도
내 두 다리는 땅속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았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번영하는 공업입국의 주역으로서의 네 희망도 꿈도
수만 원 등록금 앞에서 너무나 힘없이 거꾸러지는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네가 진작 알았더라면
너는 나에게 뺨을 맞아가면서도
배우겠다고 그토록 몸부림치던 토목과 2학년 3반의 배용준이었을까
그 가을
어떤 마음으로 너는 교문을 나섰는지 알 수 없지만
떠나던 네 등뒤에서 흔들리던 진홍빛 코스모스 꽃잎처럼
내 가슴 깊은 곳에 핏빛 화인을 찍는
내 제자여
농민의 이름없는 아들이여공업고등학교의 시여!
귀 가
4기분 공납금 납부실적 부진으로
무능 교사라고
서무실에서 쫑코 먹고
교감에게 다짐 받고
오늘은 드디어 반 정원의 삼분의 일이 넘는 20명을
수업도 시키지 않은 채 귀가조치시켰다
돈을 갖고 오든지 아니면
학부형을 모시고 오든지 양자택일하라면서
애들을 집에 보내고 나서
교내 매점의 나무의자에 앉아 후루룩
나는 말없이 가락국수를 삼킨다
속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진다
반 애들을 돌려보내면서
이 조치가 담임의 뜻이 아님을 애써 강조했던
허약한 내 모습처럼
그렇게 울면서 쭃겨가는 반 애들의 안스러운 뒷모습도
그애들의 뜻이 아님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정혁이
착하고 부지런하던 북부 산간지방 화전민의 아들
아니 우리 반의 장기결석자, 그의 편지가 나를 울린다
선생님
돈이 없어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가 없습니다
형님은 영주의 중국집에서 우동을 빼는 종업원인데 월급이 25만 원이고
누나는 구미 전자공단에서 월급 17만 원을 받는데
형님은 하나도 집에 안 보태주고
그동안 저의 학비를 대던 누나가 시집을 가게 돼서
이제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그 편지를 읽는다
어느 곳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애의 마음을
위태로운 목의자 난간에 앉아
무능하게 나는 다시 읽는다
4⋅19날 육사 시비 앞에서
4⋅19날 아침
내리는 빗속을 걸어서 육사 시비 앞에 당도했다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고
‘지금 눈 내리고’라고 음각된 비면이 비에 젖어
더욱 깉게 보인다
오늘이 바로 4⋅19 사반세기라는데
길가의 풀들은 비에 젖어 청청하게 솟아오르고
뒹구는 돌조차도 힘이 올라 소리치는 듯하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어깨를 맞대고 무심히 거리를 오간다
비를 맞으며
나는 잠시 고개를 숙여본다
그때, 당신이 북경의 차디찬 감방 속에서
젊은 한시절을 보낼 때
그날 또 다른 당신들이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젊은 한시절을 송두리째 날려보낼 때도
아무 울분 없이 강은 저렇게 잔잔히 흘러갔고
역사도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그냥 스쳐갔을까
이 소도시에서
그날의 참뜻을 새기며 고개를 숙인 아침
강 건너 보리밭이 푸른 깃발을 흔들며 다가오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무어라고 가르칠 것인가
어느 선배 시인의 말처럼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정직하게 살라 하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 위에서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살라고만 가르칠 것인가
어느덧 속옷마저 후줄근히 비에 젖는
4⋅19날 아침 육사 시비 앞에서 말을 잊은 채
나는,
관 선생
어젯밤에
철거민들이 웅성거리는 판자촌의 놀이터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한 분이
등을 구부려 돌멩이와 유리조각을 줍고 있는 모습의
꿈을 꾸다가 잡에서 깨어났습니다
한참 동안 불도 켜지 않은 채
도대체 그분이 누구였을까 곰곰히 생각한 끝에서야
그가 내 어릴적 읽은 위인전집에 나오는
페스탈로찌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 나는
페스탈로찌가 어떤 사상가인지 교육자인지도 전혀 모르는 채
단지, 그가 빈민가에서 어린이들의 발이 베일까봐
유리조각을 줍는 모습 하나만 보고
다음부터는 학년초마다 적어 내던
존경하는 인물란에 항상 그의 이름을 써놓곤 했습니다
우연인자는 몰라도 그후
나도 주로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시골학교의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해 좀더 상세히 설명한다면
그것이 바로 엄청난 음모의 목죄임임을
좌경이라는 무서운 덫의 입구임을 이 땅에 살아보지 못한
페스탈로찌 선생은 아마 모를 겁니다
그가 지금 이 시대의 교육현장에 선다면
그 역시 판자촌의 깨어진 유리조각을 주웠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관 선생’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누군가에 의해서 감시받고 보고되는
요주의 관찬대상 선생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그는 아마 모를 겁니다
보충수업 10년
-吳潤 목판화
오윤 유작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동에서 대구까지 두어 시간을
그것도 지독한 빗속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누구의 영혼이 그렇게 젖는지
산이란 산은 모두 뿌옇게 가라앉으며 삼각형으로 묻혀 갔습니다
대구직할시 수성구
전경들이 위압적으로 서 있는 민정당사 옆 지하 화랑에서
그리운 얼굴들도 몇몇 화살처럼 나를 향해 날아왔지만
내 눈에는 오직 당신의 흑백 목판화
‘보충수업 10년’만 보였습니다
낡은 양복에 삐뚜름 넥타이를 매고
나이보다는 훨씬 늙어 보이게 하는 얼굴 주름이
파도처럼 허기진 나를 향해 밀려왔습니다.
