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 제123권 / 묘지(墓誌)
고 정당문학 이공 묘지(故政堂文學李公墓誌)
최해(崔瀣) 찬(撰)
사람은 음(陰)과 양(陽)의 정기를 타고났으니, 태어나는 것은 기운이 모이는 것이요, 그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 사이에, 궁하고 달하고 얻고 잃으며, 길고 짧고 더디고 빠른 것이 역시 각각 그 타고나는 데에서 오는 것이니,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러한 것만 알고 수련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초목과 함께 썩고 말아 영영 알려지지 않고 말 것이며, 이것은 또 이른바 하늘과 땅 사이에 참여하고 만물 중에 신묘한 인간이 아닌 것이다. 옛날에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은 덕이 아니면 공(功)으로 큰 산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사람은 겉으로 작게 일어나는 것은 안다.
그 은덕이 사해(四海)에 두루 입혀지는 것을 덕이라 하고, 일과 기회가 모이는 곳과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백성을 도탄에서 건지고, 사직을 이롭게 하는 것을 공이라 한다. 이러면 몸은 가도 도는 더욱 나타나며 사실은 멀어져도 이름은 더욱 빛나는 것이니, 천년 후에라도 일월과 함께 빛을 다툴 것이니, 어찌 그 평소의 출처가 험하고 쉬운 것을 가지고 의논할 것이랴. 나는 늙었으므로 겪은 일이 많다.
방금 보면 불꽃처럼 일어나고 햇빛처럼 밝아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가도, 일찍이 발길을 돌리지 않아서 그만 없어지고 말며, 그가 행한 업적이 있음을 묻기까지에 이르지 못하니, 모두가 슬픈 일인 것이다. 그런데 저 삼한재상(三韓宰相) 이공 같은 분은 본래 온 나라에서 칭찬하고 높이는 바 되었으며, 나도 일찍이 조용히 그 뒤를 따른 자이다.
무슨 수고라도 하여야 할 터인데 그 아들이 무덤 길의 글을 청하니, 어찌 감히 자중만 하고 거절한 것인가. 공이 처음 벼슬한 것은 충렬왕 때의 일인데, 태위왕(太尉王 충선왕)이 이미 데려다 속관으로 삼았으며 인하여 오랫동안 수종(隨從)하는 수고를 맡기고 벼슬도 높아지게 되었다.
지금 왕과 인연을 맺어 알게 되면서는 특별히 정부에 두어 문학의 관원으로 대접하고, 더불어 다스리는 도리를 의논하였으며, 전 왕을 다시 만나서도 그 소임을 그대로 하였다. 모두 네 임금을 섬겼는데 그때마다 총애를 받았으며 전일과 변함이 없었으니, 자신의 문장이나 풍류가 군왕을 움직임이 아니면 어찌 이럴 수가 있을 것인가.
공의 휘는 언충(彥沖)이요, 자는 입지(立之)이며, 선대는 청주(淸州) 전의현(全義縣)이 본향이다. 국가 근세의 명재상인 휘 혼(混), 시호 문장공(文莊公)의 조카이며, 고 응양군 대장군(鷹敭軍大將軍) 휘 천(仟)과, 고 직문한서(直文翰署) 증대사성(贈大司成) 휘 자원(子蒝)은 공의 조부와 부친이 되며, 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의 딸 봉작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은 공의 모친이 된다.
공은 임진년 사마시(司馬試)를 보아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또 갑오년 과거에 합격하여 내시관인 흥신궁 녹사(興信宮錄事)로 들어간 후로 여러 번 전임하여, 군부 좌랑ㆍ정헌대부 대사성 진현관제학ㆍ지제교ㆍ통헌대부 검교선부전서ㆍ행 전의령ㆍ평양도 존무사ㆍ행평양윤ㆍ경상도 진변사ㆍ행 김해목ㆍ내사 개성 부윤이 되었으며, 다시 고쳐 좌상시 판선공시 밀직부사 상호군 광정대부 정당문학 첨의평리 예문대제학 지춘추관사(左常侍判繕工寺密直副使上護軍匡靖大夫政堂文學僉議評理藝文大提學知春秋館事)가 되었으니, 이것이 공의 평생 동안 역임한 관직이다.
