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다시 쓰기
서시천 유래, 산동산수유 재해석
홍 준 경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달음재에서 발원하여 구례읍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는 서시천의 이름은
중국 진나라 때 동방의 삼신산에 불로초가 자생한다는 소문을 접한 진시황이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룬 뒤 영구집권을 꿈꾸며 단군 이래 우리 겨레의 신앙체계인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 불로초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원정특사를 물색하던 중 방술方術에 능한 서복을 특사로 임명하여
1차 파견은 서귀포를 거쳐 삼신산 중 하나인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다 찾지 못하고 결국은 철수하게 된다.
방술에 능한 서복은 진시황에게 넙죽 엎드려 아뢰기를 삼신산중 하나인 방장산에 불로초가 자생한다는 점괘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2차 원정을 준비하게 된다.
시황제
병마용갱 청동마차 2호, 서복전시관
“齊人徐市等上書言 "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方丈、瀛洲, 僊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제(齊) 사람 서불 등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이에 서불을 보내 동남동녀 수천을 뽑아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아오게 하였다. — 《사기》(史記)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又使徐福入海求神異物,還為偽辭曰:『臣見海中大神,言曰:「汝西皇之使邪?」臣答曰:「然。」「汝何求?」曰:「願請延年益壽藥。」神曰:「汝秦王之禮薄,得觀而不得取。」即從臣東南至蓬萊山,見芝成宮闕,有使者銅色而龍形,光上照天。於是臣再拜問曰:「宜何資以獻?」海神曰:「以令名男子若振女與百工之事,即得之矣。」』秦皇帝大說,遣振男女三千人,資之五穀種種百工而行。徐福得平原廣澤,止王不來。또한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바다에 들어가 신선에게 기이한 물건을 구하게 하니, 그는 돌아와 거짓으로 말하기를 "신(臣)이 바다 속의 커다란 신(神)을 만났는데, '네가 서황(西皇)의 사자냐?'라고 묻기에 신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묻기에 '수명을 연장시키는 약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신은 '너는 진왕(秦王)의 예(禮)가 박해 그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얻어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바로 신을 데리고 동남쪽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으로 갔습니다. 영지초(靈芝草)로 이루어진 궁궐이 보이고 사자가 있었는데, 구릿빛에 용의 형상이었으며, 그 광채가 하늘까지 비추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재배(再拜)하고 '마땅히 어떤 예물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묻자 해신(海神)은 '양가집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공(百工)의 제품을 바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라 했습니다. 진시황은 크게 기뻐하며 동남동녀 3천명을 보내고 오곡의 종자와 여러 장인들의 만든 것을 가져가게 했습니다. 서복은 평평한 들판과 넓은 못을 얻자 거기에 머물러 왕이 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사기》권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衝山列伝)
이에 철석같이 서복을 믿은 진시황은 서복이 원하는 대로 동남동녀 3천명과 60척의 배, 5000명의 일행 그리고 수많은 금은보화를 건네주며 중국 진황도를 떠나 불로초 찾기 2차 원정길에 오르게 한다.
불로초를 찾아 출항하는 서불
출항 목적을 달성한 서복은 동방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으로 불로초를 찾으러 와서는 섬진강을 거쳐 이 내川를 지나 방장산으로 들어가며 이 川의 절경이 하도 아름다워 중국 4대미인 중 한 명인 “서시”의 이름을 따서 서시천西施川이라 명명하였다고 생각된다.
춘추시대 월나라 출신인 서시는 침어서시沈魚西施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서시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 녀가 강가를 지나가면 그 아름다움에 눈이 부셔 유유히 헤엄치며 노닐던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헤엄을 멈춰 물고기들이 가라앉아버려 침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가 그린 서시
서시는 권문세가 출신이 아니라 저라산(苧羅山) 부근에 살던 나무꾼의 딸이었다. 평범한 집안 출신이지만 그 미모가 워낙 출중해서 부근의 남자들 중 서시에게 연정을 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같은 동네에는 추녀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녀는 서시가 왜 그렇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궁금했기 때문에 서시를 항상 따라다니면서 그 이유를 알고자 했다. 그런데 서시에게는 원래 심장병이 있었다. 가끔 그녀의 약한 심장이 발작을 하는데 통증이 올 때마다 서시는 멈추어 서서 한손으로 가슴을 누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추녀는 바로 그것이 서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자신도 한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다. 그러자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거나 도망을 갔다고 한다.