저건 10년 후의 내 모습이 분명하군
선생도 별수없는 민중이야,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죽어도 보충수업을 못하겠다는 아이들과
죽어도 보충수업을 하라는 교감선생님의 얼굴이
자꾸만 소리칩니다
학생들 피 빤 돈 내놔!라고 윽박지르며
유독 숙직교사만을 심하게 찌르고 달아나다 잡힌
이웃학교의 나이 어린 강도의 모습도 자꾸만 떠오릅니다
오윤 목판화 ‘보충수업 10년’
너무나 그리운 모습이지만 당신은
나의 울음입니다
몸서리치게 아름답고 아픈,
아버지
이젠 벌써 환갑이 넘으신
유난히 드러나 보이는 광대뼈와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
사진을 통해서 본
몽골리안이나 퉁구스족의 한 보기와도 너무 흡사한
평생을 흙과 함께 두더지처럼 살아온
전형적인 이 땅의 농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자식 교육에는 억척을 보이신
아버지
경찰서에서 오늘은 무슨 통보를 받았는지
아니면 TV에서나
동네 사람들에게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통 애원이시다.
얘야, 네가 우리집 기둥이다
바람이 불 때는 바람 쪽으로 쏠리는 풀잎이
결국은 상하지 않는 법이란다
이렇게 다소 시적인 표현도 하면서
아들의 젊은 혈기를 못 미더워하신다.
요즘은 출근 전의 나를 붙잡고 몸조심을 당부하는 것이
어느새 아버지의 일과가 되었다.
발버둥을 치지만
아버지 안에서 나는 점점 왜소해지고 만다.
제자여
제자여
오늘도 길거리에서 문득 너희들을 만난다
쌀가게 배달원이 되어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는 너를 만난다
벌써 직업군인이 되어 하사 계급장을 단
푸른 옷의 너를 만난다
대도시 한 서점의 점원이 되어 책을 팔고 있는
허르스름한 옷차림의 너를 만난다
야간 전문대학생이 되어 낮에는 염색공장
밤에는 학교로 쫓기는 바쁜 너를 만난다
제자여
그런 너희들을 만날 때마다 못난 선생인
나는 반갑고도 아프다
아픈 까닭은 너희들이 명문대생 좋은 직장의
사원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찢기고 갈라진 분단된 조국
남쪽의 한 오지에서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는
너희들의 모습을 통해
분단된 이 민족의 깊은 상처를 보는 것 같아 아프고
그럼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 줄 아는
너희들이 반갑다
제자여
지금 너희들이 각자 그렇게 서 있는 자리가
현실적으로 별볼일 없고
너희 말로 쪽팔리는 자리일지 몰라도
우리는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제자여
부정한 이 슬픔의 시대
지금 못 먹고 못 사는 것이 절대 죄가 아닌 세상이 올 것이니
그날을 위해, 반드시
언젠가는 오고야 말 그날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부지런히 두 팔다리의 근육을 키우고
지독하게 책을 읽어야만 한다
또 그렇게 철저하게 이 세상을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
제자여
사랑하는 제자여
신탄리
-아우에게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어머니는 집에 와서 여장을 풀고도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막내아들 첫 면회에 애처로움을 속으로만 삭이시는 모양이다.
그 곁에서, 나는 인정머리없는 형이라고 질책당할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만
그러나 나는 네가 분단된 이 땅의 북쪽 한 끄트머리를
그것도 항시 너의 목숨을 노리는 지뢰밭과 무수한 긴장이 감도는
철책선 근무를 맡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
이 형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노루꼬리만큼 짧은 겨울 하루 낮을 달리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어가 핏빛처럼 선명히 찍힌
신탄리 전방의 그 어느 곳이 아니라
며칠 주야를 쉬지 않고 달려도 도착할 수 없는
한겨울에는 오줌줄기가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붙어버린다는
요동지방 북쪽, 그 어디쯤의 국경수비대로 근무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가슴 부푼 상상도 해보았다.
한때는 그곳도 우리의 터전이었다는데
아우야 그러나
봄이면 진달래가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산기슭
이름없는 풀꽃 사이로 더덕과 지뢰밭이 함께 어우러지고
관측대에서 내려다보면
너와 똑같은 또 한 사나이가 점선처럼 금방 떠오르는 곳
그곳은 지금도 여전히 너의 땅 우리의 살점임을 너는 알겠지.
