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의 『징비록』, 오늘날 북을 대비하는 징비록은 있는가

[방랑객]

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유린되었다. 잊을만하면 이 땅은 왜란과 호란으로 국토를 유린당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후대에 남길 단단한 방비책은 진즉에 필요했었다. 그러나 모두 저 살기에 바빴으므로 어떤 전쟁이라도 그 전말을 기록한 이는 없었다.

우리는 지나고 나면 금방 잊었다. 잊어버렸으므로 후대에 전할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나하나 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유성룡은 달랐다. 그는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다시는 이런 참화가 이 땅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징비록‘을 남긴 이유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 일을 기록한 것이다. 난이 발생하기 전의 일 또한 조금씩 기록했으니 이는 난의 처음부터 근본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임금과 지근거리에 있었으므로 전쟁을 보다 너른 시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유성룡, 자료 : 한국사 인물열전

유성룡은 ‘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으니,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화로 무너져 내린 비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책은 임진년(1592년)부터 무술년(1598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가 따라다니며 듣고 본 것들을 대강이나마 서술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다른 어떤 자료보다도 임진왜란의 생생한 일차 자료일 것이다.

유성룡

그래서 “비록 볼만한 것은 없을지라도 이것이야말로 그때의 사건과 자취이므로 버릴 수 없다. 그러니 이로써 시골 구석진 곳에서 온 정성으로 충성의 뜻을 드러내고, 우매한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기록하고자 한다.”라는 말이 무겁게 와 닿는다.

사건의 기록은 1586년부터 시작되고 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위해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엿보며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 정세에 어두웠다. 조정에서는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라느니 아니라느니 말싸움과 그 틈에 얻어지는 이익에 몰두했다.

발등에 불이 그리 쉽게 떨어지겠는가라는 것이 조정의 생각이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군사들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사고가 그 뒤에 덧씌워졌다. 그러니 왜적이 부산포에 닿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우리는 일거에 무너졌다. 

왜군의 신형 무기라 할 조총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싸움다운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파죽지세로 밀리다 결국 열흘 만에 한양을 내주고 말았다. 장수들은 죽어갔고 백성들은 달아났다. 백성만 달아난 것이 아니다. 임금도 마침내 달아났다. 

임금이 달아난 한양에서는 왜의 군사들과 우리 백성이 섞여 살았다. 백성들은 왜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서로를 밀고하기도 했다. 임금은 그런 백성들이 남의 백성인양 저 살길을 위해 북으로 향한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버렸으므로 백성 또한 임금을 버렸다.

왜적들은 승승장구에 도취된 탓일까 나름 조선반도 전체를 유린할 요량인지 세 갈래로 나누어 북상을 해왔다. 그러나 병력이 갈라지면 그 힘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들이 평양성에 주둔할 때는 이미 기력이 어느 정도 쇠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더는 북상하지 않았다. 

유성룡은 이를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그 틈에 명나라의 군사들이 평양성을 공격했고 마침내 탈환을 했다. 왜적들은 한양으로 물러났다. 전쟁의 양상이 그때부터 바뀌었다. 명나라 군사들은 거만해졌고 왜적들은 몸을 숨겼다. 

조정에서는 이 양쪽의 눈치를 살피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 동안에도 사방에서 백성들이 죽어갔다. 더러는 굶어죽고 더러는 왜적들의 칼에 죽었다. 죽은 자의 코는 왜적이 쓸어갔다. 오래전 일본에서 그 무덤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묻었는지 왕의 무덤처럼 컸었다.

다행히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 덕분에 왜적들은 후방의 보급로가 끊겼다. 아마도 그로 인해 왜적이 평양성에 그대로 주저앉은 것이 아닌가 싶다. 육지에서는 연전연패였지만 이순신은 홀로 왜적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다. 

결국 왜적들은 이순신을 이길 수 없음을 간파하고 이간계를 썼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너무도 쉽게 걸려들었다. 당시의 상황 인식과 정세 판단이 겨우 그랬다. 마침내 이순신은 파직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순신이 전장에서 제거되자 바다에서의 전세는 왜구로 기울었다. 

