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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 (인침의 경험)-3부
2) 대속죄일
자, 그러면 이제 지성소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대속죄일에 대하여 공부해 보기로 하자.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매년 드리는 제사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의 차이를 다룬 다음 장에서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한 가지만 강조하고 지나가야 할 점은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그들의 모든 허물에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정결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위기 16:30). 말하자면, 대속죄일을 지나기 전까지는 사실상 죄로부터의 완전한 정결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에 너희가 모든 죄로부터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매일 자복하고 회개한 우리의 헌신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구원과 용서를 누리고 산다. 그러나 그 구속의 경험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유지해 나아가야 하지, 한 번 얻었다고 영원히 구원받아 버린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힘있게 설명하고 있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나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6~18). 이 말씀은 대속죄일에 대한 말씀이다.
성경에서 대속죄일 장(障)이라면 레위기 16장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레위기 16장에서 이스라엘의 죄의 도말을 위한 대속죄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제일 먼저, 제사장들의 정결 사업을 말씀하셨다. 레위기 16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한 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거룩한 번제단의 불 말고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다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불이 나와 태워 죽임을 당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대속죄일에 관하여 설명하셨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2절부터 5절까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을 시작하실 때에 제일 먼저, 제사장들이 정결케 되기를 원하신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대속죄일의 정결 사업을 선포하며, 그 중요성을 설명해야 하는 제사장들이 먼저 죄로부터 정결케 되는 경험이 없이 어떻게 대속죄일 사업을 집행하고 가르치며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제사장들이 먼저 몸을 씻고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것처럼, 교회 지도자들의 진정한 속죄의 경험으로부터 교회의 속죄 사업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항상 교회의 부흥과 개혁은 지도자들의 태도에 달렸다. 하물며 대속죄일의 정결 사업은 어떠하겠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다. 죄악의 역사가 종결되고 지구가 구속되는 일이 오랫동안 지체됐다. 무엇이 주님을 이렇게 지체하시게 하는가?
대제사장은 일 년의 마지막 날인 대속죄일에, 제일 먼저 자기 자신과 자기의 권속들을 위하여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시은좌 위와 그 앞에 일곱 번 뿌리고 죄를 완전히 용서받고 도말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대속죄일에도 매일 드리는 제사가 함께 드려졌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아직 고백 되어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을까 하여 수양을 속죄제로 여전히 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주님을 위하여 뽑은 숫염소를 죄의 도말을 위하여 잡을 때까지 아직 그들에게는 용서의 희망이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주님께서도 향로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타나시어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간구하고 계신다. 마지막 중보의 기도가 올려지고 있다. 언제 매일 드리는 제사의 효험이 더는 역사 하지 않게 되어 죄의 도말을 위한 제물만 드려지게 될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현대 교회가 대속죄일에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계시록 예언들 가운데 하나인, 일곱 나팔 사건 중에서 제일 마지막 일곱째 나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요한계시록 11:15~19).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일곱째 나팔 시대가 하늘 지성소가 열리는 대속죄일의 시대인 것을 알게 된다. 지성소 속의 언약궤가 보이는 모습은 지성소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는 성소 뜰의 시대였다. 그리고 승천하시어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교회가 성소 시대로 들어가서 십자가의 피로 씻음을 받고 거룩해져야 하는 요구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한 성소 시대가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종결짓는 마지막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각각 심판을 통하여서, 과연 그들이 영원히 살게 하는 참된 믿음과 성품을 가졌는지를 평가받고 있다. 과연 하나님의 거룩하신 면전에서 살 수 있는 자인가를 판단 받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회개한 자들인지를 평가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예복의 비유에서 잔치에 참석한 자들이 예복을 입고 있는지를 조사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선고를 내리기 전에, 집행 심판이 있기 이전에) 자격을 심판하는 일이 선재하는 것을 알게 된다. 물고기의 비유에서도 그물로 물고기를 끌어올린 다음에 좋은 생선과 나쁜 생선들을 골라낸다는 교훈을 배우게 되고, 또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세상 끝에 알곡을 골라내어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뽑아내어 불에 태우게 된다는 교훈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할 때에는 다를 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성소 뜰의 경험을 하고 있을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성소 안에 서 있으며, 어떤 이들은 지성소의 경험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혹 어떤 이들은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아직 성소 뜰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자들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자신들을 철저히 점검하자.
과연 죄의 정결 사업이 나의 영혼의 성전으로부터 진행되고 있는가?
정말 내가 죄를 승리하고 있는가?
성령의 능력을 매일 체험함으로 죄와 분리되는 경험이 내게 실제화 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대속죄일, 우리 속에 있는 죄가 끊어져 나가야 하는 정결의 시기에 살고 있다.
1. 대속죄일에 나타난 구원의 관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구원은 항상 조건적이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믿는 일이 선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용서도 조건적인 것이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누구나 다 의롭다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인생들을 위하여 구원을 마련하여 주신 것이다. 용서를 보증하여 주신 것이다. 그것이 실제화 되기 위하여 인간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버리는 일이 선재해야 하며, 믿음의 손이 하늘로 뻗쳐 올라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구원을 다 이루어 버리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을 못 박은 로마 군인들을 속죄제를 드린 제사장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피를 흘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타나 중보하고 심판하는 역할도 구속 사역에 있어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한일서 2:3~5)고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죄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한다. 복음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능력을(권세를) 함께 주신다. 이 경험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실제적인지를 살피고 심판하는 것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의 왕이 예복을 심사하는 혼인 잔치의 비유는 우리에게 이것을 쉽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왕의 혼인 잔치에서는 초청장을 받고 잔치에 참석한 자들에게만 예복을 심사하는 일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성소에 들어간 자들만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정말로 믿는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에게만 해당한다. 믿고 거절한 자들은 그들의 불신으로 이미 정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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