행여 그쪽을 향해 두 눈 치켜뜨는 증오심은 갖지 말아라
그곳에도 분명 네 어머니같이 눈시울 붉히는 분이 계시리라
전입병 신참인 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눈앞에 펼쳐진 널따란 평지를 보고 저곳에서
북쪽 아이들과 편갈라서 축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모두 쏴 죽여야 될 적들과 축구를 해 ! 어린 소대장의 그 한마디에
정신무장 불철저로 종인 완전군장 뺑뺑이 돌고 나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평지라 아니라
붉은 갈대밭의 끝없는 펼쳐짐이었다고 네가 말햇을 때
문득 나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엄청난 착시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었다.
아우야
지금의 너의 위상은 분단된 조국의 아픈 허리
그 엄청난 증오의 맞닥뜨림이 비수처럼 너의 살갗을 찌르는 곳
그러나 너는 증오를 쉽게 배우지 마라
너의 싸움의 대상은 절대 그곳이 아니다
삭풍이 부는 이 한반도 위에서.
2⋅28탑
너는 증거하기 위하여 서 있다
비바람에 씻기고,
너를 찬양하고
너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바쳐졌던
온갖 진귀한 꽃들이 불같은 여름에 꺾여 사라져도
너는 서 있다
그날을 증거하고
굳어버린 우리들의 뒤통수를 향해 쇠망치를 내리치기 위하여
너는 여전히 우뚝 서 있다
*1960년 2월 28일 당시 부패한 이승만 독재체제에 항거하며 일어났던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의 의거를 기념하여 세운 탑, 2⋅28의거는 그후 4월 학생혁명의 전조가 되기도 했음.
슬픔 없는 곳
슬픔 없는 나라도 있을까요 이 세상에
고통 없는 터전도 있을까요 이 천지에
혹시 산 넘고 물 건너 그곳에 가면
흰 뭉게구름
푸른 미류나무가 면류관처럼 자라고 있는
그곳에 다다르면
슬픔 없고 고통 없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그곳으로 가긴 싫어요
기쁨과 행방만이 있는 곳이라 하여도
싸움 없이 그곳으로 가긴 싫어요
이곳에서 한치도 비켜서지 않겠어요
오늘도 문화회관 앞 사거리에 나선 형제들
농가부채 탕감하라 !
소값 폭락 보상하라 !
농민 죽이는 농산물 수입 중지하라 !
자욱한 최루탄 가스 연기 속으로
줄지어 선 전경의 차가운 어깨 너머로
그들의 해방, 피할 수 없는 싸움
숨어서 숨어서 가슴 두근거리며 보고만 와서
그 부끄러움, 비겁함 씻으려
구시장 복판 순대국집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로 마음 달래보지만
두려움은 점점 더 연민으로 변하고
나의 노동도 이젠 화해할 수 없는 싸움
정말 슬픔 없는 나라도 있을까요 이 세상에
고통 없는 터전도 있을까요 이 천지에
진정한 싸움 끝에야 다다를 수 있는
늦가을 백반 없이 손톱에 들인 봉숭아 물감처럼
언제나 훤히 불이 켜져 있는 그리운 그곳은
누 님
참 그립습니다
누님, 내 고향 오월은
산뻐꾸기가 보리밭에서 알을 품다가
푸드덕 깃 치며 날아오르고
그 깃살에 놀란 들판은 더욱 넓게
부챗살처럼 어깨를 펴던
보리깜부기로 엉머구리 쫓아
논둑길 해매이다 해그름 곁에 지쳐 잠들면
엉멍 엉멍
엉어구리 울음소리
먼 꿈속같이 들려오면 내 고향 오월은
이제는 어디로 가고 없을까요
누님, 이 땅의 슬픈 이름의 꽃
숱한 이름없는 풀꽃들이
오월의 하늘 아래 지천으로 피어나도
곤한 내가 엎디어 잠들곤 하던
비단결 같은 누님,
누님의 젖가슴은 왜 피 묻었나요
누군가에 의해 소문도 없이 없어져버린
보리밭의 푸르르던 누님의 오월은
망 월 동
-옥중의 고규태에게
1
여름방학 보충수업 팽개치고
뜨거운 남쪽 도시를 찾아갔던
소낙비 속을 흠뻑 젖으며 금남으로 지나
도청 분수대 뒤편의 광주출판사를 찾아갔던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비를 맞으며
그 봄에는, 비가 아니라 우리를 죽인 총탄이었을
그 흉기를 맞으며 출판사를 걸어나와
금남로 충장로 남일빌딩 뒤편
지금 다시 불타올라야 할 방송국 앞 소주집에서
오월시 이형이 사준 술을 마시고도
나는 취할 것 같지 않았다
그 밤은 전혀 잠들 수 없었다
2
말월동 가는 길
광주교도소 지나 한참쯤 걸어 흙먼지 길로 접어들면
푸른 벼포기 눈부신 빛깔과 엉머구리 소리가
피멍울처럼 배어나오는 논둑길을 질러
망월동에 다다르는 길은
여름이면 이 산천이 모두 그러하듯이
쑥부쟁이 돌쩌귀 조밥꽃들이
너무나 순결하게 피어 있었고
너는 지난 봄의
보리밭 싸움에 대해서 간간이 숨을 끊어가며
그때 못자리 논에 짓밟혀
흙투성이가 된 채 끌려간 친구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말없이 홀린 듯 숲을 향해서만 걸었다
망월묘지 가던 길
3
무덤 앞에서
죽음의 냄새가 채 사라지지 않은
팔월의 뜨겁고 끈적한 빛줄기가 나를 옭죄일 때
나는 숨막히는 듯한 갈증으로 목이 탔었다
살아생전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
그래서 더욱 그리운 형제들의 죽음 앞에서
소주 몇 방울 뿌려놓고 엎디었을 때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진실 앞에서
살아 있음이 그렇게 욕되게 느껴졌을 때가
