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물안개로 둘러싸인 강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오랜 가뭄으로 잠시 흐름을 멈춘 강바닥의 물웅덩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 물감이 더해지고 있는 갈색 대지 속으로 새벽기차는 소리도 요란하게 달려가고 있다. 요즘 새벽녘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기차여행을 즐긴다. 지난 3월 초 인사이동으로 근무지가 바뀌어 경주에서 포항까지 동해남부선의 통일호 완행열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하게 되었다. 하루 왕복 차비가 2,400원인데, 월 정기권을 끊으면 40% 할인해서 25,200원 정도이니 공짜로 다니는 기분이 든다. 경주에서 포항까지 형산강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철도는 일제 강점기 때 생긴 것으로, 온갖 사연과 역사가 서려 있는 한 많은 길이기도 하다. 작은 마을과 마을 사이로 연결된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80여 리의 거리를 오가는데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옛날에는 이 사이의 정거장은 경주역⇔라원⇔청령⇔사방⇔안강⇔양좌동⇔부조⇔효자⇔포항역이었다. 지금은 서너 군데만 정차하고 나머지 역은 통과역으로 모두가 조그마한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기차를 타고 좌석에 앉으면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아니면 사색에 잠긴다. 아니면 잠시 눈을 붙여 잠을 청한다. 대도시의 숨 막히는 버스와 지하철의 출퇴근 전쟁과 1~2초를다퉈가며 곡예 운전 끝에 도착하는 승용차로의 출퇴근과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출발과 도착시간이 일정하여 일단 기차를 타고 난 뒤부터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출퇴근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어 마음이 안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창 밖 자연의 변화와 산천을 유심히 관찰할 수는 있는 재미가 있어 좋고, 가끔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과 자신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길이요, 추억의 길이기도 한 이 길과의 인연은 제법 깊다. 기차를 본격적으로 타 본 것은 지금부터 36-7년 전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경주시내 학교로 입학했던 1968년쯤인가, 그 당시의 기차는 기관실 뒤에 석탄을 싣고 다니면서 사람이 수시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 퍼 넣어 물을 데워 수증기를 이용한 터빈 증기기관차이었다. 소리도 요란하게 ‘칙~칙! 푹~푹!’ 산천을 울렸다. 석탄재가 날려 새하얀 교복이 하루만 입어도 새카맣게 변하여 어머니가 밤새 빨아 구들목에 말려서 새벽녘에 숯불 다리미로 다려 입혀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새벽 별을 보며 15여 리 길을 걸어 나와 양좌동역에서 경주까지 통학을 했다. 어느 날 양좌동역에도 간이역사와 기차표를 발매하는 창구가 생겼다. 기차표를 팔던 역장댁엔 내 또래쯤 되는 까만 눈매가 반달처럼 생긴 긴 머리 소녀인 둘째 딸애가 있었다. 혼자서 표를 팔 때면 유리창 너머로 남몰래 표와 함께 내가 준 돈까지 내밀곤 했었지.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으려고 안으로 내밀다 손가락이 부딪히자 서로 쳐다보며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기적소리보다 더 큰 가슴앓이를 했던 시절, 지금쯤 그 애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기억으로는 당시 한 달 정기권 요금이 325원 정도였는데 꽤 큰 거금이었는 것 같다. 그 돈을 마련할 때마다 힘들어하신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차통학 하면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연들..., 문학에의 열병, 사춘기의 풋풋한 첫사랑의 애틋함, 우정과 의리를 앞세운 치기 어린 용기(세상이 와 이래 불공평 하노? 짧고 굵게 살자!. 등등이 유행했다)와 그로 인한 싸움질과 겁 없이 기차간을누볐던 그 길을 50의 나이가 되어 다시 오가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를 키운 원동력이 아닐까. 한 편으로는 대도시로 나가 출세라는 것도 한번 못해보고 텃새처럼 태어난 주변을 서성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이맘때쯤 차창 가에 앉아 밖을 가만히 내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봄에 피는 꽃의 순서다. 무작정 한꺼번에 피는 게 아니라, 2월 말 때쯤에 맨 먼저 홍매화가 눈 비바람에 살포시 입을 열더니 며칠 지난 후엔 노란 병아리 같은 산수유가 피어났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언제 피었는가 싶었는데 그저께는 성숙한 여인네의 얼굴처럼 흰 목련이 흐드러지게피어오르다 꽃샘추위로 하루 만에 툭툭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새벽 기차는 부지런한 시골 사람들의 땀과 정성이 배여 있는 삶의 정경이 스며있다. 철 이른 산나물, 쑥과 냉이 등과 콩, 깨 쌀 등을 농산물을 내다 팔러 가는 사람들의 짐 보따리 속에서 봄의 향기와 시골 냄새가 솔솔 배어난다. 돌아오는 저녁차는 비릿한 생선 냄새와 더불어 도시 냄새, 마트(생필품) 냄새, 술 냄새로 시끌벅적하다. 간간이 ‘태극기가 휘날리고~’ 와 ‘실미도’가 나오고 노 대통령의 ‘彈劾’시국담까지 흘러나 올쯤에는 분위기가 분분하고 목소리가 드높다
비록 옛날처럼 추억과 낭만은 없다지만 그래도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모두가 한 가족이요, 이웃처럼 푸근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꾸밈과 가식이 없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삶의 행로이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다보면 하루의 피곤함이 솜처럼 풀어지고 눈이 스르르 감기고 졸음이온다.
(2004.04)
첫댓글 사라진 동해남부선의 경주역, 양좌동역, 포항역 등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떠올라 옛적에 써놨던 글을 올려 봅니다!
"삶은 계란이 왔어요"를 외치던 홍익매점 아저씨의 구수한 추억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달리는 완행열차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ㅡ
잘읽었습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