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틀째 날, 쇠소깍에서 남원까지
까먹는 것도 돈이 든다면 어지간히 낭비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타게 되는 버스 시간표는 늘 까먹는다. 정류장에 나가보니 동네 삼춘이 여덟 시 30분부터 기다렸는데 버스가 안 온다며 구시렁거렸다. 난 십여 분만 기다리면 되지만, 삼춘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지루했을 거로 생각하니 측은도 하였다. 잔뜩 흐린 날씨, 간이 의자에 발 올려놓고 운동화 끈을 조이며 비 올까 염려되어 여쭸다.
"삼춘, 비 올 꺼 담쑤가?"
" 불두지엔 하늬보름에도 오긴 헌다마는 비 안 온다."
"지금 하늬보름 불엄쑤강? 갠디 불두지가 무시거마씀?"
"3월 되민 불덜 막 하영 나지 안 허느냐게. 그때를 불두지엔 허는 거주게"
건조기에 산불이 자주 나는 시기를 말씀하시나 보다 하면서도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안 들린다고 귓구멍을 내 소리에 맞추어 갖다대는 삼춘에게 큰 소리로 여쭸다.
"삼춘! 불두지가 무시거라 마씀?"
당신 깐엔 갑갑했는지 손바닥을 땅바닥과 수평으로 맞추며 제스처를 쓰시는 게 어째 불이 아니고 풀이다. 그렇게 새싹이 돋아날 때가 있잖느냐고 하신다.
아하,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를 이름이며 불두지가 아닌 풀두기 혹은 풀두지일 수도 있는데 내가 지금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얼음이 녹고 풀이 돋아난다는 시기, 우수를 일컫는 것 같았다. 생각 없이 나서노라 우산을 챙기지 못했는데 삼춘의 대답이 한시름 놓인다.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의 벚나무 가로수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함을 자랑하던 벚꽃은 오간 데 없고 연초록으로 변신한 모습은 들뜨게 하던 개화기와 달리 편안하게 가슴에 와 안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마을 안 거리>
서귀포 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리고 약국에 들렀다. 따끈한 쌍화차 한 병, 한 방울 남을까 목을 젖히며 마시고 마스크도 하나 샀다. 황사도 황사려니와 아직도 목감기에 시달리고 있기에 걸으면서 바람을 먹으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세차다. 패랭이 끈도 질끈 동여매었다. 효돈 중학교 앞에서 내리고 다시 지난번과 똑같은 경로로 쇠소깍 다리를 향하여 가는 길, 지난번에 왔을 땐 봉오리만 맺혀 있던 금새우난이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든다.
<금새우난>
쇠소깎을 향해 내려가는 길가, 등심붓꽃이 바람의 지휘에 맞춰 가만가만 어설픈 톤으로 제주를 노래하고 있다. 외국어가 최고라고 영어마을 운운하여도 한국이 좋다고 귀화식물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은 토박이 못지않은 방언을 구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꼭 나를 보면서 '삼춘, 삼춘 오늘도 걸엄쑤강? 재미난 거 하영 봥 옵써 예'라고 인사하는 것만 같다.
<등심붓꽃>
쇠소깍 다리를 넘어서자 씩씩한 장군이 되어 있는 떡쑥을 만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두 가지의 쑥으로 떡을 해 주셨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인 쑥은 캐다가 삶아 몇 번의 물을 갈면서 담가놓고 쓴맛을 빼야 했다. 그리고는 절구에 넣고 빻은 다음 떡을 만드셨다. 어느 순간에 소다가 나오면서 어머니는 소다를 넣고 삶으셨는데 그렇게 하면 쑥을 물에 담가놓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떡쑥은 캐기에서부터 떡을 만들기까지 그냥 쑥과는 전혀 다르다. 어린줄기를 뜯어서 쑥버무리 하듯 그렇게 만들면 되었던 것 같다. 이미 기억조차 되살릴 수 없는 먼 기억 속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나에겐 늘 정겨움 한 토막으로 남아있는 식물이다.
<떡쑥>
엉겅퀴와 미나리아재비는 꿀벌과 사랑놀이에 정신이 없는 반면 일찌감치 피어난 돌가시나무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가만 껴안아주고 싶다.
<돌가시나무>
바닷가이되 숲에 덮인 오솔길에서 돈나무 향기 은은히 흘러나오면 파도의 연주가 시작된다. 산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왼쪽 손가락에 걸터앉고 반주를 넣는 한낮, 세상사 모든 시름 절로 사라진다.
<돈나무>
도보여행 내내 주욱 봐오던 당아욱도 거의 씨앗을 맺었고 늦은 꽃이 남아 있는 햇살 좋은 해변, 갯방풍이 기세 좋게 일어섰다. 바위 하나쯤은 들배지기 한판으로 가볍게 내다 꽂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도 묘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맞은편에서 책자 한 번 살피고 사방팔방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여행자가 보인다.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망쟁이 포구가 어디쯤 있느냐고 묻는다. 예까지 걸어오면서 포구 닮은 곳을 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고개를 숙이며 지나친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만난 곳, 아! 이곳이 망쟁이 포구인 걸 그 여행자는 모르고 지나쳤구나 싶다.
<망쟁이 포구>
사람이 되고 싶어 이곳에 왔다가 이루지 못한 꿈, 영혼이나마 하늘로 올라갔을까? 몸뚱어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성에 갇혔다.
