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있는 우리 사람의 영(3-2)/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 무게를 달아보심
<영 안에서 강퍅함>
신명기 2장 30절은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 그의 영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으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혼 왕의 영을 완강하고 강퍅케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케 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의 영을 강퍅케 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것은 언제나 영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사람이 영 안에서 강퍅하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감동된 영>
에스라 1장 1절과 5절은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여기서는 영으로 해석해야 함)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리시는 회복기에 바사 왕 고레스의 영을 감동시켰고, 그 백성들을 그들의 영 안에서 감동시켰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심이 영을 통한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영을 감동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회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다루심이고, 이 다루심이 절대적으로 영 안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회복을 위한 무엇인가가 산출될 수 있었다.
학개 1장 14절도 똑같은 것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건축의 완성을 위하여 스룹바벨의 영과 대제사장 여호수와의 영과 모든 백성들의 영을 감동시키셨다. 에스라 1장은 우리에게 회복의 시작을 말하고, 학개서는 우리에게 회복의 계속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회복의 시작과 계속은 전적으로 영 안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회복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회복도 결코 우리의 영 밖에 있는 것일 수 없다. 오늘날의 회복은 절대적으로 우리 영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게서 오늘날 수많은 타락한 교회를 회복하시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영이 감동되어야만 한다. 예레미야 51장 11절은 ”주께서 메대 왕들의 영을 감동시켰으니 이는 바벨론을 대적하여 멸하시기로 뜻하심이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이는 주님의 보수(報讎)하심이며 회복이다. 또한 그분의 집을 위한 보수하심이기도 하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했다. 이제 하나님은 바벨론을 멸하기 위하여 메대의 왕들의 영을 감동시켰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위에 내린 일종의 보수하심이었으며 그분의 집을 위한 보수하심이었다.
우리가 메대의 왕들은 아니지만,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전히 바벨론의 멸함과 그분의 집을 보수하심을 위해 우리의 영을 감동시키셔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영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 안에서 다루심>
욥기 6장 4절은 ”전능자의 살이 내 안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몸의 고통이 단지 밖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의 영 안에서의 내적인 것임을 욥이 깨닫고 있음을 말한다. 영적 체험에서 볼 때 이 구절은 매우 깊다.
이것은 욥에게 일어난 모든 고난들이 밖의 것이었지만,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단지 밖으로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다루고 계심을 깨달았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것은 단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밖의 것들이 아니라, 그의 내적인 어떤 것, 곧 그의 영 안의 깊은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보존된 영>
욥기 10장 12절은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살게 하시고 아주 좋은 많은 것들을 누리도록 하셨음을 의미한다. 또한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욥기 15장 13절은 ”너의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느냐?“라고 묻는다. 이 모든 구절들은 우리에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와 교통이 절대적으로 우리 영 안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맡긴 바 되고 간사함이 없는 영>
이제 시편에서 찾아보자. 시편 31편 5절은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이 한 구약의 성도에 의한, 구약성경에 있는 표현임을 기억하라. 신약의 성도인 당신은 이와 같은 고백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나의 영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말한다. 시편 32편 2절은 ”영에 간사함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거듭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교통과 관계가 절대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통회하고 올바르며 자원하는 상한 영>
시편 34편 18절은 ”통회하는 영“이 있고, 시편 51편 10절에는 ”올바른 영“이 있다. 또한 시편 51편 12절에는 ”자원하는 영“이 있다. 시편 51편의 저자는 다윗이다. 10절에서 다윗은 ”내 안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이어서 12절에서는 ”당신의 구원을 즐거움으로 나를 회복하시고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지키소서(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또 17절에는 ”상한 영“이 있다. 시편 51편은 우리에게 ”통회하는 영“, ”올바른 영“, ”자원하는 영”, “상한 영”을 말하고 있다.
<나의 영, 견고한 영>
시편 77편 3절은 “내가 불평하니 나의 영이 눌렸도다”라고 말한다. 또한 시편 77편 6절은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나의 마음에 숙고하며 나의 영이 부지런히 살피느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나의 마음은 숙고하지만, 나의 영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부지런히 살핀다는 말이다.
시편 78편 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영 안에서 하나님께 견고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 견고한 영이 필요하다. 우리는 결심하거나 강한 의지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견고한 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 무게를 달아보심>
잠언 16장 2절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해 보여도 여호와는 그 영들의 무게를 달아보시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곧 천평칭(天平秤) 위에 당신의 영을 올려 놓고 그 무게를 다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 안에 있는가를 주의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영의 무게를 다신다. 가벼운 영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가 여기 저기서 현저히 나타나는 오늘날은 더욱 강한 영이 필요하다.
<추구하는 영>
이사야서 26장 9절은 “밤에 내 혼이 주를 사모하였은즉 내 영이 일찍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라고 말한다.
주님을 사모하는 것은 혼의 어떠함이지만, 주님을 구하는 것은 영의 어떠함이다. 혼으로는 당신을 사모하며 내 안에 있는 영으로 당신을 구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주님을 추구해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