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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일지/귀거래사(歸去來辭)
어린시절엔 나이들면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떠나간 고향이고 농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세월속을 살아가면서 대부분 흙과의, 자연과의 약속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고향! 그리고 농촌!
생각만해도 어머니의 품속같이 푸근한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농촌은 우리가 그려왔던 그것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뼈를 묻진 못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지울 수 없는 그 푸르름과 소박함이 깃들어있기에, 때론 두고온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든 술잔에 떠오르고, 목메이게 그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보고 싶어졌다.
비록 지금껏 바쁜세상사에 쫏겨 그곳에서 비켜서 바라다 보고마는 갓길인생을 살고있을 지언정...
(좋은 농사정보가 있다면 댓글을...)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 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 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 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 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 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 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 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2010년〕
3. 28.
과수원의 배나무와 감나무들이 모두 뽑혀져 황폐한 상태로 버려져 있다. 정작 소득적고 재미없는 농사일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두면 좁은 국토에 개인적, 국가적 손실이라는 생각이...
그러나 사실 교통비와 기타 경비를 제하면 얼마나 남는 일인지 모르겠다. 당연히 인건비를 포함시키면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겠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냥 두기가 농촌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아깝고 죄스러워 삽과 괭이를 들고 일부를 밭으로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땅을 판다는 일, 그것은 나에게 매우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다.
4. 04.
밭만들기 작업을 계속하였다. 넓은 산 전체가 마치 황무지와 같이 변해 있다. 잡초더미와, 나무뿌리 덩굴, 그리고 가끔씩 손마디를 고통스럽게 하는 작은 돌들. 산을 오를 때처럼 습관적으로 장갑도 끼지 않고 삽질과 괭이질을 해대니 하루 한번씩 손에 물집이 잡힌다. 조금 쓰라리긴 하지만 이걸 못참으랴!!!
잡초 무성한 덤불을 갈쿠리로 걷어내니 부드러운 땅도 있었다. 축복받은 땅은 아니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땀을 흘린다. 이따끔씩 시원한 골바람이 내려 오지만 4월의 햇빛도 노동을 하는데는 덥다. 그러나 각오를 해야 할 것은 농사를 짓는데 문제는 잡초제거에 있을 것 같았다.
4. 24.
휴일을 맞아 우선 감자를 심기로 하고 서부시장 흥농종묘사에서 씨감자를 구입하여 밭으로 달려가 심었다. 멀칭도 하지 않아 나의 농업의 장래가 매우 불안하였다. 그렇지만 일단은 시작해 놓고 볼일이었다. 깡다구로...내가 누군가? 농민의 자손이고 단련된 몸둥이랄까.(ㅋㅋ)
같은 날 호박모종도 사서 심었다. 욕심에 한 구덩이에 3개씩 8구덩이를 심었다. 호박, 단호박, 흥부가 마누라와 켜었던 그냥 박...구덩이는 먼저번 작업시에 밑거름을 조금 해 둔 곳이다.
5. 02.
녹음이 짙게 무르익고 있고 나들이 하기에도 좋은 날씨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은 급하여 우선 서부시장 흥농종묘상에서 고추모종 2판(200개)을 사서 맨땅에다 심었다.
밑거름이 없어 일단은 맛배기로 예전에 사서 쓰다만 복합비로를 약간 주었다. 그리고 이랑 끝자락에다 강낭콩도 심어 두었다. 자칫 줄기를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도 있으려나...
들쥐굴이 많이 보여 아무래도 녀석들의 먹이가 될 것만 같았다. 두고 볼 일이다. 그들이 글을 알면 '쥐새끼 출입금지 까불면 죽는다.'라고 써 붙여 놓는 건데...
5. 09.
고구마를 심으려 마음먹고 고구마순을 구하려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시골의 남새밭에 고구마를 묻어 덩굴이 나오면 잘라서 밭에다 옮겨 심던 모습이 생각났다.
며칠 후면 산악회 회원들과 일주일정도 중국으로 등반을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가기전에 심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였다.
4월의 추위로 농작물의 피해가 클 것 같다. 올해는 4대강 공사로 인하여 고수부지가 많이 사라져 가을엔 채소값도 비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서부시장 흥농종묘사에서 밤고구마 100포기(10,000원)를 구입하여 이랑을 만들어 심었다. 멀칭도 밑거름도 하지 못하였다.
