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2.0 제33호 (발행일 2007년 1월 8일)
지난해 한국 여자프로골프 사상 첫 5관왕을 이루며 ‘포스트 박세리’로 지목받은 신지애(20·하이마트)는 한국골프사를 새로 쓸 골퍼다. 필드에서는 냉혹한 승부사로 불리지만 필드 밖에서는 온순한 꼬마천사다. 베테랑보다 더 베테랑 같은 정신력의 소유자지만 열아홉 살 청춘다운 미소가 돋보이는 대학 새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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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왼쪽에서 두번째)는 지난해부터 힙합을 배우고 있다. 한국 최고의 여자프로골퍼
지만 힙합을 배울 때만큼은 그 나이 또래의 해맑은 청춘이다. | |
2006년 5월 19일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가 열린 경기도 용인 태영골프장. 한 선수 주위로 사진기자들이 몰렸다. 초청 선수인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상금랭킹 4위이며 세계랭킹 5위인 '코리안 킬러' 크리스티 커(미국)가 라운드를 준비하기 위해 필드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커 만이 주목의 대상은 아니었다. 전 대회 우승자로 LPGA에서 뛰는 이지영이 골프채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에 신세대 3총사인 박희영(이수건설), 최나연(SK텔레콤), 안선주(하이마트)도 천천히 몸을 풀고 있었다.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총상금 4억원의 한국여자오픈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 사이로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용히 카트에 오르는 18살의 신지애(하이마트)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여자오픈 이전 두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그지만 어차피 프로는 우승 트로피를 한 번도 들어본 경험이 없는 골퍼에게는 관대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신지애는 자신을 알리는 데 오랜 시간을 쓰지 않았다.
대회 3일째. 15번 홀까지 중간합계 8언더파로 공동선두를 달리던 신지애가 16번 홀에서 정교한 아이언샷에 이은 버디로 커를 앞서기 시작했다. 17번 홀에서도 버디를 더해 2타 차로 커를 밀어냈다. 운명의 18번 홀. 신인들은 18번 홀에서 무너지는 일이 많다. 우승 중압감을 못 이겨 보기나 트리플 보기를 저지르기 일쑤다. 반면 커와 같은 베테랑은 위기에서 더 침착하다.
신지애를 응원하는 갤러리들 사이에서 "떨지 마" "긴장 풀어"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지애의 무표정한 얼굴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비쳐진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 신지애는 긴장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떨리고 긴장됐어요. 숨도 못 쉴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전 그런 느낌이 좋아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즐기게 돼요."
백전노장 커 앞에서 신인인 신지애는 과감한 퍼팅으로 18번 홀에서 또다시 버디를 기록하며 한국여자오픈 우승자가 됐다.
신지애와 라운드를 함께 한 어느 선수는 그를 가리켜 "심장이 없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신인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 긴장하고 실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신지애는 보기를 범해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경기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열여덟 살이 아니라 18년 프로경력의 선수와 라운드를 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골프평론가 안성찬씨도 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당시 마음속으로 이렇게 감탄했다고 한다. "한국여자골프계에 노련한 신예가 나타났다."
노련한 신예? 힙합계의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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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천사의 윙크? 신지애가 잇단 사진촬영에
부끄러운 표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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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크리스마스가 이틀이나 지났는 데도 상점마다 캐롤을 틀어놓은 까닭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신지애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지애는 걷는 내내 소속사인 티골프 스튜디어의 매니저 박선영씨와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다. 냉혹한 승부사라는 평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금 수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이 친한 언니와 거리를 걷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신지애의 특별한 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뒤를 따랐지만 그가 가는 곳은 골프장이 아닌 로데오 거리였다.
한참을 따라갔을 때 그가 5층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 이르러 철제문을 열자 대형 유리가 한쪽 벽면에 붙여진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창고 안에는 형광등이 켜져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궁금증이 해결됐다. 조용히 연습을 하기 위한 것이리라.
박세리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새벽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남미 골퍼 앙헬 카브레라는 대회가 없는 날이면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가부좌를 튼 채 몇 시간이고 명상에 빠져 집중력을 기른다. 장타로 유명한 미국 골퍼 존 델리는 경기 전날 술을 마시며 긴장을 푼다. 아마도 대형 거울 앞에서 폼을 교정하겠지 생각하고 있을 즈음 누군가 신지애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이세요." 신지애가 간단히 상대를 소개했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신지애를 쳐다보던 선생님은 큰 소리로 외쳤다.
"원, 투, 쓰리, 포."
