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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845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10월27일, 묘시(卯時) 초(初)에 일어나니 지다 남은 하현(下弦)달이 중천(中天)에 떠 있어 가을밤의 운치가 조금은 남아 있도다!
내자가 챙겨주는 조반(朝飯)을 대충 빨리 들고는 문 밖을 나서니, 아직은 주위가 어둑 어둑 하여 길손이 많지 않다. 2011년 까지는 집사람과 늘 함께 등산을 할 수 있었는데, 2012년 부터는 시장 휴무일(첫째, 셋째)이 바뀌어서 함께 동참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홍현문님, 오정순님 등 네분이 이미 도착해 있으며, 뒤이어 금부총님을 비롯하여 그 친구분들과 서부장님, 염종우님이 함께 왁자지껄 도착하신다. 두달여 만에 뵙는지라 서로 얼싸 안으며 크게 소리치니, 가슴이 뭉클하고 인정이 따사롭다.
차례 차례 서남시장을 거쳐 칠곡 IC에서 최종 출발하니, 핵심 맴버들이 과음(過飮)으로 불참 하셨단다. 고사(古事)에 “수처작주(隨處作主)”라 했는데...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주인됀 의식이 필요합니다.
차는 신나게 달려 “경부고속국도”로 접어드니, 다가오는 먼~ 산천(山川)의 풍광들은 제법 누~릿 누~릿~ 황엽(黃葉)의 기운이 완연(完然)하도다! 높은 山에는 오색의 황엽이 더욱 진해서 서서히 붉음으로 물들어 내림니다.
계절의 순환(循環)은 너무도 빨라서, 덥다! 덥다! 하던 날이 엊그제 같건마는 대지(大地)는 어느새 붉음을 토해내고 있으니... 송(宋)나라 주희(朱熹)의 시에서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못둑의 봄풀위에서의 꿈이 깨지 않았거늘)이어늘,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섬돌앞 벽오동잎이 이미 가을 소리일레라)”이라! 드니... 과연 허언(虛言)이 아닙니다 그려!
“김천간이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줄곧 내달아 신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를 조금 지나 있다. 매표소를 지나 몇걸음을 나아가니 주막집 입구에는 솟대를 만들어 여러곳에 세워 두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서둘러 신원사(新元寺) 돌계단을 올라 경내로 들어서니, 고즈넉한 산사에 목탁소리가 정적(靜寂)을 깨뜨립니다. 맞은편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형식이다.
뜰아래 마당 가운데는 5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31호)이 천년의 침묵으로 한껏 뽐내고 있으며, 좌우로는 두 개의 석등(石燈)이 중생의 어둔 마음을 영겁(永劫)의 세월동안 여여(如如)히 밝혀 주십니다.
선채로 간단히 예를 드리고는 잠시 도량(道場)을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웅장하고 청룡(靑龍) 백호(白虎)도 그만 그만하여 수려한데, 안산(案山)은 너무 멀어서 비보숲(裨補林)을 조성 하였도다! 옛 선인(先人)들의 지혜로움에 그저 감탄하면서, 동북편의 중악단(中嶽壇)으로 향합니다.
중악단 가는길 저만큼 우측 언덕 아래는 “국제선원(國際禪院)”이 숲속에 진좌(鎭坐) 하고 있으며, 해제철(음 7/15~10/15)이어서 그런지 선방(禪房)문이 잠겨 있다. 조금 있으면 여러나라에서 눈푸른 납자들이 동안거(冬安居, 음 10/15~1/15) 기간 동안 치열한 구도참선(求道參禪)이 있을 것이야!
이런 저런 생각으로 중악단 중문밖에 이르니, 좌우 문설주에는 두 개의 주련(柱聯)이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하게 반겨 주신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財寶: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백년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티끌 이로다)이라!
스스로 자괴(自愧)한 마음에 옷깃을 만지며 정전에 들어서니, 고색(古色)어린 중악단(中嶽壇)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중악단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조선 태조3년(1394)에 무학스님이 계룡산신의 현몽을 받아 창건 하여 처음 제사를 올렸다 하며, 효종 2년(1651)에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명성왕후 민비가 재건하여 제사를 다시 모셨다고 한다.
북에 묘향산 상악단(上嶽壇), 남쪽에 지리산 하악단(下嶽壇)과 더불어 삼악단(三嶽壇)이 있었는데, 오늘날 유일하게 “중악단”이 남아 있으며, 1998년부터 충청남도 주관으로 그동안 중지되었던 “산신제(山神祭)” 의식을 음력 3월 15~16일간 1백년만에 재현하여 모시고 있다 한다.
선채로 예를 드리고 문밖을 나오니 저만큼 채소밭 한켠에 고색어린 5층석탑이 홀로 빈터를 지키고 있슴니다. 자료에 의하면, 본래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 고구려의 보덕화상(普德和尙)이 현 채소밭 위치에 창건 하였다 하며, 이 후 여러차례 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임진란 당시에 소실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한다.
