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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봉은사사태의 핵심 인물로 부각된 김영국거사를 잘 안다. 내가 한나라당에 있을 때부터 친면이 있는 분이다. 그는 말수 적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빈 말이나 과장된 허언을 하지 않고 내뱉은 말은 꼭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번 명진스님의 폭로(?)에 느닷없이 거론되어 깜짝 놀랐다. 며칠 뒤에 가까스로 통화가 되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자기도 참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자신이 주선한 자리에서 오갔던 대화를 듣고 명진스님이 걱정되어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전했던 말인데, 몇 달 뒤에 느닷없이 공개를 해버렸으니 그의 입장이 난처할 법했다.
2010년 3월 23일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있는 김영국 거사
* 사진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자승총무원장과 안상수원내대표, 고흥길의원의 만남 자리에서 오갔다는 대화 내용의 진위에 대해서는 불자(佛子)로서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확인을 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안상수의원과 자승스님의 말은 믿지 않지만 김영국거사의 말은 100% 믿는다. 이것은 그와 그의 부인의 직장까지 내쫓겨야 하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이루어지는 진실의 증언이기에 더욱 그렇다.
작년 초가을, 총무원장 선거를 한참 앞두고 그를 만난 자리에서 선거 전망을 물었더니 자승이란 스님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 그에 대한 인물평을 물었더니 종단 내의 문중, 개인 성향을 막론하고 두루 지지를 얻고 있는 스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참 정치력이 대단한 스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그의 정치력이 엉뚱한 데 가서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권력과 가깝게 지내고 정치 풍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적 감각과 주저없는 행동력의 소유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난 28일의 봉은사 법회에서 명진스님이 말씀한 대로 지난 대선에서 그가 중앙종회 의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이명박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면, 그는 한국 불교를 부끄럽게 만드는 짓을 한 셈이다. 이건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종교 지도자로서의 금도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자기 종교 신자라고 이명박장로의 당선을 위해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던 개신교 성직자들도 부끄러워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승스님은 왜 그랬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종교를 뛰어넘는 대승적인 초월이었을까.
2009년 11월 청와대 박형준 정무수석에게 이명박 대통령 축하난을 전달받는 자승 총무원장스님
* 사진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홈페이지 사진소식 코너
사실 종교와 권력의 밀착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이래 인류의 오랜 병통이다. 정치와 종교가 공식적으로 분리된 것은 근대 이후다. 현대에 들어와서 정교분리는 선진 국가를 가름하는 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종교와 권력의 야합이 난무하는 시대 역행의 증세를 보여준다. 이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잘못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욕스러워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소아(小我)와 탐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종교와 정치권력이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두 주체가 야합한 결과 망가진 대표적인 종단이 바로 한국 불교이고 조계종이다(요즘에는 개신교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의 3연임저지로부터 시발된 불교개혁운동은 그런 과거에 대한 자성과 청산의 작업이었다. 나는 당시 수천명의 스님들이 모여 불교개혁을 외쳤던 전국승려대회의 장엄한 광경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런 불교개혁운동의 동력이 거의 망실되고, 다시 불미스러운 과거의 불교로 돌아가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런가.
나는 가톨릭신자이지만 요즈음 참선과 위빠사나 수행 등 불교식 마음공부에 꽂혀 불교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편견을 버리고 호감을 가지던 중이었다. 이 물신주의에 가득찬 현대세계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시켜줄 구원의 실마리를 불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그러면서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깨달음도 점차 넓혀가던 중인데 조계종 총무원과 자승스님의 최근 행각을 보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으면 그게 무슨 출가자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