또 있었을까
종내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곳
사랑과 역사
우리 나아갈 길을 다시 깨우치고 떠나온 곳
그때 두 손 꽉 움켜쥐던
너의 체온은 아직도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오늘 화살처럼 날아와 내게 박히는 소식 한 점
구속, 국가보안법 위반
그 엄청난 죄명은 망월동 가는 길목의 푸른 하늘
푸른 들판 꿈꾸며
푸른 세상 꿈꾸며 만들어낸
책 때문
벼
꼿꼿이 서서 타죽을란다
아예 미련이니 슬픔이니 그따위 치사스런 것은 버리고
누이야
나는 이 불볕 더위 아래서
알몸으로 꼿꼿이 재가 될란다
내 입사귀가 넓지 못해
스스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은밀히 자라지 못하고
외곬으로, 타협하지 않고 외곬으로 뻗어나
전신이 노랗게 타 없어지더라도
나의 뿌리는
이 땅의 방방곡곡 시벋은 자갈땅으로라도
깊게 뿌리내림을 기꺼워하며
꼿꼿이 타서 죽는 재래종 벼가 될란다 가난한
내 누이야
나는 아직 어리고
감히 겁 없은 맹세를 이렇게 쉽게 한다만
삶은 손쉬운 맹세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값싼 화해로도 지켜지지 않는다
누이야
나는 부는 바람에 꼿꼿이 서서 버티고
돌멩이가 날아와도
나는 맞아 꺾이면서 버티다가 불타 죽을란다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팔월 한가운데 서서
∎후기
지난 84년 1월에 이른바 문단에 데뷔라는 걸 했으니 올해로 꼭 20년이 된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동안 문학 때문에 행복했던 때도 있었고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 때문에 우울하고 의기소침했던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를 앞에 두고 가슴 끓이고 속상해하던 청년기의 그 순정이 그립다.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 『푸른 별』은 문단에 데뷔하기 전인 20대 초반부터 쓴 시를 묶은 것이다. 열정과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기는 하나 미숙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 역시 별로 내세울만한 시가 없다. 그간의 문학적 태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물이다.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시선집을 엮기 위해 기왕에 써온 시들을 들여다보면서 차마 보지 않았어야 할 것을 본 것처럼 찜찜하고 쓰리다. 주변에 좋은 스승, 문학 선배, 동도들이 많았음에도 이런 정도에서 멈춘 것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천학비재와 게으름 때문이다.
이 시선집은 정치활동을 위해 기획한 것이지만 시를 고르는 과정에서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가장 문학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문학과 정치를 별개로 보지는 않지만 시선집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문학에 닿고 싶다.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지만 특히 바쁜 일정에도 훌륭한 해설을 써준 이강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2004. 1. 5 김용락
∎해설
김용락의 시와 시 속의 김용락
이 강 은 (문학평론가, 경북대교수)
시사무사(詩思無邪), 즉 시란 생각에 사악함, 거짓이 없음, 그리하여 지극히 진실한 것이라고 했다.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김용락의 시와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무엇보다 이 사무사 정신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시인이 도대체가 어떤 꿍꿍이 같은 뒷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좀 꾀를 부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아니면 뭐 좀 제 잘났다고 내세우는 모양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시도 딱 그렇다. 그리운 것, 슬픈 것, 괴로운 것들이, 사람 사는 모습들이 그대로 시에 들어온다. 그리고 함께 김용락도 들어온다. 그래서 그의 시를 보면 김용락이 떠오르고 김용락을 보면 그의 시가 떠오른다. 김용락의 시와 시 속의 김용락이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제 자신을 시 속으로 온전히 드러내고, 또 드러낸 대로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지순하고도 수더분한 김용락 나름의 사무사정신인 셈이다.
