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한국의 포크史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성 포크싱어가 이연실인데,
그녀는 70년대초에 불기 시작한 포크의 바람을
선두에서 이끌던 1세대이자 핵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연실의 목소리는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처럼 맑고 깨끗하며 청아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를 듣고있자면 슬퍼진다.
왜 그럴까?
"찔레꽃"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그런걸까?
아니면 고향 냄새 물씬 풍기는 가사들 때문일까? 꼭 그런건 아닌것 같다.
感은 오지만 아직도 그 답을 난 정확하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연실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8월 6일 전북에서 태어났고,
자라서 弘大 美大 서양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1972년 프로 가수로서의 길에 접어들면서 중퇴를 한다.
데뷔시절의 모습.
그리고 그녀는 진정한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밑바닥을 알아야 한다면서
대구에서 다방 레지 생활을 체험했다는 말이 전하고 있으며,
이는 프로페셔널의 본질과 그녀의 지독한 근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윤형주/송창식外, "비의나그네/아가씨들아外", 1972. 7. 신세계
국내 최초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이연실이 독집을 취입하기 전인 1972년 여름에 발매되었으며,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의 포크싱어와 함께
여대생 포크싱어로 각광받던 어은경과 이연실이 참여했다.
이연실은 "그이 지금 어디에"와 "찔레꽃"을 불렀는데,
"찔레꽃"은 그녀가 직접 가사를 쓴 곡으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고,
"그이 지금 어디에"에서는 질리지않는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가 좋다.
이연실은 대학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소공동의 포시즌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를 田友가 눈여겨 봤고,
이연실의 가능성을 확신한 그의 투자로 음반 제작에 들어간다.
이연실, "第1集, 비둘기집/새색시 시집가네". 1972년 추정, 성음
이연실의 실질적인 데뷔LP이며,
주옥같은 그녀의 포크 넘버 네 곡이 들어가 있다.
통기타와 어우러지는 탈세속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참 좋다.
SIDE A
1. 비둘기 집(이연실)
2. 둘이서 걸어요(이연실)
3. 두 마음(이석)
4. 울고 싶을 때(정우)
5. 사랑의 찬가(박재란)
SIDE B
1. 새색시 시집가네(이연실)
2. 하얀눈길(이연실)
3. 황혼길(이찬)
4. 길(조영남)
5. 빗속에서 울리라(박재란)
1973년 이연실은 포크계의 또 한 명의 전설이자
영원한 아웃사이더 양병집이 신촌에서 운영하던 음악 카페 'OX'를 찾아갔으며,
그녀는 거기에서 다음 앨범에 실을 "소낙비"와 "잃어버린 전설"의 악보를 받아가는데,
이 곡들은 Bob Dylan의 포크 넘버들을 개사한 것이다.
이연실, "시악시 마음/잃어버린 전설", 1973. 3. 성음
일명 '망루앨범'으로 불리는 희귀음반으로,
이연실의 LP 중 가장 고가의 대접을 받는 음반이기도 하다.
데뷔LP의 "새색시 시집가네"의 후속작인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시악시 마음"을 노래하고 있으며,
Melanie Safka의 "The Saddiest Thing"을 개사한 "별리"도 좋고,
약간 싸이키-포크틱하게 편곡한 "기다리는 아이"도 별미이다.
"소낙비"를 들어보면 그녀가 나중에 발표하는
"조용한 여자"와 "목노주점"의 색깔이 이미 비집고 나오며,
"소낙비"의 원곡인 "A hard rain's a-gonna fall"은
Bob Dylan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원곡보단 좀 모자라는 것 같다.
註) 1973년 12월에는 위의 '망루앨범'과 거의 흡사한 자켓으로
이연실과 최헌의 스플릿 앨범이 성음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다.
SIDE 1
1. 시악시 마음
2. 인형
3. 별리
4. 사랑의 성장
5. 기다리는 아이
SIDE 2
1. 잃어버린 전설
2. 소낙비
3. 참사랑
4. 나의 길
5. 역(逆)
6. 이밤
박인희/이연실, "고운노래 모음집", 1975. 11. 힛트
박인희와의 스플릿 앨범으로 76년과 82년 등에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한자두자 일곱치"는 가사도 재미있고 멜로디 라인도 너무나 좋은 곡이다.
