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展
경매가 45억원의 <빨래터> 등 총 174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1.11.11.-2022.3.1.
가을끝머리인 2021.11.17. 필자가 몸담고 있는 강남시문학회 회원들과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 작품전을 다녀왔다.
11월 하순인데도 덕수궁은 아직 단풍이 싱그럽다.
그동안 박수근 화가의 작품은 지상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보아왔지만 이번 전시는 박수근 작품의 거의 전부가 망라된 전시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유화, 드로인, 삽화 등 총 174점에 이른다.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를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협업하고 유족, 연구자, 소장자 및 여러 기관의 협조로 이뤄진 대규모 전시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건희 컬렉션이다.
작품 <고목과 여인>
중앙일보 11월 17일자 기사에 의하면, 이건희컬렉션에서 나온 작품만 33점에 달한다고 한다.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고목과 여인’ ‘나무와 두 여인’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고목과 여인’은 커다란 고목을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인물들을 그린 구도의 작품이다.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한 구도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노인들의 대화>
1962년 작품 ‘노인들의 대화’(미국 미시간대 미술관 소장)는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샀다. 그동안 이 작품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조지프 리가 타계한 후 미시간대 미술관에 기증되면서 공개됐다.
작품 <빨래터>
2007년 미술품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1954~56)도 보인다.
작품 <귀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1층과 2층에 걸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박수근이 19세에 그린 수채화부터 51세로 타계하기 직전에 제작한 유화까지 그의 전 생애의 작품과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 <고무신>
4개의 전시실은 각각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 소설가 박완서, 아들 박성남, 그리고 일찌감치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본 컬렉터와 비평가의 시선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박수근이 살았던 서울 창신동부터 그가 일하고 자주 찾았던 명동, 을지로까지 박수근의 공간을 담고 있다.
작품 <나무와 두 여인>
전시 제목인 ‘나목’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 그 시기에 곤궁한 생활을 이어나간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전시장을 거닐며 박수근이 살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전후의 한국 사회, 서울 풍경,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작품 <철쭉>
박수근은 12세 때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면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박수근은 초등학교 담임인 오득영 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면서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고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작품 <고목>
박수근은 밀레가 그랬듯이 농촌의 풍경과 일상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그렸고, 거의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화가의 꿈에 다가갔다.
작품 <감>
그는 평범한 이웃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였고, 같은 대상일지라도 여러차례 반복해 그리면서 가장 진실한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박수근이 그린 습작들과 그림 공부를 하며 참고로 삼았던 자료들을 통해 화가가 되고자 하는 그의 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실직>
박수근은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전,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 중요한 전람회에 참여하면서 중견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수근은 미술대학을 나오지않았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지만, 진솔한 소재를 선택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개성적인 화법을 구사하여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작품 <집>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그림만 그리며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박수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고, 용산 미군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 박수근은 미국 개인전을 제안받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병으로 갑자기 타계하면서 꿈을 이루지못했다. PX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는, 훗날 소설가가 되어 박수근이 참혹한 시절을 얼마나 묵묵히 견뎌냈는가를 기록했다.
박완서의 첫 장편소설 <나목>에서 박수근은 황해도 출신으로 연지동 쪽에 사는 옥희도라는 화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이경은 전쟁 중에 두 오빠를 잃어버리고 병든 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게동에서 살아가며 미군 PX에 다니는데, 여기서 바로 이 옥희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작품은 가혹한 전쟁 중의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또한 살아남고자 하는 열망에 시달리는 이경이 미군 GI죠오와의 하룻밤 위기를 넘기고 옥희도를 향한 깊은 사랑의 ‘심연’을 넘어 현실적인 선택에 도달하는 이야기이며 그러고도 남아있는, 옥희도로 상징되는 예술을 향한, 예술적인 삶을 향한 강력한 ‘향수’를 그린 소설이다. 비록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었을 지언정 엘리트 여학생이라는 강렬한 자의식을 품고 있던 젊은 날의 박완서를 움직인 화가 박수근의 모습이 바로 이 장편소설 <나목>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작품 <판잣집>
한국전쟁 때 박수근은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고 이후 가족들과 함께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정착했다. 창신동은 동대문시장에서 가까워 일찍부터 서민들이 모여 살았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도 정착하여 함께 살았던 곳이다. 박수근이 창신동에서 살았던 10년은 화가로서 가장 전성기를 누린 시간이었다.
작품 <세 여인>
판자집이 줄지은 창신동 골목길은 좁고 누추하고 시끄러웠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의연하고 당당하다.
작품 <창신동 풍경>
박수근은 참혹한 전쟁이 지나가고 폐허가 된 서울에서 강인하게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림에 새겨 넣었다.
작품 <농악>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박수근의 그림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상, 서울의 풍경, 서민들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작품 <노상>
자그마한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신동, 그리고 그곳에 사는 박수근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박수근이 대청마루를 화실 삼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의 집에는 동네아낙과 기름장수가 드나들고, 가끔 그림을 보러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개구쟁이 아이들이 소란을 피운다.
작품 <노상에서>
그리고 ‘오후 4시’, 박수근은 방에서 멀지않은 시장에서 장사치 여자들이 떠들어대는 소리, 집 안에서 나는 수돗물 흐르는 소리, 옆방에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나 들려오는 웅웅거림, 창밖으로 지나가는 기동차의 덜커덕거리는 궤음과 경적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는 창신동 골목을 지나 시내로 나간다. 혜화동, 동대문, 을지로를 지나 명동으로 가는 길에는 골목길에서 왁자지껄하게 뛰노는 아이들, 나무 아래 모여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 손님을 기다리며 지루하게 앉아 있는 행상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박수근 그림의 주인공이다.
작품 <아기업은 소녀>
박수근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우리나라에 추상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다. 박수근은 미국에서 들어오는 추상화를 공부하면서도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는 자신의 화풍을 꿋꿋하게 고수했다. 박수근의 그림은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려서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형태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고, 색을 아껴가면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작품 <노변의 행상>
이러한 그림들은 우리나라의 옛 흙벽, 분청사기, 창호지, 그리고 화강석으로 만든 불상 등을 떠올리게 한다. 비평가들은 박수근을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반도화랑을 통해 그의 작품을 구매했다.
작품 <도마 위의 굴비>
1965년 박수근이 타계하고 1970년대 말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한 뒤에야 박수근의 그림은 비로소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거래되고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곳에 올린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의 스크랩 및 일부는 도록 또는 전시작품을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며, 작품소개 글은 전시 팜플렛 게재 글 및 도록 등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혀둠. 필자가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은 조명 등의 여건상 원본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거나 일부는 촛점이 흐린 작품도 있음(예:창신동 풍경).
# 전시는 1,2층 전관이니 2층도 반드시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