순간 창고 안의 조명이 모두 켜지며 '펑펑'하는 강력한 비트의 최신 댄스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신지애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유명 프로골퍼는 훈련에 앞서 몸을 푸는 과정도 역시 다르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지애와 선생님은 몸을 푸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리듬에 맞춰 완벽한 힙합을 선보이고 있었다.
"저만의 특별한 훈련법이에요." 신지애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다 다시 힙합에 열중했다. 한국 최고의 여자프로골퍼가 힙합을 훈련으로 하다니. 차라리 공동묘지에서 몇 시간이고 가부좌를 튼 채 술을 마시는 게 덜 어색하지 않을까.
"잔 근육을 사용하게 돼 근력 향상에 도움이 돼요." 신지애는 힙합이 단순한 춤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다 슬쩍 웃으며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라고 덧붙였다. 신지애가 힙합을 추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록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흥겨운 힙합 리듬에 맞춰 신지애가 몸을 흔드는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어깨도 들썩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힙합을 추는 사람이 한국 최고의 여자프로골퍼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법한 스무살 고교 졸업반 학생으로 비쳐졌다. 신지애의 힙합을 지켜보던 KRAZY 댄스아카데미 강민 대표에게 신지애가 어느 정도의 힙합 실력인지 물었다. 강대표는 귀엣말로 이렇게 말했다. "힙합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죠."
어머니 갑자기 숨진 뒤 정신적으로 성장
2006년 신지애는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상,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최소타수상을 휩쓸며 5관왕이 됐다. 투어에서 3승을 거둬 시즌 상금 3억7405만원으로 KLPGA 사상 처음으로 3억 원을 넘었고, 라운드당 평균타수는 69.72타로 여자골프 최초의 시즌 평균 60대 타수를 기록했다. 어느 언론에서는 신지애의 활약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적 보다는 '기적의 연장'에 가까웠다. 신지애는 아마추어 때부터 최고 그 이상이었다. 함평골프고 1학년이던 2004년 아마추어 대회 3승을 거둔 데 이어 2005년에는 5승을 쓸어 담으며 최고의 여자 아마추어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로 뽑혔으나 돈을 벌기위해 프로를 선택했다.
게다가 KLPGA 투어 최고액 상금이 걸린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총상금 4억원)에서 내로라하는 프로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0회째 열린 이 대회에서 아마추어 우승자는 신지애가 처음이었다. 이 우승으로 신지애는 KLPGA 정회원으로 입회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 모든 것을 고교 3년 동안 이뤄냈다.
신지애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 선다. 그래서 꼬마천사란 별명이 붙었다. 지난 2006년 12월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불우환자의 치료비를 전달하고 있다. 올해 4월엔 '장애인 고용촉진 홍보대사'가 되어 라디오에 출연, 캠페인을 벌였다.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 대상 시상식에는 멋진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나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신지애가 이룩한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점이다.
골프 전문가들은 먼저 신지애의 천부적인 재능을 꼽는다. 타고난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를 이룬 완벽한 골퍼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한골프협회 이성진 경기과장은 "아마추어 시절 체력이 뛰어나고 차분한 선수였다. 골프가 가장 원하는 선수상"이라고 극찬했다. 골프계 일부에서는 신지애가 2003년 11월 어머니 나송숙씨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가난한 목사인 아버지와 두 동생의 생계를 위해 신지애의 헝그리 정신이 발동했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신지애와 그의 주변에서 말하는 성공 포인트는 세 가지다. 좋은 스승과 체계적인 관리, 그리고 프로정신이다.
좋은 스승, 체계적 관리, 프로정신이 성공 포인트
신지애의 성공을 말하기 전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전현지 프로다. KLPGA선수 출신 가운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미국 LPGA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한 전프로는 2002년 신지애와 처음 만났다. "당시 KLPGA에서 장학생 추천을 의뢰 받았다. 그때 내가 김경태(21·연세대)와 신지애를 추천했다."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지만 더 이상 이어지진 않았다.