결국 이순신이 다시 바다로 나아가자 왜구들은 혼비백산했고 바다는 다시 조선의 바다로 온전히 돌아왔다. 결국 바다에서 이순신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책은 그 이야기와 함께 간략한 이순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일단락을 짓는다. 

전쟁이 몇 년간 이어지자 백성들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구국의 뜻을 지닌 자들이 도처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바로 의병이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등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왜적들은 그 중 경상도에 일어난 곽재우를 가장 두려워했다.

임금이 한 일이라고는 고작 누가 승전을 하면 허울 좋은 벼슬이나 내리는 것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모함이 있었고, 파직이 잇달았다. 아마도 일본의 절대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유성룡은 전쟁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하고 있다. 이하는 그 내용을 추린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전쟁을 암시하는 수많은 징후들이 있었으나 누구도 이를 알지 못했다. 왜적은 한양에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성공했으나 평양에서는 졸렬했다.

평양 탈환도, 다음백과

백 년에 걸친 태평성대로 우리 백성들은 전쟁을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왜적의 침입을 맞자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당시 적은 파죽지세로 몰아닥쳐 불과 10일 만에 한양까지 들이닥쳤다. 용감한 장수라 하더라도 손을 써볼 겨를이 없었다. 

민심은 흩어져 수습이 어려웠다. 속전속결의 방법이 한양을 함락시키는데 뛰어난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적은 항상 이긴다고만 생각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갈래로 흩어져 마음대로 날뛰었다. 그러나 군사는 나누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한산 대첩 해전도, 천재교육

천 리에 걸쳐 전선을 형성하고 시간이 지나니, 아무리 강한 화살이라 해도 멀리 가다보면 낡은 헝겊 한 장 뚫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이렇게 해서 명나라 군사는 4만으로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평양이 함락되자 곳곳에 퍼저 있던 적들도 모두 기운을 잃고 말았다.

결국 왜적이 한양을 점령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세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전국의 의병이 곳곳에서 활동을 시작하자 적은 서로 통신이 두절되고 구원할 수 없게 되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평양의 계략이 졸렬했다는 증거다.

전세변화, 천재교육

왜적의 계략이 잘못된 것은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였다. 우리에게 뛰어난 장수가 하나만 있었어도 길게 이어지던 적의 전선을 끊어 단절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평양성에서 그들의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그들에게서 비롯된다. 우리 장수들은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군사들 훈련도 없었고, 서로간의 통신도 없었다. 왜적이 처들어오자 군사들보다 장수가 먼저 달아나는 지경이었다. 장수를 기르는데 정성을 들여야 한다.

훌륭한 장수가 없으니 계책 또한 없었다. 우리는 너무 약하고 힘든 상태여서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 또한 그런 계략을 세우고 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저 적을 내좇을 수는 있어도 응징하거나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하지는 못했다. 

조총을 감당하기 위해서 숲을 이용한 사례도 눈여겨볼만 하다. 지형을 잘 이용하면 조총도 능히 막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합지졸을 데리고 험준한 숲을 떠나 평탄한 들판에서 대적을 했다. 화살은 백 보를 가지만 조총은 그보다 멀리 갔다. 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쟁에는 임시변통의 아이디어가 유용할 때가 많다. 유성룡은 그 사례로 정월에 임진강을 건넌 예를 들었다. 그는 칡넝쿨을 새끼로 꼬아 강 맞은편을 서로 연결하여 임시 다리를 만들었다. 모든 병사와 말들까지 강을 건넜다. 

유성룡은 훈련도감이 되어 군사 훈련을 담당하기도 했다. 기초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깔려있다. 조총을 쏘는 법을 가르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총 쏘는 것은 왜군 수준을 능가하는 자도 나타났다. 그런 방비가 전쟁 초기에 이루어졌더라면 전쟁은 달라졌을 것이다. 

‘징비록’은 그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다. 그로부터 350년이 지나 이 땅에 동족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현대판 징비록은 낡은 이념에 묻혀 숨을 쉬지 못한다. 새 교육과정 시안이 여전히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북을 대비하는 징비록은 있는가? 아니면 필요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