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일 (2014. 8. 17. 일요일) - 열차 안의 일상 2
열차 여행의 장점 중 하나, 아침 일찍 일어나라 마라 하는 모닝콜이 아예 없다. 늘어지게 자고 나서 아침 식사는 청정원의 ‘사골 미역국밥’이다.
밤새 깊은 잠으로 정신이 맑다. 그간 밀린 이틀간의 여정을 정리한다. 옆방의 젊은이들이 놀러와 잠시 노닥거리다 보니 오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오늘의 이 열차는 지난번 이르쿠츠크에서 내린 열차보다는 좀 신형인가 보다. 우선 방안의 탁자가 조금 넓어 식사에도 요긴하지만, 일기를 메모하는 작업에도 편리하다.

( 4인실 침대 칸에서의 아침 저녁 식사 - 침대 사이에 짐가방을 놓고 식탁으로 이용했다 )
13시 00 점심식사. 우리 일행이 33명이 열차한량에 딱 맞춤이다. 맨 앞 2호차에서 식당칸으로 이동은 한참을 가야한다. 칸마다 좁은 통로를 지나기에 너무 멀다. 우리 칸이 4인실 칸막이인데, 지나다 보니 6인실 개방형도 있다. 식사 후에 이어진 오늘의 세미나 특강은 다양하다.
이갑영(전 기아자동차 공장장) - 자동차 사고에 대하여
허진 (과학 선생님, 청정원 임양식 지점장 사모님) - "MSCT와 간장의 진실" 에 대하여 에너지 넘치는 강의는 이해하기 쉽고 카리스마 있는 명강의이다.
이영찬(MBC PD)- 방송이야기
정맹자(남악중학교 역사 선생님) - 러시아 역사
열차 정차시간에 맞추어 특강을 마친다. 14:49-15:11(모스크바 시간 09:49-10:11) 22분간 정차한다. 일란스카야 역이다. 노점상에서 앵두와 잣나무 열매(잣) 등을 판매한다.

[ 플랫트폼 한 곁에서 앵두, 잣 등의 부식을 파는 노점상 ]
◉ 시차(時差)
횡단열차에서의 어려움 중의 하나가 시차(時差)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사이는 7시간의 시차가 있는데, 열차승객인 우리는 시간에 퍽 혼란스럽다. 객실 내에 붙여진 열차시각은 모스크바 기준시각으로 붙여있다. 모스크바 시각으로 볼 때 열차의 이동시간과 소요시간이 일목요연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수천km 떨어진 이곳까지. 시차가 어떻든 차창 밖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한없는 자작나무 숲, 간혹 보이는 소나무 숲 그리고 통나무 집 등.
광주에서 익산 찍고 서대전, 광명, 용산에 이르는 KTX 탑승 3시간 동안이 몸서리치게 지루했는데, 이곳에서의 5박 6일의 열차생활은 아무 변화 없이 이어져도 별 어려움 없다. 여행이라는 호기심과 동반자와의 관계가 환경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대한 평원의, 대국의 위용이다. 느긋함이다. 변함없는 항산이요 항심이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열차 안에서는 와이파이가 안되니 메시지 등 휴대폰 통신이 먹통이다. 서울과는 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한참을 지나 도시 인근에 오니 문자 메시지가 작동된다. 밀린 메시지가 여러 통이다. 가족들에게 안부도 전하다.
화장실에 물이 떨어졌다. 누군가 머리 감고 샤워까지 한 탓이다. 한동안 물 없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객차 한 칸마다 앞뒤로 화장실이 두 개 있다. 변기는 운행 중에만 사용가능하다. 변이 땅에 버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를 손으로 누르고 있어야 하므로 세면대 사용이 불편하다. 세면대 물마개용으로 골프공이 제격이란다. 우리 싸모가 가져 온 바가지가 세면기와 물컵 대용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크리스노야르스크 도착. 18:15-18:50, (모스코바시간 14:15- 14:50) 35분 정차 하는 큰 역이다. 여기는 한국보다 시차가 한 시간 늦다 에니세이 강이 흐르는 대도시이다 고층 아파트 등 대형건물이 보인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비오는 플래트포옴에 우산을 쓰고 내린다. 여행객이 가득하다. 맨홀 뚜껑을 열고 열차에 불을 공급한다. 이젠 화장실에도 물이 나오려나 보다. 비오는 플랫폼에서 우리 여자 일행과 사진 찍는 러시아 미남에게 더 다정히 포즈를 취하라고 하자, 신분증을 내 보이며 4번 결혼한 기혼자임을 강조한다. 무색하게. 사진만 찍으라고 했지, 결혼까지 하라고 했나!

( 비 오는 날 )
정진형 부위원장은 빗속임에도 생수 등 무거운 보급품을 조달해 온다. 33인의 대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나이만 먹은 내가 부끄러워진다.
35분을 쉰 열차는 또 달린다. 이곳 열차는 거의 정시 도착과 정시 출발이다.
비갠 하늘이 한국의 소나기 갠 풍경과 비슷하다. 창밖 하늘 멀리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보인다. 길조(吉兆)이다.
밤 8시(한국시간 9시)이다. 열차 내에서 마지막 밤을 맞아 대회식이 벌어진다. 남자는 2호실, 여자는 9호실에 각 모인다. 4인용 방의 위아래 침대에 11명의 남자들이 가뜩 포개 앉아서 보드카, 위스키, 소주 등 술잔을 돌린다. 정진형 군이 땀을 펄펄 흘려대면서 참치김치찌개를 끓여온다.

( 4인실 침실에서 회식 )
이영찬 PD는 옆 칸의 러시안인들과 열심히도 인터뷰를 해댄다. 휴가 중임에도 방송 PD로서의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같은 방송사 소속 최윤환 기사도 쉬지 않고 카메라를 돌려댄다. CBS 조기선 부장의 멘트는 쉼 없이 바쁘다. KBS 김기중 기자는 카메라가 없다. 말도 없다. 묵묵히 식료품 박스 등 공용짐을 나르는 데는 항상 맨 앞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