2004년 신지애가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며 여자대표팀 코치인 전 프로와 다시 인연을 맺는다. 신지애가 어머니의 사고사 이후 극심한 정신적 혼란기를 겪던 시기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신)지애가 대견했지만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전프로는 최선을 다해 신지애를 지도했지만 오래 가르칠 수는 없었다. 상비군 합숙훈련이 3주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인연은 세금처럼 영원히 따라다니는 법이다. 2006년 프로를 선언한 신지애가 전 프로의 지도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전 프로는 비거리는 길지만 퍼팅 실력이 떨어지는 신지애의 약점에 초점을 맞췄다. 한꺼번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조금씩 폼을 바로 잡았다. 어차피 프로라면 비거리에 큰 차이가 없는 이상 아이언 샷과 퍼팅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전프로의 연구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러한 지도방식은 주효했다. 지난해 버디 성공률 23.76%와 평균 버디 수 4.28개로 2위 박희영(버디율 21.60%, 평균 버디수 3.89개)과 큰 차이를 두며 1위를 차지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전프로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전프로는 신지애에게 독서를 권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빠짐없이 독후감을 쓰도록 했고, 음악감상이 취미인 신지애의 의견을 받아들여 퍼팅 연습을 할 때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도록 허락했다.
타이거 우즈·소렌스탐의 체력관리 프로그램으로 단련
신지애가 힙합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가장 환영한 건 전프로였다. "무슨 춤이냐"고 할만도 한데 전프로는 오히려 "빨리 가서 배우라"며 신지애의 등을 떠밀었다. 실제 교습 현장에서 이러한 모험을 하는 지도자는 드물다. 아니 없다. 이에 대해 전프로는 단호하게 말했다. "코치가 아니라 선수가 편안해야 한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사인 '티골프 스튜디오'의 체계적인 선수관리도 주목할 만하다. 티골프 스튜디오는 전프로의 동생인 전현숙 실장이 운영하는 매니지먼트 및 골프마케팅사다. 규모로 친다면 다른 골프매니지먼트사에 비해 크지 않다.
골프장 밖에서의 신지애 모습. MP3로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을 열고 있고, 팬으로부터 으젓한 모습의 캐리커처도 선물
받았다. TV프로에 출연, 사회자의 짖궂은 질문에 OX로 답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그러나 선수관리 프로그램이 남다르다. 타이거 우즈와 안니카 소렌스탐의 체력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해 신지애에게 적용하고 있다. 신지애 만을 담당하는 피트니스 개인 코치를 고용했다. 신지애의 국가대표 시절 체력훈련을 맡았던 한국체육대 박영민 골프초빙교수는 "체력은 좋았지만 체지방이 대표선수 가운데 가장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근력과 근지구력에서 상당히 발전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신지애의 단점이 과학적인 운동으로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다.
이 밖에 티골프 스튜디오는 투어 1승보다 선수가 신나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에 더 신경을 쓴다. 선수가 스트레스를 떨치고 즐겁게 생활하면 성적도 좋아진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다.
KLPGA의 중견 회원인 어느 골퍼는 "매니지먼트와 티칭을 겸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티골프 스튜디오는 이를 병행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수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신지애의 돌풍 뒤에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도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신지애는 대학생이다. 2006년 연세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제 갓 스무살이다. 그러나 신지애의 프로정신은 나이와는 별개다.
사진촬영땐 스폰서 로고 잘 나오도록 포즈
신지애를 사진 촬영할 때 특이한 점이 있다. 다른 여자프로골퍼들은 얼굴과 몸매가 예쁘게 드러나도록 포즈를 취한 반면 신지애는 메인 스폰서인 '하이마트' 로고가 잘 나오도록 포즈를 취했다. 두세 번 제지했지만 신지애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끝까지 로고가 나오게 포즈를 잡았다. 골프용품도 마찬가지다. 자기 얼굴보다는 메인 스폰서나 용품 지원사의 로고와 골프채가 나오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유를 물었다. 신지애는 작은 목소리로 진심을 밝혔다. "고마운 분들이니까요."
어느 여자골퍼는 예전에 모자에 새겨진 메인 스폰서의 로고를 선글라스로 수시로 가려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아직도 많은 프로골퍼들이 스폰서 계약금에만 신경을 쓰지 받은 만큼 기여한다는 프로 정신에는 관심이 없다.
신지애의 별명은 '꼬마천사'다. 스스로도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귀여운 외모 때문이 아니다. 작은 체격 때문도 아니다.
신지애는 지난 2006년 연말 불우환자를 돕기 위해 1000만원을 삼성서울병원에 전달한 것을 포함해 1년간 5500만원의 성금을 기부했다. 2006년 시즌 상금총액의 20%에 이르는 액수다. 게다가 프로 투어 첫 해에 실천한 선행이다. 가난 때문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대신 프로를 선택한 신지애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는 돈이다.
신지애에게 물었다.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 작은 돈이라도 아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신지애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거울에 심장을 비춘 듯 정직하게 말했다.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서 작은 돈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좋지 않나요?"
신지애의 소망은 영원한 챔피언이 아니라 영원한 꼬마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