표 나지 않으면서 결기가 있고, 결기가 있으면서 부드러운 사내.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제법 거칠고 마음에 맺힌 것 또한 적지 않겠지만 시에서나 생활에서나 그게 유별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대와 현실에 맞서 싸워온 그로서는 할 말도 많고 소리칠 일도 많을 터이지만 그는 사람들과 함께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의 시나 생활이 유약하거나 물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항상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고, 해야 할 일은 회피하지 않고자 했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격동의 현실에서 한 개인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정말 그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고 고난의 길이었던가. 그 댓가로 김용락이 받지 못한 것은 안정된 문학 교수 자리요, 행세깨나 하는 신문기자요, 번듯한 회사의 직함이다. 그리하여 그가 있었던 곳은 바람 부는 갑판 위,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추운 ‘단촌 들판’이다. 그래서 그를 설명하려면 사무사라는 시 정신에다 다산(茶山)의 "임금을 사랑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고 퇴폐적 습속을 통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단 진실을 찬미하고 거짓을 풍자하거나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목민심서』) 라는 시론이 또한 필요할지 모른다.
김용락의 시가 공자님의 사무사 정신에다 다산의 역동적 현실정신을 온전히 구현하였다고 추켜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이 그런 경지를 모르거니와 시인 자신도 무턱대고 아무 칭찬에나 벙긋거릴 인물이 아니다.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할 수도 없다. 다만 위대할 따름이다. 김용락은 그런 위대함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도 싶어 할 뿐, 그의 시는 우리의 시야와 ‘어느 정도’를 넘지 않고자 한다. 아마도 그것이 김용락이 선택한 운명이자 시적 운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운명이 선택된 자리는 그의 고향 어디쯤임에 틀림없다.
그의 첫 번째 시집 『푸른 별』에는 고향의 산천과 사람들, 그 고단한 삶의 그리움과 설움이 ‘풀물 배어나오듯’ 한다.
안마당
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
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
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 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마지막 남은 목숨 모깃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초저녁 샛별이 뜨고
연기 맵고 모기 극성스러울수록
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
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
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
울 여린 멍석 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 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
밤이슬에 반짝이고
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
누나들의 발짝 소리가
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
「푸른 별」부분
시인의 정겨운 고향 추억이면서 우리 모두의 체험임에 틀림없는 풍경이다. 어려울 것도 없고 억지부릴 일도 없다. 모깃불 지피는 묘사나 보릿대궁 한숨소리, 달맞이꽃 개울물 등과 같은 고향의 정서, 그대로 기억하고 쓰면 되는 것이다, 김용락에게는. “뒷 울타리의 산수유꽃/ 흙담장 아래 코딱지꽃”(「고향」)을 있는대로 본대로 말해주면 된다.
김용락의 고향은 그렇다고 안온한 추억의 대상만은 아니다. 분명히 시인은 고향을 원형과도 같은, 건드릴 수 없는 영혼의 공간으로 그리고 있지만 현실의 공간으로서 고향은 이미 깨어지고 이미 갈라져버린 곳이다. 시인은 자주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 고향은 이제 순수의 공간으로서의 그곳이 아니다. 그곳은 ‘가난한 농군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숱한 우여곡절 굽이마다 눈물로 넘어 자신의 살점으로 우리들의 뚫어진 곳을 채워주며 살아오신’(「손국수」) 어머니의 삶의 터전이며 자본주의 경제의 뒷그늘에서 우울하게 쇠락하는 단촌 장날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시장을 더욱 확장하고 활성화하건만, 단촌 장날은 ‘닷새마다 쉼 없이 애간장을 녹이는’ 퇴락한 시장일 뿐이다.
단촌 장터
평일에는 그 넓은 공터에 먼지와
라면 봉지만 날리고
군데군데 개똥도 무더기져 있는 마늘전 입구는
응달 속에서 개머루만 쑥쑥 키가 커 갈 뿐
정오가 다 외어도 여전히 응달지고
장꾼들은 붐비지 않는다
「단촌장날」부분
‘정부에 의한 고추 마늘 수입’이나 ‘매점매석’, ‘국회의원 선거에 따라 춤을 추는 농산품 가격’ 등은 자본주의 시장의 능란한 수법이다. 이 ‘시장’에 나온 아버지는 ‘바늘 대엿 접을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하루해를 다 보내’고도 ‘막내녀석에게 나이키는 못사줘도 보기좋은 흰 운동화라도 사’줄 장사를 하지 못한다. 장사를 하지 못한다! 옥수수를 보고 “생명이라는 것은/ 저렇게 퍼덕거리며 소리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고, “하천 부지에 심은 옥수수 수십 그루 때문에/ 농약 먹고 비관 자살”하는 농민에게 살아 움직이는 노동으로 길러낸 옥수수는 ‘퍼덕거리며 소리치는’ 생명 그 자체일 뿐 달리 돈 몇 푼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이들이 조금 더 열심히 뭘 좀 해보려고 해도 그건 더 큰 화를 부르기 십상이다. 재래종 보리 파종은 그만하고 수익성 높은 양파 심지어 고소득을 올려보라는 정부의 권유에 이리저리 융자받고 빚내고 노심초사 대풍작을 이루었지만 시장의 논리와 농간에 “금세 그 값이 똥값으로 폭락해 발길에 채이고”, “양파 썩는 구린내는 바로 농민들 가슴 썩는 냄새” (「단촌 양파전」)가 되고 만다. 대풍작을 이룰수록 손해를 보는, 즉 공급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농민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일 뿐이다.