옆 자리에다 찰옥수수 몇 이랑을 심고, 근처에다 열무 씨앗도 뿌렸으나 처음엔 잡초제거를 해주다 결국 포기를 함으로써 열무는 잡초에 가려서 죽고말았는데 열무는 날씨 더울땐 심지 않아야 한다. 쉽게 꽃대가 올라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수수는 거름을 하지않아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잡초밭이 되어 수확을 하지못하고 말았다. 찰 옥수수 맛을 즐기려고 하였었는데 다 주인 잘 못 만난 탓이다.
8. 22.
그동안 장마철을 제외하고 가끔씩 밭을 둘러 보았었다. 5월 중순엔 중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너무 날이 가물어서 출발하는 날 아침에 들러 물을 길어다 주고 떠났었다. 애써 심어 놓는 걸 가뭄에 말라 죽으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감자는 그런대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고추나무는 하나 둘씩 말라 죽는다. 토질도 좋지 않고 물이 귀하다 보니 말라 죽는 것이다.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해 보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밑지는 장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여름 내내 주말마다 잡초를 매어보려고 노력하였지만, 끈질기고 정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와의 전쟁에서 결국은 내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제길! 근데 이넘들은 왜 가꾸지 않아도 이렇게 잘 자라나는 것일까? 밉상스럽게 시리.
오늘은 감자캐기를 하는 날이다. 김동인의 '감자'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복녀의 한은 감자라도 실컷 배부르게 먹고 싶었을 것인데...예상을 하긴 하였지만, 밑거름 부족과 잡초발생으로 수확량은 보잘 것 없었다. 몇번 밭을 매어 주려고 하였지만 역부족 이었다.
감자는 풀도 매어주고, 북돋우기를 가끔씩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풀을 뽑고 일주일이 지나면 잡초가 작물을 뒤덮고 말았다. 그래도 그동안 가뭄에 물을 길러다 준다고 고생을 하였는데 약간은 허탈했다.
가을 채소재배를 위하여 밭을 정리하고 경남농약사에서 사온 비닐 1롤10,000원)을 멀칭작업을 하였다.
8. 29.
드디어 무더위 중에도 가끔은 서늘함을 느끼는 바람이 불어 온다. 가을 채소를 심을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이전까지는 집 마당에다 배추며 무를 심어 보았었는데 밭에다 심기는 처음이다. 아무튼 계속되는 장마로 모종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장마가 잠시 그친 뒤 경남농약사에서 배추1판(8,000원)과 무씨앗 1포(7,000원)를 겨우 구입하여 밭에다 심었다. 얼마를 심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몇십포기만 잘 자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과가 어째든 우선 가을 채소를 심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예전 시골에서는 어머니들이 무나 배추를 심고 싹이나면 재를 그 위에다 뿌렸었다. 충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요즘은 영농방식이 달라져서 그런것은 안 하는 것 같다.
9. 12.
배추를 심은 밭을 살펴보니 해충이 절반이상을 먹어 치우고 없었다. 개씸한 녀석들...눈에 보이는대로 잡아서 황천길로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이녀석들은 평소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애 엄마의 유기농 타령에 어쩔 수 없이 무농약 재배를 꿈꾸었던 결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피해로 인한 배추를 보식하기 위하여 상태가 좋지 않은 것(2판, 10,000원-경남농약사)을 구입할 수 박에 없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약을 전혀 안치면 안된다는 것을...
밑거름 부족과 잡초발생으로 발육부진 하였던 고춧대를 정리하고 이랑을 만들었다. 그래도 고추는 마지막에는 재미를 조금 보긴 하였는데 너무 잡초가 많았었다. 내년에는 똑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 보았다.
9. 18.
덕산장을 갔다. 나는 평소 시골장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수첩에다 서부경남 장날일정표를 가지고 다닌다. 어느새 애 엄마도 나를 따라 나서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부창부수라나?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서 만두와 밀가루 빵을 사 먹었다. 오랫만에 먹어 보는 것이라 그런대로 맛이 난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마음 먹은대로 마늘 1접(30,000원)을 구입하였다. 마늘을 파시는 할머니가 씨알이 큰 것보단, 작은 것이 맛이있다고 하시며 권하시는 것이었다.
어른 말씀이 맞겠지 하고 생각되어 작은 것 한접을 샀다. 두 종류를 심어서 비교를 해 보아야지 하면 야심찬 마음을 먹어본다.
9. 25.
마늘 밭을 정리하고 예전 누군가가 알려 주었던 문산농약사에서 토양소독제 1포(3,500원)와 비닐 1롤(20,000원)을 사다가 밑거름을 조금 준후 토양소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제철을 놓치지 않고 마늘을 더 사기 위해서 곤양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마침 어느 가계에 마늘이 있어 가격을 물었더니 파시는 할머니가 마늘 한접 가격이 40,000원인데 25,000원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40,000원의 절반은 20,000원인데 왜 25,000원을 달라느냐고 반문하였더니 사기 싫으면 관 두란다.