중악단 뒷산의 푸른 솔밭을 배경으로 회원님들에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신원사계곡을 서둘러 오름니다. 울~긋 불~긋 단풍잎 사이로 찬란한 태양빛이 반사되어 가뜩이나 아름다운데, 눈까지 부시는구나!
자세히 보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어 불그레한, 불그스럼한, 노르스럼한, 샛노란, 노릿노릿한 잎들이 어우러져서 천차만별(千差萬別)의 색상이 우러 나온다! 가을 서리에 푸르던 잎들이 흐~물 흐~물 녹으면서 시나브로 겉으로 드러나서 “카로틴”은 감잎을 누렇게, “크산토필”은 은행잎을 샛노랗게, “타닌”은 참나무 잎사귀를 갈색으로 물들게 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어느 시인(詩人)은 “손을 움켜쥐면 주먹이요, 펴면 단풍잎입니다.”라고 하드니...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 아니던가! 향기로운 가을 공기를 가슴깊이 들어 마시며, 회원님들과 도란 도란 정담(情談)을 나누며 걷는 재미가 더 없이 쏠쏠 합니다 그려!
살아서 이름다운 조국의 山川을 밟으며 오색으로 물든 계룡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것 만으로도 더 바랄게 뭐 있겠는가! 10여 분을 오르니 금룡암(金龍庵)에서 울려퍼지는 목탁소리가 적멸(寂滅)의 계곡을 진동(震動)하고, 왼쪽 언덕 위로는 보광원(寶光院)과 소림원(小林院)의 수도처가 보인다.
20여 분을 올랐을까? 높다란 언덕 위에는 “고왕암(古王庵)”이 진좌하고 있으며, 울창한 대숲에 가리워져서 그 모습이 얼른 드러나지 않슴니다. 여러개의 돌계단을 올라 좁다란 도량에 서니, 대웅전과 백왕전(百王殿), 산신각 등 전각이 단촐하다.
안내문에 고왕암은 백제 의자왕 30년(660) 백제 멸망되던 해의 6월에 창건 되었다 하며, 이후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임진란 당시에 소실되어 없어진 것을 1928년 청운화상(淸雲和尙)이 재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백제멸망 당시에 의자왕 다섯째 아들 융(隆)이 피신 하였다가 이 곳에서 신라에 항복하여 고왕암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면서 1시간 여를 올라 연천봉 고개 부근에 이르니, 시야는 제법 넓어져서 상당히 먼곳까지 언뜻 언뜻 보입니다. 마지막 철계단은 경사가 심하여 모두들 진행이 더디다.
그럭 저럭 연천봉 고개에 이르니 시계는 12시를 조금 지나있다. 후미에 남산님들이 도착할 동안 선발대로 도착한 염종우님과 등운암(騰雲庵)에 들러 간단한 참배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 봅니다.
연천봉(連天峰.739m)은 백두대간의 영취봉 부근에서 서남으로 뻗어나온 한줄기를 따라 장안산, 팔공산, 진안의 마이산을 거쳐 다시 운장산, 천호산을 지나 계룡산 천황봉을 거쳐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을 지나 이곳 연천봉에 이르고, 이어서 공주를 거쳐 부여에서 그 맥을 금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금남지맥이라 한다.
정상 바로 아래는 등운암이 자리하고 있으며, 등운대사(騰雲大師)가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사는 이 곳에서 암자를 짓고 수도 하였으며, 그는 부설거사(浮雪居士)의 아들이다.
부설거사는 한때 스님이었으며, 기이한 인연으로 묘화(妙花)라는 여인과 결혼해 환속하여 속가에 살면서 아들 등운(騰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다. 부설거사는 대각(大覺)을 이룬뒤 열반에 들고, 아들은 등운암에서, 어머니 묘화부인과 딸 월명은 변산반도로 들어가서 움막(훗날 월명암)을 짓고 수도하여 득도를 하였다.
이 후 묘화부인은 장흥 보림사로 들어가서 살았는데, 그들은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밤이면 등운암에 자주 모여 함께 수도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근래에 새로 지어 고색어린 멋은 없으며,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계 양식이다.
도량(道場)내에는 요사채와 공양간, 해우소(解憂所)가 전부다. 이 높은 곳에 헬기로 자재를 운반해서 지은 전각이며, 돌축대가 참으로 튼실하다. 사람의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에 닿고도 남겠슴니다.
맞은편에는 천황봉이 지척에 있어 손에 닿을 듯 하고,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을 거쳐 연천봉에서 다시 천황봉을 되돌아보는 형국이라! 풍수적(風水的)으로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 하겠으며, 천하의 길지요! 으뜸 형국이로다!
훗날 인연이 닫는다면 한철 나고 싶구나! 오래 오래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헬기장으로 가서 모든님들과 함께 모여 가져온 중식을 맛나게 드심니다. 날씨는 따뜻하고도 고요하며, 온산에 등산객들의 옷차림도 울~긋 불~긋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니, 그야말로 여기가 선계(仙界)요! 불계(佛界)로다!