김용락 시인이 무녀져가는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사태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만 시인은 이 혼란하고 갈라진 현실에 대한 절망 앞에서 원형질 같은 고향의 정서로 자꾸만 돌아간다. 시인이 바라보는 현실의 균열은 자꾸만 커져가고 사람들은 거듭 고향에서 떠나가는데 그는 상실된 고향을 아쉬움으로 추억하며 그리워한다(「단촌 초등학교」). 그리고 망실이 되어가는 고향 사람들의 쓰라린 역사가, 이제 교사가 된 시인의 제자들에게 아프게 반복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그는 “무능교사라고/ 서무실에서 쫑코 먹고/ 교감에게 다짐받고” 어린 제자들을 “돈을 갖고 오든지 아니면/ 학부형을 모시고 오든지” 하라면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속이 찢어질 듯한 통증”(「귀가」)을 느끼는 이 시인이 어떻게 그런 학교에 편안히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움으로서의 고향과 망실되어버린 고향은 엇갈리며 김용락 초기 시에 그려진다. 초기 시에 이 엇갈림은 엇갈림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면, 두 번째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서는 보다 깊은 역사적 현실 체험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교차점이 모색되고 있다. 그의 시의 고향은 이제 대구를 포함한 경북 지역으로 확대되고,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 제자들을 넘어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된다. 시인의 정신적 고향은 한반도 전역(「조탑동」)으로 넓혀지고 역사적 상상력은 분단시대를 직시한다. 그의 눈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현장으로 (「빵」,「돌나물」,「와이셔츠」),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신 끈을 졸라매면서」,「애국군인」), 일상생활의 현장으로(「대구의 페놀 수돗물」,「지상의 방 한 칸」), 국세정세 속으로 (「대덕산」,「팀스피리트」)파고든다. 세상에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더욱 견실해지고.
빵 굽는 한사람의 사내를 성장시키는데
며칠간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약간의 슬픔이 필요하듯이
빵 하나를 익히기 위해서도
밀밭을 스치고 가는 한줄기의 바람과
한올의 태양이 필요하다 한점 별빛과 땀방울이 필요하다
새벽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또 한사람의 발길이 필요하다
「빵」부분
세상과 자신이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만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은 초기 시에서 정신적 고향과 현실적 고향모습이 엇갈리며 비껴가는 것을 넘어서게 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정신적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가고자 하는 시적 성숙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성숙은 마침내 절제된 시적 표현으로 응결된다.
내 고향에서 돌쩌귀라고도 불리며
가끔씩은 물김치나 비빔밥거리고 먹히기도 하던
뒷산 시커먼 암벽 틈서리에서
연초록빛으로 조심스럽게 불어나던 그 생명줄
오늘은 고춧가루에 깊게 절여서도 여전히
연초록이다 봄의 눈빛이다
숨길이다
나는 갑자기 후배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너의 고향에도 돌나물 있니? 힘 좀 내봐
그러나 갑자기 진한 그리움과 슬픔이
내 전신을 마구 흔들었다
「돌나물」부분
오로지 관객들은 무대 위의 그녀를 향해 열광하고
밴드가 끝나면 흩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철저히 무명이닌까
그녀가 바로 세상이닌까
「무명」부분
퍼붓는 진눈깨비 속에서
산수유나무가 등 같은 노란 꽃을 달았다
그것도 가시덤불 틈바구니에서
사람이 헛된 집착에 매달리면
눈이 멀어지는가보다
나는 피투성이 짐승처럼 꽃 주위를 서성인다
「봄」전문
참 좋다. 세상을 제 마음대로 움켜쥐려고 위세를 부리지 않고 내몰라라 몽상 속으로 도망치지 않는다. 시인의 정신은 세상과 자신의 육체 사이 고뇌하며 움직이고 있다. 실직한 후배와 돌나물을 앞에 놓고 망연히 할 말을 잃고 마주하다가 툭 어깨를 치니 그의 정신이 ‘진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일렁인다. 독자인 나의 마음도.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잊혀지는 무명가수, 그 자신이 바로 세상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진실이 어려운 말없이 그의 시에 획득된다. 그러나 김용락의 깨달음은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지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나와 세상의 불우한 엇갈림에 대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치열한 서성임이라는 것, “피투성이 짐승처럼 꽃 주위를”서성이는 불면의 고뇌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하여 시인은 물 한잔에도 계급성이 담겨 있음을, ‘이사할 집 방세 50만원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최순희씨의 죽음’에 쓰인 가혹한 자본의 논리를 폭로하고, ‘서정과 청춘의 대덕산정에 숨겨진 핵탄두’ 앞에서 우리의 땅은 지금 ‘미국의 땅인가, 식민지인가’를 준열하게 묻는다.