김씨 봉작 화평군(化平郡) 고 첨의평리 휘 희(禧)의 딸과, 홍씨 봉작 강령군(江寧郡)의 지금 왕경 등처 순군만호(王京等處巡軍萬戶) 유(綏)의 딸은 공의 두 부인이 되는데, 김씨가 먼저고 홍씨가 뒤를 이었다.
고 신호위 중랑장(神虎衛中郞將) 광기(光起)와 고 위랑장(衛郞將) 광익(光翊), 고 전의시 주부(典儀寺注簿) 사걸(俟傑)과 상원(上元)은 지금 성동(成童)이 되었고, 삼보(三寶)는 겨우 열 살인데 모두들 공의 아들이며, 현임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민상(閔祥), 정관고려군천호(正管高麗軍千戶) 이을년(李乙年), 고 비순위 별장(備巡衛別將) 원허(元詡), 창릉 직(昌陵直) 윤희보(尹希甫)는 공의 사위이다.
또 세 딸이 있는데 아직 어리다. 계유년 월일에 났고, 무인년 계해월 경술일에 공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 해 을축월 정유일에 공을 장사 지냈다. 명문에,
군자께서 가시지 않았을 때는 / 見君子之未亡
신기(神氣)가 양양(敭敭)하셨네 / 有神氣兮敭敭
복록이 더욱 창성할 줄 믿었는데 / 謂言褔祿久彌昌
한스럽게도 군자 벌써 가셨네 / 恨君子之已亡
망망한 하늘을 원망해 무엇하리 / 討大空兮芒芒
참으로 인생은 무상한 것이네 / 信乎人生不可常
하였다. <끝>
ⓒ한국고전번역원 | 김용국 (역)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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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故政堂文學李公墓誌
人禀陰陽以生。生爲氣聚。散則爲死。其間窮達得喪脩短遲疾。亦各因其所稟。無可怪者。苟委其然。不加以脩。則其卒與草木同腐。泯焉無聞。又非所謂參二儀妙萬物者矣。古之死而不死者。匪德則功如大山。靜而不動。人知膚寸之興。澤周四海之謂德。事機之會。雷風相盪。振民塗炭。利在社稷之謂功。是則身幽而道彌著。事遠而名愈彰。千載之下。日月爭光。尙何平昔出處險易之足論哉。余老矣。所閱者多矣。方見炎炎赫赫。可愛可畏。曾不旋踵。淪謝已盡。未及問其行業。俱可哀已。越若三韓宰相李公。雅爲一國所稱尙。而余又甞從容後者。宜軫其憚。而其孤謁以隧道之文。則安敢自重而拒之乎。公之始仕在忠烈王時。太尉王已引以爲屬。因久任羇靮之勞。致位高顯。及結今王之知。特置政府。待以文學。與評治道。替遇前王。復仍厥任。凡事四王。每承寵接。勝如前日。自非詞采風流有動人主。疇克如是耶。公諱彦冲。字立之。先世淸之全義縣人。爲國近時名宰諱混。謚文莊公猶子也。故鷹敭軍大將軍諱仟,故直文翰署贈大司成諱子蒝。爲公祖考也。故檢校軍器監金惟銑之女。封永嘉郡夫人。爲公妣也。公擧壬辰司馬試中魁。又登甲午年第。自入內侍興信宮錄事。累轉軍簿佐郞正獻大夫大司成進賢館提學知製敎通憲大夫檢校選部典書,行典儀令平壤道存撫使,行平壤尹慶尙道鎭邊使,行金海牧,內徙開城府尹。改左常侍判繕工寺密直副使上護軍匡靖大夫政堂文學僉議評理藝文大提學知春秋館事。爲公平日所歷官也。金氏封化平郡。故僉議評理諱禧之女。洪氏封江寧郡。今王京等處廵軍萬戶綏之女。爲公兩夫人也。金先而洪繼。前神虎衛中郞將光起。前衛郞將光翊。前典儀寺注簿俟傑。上元方成童。三寶纔十歲。爲公子也。見任僉議贊成事閔祥。正管高麗軍千戶李乙年。前備廵衛別將元詡。昌陵直尹希甫。爲公壻也。又三女處而幼。歲癸酉月日。爲公生也。歲戊寅月癸亥日庚戌。爲公卒也。是歲月乙丑日丁酉。爲公葬也。銘曰。
見君子之未亡。有神氣兮敭敭。謂言福祿久彌昌。恨君子之已亡。討大空兮芒芒。信乎人生不可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