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 떠 놓고 소원을 빌던
어미의 심정으로 경복궁 경회루 연향(宴享) 공연
관람을 빌고 있었다.
"삐이룽~"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변상문님! 10. 19.(금) 경회루 연향에
예약되셨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요며칠 동안 하는 일에 치이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다.
가을밤 공기가 차가울 것에 대비해
외투를 걸쳐입고 경복궁으로 서둘러
향했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을 지나 근정전 앞에
섰다. 어도(御道)에서 바라본 근정전은
창연(蒼然:푸르게 옛스러움) 너머 싸이의
'말 춤'처럼 친근감 있는 역동성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걸어 경회루로 들어섰다.
경회루를 시공한 삼봉 정도전이,
경회루를 중창한 태종대왕과 성종대왕이,
경회루를 재건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전하와 성신(誠臣:충성스런 신하)께
배후(拜后:임금께 인사드림)의 예로 인사올립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수백년의 세월을
순식(瞬息:눈깜작할 사이)으로 응축해
만났다.
인사를 마치자,
경회루 연향(宴享)의 막이 올랐다.
연향은 경회루와 그 주변 경관을 무대로 활용한
실경(實景) 공연이었고, 총 2부로 구성돼 진행
되었다.
제1부는, 경회루 건립을 축하는 공연이었다.
'처용무'를 시작으로 문무백관을 대동한 임금과
왕비의 행차가 이뤄지고 난 뒤에, 궁중 성악인
정가(正歌), 궁중 무용인 '가인전목단(街人剪牧丹)',
생황과 단소가 연주되었다.
제2부는, 흥선 대원군이 경회루를 270여 년만에
재건한 후 베푸는 낙성연(落成宴)이었다.
집단 오고무(五鼓舞), 선상(船上) 판소리, 강강술래
순으로 진행됐다.
모든게 걸작이었고, 명품이었다.
실경(實景) 무대는 아마도 세계 최고였을 것이다.
우주의 생성원리를 경회루 크기로 압축한 시서화(詩書畵)요,
풍류였다.
경회루 외딴섬에서 연주한 생황과 단소 소리는
억조창생의 숨소리였다.
국창 안숙선이 경회루 연못위에서 배를 타고
수궁가 수궁풍류를 부르는 장면은 '가(歌)가
가히 가연(嘉然:가장 아름다운 노름마치)'
되는 순간이었다.
정가와 강강술래는 자연과 인간이, 임금과
백성이, 부귀와 빈천이 없는 '신명의 어울림
춤 굿'이었다.
연향(宴享)은, 표준어국어대사전에 정의된
'떠들썩한 신명의 구경거리'「굿」 바로
그 것이었으며,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역사의 호흡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심장의 떨림이 한참동안
맥놀이 돼 근정전 마당을 소요유(遡遙游)하고
있었다.
더질더질 돌돌(咄咄)
첫댓글 좋은 곳 다녀 오셨네요
글 읽으면서 경회루 현장 상황을 눈으로 그려 봤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정화수 떠 놓고 비는 심정으로 빌었던 소원이 성취되어 이렇게
감동 넘치는 글을 선물하셨군요.
어떤 원시 사냥부족이 하루 종일 산야를 누비다 달랑 다람쥐 한마리를 잡아서
그 사냥감을 사냥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나눠 먹는 걸 봤습니다.
뼈까지 꼬리 까지 남김없이 꼭꼭 씹어서 먹더군요.
털가죽을 제외한 다람쥐의 모든 것이 그 사람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거죠.
오대산님은 정말 하나도 남김없이 그 공연을 가슴에 담아가는 분이란 생각이네요.
유려한 필치, 깨알 같이 알뜰한 정서...가을날 고궁에서의 품격 높은 연회의
우아한 흥취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