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씨, 아, 요조숙녀님!
강남국(본회 회장)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지금껏 사람의 부재를 한두 번 겪은바 아니건만, 정은 씨의 부재는 어느 한 분신의 상실이나 혈육 때처럼 그렇게 와 닿네요. 솔직히 지난 2010년 시월 어머니 돌아가시곤 처음입니다. 새해첫날 위독하시단 전화를 받았고 2일 날 그렇게 훌쩍 떠나셨지요. 그날부터 빈자리의 부재를 체감하며 보내고 있네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틈만 나면 오셔서 둘러보시고 댓글을 다셨던 《활짝웃는독서회》 카페! 그 빈자리는 정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군요.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강의실에 나오시던 그 빈자리도 주인을 잃고 텅 비어있답니다. 늘 선생보다 일찍 오셔서 커피와 마실 것을 준비하시고 차를 타주시던 모습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정돈함은 물론 선생의 책상을 닦으시던 모습도 잊을 수 없지요. 그것은 선생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지요. 오늘도 그 강의실에서 90분간 수업을 진행하며 내내 서운해 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함께 공부했던 수강생 모두의 마음이 다 같을 겁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워낙 긴 시간 도맡은 그 자리였기 에요. 또한 매주 수요일 3시면 어김없이 저희 집으로 오셔서 계속되고 있는 “영어성경-NIV”읽기에도 정은씨 자리는 비었고요. 오늘도 함께하시는 권사님께서 숙녀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 참석했을 때 참 반가워하셨다고요. 오늘로 마가복은 8장을 끝냈습니다. 정은 씨가 함께 읽던 장이었지요. 또 있습니다. 정은 씨는 처음 복지관 수업을 듣기 시작한 이후 무려 십여 년 내내 거의 저의 개인지도를 별도로 받으셨지요. 올해는 기어코 그 높기만 한 듣기(Hearing)벽을 넘으시겠다던 그 다짐이 가장 아프기도 합니다.
생각할수록 참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지난 십여 년 간 함께하면서 여러 모양으로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방화2복지관 영어교실에서였지요. 제가 2008년 7월 23일부터 그곳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아마 곧바로 오셨지 싶어요. 그 후 누구보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셨고 매달 독서회정규모임에선 시와 영시를 가장 잘 암기하시는 선수셨습니다. 투병중인 글을 종종 쓰시기도 했지요.
정은 씨를 생각하면 어느 땐 참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그렇게 긴 세월 차도가 없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낫는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오셨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요. 의식을 죽이는 약물과 질기기만 한 환청사이에서 치러야 했던 삶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기에 하루하루가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셨습니다. 20대 중반 그 꽃다운 나이에 발병해 40년이 훨씬 넘는 그 긴 세월동안 평생을 동행해야 했다는 것은 사람이 산다는 것과 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지요. 그 절망의 수렁에서 만난 독서회와 영어교실 그리고 청죽선생은 정은 씨에게 어떤 의미였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지난 주 몇몇이서 정은 씨의 유품(遺品)을 함께 정리하면서 책을 비롯한 숱한 물건들이 거의 다 낯이 익었습니다. 독서회 회지만도 100여권을 고대로 간직한 것을 보며 뭉클함은 절정에 달했지요. 독서회 모임 때 마다 제공됐던 많은 책과 필기구들이 어찌 낯설었을까요. 병이 나으면 듣겠다고 포장도 뜯지 않고 고이 간직됐던 제가 선물한 것들이 나왔을 때는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느 핸가 감사의 표시로 CD25장이 들어있는 음악세트를 세상에 뜯지도 않고 그냥 나왔을 땐 제 의식이 흐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낫기를 소망했던, 그래서 그 음악을 맑은 정신으로 듣겠다 던 그 자신과의 약속이 사라진 허무가 가슴을 쳤습니다.
오늘 추모모임으로 이렇게 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은씨, 우리의 요조숙녀님, 참 감사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우리 독서회가 어렵고 힘들 때 그것도 몇 차례씩이나 남몰래 큰 도움을 주셨었지요. 마지막으로 조카분께서 고모님과 독서회 그리고 영어교실과 청죽선생을 생각하며 주신 봉투입니다. 적잖은 그 마음을 받으며 다시 감사를 전하네요.
벽제승화원에서 정은씨를 마지막 보내며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 모두의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체감하며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