흥정도 못하게 하고 뭔 이리 인심사나운 동네가 있나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도 부족한 나로서는 올바른 계산법은 통 아니었지만 하는 수 없어 사긴 하였는데 속이 개운치 않았다.
나는 분명 그 할머니는 농사를 짖는 사람이 아닌 그냥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농사꾼들은 그렇지를 못한다. 농사꾼들이 정으로 가꾼 농산물을 장사꾼들은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네 할머니들이 왜들 이러지시???
9. 30.
멀칭을 하고 마늘을 심기로 하였다. 마늘의 효능은 새삼스레 이야기를 펼치지 않아도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올해엔 마늘가격이 유난히도 비싸다. 평소 풍년작일때의 두세배나 한단다.
덕산에서 구입한 씨알이 큰 것과 곤양에서의 작은 것을 나란히 심어 비교해 보기로 하였다. 어느 할머니의 말씀이 좋은지도 지켜보아야지...
그리고 서부시장 흥농종묘에서 구입한 쪽파 1되(3,000원)와 시금치 1봉지(2,000원)을 근처에다 심었다. 가을 채소와 같이 뽑아 쓰든지 아니면 내년 초봄에 파릇파릇한 모습을 보기로 하고.
10.31
고구마캐기를 캐는 날이다. 그러나 그름도 제대로 주지 하니하고 잡초가 우거진 고구마밭에 제대로 뿌리가 달릴리도 없었지만, 그나마 굼벵이가 거의 다 먹어치우거나 상처를 내었었다. 토양소독을 하지 않은 결과이었다.
애 엄마는 차라리 굼벵이가 많으니 굼벵이를 잡아다 파는 것이 낫겠다고 농담섞인 이야기를 한다. 하긴 녀석들이 너무했다. 같이 먹고 사는 건 까진 좋은데 정말 누가 주인인지를 모르겠다.
너희들은 알런가? 정 그렇다면 다음해엔 국물도 없다는 사실을...
11.27.
무와 배추를 수확하였다. 거름을 제대로 주지 못했고, 병충해에 노출되었지만 그런대로 수확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나에게 들켜 목숨을 잃은 메뚜기도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 남의 배추밭에서 둘이 업고 난리 부루스를 치며 데이트를 하던 녀석들도 있었고, 산책을 즐기다 황천을 간 녀석들도 있었다.
경고 하건대 그 모든 것은 너희 잘 못이란 걸 알기 바란다.
자동차 트렁크에다 무, 배추를 싣고 돌아오니 처음 심을때 약을 못치게 하여 다음에 벌레가 먹고 다 죽었더라고 하여 애 엄마는 수확이 거의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일부는 결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것도 우리 손으로 키웠으니...적으나마 2가구 정도의 김장담그기가 가능했다.
12. 05.
겨울에 얼어 죽지 말라고 마늘밭에 흙을 넣어 주고 주변에다 시금치 씨앗을 뿌렸다. 이젠 내년 봄을 기다려 보아야겠다. 노력에 비례하여 수확의 아쉬움도 많았지만 하여간 즐거운 한해였다.
그래도 겪어보면 농사일만큼 보람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자의 위치는 아니지만, 생명체의 형태를 달리하게 하고, 그 크기를 변화시키는 창조자의 버금자리, 속도는 느리지만 어째든 형태를 달리하게 하는 마술사의 영역과 온갖 변화무쌍한 것들을 연출해 내는 종합예술가가 부럽지 않은 직업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육체적인 고통과 작은 결과에도 누굴 탓하지 못하고 만족해야만 하는 아픔이 있다. 그래도 느린 걸음걸이로 마음편하게 살아가기를 마다 않는다면 한번쯤은 해 봄직할 것이다.
★ 2010년 기후 특성 : 기상이변, 아열대기후성, 3월 초순∼5월 초순 한파계속, 5월 중순∼6월 중순 가뭄계속, 6월 하순이후 9월 말까지 잦은 비, 높은 기온이 계속되었다.
추석무렵부터 채소가격 폭등함(배추 1포기 15,000원까지). 10월이후 낮은 기온으로 계속 생육상태가 좋지않았고. 특히 배추의 경우 강수량이 적고 기온의 변화가 심하여 결구가 잘 되지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무공해 영농을 주장한다해도 작물이 자라나는 초창기에 병충해 방제를 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존재하지를 못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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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유명한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이군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으면 태어난 곳을 찾기 마련인데,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