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略結婚과 신부의 持參金
한 때 우리나라 결혼시장에 <의사 사위를 얻으려면 3개의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전설(?)같은 루머가 나돌았던 일이 있었다. 의사가 돈을 잘 벌던 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딸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약간의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호주머니 사정은 일반인들의 상상처럼 그렇게 호황을 누리는 국면이 아니다.
의료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가 속한 사회가 어떤 방식의 의료복지정책을 펴고 있는가에 따라서 180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미국처럼 私保險制度로 의료를 유지하는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의료천국이지만, 통일 이전의 동독 정부의 경우처럼 광산노동자가 400달러의 급료를 받는데 반해서 의사가 150달러를 받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제일의 가치= 육체적 노동>이라는 공산주의 이념사회에서 노동의 양과 질이 저조한 의료가 그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나라도 서서히 의료의 양지를 파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77년 전국민개보험이 시작 되면서 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의약분업이란 새로운 멍애와 개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낮은 醫療酬價로 말미임아 의료업은 이미 斜陽産業으로 기울었으며, 이제는 동독의 경우처럼 자동차회사 노동자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더구나 無限競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독 의료만 사회주의 이념으로 운영되는 모순이 지금 資金과 技術力이 부족한 開業街를 금새라도 집어삼킬 듯이 쓰나미를 형성, 달려드는 형편이고 보니 누가 열쇠를 가지고 사위를 삼을 사람이 있겠는가. 모두가 옛날의 금잔디 같은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理科系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라고 일컬어지던 공대마저 전반적 경기침체와 더불어 한풍이 불어와서 지망생의 발길이 뚝 그친 형편이니 이공계의 장래가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니 좋은 혼처가 나도 이공계 신랑감은 언제나 second choice로 물러나고 정략결혼의 대상에서 지워진 상태다.
여성들이 신랑감을 고를 때 살펴보는 조건들을 우선순위로 살펴보면, 첫째 직업, 둘째 경제상태 셋째 출신학교 넷째 부모가 누구인가, 등이라고 한다. 모두 부부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재정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조건들이다. 이런 체크 포인트를 놓고 면밀히 살펴보면, 의사는 물론 공대출신 엔지니어들도 1등 신랑감으로 리스트 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에의 취업이 잘 안 되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쓸 만한 신랑감이 별로 있을 까닭이 없다. 자연은 남녀의 비율을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장가를 가면서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는 신랑 깜이 있는 반면에 고려대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자격미달의 신랑들도 그 수가 적지 않다.
사정이 그러한 데도 경제가 워낙 어렵다 보니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정착할 때가지 아내나 처가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총각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여의사와 결혼, 좀더 나은 경제 환경을 만들려고 학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동일 직종간 결혼률이 가장 높은 교사 다음으로 의사 커플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듣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다보니 자연히 신부가 결혼할 때 얼마나 소지하고 올 수 있는가에 신랑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부잣집 출신 신부라면 몰라도 샐러리맨 부모를 둔 신부 입장에서의 결혼 지참금 준비는 벅찬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의 의국에서는 늘 여성 측의 지참금이 미혼 남성사이에서 화제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젊은 남자들에게 dream이 되어버린 이 지참금제도는 이상한 목적에서 발생한 것으로 권장할만한 제도는 아니다. 문헌에 의하면, 이 생소한 지참금이란 도깨비는 졸부들의 자만심에서 생겨난 제도로서 모두들 그 뒤를 따라서 흉내 낼 일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 제도가 살아있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그것이 부담스러워서 결혼하지 못하는 처녀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서 불행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 불편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한 지참금 제도는 왜 생겨난 것인가. 그것은 고대의 정략결혼제도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권력이 따르면 돈과 재산은 자동적으로 늘어나고 이것은 다시 사회적 파워가 되어 주인공을 보호한다. 인명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조성된 재산과 권력을 후손들에게 遺産相續의 형식으로 증여, 가문의 권세가 이어져 나가기를 기원한다. 생전에도 자신의 재산과 권력 구조가 붕괴되지 않도록 보호하자면 혈연관계의 친인척들에게 양도할 몫을 미리 줌으로써 집단안보체제 구축이 필요하고, 그런 이유로 생긴 것이 유럽의 지참금 문화다.
세익스피어의 명작 <리어왕>에 문제의 持參金制度에 관한 언급이 처음으로 活字化되어 나타나는데, 리어왕은 셋째 딸 코델리아에게 상당한 액수의 지참금을 주려고 하지만 그녀가 무슨 이유인지 그것의 수령을 거절한다. 그때 리어왕의 말, <nothing comes from nothing.> 이라는 명언이 나오는데, 번역하면 <無에서 태어나는 것은 無 뿐이다>--지참금이 한 푼도 없는 여자에게 1급 혼처가 생기지 않는 법이라는 뜻이다.
사회학자들은, 19세기까지 위세를 누렸던 지참금 제도는 표면상으로는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한 부친의 배려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父權 확립용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발작의 소설 <고리오 할아버지>에 잘 소개되어 있다. 즉 단지 製麵業者에 지나지 않는 한 사내가 두 딸에게 거금의 지참금을 줌으로써 귀족 집안으로 출가시킨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출가한 딸이 부친의 바람막이가 되어 부친의 사업을 도와주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다.
初頭에 부친과 딸의 관계에서 출발한 결혼지참금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부친과 딸의 수직이동에서 모친과 딸의 관계로 이전되고, 이런 트렌드는 D.H. 로오렌스의 <아들과 연인>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과 일본 등지 東洋文化圈에서는 시집가는 딸에 대해서 토지나 祿俸을 붙이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일본의 근세사에서 보는 봉록 1만석 이상의 武家들인 大名(다이묘)들은 그 재산과 권력이 쇼고군(將軍)에게서 하사받은 것이지만 그 것은 다시 다이묘의 자식이나 충실한 신하에게 재분양 되었다. 결국 그런 방법으로 지참금의 기금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하지만 이런 지참금 제도는 연애결혼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이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 연애결혼을 선호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략결혼 쪽이 사회적 입신과 출세에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벌 집 딸이 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의 생각이다. dh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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