'서시빈목(嚬目)'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라는 의미이며 '서시효빈(效嚬)'과 의미와 용례가 똑같은 사자성어로 본질을 망각하고 무작정 남의 흉내만 내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서시봉심(奉心)'은 '서시가 가슴앓이를 한다'라는 의미이지만 '빈목'이나 '효빈'과 마찬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서복徐福은 기원전 200여 년 전 인물로 우리 한반도로는 삼한시대 이전에 이 천川 이름을 서시천이라 명명하여 우리나라 고유명사 중 제일 오래된 이름으로 사료된다.
진시황의 특사로 파견되었던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해 결국 진나라로 돌아가면 주살 될게 두려워 진나라로 돌아가지 앉고 일본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구전口傳된다,
그러나 본 필자는 이 대목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서복이 2차 원정을 떠날 때는 이미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기로 작심하고 수많은 황금과 동남동녀 3000여 명을 데리고 와 본인의 왕국을 지리산에 건설하려고 했던 것으로 사료되며 그가 찾던 불로초는 분명 산동산수유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천하를 손에 쥔 진시황이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은 있지도 않고 소문으로만 떠도는 불로초가 아니라 정력보강제가 가장 필요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인들과 향락하며 주지육림을 즐기려면 정력이 모자랐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서복이 찾던 불로초가 자연산 영지버섯이라고도 하고 산삼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것들은 중국 땅에도 얼마든지 많이 있었을 것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산동산수유를 당나라 때 산동성 처녀가 시집 올 때 고향의 특산품을 가져왔다고 혹세무민하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것은 사대주의 발상으로 잘못된 해석이다,
산동산수유는 고대로부터 지리산 자생 식물로 그 성장여건을 분석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모든 고목이 논밭에 심은 게 아니고 서시천 돌밭 또는 너덜겅에 옹색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일부러 가꾼 것이라고는 사료되지 못한다.
결론으로 말하면 산동산수유는 지리산 자생식물 약재가 분명하다. 신라설화 경문왕 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보면 이미 그때 산수유가 언급된 것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오히려 중국 산동성에 분포되어 있는 산수유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역수출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봄꽃 중에 라일락 개나리 등도 미국에 밀수출되었다가 품종 개량 후 역수입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서복이야기로 돌아가면 지리산에 작은 왕국을 건설하고 구례 서시천 주변을 수도로 삼아 태평성대를 누리려 왕국을 건설하던 중 하마, 하마 눈이 빠지게 서복을 기다리던 진시황이 속을 것을 눈치 채고
서복을 체포하여 능지처참하려 군사를 파견한다는 소식을 접한 서복이 동남동녀 중 일부만을 지리산에 남겨두고 금은보화를 챙겨 다시 일본으로 도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남겨둔 일부 동남동녀가 지리산에 뿌리를 내려 부족국가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일본에는 서복이 살았던 서복마을이 여러 군데 조성돼 있으며 제주도 서귀포는 서복이 도착한 곳이라 하여 서복공원을 건립하여 많은 중국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그 현판은 강택민 주석이 제주도에 와서 육필로 써 준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시천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앉지만
역사상으로 볼 때 우리 한반도 역사가 기록되기 전 진시황의 불로초특사 서복과의 인연이 남아있는 우리 고대사에 오래된 사료를 간직한 천川으로 구례인들이 아끼고 사랑하여야 할 고귀한 자산이라 생각되며 조상의 역사를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에게도 이 스토리를 널리 전파하여 그들이 찾아와 관광할 수 있도록 우리들이 힘써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복은 이미 제주도 거제도 일본 등에서 관광 상품화하고 있음으로 우리는 중국 4대미인 중 한명인 “서시”를 부각시켜 중국인들과 연계 상품을 개발하면 더 없이 우수한 관광 상품이 되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출처]구례 산수유꽃담길 / 그 곳에서 詩를 만났다. 홍준경 시인을...
글쓴이 : 시조시인 홍 준 경
54년 구례출생, 강원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섬진강 은유 외 4권의 시집을 발간한 우리고장 시인이다.
참고문헌 : 불멸의 여인들 (청아출판) 지은이 김후
서시천
홍 준 경
반만년의 역사가 쉼 없이 흐르는 한반도
그 물길에 서시천이 한 축을 담고 있네
은어 떼 유유히 노니는 구례 젖줄 서시천이여.
대대손손 이어갈 아름다운 이 강가
다문다문 작은 마을 웃음꽃 절로 피네
아, 저기 지리산 정기 꺼짐 없이 타오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