A면 - 박인희
1. 모닥불
2. 어느 여름날
3. 접동새
4. 아사녀
5. 갈대밭에서
6. 이사도라
B면 - 이연실
1. 한자두자 일곱치
2. 주님의 참사랑
3. 찔레꽃
4. 먼나라
5. 새색시 시집가네
6. 가을 메들리(박인희)
1972년에서 73년 사이에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렸던 이연실은
그 이후 약간은 주춤하는 상황이었는데,
1975년 12월 11일 일간지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수미, 정훈희, 이현 등의 탑가수들과 함께 자수, 훈방'이란 반갑지않은 기사로.
몇 일 전부터 이미 신중현,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박광수, 김추자 등의 구속 기사가 나왔었다.
바로 대마초 파동이었다.
어쨌튼 그녀는 사안이 가벼웠던지 훈방 조치만 당한다.
이연실, "고운노래 모음집", 1976. 5. 현대
그녀는 자작곡인 "조용한 여자"를 들고 밝게 웃으면서 다시 팬들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괴롭힐 사람없는 말쑥한 여자"라고 외치면서.
다시 붓을 잡은 그녀의 사진은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듯 하고,
둘다섯의 오세복이 만든 "긴머리 소녀"를 "이제는"으로 바꿔 부른다.
앞
1. 조용한 여자
2. 이제는
3. 찔레꽃
4. 먼나라
5. 나의 사랑
6. 가을메들리
뒤
1. 한자두자 일곱치
2. 주님의 참사랑
3. 새색씨 시집가네
4. 작은새
5. 안녕
6. 소낙비
이후 결혼과 함께 70년대말을 정말 '조용한 여자'로 살던 그녀는
1981년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면서 그녀 최고의 힛트곡이라할 수 있는"목노주점"을 터트린다.
신작을 발표하면서 그녀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가정에 묻혀 조용한 여자로 생활하긴
너무 단조로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노래에 대한 내 집착이 더 컷기 때문이다.
포만감으로 만족할 수 없는 현실앞에
이 앨범의 정열을 쏟았읍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새롭게
인사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리고
제 노래소리가 여러분 곁에 사랑받어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약간의 흥분과 설레임이 느껴지는 그녀의 소감이다.
이연실, "목노주점/상아탑", 1981. 5. 한국
일반인들이 그녀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게 해준 앨범으로,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포크싱어의 모습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연실은 번안곡을 제외한 전곡을 자작곡하여
싱어송 롸이터로서의 면모를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물론 창법이 많이 기성화되기는 하였지만...^^
SIDE 1
1. 목노주점
2. 드높은 사랑
3. 성연아 일루와
4. 아가와 기도
5. 최초의 누각
SIDE 2
1. 상아탑
2. 5월
3. 설워마오 조국이여
4. 그 길고도 추웠던 겨울
5. 아름다운 노래
1982년에 그녀는 앨범 '이연실의 넋두리 전부!'를 발표한 후,
다음해에는 후기작임에도 명반으로 꼽히고 있는 아래의 음반을 발표한다.
이연실, "이연실의 조그만 이야기들!", 1983. 2. 현대
그녀의 후기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자주 가는, 마음이 끌리는 앨범이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가을밤에 듣는다면 죽음인데,
특히나 앞면은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하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 앨범은 윤명환의 작품집이나 다름없으며 양병집이 부른 "오늘 같은날",
이태원이 부른 "솔개" 등이 그가 만든 곡들이고 여기에서 이연실도 부르고 있다.
SIDE 1
1. 그이
2. 문을 닫고
3. 기우
4. 오늘같은 날
5. 별
6. 겨울
7. 가을 메들리
SIDE 2
1. 다시는(헤에헤에)
2. 솔개
3. 도중에서
4. 릴리 마렌
5. 목노주점
6. 타박네
7. 새색시 시집가네
이연실은 1985년엔 김영균과 함께 음반을 발표하였고,
1989년에는 그녀의 가수 생활을 결산하는 음반을 두 장 더 발표하였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것이 없다.
정말 그녀의 노래처럼 '조용한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우리들 앞으로 다가와서 그녀만의 '조그만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좋을텐데...
물론, 더 좋은건 '목로주점'에서 껄껄 웃으면서 같이 한 잔 하는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