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
갈 곳 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비상구”라고 불리는 고시원에서 또 다시 참혹한 방화-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0월 20일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 묵고 있던 한 30대 남성이 자기 방에 불을 지르고 빠져 나오던 다른 투숙자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4명이 생명을 잃었다. “묻지마 살인”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생이별한 채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중국교포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 기륭 비정규직 농성장에 경찰특공대 투입
10월 21일, “불법 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150일 넘게 투쟁해 온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의 농성장에 경찰 특공대가 들이닥쳤다. 경찰은 철탑 위에서 농성 중이던 김소연 분회장 등 두 사람을 끌어내리고 조합원들과 연대하고 있던 누리꾼들을 붙잡아 용역 깡패들에게 넘겨주면서 마음껏 짓밟도록 조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두 사건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묻지마 살인”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끔찍한 범죄 행위다. 하지만 정부나 경찰이 하듯 이런 사건을 “싸이코 패스”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한정한다면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사건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 정 모씨는 경남 합천에서 홀로 상경해 식당 등을 전전하며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몇 달 전 직장을 잃고 고시원비와 휴대전화 요금이 밀리고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150만원의 벌금이 청구되는 등 금전적 압박에 잇달아 시달리면서 삶의 의욕을 잃었고 자신을 무시하는 세상에 복수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빈곤이 “싸이코 패스” 범죄 발생의 진원지라는 게 다시 입증된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여성 이주 노동자들도 본국에서 찢어질 듯한 가난에 시달리다 희망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3D 업종에서 혹사당하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받았다. 억울하고 참담한 죽음 앞에선 가족들은 돈이 없어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채 단지 오열할 뿐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서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노동자, 서민들이 제일 먼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자칫하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엇나간 복수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적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들끼리...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을 비롯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를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저항을 통해 표출한다. 그들은 빈곤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기업주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 시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
구속노동자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들어 구속된 노동자 수는 10월 20일 현재 104명인데 70%가량은 비정규직 투쟁으로 구속된 노동자들이다. 지난 6월 살인적인 유가 인상에 맞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화물, 덤프 노동자들, 건설 경기 악화로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기업주들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위장 폐업을 하고 깡패들을 고용해서 폭력을 휘두른다.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국가는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 열성적인 조합원들을 잡아다가 감옥살이를 시킨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악랄한 탄압은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으면서 우리 사회를 “묻지마 살인”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다행히도 2008년 대한민국을 밝힌 촛불 항쟁은 비정규직 투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촛불 항쟁을 주도했던 미조직 노동자들이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자발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시작되었던 촛불 항쟁은 이제 반정부 운동을 넘어 시장만능주의 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촛불 항쟁을 집요하게 탄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촛불 시위 과정에서 연행된 시민들은 1,550여명이고 이 가운데 66명이 구속되었다고 한다. 검찰은 불구속 기소된 700명중 90명을 먼저 150만원의 벌금형에 약식기소 했다. 하지만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촛불 연행자’ 700여명은 촛불 항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어떤 처벌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촛불 연행자 모임”을 만들고 벌금 납부 거부 운동을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
중립의 탈마저 벗어버린 국가권력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국가권력은 중립의 탈을 벗어던진 채 노골적으로 가진 자들의 파수꾼이 되어간다.
삼성그룹 이건희의 불법 경영권 승계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도 법원은 지난 10월 10일,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며 이건희에게 또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했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두 세 번씩 구속시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렇게 해서 올해 실형이 선고된 구속노동자들만 24명이다.(실형선고율 23%) 지난 해 12.5%였던 실형 선고율이 두 배로 치솟은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다 실패한 이명박 정권은 공안검사 출신이자 한나라당 당적을 가진 최윤희를 비상임 국가인권위원으로 임명하더니 장애인 부부에게 낙태를 강요한 인권침해 가해자 김양원 목사까지 끌어들였다. 바야흐로 보수우익세력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장악하면서 본래의 역할을 망각한 채 국가권력과 기업주들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나 주는, 구역질나는 행태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호소하는 서민들에게 탈출구는 빈곤과 차별을 조장하는 정부와 시장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길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생산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을 박살내고 민중이 모든 권력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공안 탄압과 왜곡된 비난으로부터 노동자 투쟁을 방어해야 한다. 또한 부당하게 구속된 노동자들을 동지적 입장에서 후원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운동에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이광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