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만경여고(교장 白鍾根.60) 는 학교 전체가 '독서의 바다'다. 이 학교 학생들은 3년 동안 최소 1백권의 책을 읽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1학년은 매주 한권, 입시를 앞둔 3학년도 최소 2주에 한권씩은 읽어야 한다.
이같은 독서의 생활화로 대입.취업 등에서 웬만한 도시 학교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3학년 6개반 1백80여명 중 상업계 4개반은 해마다 전원 취업, 인문계 2개반(60여명) 은 1백% 가까이 진학한다. 지난해의 경우 연세대.전북대.전주교대 등 4년제대학에 30여명이 진학했고, 전문대에 30여명이 들어갔다.
대부분 전주.익산 등에 있는 고교에 들어가지 못해 밀려온 학생들로 채워진 이 시골학교가 이같이 눈부신 변신(?) 을 한 것은 1983년 부임한 김영자(金永子.43.여.국어) 교사 덕분.
金교사는 "독서는 모든 공부의 첫 걸음"이라며 교사.학생들을 설득,책을 모아 도서관을 꾸미고 직접 독서일기를 만들어 주는 등 독서의 습관화를 끈길기게 주도해 왔다.
"독서는 처음이 어렵지, 습관만 붙이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어 공부든 뭐든 다 할 수 있거든요."
金교사의 주도로 이 학교는 학생들을 독서로 끌어들이기 위해 독특한 방법으로 지도한다. 신입생에겐 책제목.작가 등을 써오도록 한 뒤 이를 활용한 퍼즐게임을 해 친근감을 심는다. 신문의 책광고.서평 등을 따라 써보도록 하기도 한다. 이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난 뒤 감상과 기억나는 내용을 독서일기로 적고 만화로 그려보도록 한다.
2학년이 되면 독서를 통해 사고력.표현력을 기르는 심화 학습과정에 들어간다. 명시(名詩) 에 빗대 자기 생활을 표현하는 '패러디 해보기', 작품의 주인공과 가상의 대화를 해보는 '인터뷰 독후감 쓰기', '소설의 내용으로 노래 부르기' 등 기발한 방법으로 책을 요리한다.
3학년 때는 '촌극 시나리오로 개작하기', 다 읽고난 작품을 이어가는 '속편쓰기', 내용 중 낱말을 이용한 '퍼즐게임',같은 주제.소재의 책을 비교하는 '책 대(對) 책 토론회' 등을 연다.2월에는 학생들의 과제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독서축제를 열기도 한다.
책읽기는 1주일에 2~3시간씩 할애된 독서시간과 학기말시험 뒤 방학 때까지의 2~3주, 학년 말이어서 느슨한 2월 등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책은 전북도교육청이 고교생을 위해 추천한 도서 중 가려 뽑은 것으로 문학.교양.사회과학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일단 독서열이 오르게 된 학생들은 1년에 70~80권 독파를 예사로 한다.
오리아나 팔라치 같은 언론인이 되는 게 꿈이라는 3학년 조현경(18) 양은 "입학 당시만 해도 글자를 보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였지만 이젠 거의 매주 한권 이상씩 책을 뗀다"며 "독서를 통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白교장은 "시골 변두리 학교에 왔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책을 들춰볼 생각도 않고 잠만 자던 학생들이 서너달 지나면 스스로 책을 찾아다니는 걸 보면 대견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성공'소식이 알려지자 독서지도를 주도해온 金교사에겐 전국의 교육청.학교로부터 독서지도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서물결추진위원회(위원장 정원식) 가 마련한 '제8회 독서대상'의 대통령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金교사는 그동안의 다양한 독서지도법 경험을 『n세대 퍼즐 독서』 『즐거운 문학수업』 등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