그러나 시 세계가 확대되고 세계를 보는 시인의 눈이 높아지면서도 초기 시의 엇갈림 현상은 여전하게 나타난다. 즉 김용락은 현실의 어둡고 우울한 장면 앞에서도 목청 높여 비난하고 분노를 드러내는 일과 자신의 정신적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을 종종 독립적인 서정으로 옮겨놓곤 한다. 시인이 ‘가시덤불 틈바구니에서’ ‘피투성이 짐승처럼’서성이기보다 너무 일찍 세월을 받아들이거나 (「나이를 먹는 슬픔」) 관조로 물러나고 (「귀가길」), 자신의 결기를 지식인의 한계로 동조해내려는 (「신 끈을 졸라매면서」) 태도는 앞에서 얻은 시인의 자세를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세 번째 시집 『시간의 흰 길』은 한층 성숙된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이제까지 시집들 뒤에 실려 있던 발문과 해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푸른 별』에서 권정생 선생이 「성실하고 따뜻한 시인」이라는 발문을 통해 “시는 감기처럼 쉽게 뱉어지는 아픔이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들의 산고의 고통에 버금가는 아픔이 따르는 것”이라고 “아직 젊고 그리고 영원히 소년처럼 깨끗할 듯싶은” 젊은 후배에게 던져준 말이 어떻게 시인을 만들어가도록 계고해왔는지 실감한다. 그리고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서 염무웅 선생이 김용락의 인간됨을 간파하고 그의 시를 ‘동심적 순수와 혁명적 이상’이라는 말로 묶어주면서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결의, 현실운동과 개인적 실존 간에 숨길 수 없는 균열”을 지적해야 했는지 알게 된다. 또한 배창환 선생이 김용락을 ‘제자리를 지킬 줄 하는 시인’이라고 평하면서 부러워하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시는 계속 움직이고 있고 시인도 계속 활동하고 있다. 이 움직임, 활동 속에 김용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계고와 지적을 담은 북돋는 말들과 우리 현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성장 등이 함께 있다. 시인 자신의 말대로 ‘태양과 별빛과 땀방울, 서성거림’ 등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그의 모습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소년처럼 깨끗한 동심의 순수’는 이제 조금은 우울한 그러나 어엿한 어깨를 가진 중년의 그것으로 변해있다. 혁명적 열정이 불러들였던 저 거친 세상의 편린들은 가만가만 도닥거려 진다. 그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잡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이제 그대로 놓아줌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관계시키고자 한다. 「눈내린 숲 속의 밤」을 보라. 눈 내린 숲 길에 멈추어 서서 문득 ‘잠들지 않은 숲의 정령들’을 보고 ‘깨어있는 영혼은 제 홀로 저렇게 빛나리라’고 느끼지만 ‘나는 그 공간 속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았다.’
가야할 길이 바쁘거나 누군가와 약속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내 가여운 정신이 그날 밤의 풍경을
온전히 지탱하지 못했다 생애 처음 맛본 듯한
동굴처럼 깊던 그 눈 내린 밤하늘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청춘이 내게는 이미 없었다
「눈 내린 숲 속의 밤」
언뜻 처연한 허무주의같다. 그러나 아니다. 이러한 시흥이 보다 젊었던 시절의 시인에게라면 조금이라도 더 의미를 강조하고 긴장시키려고 힘이 바짝 들어간 시어로 표현되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있는 것보다 좀 더 굳은 어떤 결의 같은 걸로 마무리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도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이 나이의 김용락은 이제 내버려 둔다. 숲 속의 눈을 ‘깨어있는 영혼’이라고 비유하다가 이내 ‘상투적인 생각’이라고 털어낸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를 떠나지 못한다. 드디어 그는 차를 멈추고 ‘담배를 빼 물었다’ (왜? 그의 영혼이 이미 저 눈의 눈부심으로 후달리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다.) 그리고는 눈 위에다 오줌을 갈긴다. 가위표도 그리고 하트와 별 모양도 그리며 장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장난 같은 행위가 오히려 “오줌 줄기가 대지에 닿기도 전에 /은밀하고 싱싱한 기쁨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태초에 신의 손길이 지상의 모든 물상에 닿았을때도/ 아마 이런 느낌이었으리라”라는 우주적 영감으로 비상한다. 짐짓 외면해버린 생각이 장난같은 행위를 따라서 그의 몸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숭고한 감성의 순간에도 김용락은 매달리지 않는다. 곧 바로 자리를 떠버리는 것이다. ‘동굴처럼 깊던 밤하늘의 무게를 감당할 청춘’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시의 전편에 걸쳐서 ‘동굴처럼 깊던 밤하늘의 무게’나 ‘태초의 신의 손길의 느낌’이나 ‘깨어있는 영혼’ 등은 그 자신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청춘이 감당하던 몫과는 다른 감당을 하고 싶다는 얘기다. 김용락은 이 느낌을 움켜쥠으로써 그것을 구겨지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로 두어야만 온전히 그의 것이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사상을 움켜쥐지 않을 때, 숲길에 멈추어 서서 장난스레 오줌을 누고 흠칫 바지춤을 올리는 그의 모습이 비로소 살아난다. 물론 그 이념도 이념대로 살아난다.
