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 22:7)
보라! 내가 곧바로 간다. 복이 있다, 이 책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중에서)
Behold, I come quickly: blessed is he that keepeth the sayings of the prophecy of this book.(KJV)
“Look, I am coming soon! Blessed is the one who keeps the words of the prophecy written in this scroll.”(NIV)
'보라!'
이는 '눈으로 보라(see)'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관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속히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예수님!
저도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본절은 사실 계 21:9부터 계속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즉,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새 예루살렘 성을 가이드해 주고 있는 사람(?), 누구였습니까? 바로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입니다.
요한계시록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본절입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절에는 접속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장면의 전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절의 말씀 역시 천사의 말이라는 것일까요?
물론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말을 누가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든, 천사가 했든 중요한 것, 우리가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기록된 말씀들이 곧,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천사가 '내가 속히 오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다시 오심)이 속히 이루어진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논쟁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은 재론의 여지없이 이 책 요한계시록일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책을 양피지에 기록했었기 때문에 두루마리라고 표현하였겠지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키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τηρέω(테레오)인데, '주의깊게 보살피다, 지키다. 관찰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우리말로 '행하다(Do)'라는 의미보다는 '지키다(Keep)'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간직하고 지켜내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 요한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다시 오심)의 그 때에 관한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이 말씀을 훼손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첫 계명의 말씀 창 2:16,17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간직하지 못했던, 즉 지키지(Keep) 못했던 여자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했던 사탄은 이제 마지막 말씀 요한계시록을 지키지(Keep) 않을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유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에 대하여, 특히나 '내 마음대로 읽기'라는 제목으로 읽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계시록을 함부로 풀면 안되는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되는데...'
맞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진 말씀으로 자의적으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됩니다.
디모데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후서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이 지금까지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 되어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심지어는 읽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조가 세상에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목사님이 아니면 절대 풀어서도 안되고, 함부로 읽어서도 안되는 금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의 양산지가 바로 요한계시록이었기 때문에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따라서 성도들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고 또한 '이 말씀이 그러한가' 베뢰아 사람처럼 고민해봐야하는 말씀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이 말씀은 성도들이 지켜내야 하는 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단에게 빼앗긴 요한계시록을 되찾아와서 지켜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성도들에게, 교회에게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행하기에 앞서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면 행함은 당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켜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