<주저앉은 꿈>
손바닥선인장이 자생하고 있었다. 몇 년을 이곳에서 살아왔는지 덩치도 크거니와 가시도 아주 큰 녀석들이었다. 그 가시가 무섭지도 않은지 멍석딸기들이 같잖은 가시로 자기도 가시동족이라며 아양 떨고 있었다. 가시가 다리에 찔리는 것 같았는데 계속 통증이 밀려왔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보니 이 녀석의 가시가 아주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발등도 이상하다 싶어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서 보니 녀석의 가시 끝이 잘리어 뽑아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깊게 박혀 있었다.
<가시가 무시무시한 손바닥선인장>
흐드러지게 피었어도 쓸쓸하게만 보이는 갯메꽃이 모래 위를 뒹구는 갯가 마을엔 귤나무도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했다. 멀리 철새 한 마리 제 짝은 어디 갔는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오간다.
<물새>
위미를 지나고 공천포 바닷가쯤, 영문도 모를 귤이 바닷가 모래 위를 뒹굴고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오히려 정겨움으로 와 닿는다.
<바닷가를 뒹구는 귤>
한치의 땅이라도 일구어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데 반해 한치의 땅이라도 드러날까 봐 구석구석 포장된 길은 양면성이 있었다. 식탁에 올라앉아 입맛을 돋워주던 쑥갓도 맨발로 뛰쳐나왔다. 저 바다를 향해 외쳐대는 가슴에서 차마 하고 싶은 말 무엇일까, 파도소리에 묻혀버린다. 빼어 든 목덜미 너머로 외로움만 깊어간다.
<쑥갓>
무슨 꽃일까? 주홍빛 잘 익은 홍시를 닮은 꽃이 꼭 엄지손톱만 하다. 국제화 시대의 발맞춤일까? 꽃의 색깔은 전혀 다르지만, 퍼뜩 뚜껑별꽃을 떠올리게 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영락없이 동남아의 여인이다. 이름을 알 수 없어 묻고 물었더니 국화잎아욱이라고 했다.
<국화잎아욱>
누구나 이들을 만나면 무시무시한 아프리카의 코브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길 양쪽에 한결같이 등을 돌리고 줄지어 선 큰천남성의 꽃을 접사로 잡아내고 보니 귀엽기만 하다. 화를 잘 내면서도 익살스럽기만 한 도널드 덕을 떠올리게 한다.
<큰천남성>
곱게도 피었다,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해당화 한 송이가 여행자의 발길 심심치 말라고 조용히 노래 한 곡 들려준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홀로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 다정큼나무도 질소냐, 달콤한 향기 폴폴 날리는 바닷가 어느 집 마당에 핀 공조팝나무에는 귀족의 티가 물씬 묻어난다.
<공조팝나무>
제주바다를 신나게 활보하던 테우도 멈춘 갯가, 기상을 과시하던 한때를 잊지 못하는가, 태극기 펄럭이는 냇가를 가로질렀다. 닥나무일까? 치렁치렁 드리운 수꽃이 여차하면 이 바다에 커튼이라도 드리울 것 같다.
<태극기 펄럭이는 테우>
<닥나무 수꽃>
언제 보아도 앙증맞은 귀여움으로 다가서는 뚜껑별꽃은 늘 그 자리에 에메랄드를 능가하는 보석으로 존재한다. 토끼풀과 벌노랑이 신이 났는데 바다는 어쩌다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시름시름 앓고 있으면서도 찾는 이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 안간힘을 쏟는다. 오장육부의 고통을 썰물에 숨기지 못하고 허옇게 드러냈다. 근처의 양어장에서는 물난리보다 더 센 물살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지만, 바위를 일구며 바릇잡이에 나선 주민들은 평화롭게만 보인다.
<시름시름 앓는 바다>
잘 익은 장딸기 열매를 향해 셔터 한 번 누르고는 냉큼 따먹으며 걸었다. 이제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얄 할까 싶다가도 조그만 더 걷자고 하다 보니 큰엉이다. 빼어난 경관에다 잘 정비된 산책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보물이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떠돌던 나그네도 이곳에 오면 더는 방황하지 않으리. 홀로 지낸다는 것에 밑천이 바닥난 사람의 표정도 이곳에선 때묻지 않은 소년소녀가 되리니. 아니 외로움마저도 이곳에선 행복일 것만 같았다. 초록 잎을 휘감고 길게 드러누운 숲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내가 숫처녀의 젖꼭지라 불러주는 어린 솔방울의 자줏빛이 상큼한 숲이다.
<소나무의 꿈>
빛바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을 주워다 어디에 뒀을까? 꽃이 지고 난 다음 모습이 골무를 닮았다 붙여진 이름, 골무꽃이 일찍이도 피었다. 그가 만들어낸 저 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주워다 놓은 추억 찾아 꿰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내 마음을 알고나 있다는 듯, 잔잔한 꽃이 모여 꽃다발을 만들어낸 국수나무가 그 추억 하나 조심스레 갖다 놓는다. 하늘과 바다, 숲의 절묘한 앙상블에 빠져 즐기던 오늘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오늘도 행복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리니. 이 지상의 낙원 제주에서 오늘 밤은,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꺼내어 푸른 물결로 출렁이고 싶은 밤이다.
<국수나무>
주) 식물의 이름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지상의 낙원 제주에서 오늘 밤은,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꺼내어 푸른 물결로 출렁이고 싶은 밤이다... ㅎㅎ 부러운 일인...
죄송허구먼여라.
제주 도보여행 글 올라 오면 정말이지 부러워 죽겠습니다.......나도 좀 걸어줘야 되는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길에서 만난것들이 다들 멋지네요...꽃들도 넘 예쁘고...
제가 백이동 님 나이만 할 땐 부럽다는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살았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