이전의 시들에서 보이는 이념과 실제 사이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시인은 슬쩍 방심(放心)하여 놓아버린다. 억지로 거리를 좁히고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거리가 있으면 있는대로 두고 차이가 있으면 있는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김용락의 방심은 무장해제가 아니라 세상 그 자체에 몸을 의탁하여 “그렇게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던 눈 내린 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로 그를 끌고 가는가. 「야간산행」을 보자. 흩뿌리는 빗방울을 뒤로하고 가파른 밤 산을 오른다. 그런데 일행 몇몇이 길을 잘못 든다. 그러나 돌길 가파르고 가시덤불 우거진 그 길 언저리에서 무리지어 피어있는 산수국을 보게 된다.
산행에서 길을 잃고서야 마주하게 된
한 무더기 꽃을 보면서
길을 잃어야만 볼 수 있는, 그것도 지극히 눈부신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야간산행」부분
시인은 길을 잃어야만 볼 수 있는, 그것도 지극히 눈부신 그 무엇에게로 간다는 이 구절은 김용락 시인의 빛나는 시적 영감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런 시적 태도를 얻은 시인은 시적 영감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런 시적 태도를 얻은 시인은 사물과 사람을 더 분명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 번째 시집에서 사람들이 집단이나 추상명사로 나타나기보다 아주 구체적인 실명으로, ‘주소와 이력서를 가진 사람’으로 그려지고 그 시적 성취도 빼어난 것은 분명 이와 무관하지 않다(「60년」,「80년대식」,「시인」,「남송희씨」,「용산동 시편」,「두 번째 시집」,「그 사내」,「장미」,「이미자 쇼」,「배호 노래」,「단촌역」…). 그러나 더 복잡한 현실, 난마처럼 얽힌 이 땅의 삶의 모습이, 그 아픔과 설움이 더 다양하고 더 폭넓게 김용락의 몸을 거쳐 나와야만 하는 것은 그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김용락이 더 깊게 현실로 돌진해간다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가 체득한 저 경지가 이미 그의 성취를 예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김용락은 인간으로서나 시인으로서나 성숙한 시대를 맞고 있다. 그리운 고향에의 꿈과 무너진 고향의 현실, 그 간극이 그를 시인으로 탄생시켰고 그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그는 시로서나 삶에서 열심히 싸워왔다. 그 싸움이 때로 절망으로, 때로 희한으로, 때로 격렬한 분노로 이어졌지만 끝내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성숙의 눈길은 자연광 등불처럼 세상을 비추면서 세상을 드러낸다. 시를 쓴다는 일은 드러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만들어내는 일이다. 창조다. 고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시는 농사짓는 일과 비유 되었다. 비록 돈을 주면 얼마든지 시를 사고 쌀을 살 수 있겠지만, 돈만으로는 결코 시도 쌀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돈은 종이나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시나 쌀은 김용락 농부의 몸을 거쳐 생산된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용락이 앞으로 더욱 더 깊고 넓게 우리의 세상과 우리들을 거듭 창조해주리라 믿는다.
첫댓글 내고향은 의성.. 옥산의 우리집을 가려면 단촌을 거치고 점곡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곳.. 의성역에서 달랑 한 정거장..흙이 붉어 단촌이 되어 양파가 맛나게 살찌는 곳.. 고운사가 가까워 그곳 가는 길이면 골골이 들려 오던 친구들 웃음소리.. 어느 솔숲 백로 무리들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곳.. 그곳 단촌..
비오는 날.. 도회를 향한 동경을 이길 수 없는 무건 경적소리 골짜기를 울리는 날...철로주변 자갈을 한번도 밟아보지 않은 자 있을까 ? 그래서 우리는 도회로 도회로 떠났고. 이따금의 고향길은 서글픈 후회만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 [내고향의성]으로 업어갑니다..
좋은 거 있음 많이 업어 가세요 ~~ ^^* 반갑습니다. 전 처음 뵙는 것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