점심후 A,B코스로 나뉘어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모두가 A코스를 선택하여 함께 진행하시니 신나고 활력이 넘쳐 납니다. 연천봉에 올라 모두들 기념촬영을 마치고 바위봉에 석각(石刻)을 살펴보니, “방백마각(方百馬角) 구혹화생(口或禾生)”이라 새겨져 있다.
“방(方)=사(四), 방백(方百)=사백(四百), 마(馬)=우(牛), 우(牛)는 파자(破字)로 팔십(八十), 각(角)은 뿔달린 짐승으로 뿔은 보통 2개가 달려 있으니 각(角)=2, 고로 482년을 의미하며, 구(口)+혹(或)=국(國), 화(禾)+생(生=多)=이(移:옮기다), 고로 482년에 조선이 망한다.”라는 참언(讖言)이 새겨져 있다.
실재 조선은 1392~1910년까지 이어졌으니, 37년이 더 이어졌던 것은 연천봉 아래 등운암(연천사)을 조선초기에는 압정사(壓鄭寺)로 바꾼 것이며, 또 신원사에 중악단(中嶽壇)을 지어 정성을 올렸기 때문이라 하니... 참으로 이씨왕조(李氏王朝)의 연명을 위해서 갖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높고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관음봉(觀音峰)으로 향합니다. 문필봉(文筆峰) 가는길은 나무철책으로 막혀있어 빙 둘러서 관음봉으로 진행하니 이정표에 0.9Km라 적혀있다.
점심후라 배도 든든하고 모든 회원님들과 여유롭게 진행하여 30여 분 후에 관음봉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로다! 계룡산은 천황봉과 쌀개봉 진입이 막혀있어 사실은 관음봉(觀音峰. 816m)이 최고봉인 셈이다.
몇걸음을 더 올라 관음봉 정상에 이르니 8각정자에는 등산객들이 빼곡 빼곡 앉아 있어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합니다.정상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시는 분들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 겨우 겨우 우리 남산님들에게 몇 몇분들만 촬영을 해 드리고 천하를 조망(眺望) 합니다.
동으로 저만큼 깊은 계곡 사이로 동학사(東鶴寺)의 절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으며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들어있고, 우측 능선으로는 천왕봉, 황적봉이 연이어 달리며, 좌측 능선으로는 자연성릉을 지나 삼불봉, 신선봉, 갓바위, 장군봉으로 이어져서 끝간데를 모르겠도다!
오늘따라 시계(視界)도 넓어서 저~ 멀리 유성 일대까지 어렴풋이 보이니, 계룡산의 진면목(眞面目)이 여기야 다 뵈나다!
자연성릉과 삼불봉 가는길은
사람들의 열매로 아롱다롱 하도다!
가뜩이나 가을산은 아름다운데...
울긋 불긋 산꾼들이 덧칠을 하는구나!
한계단 한계단 기다리고 밀리며 진행하니, 자연보다 선남선녀(仙男仙女)들이 더 아름답도다! 중간 중간 남산님들에게 사진촬영도 해 가면서 1시간 여를 걸었을까? “자연성릉”을 통과하여 “삼불봉(三佛峰)” 근처에 이르렀을 때 “소방구조헬기” 한 대가 고요의 정적(靜寂)을 깨뜨리며, 자연성릉 중간쯤에서 맴돌며 “응급환자”를 수송하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壯觀)이다!
21세기 첨단문화의 소산으로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구명하는 “007작전”을 눈 앞에서 보는것도 오늘의 행운이요! 또한 기쁨이로다! 이 높은 곳에서 “산악구조대원”들이 인력으로 구조운반(救助運搬) 한다면 가능이나 하겠는가...?
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몇걸음을 더 오르니, 이번에는 금부총무님께서 긴급한 전화가 빗발친다. 함께 한 일행중에 처음오신 한분이 다리 근육통으로 진행을 못하고 있다면서... 서둘러 홍현문님과 되돌아 내려가니, 다른 산악회원님의 응급처치를 받아서 힘들게 힘들게 올라 오신다.
적당한 곳에서 ‘스프레이물파스’를 뿌리고, 홍현문님께서 다리 근육을 풀어 드리니, 한결 좋으시단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쉬엄 쉬엄 진행하여 ‘삼불봉과 금잔디고개’ 갈림길에 도착하니, 이름모를 고혼(孤魂)이 잠들어 계신다.
주위는 나무철책으로 단정하게 보호되어 있고, 좌향은 삼불봉을 안산(案山)으로 모셔져 있다. 이 높은 곳까지 옮겨 모신 후손들의 정성도 지극하거니와 나무철책으로 잘 보호되어 있어 참으로 보기드문 효성이로다!
‘금잔디고개’에서 10여 분을 쉬면서 후미와 다시 합류하여 갑사 방향으로 30여 분을 나려가니, 아름다운 수정봉(水晶峰)아래 신흥암(新興庵)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슴니다. 도량(道場)내 전각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요사채와 산신각, 비로전 등 비교적 단촐하다.
신흥암은 갑사의 산내 암자로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자연암봉(천진보탑)”에 모셔 놓았다. 마당에서 보궁쪽으로 바라보면 보궁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모양이 “연꽃봉우리”가 한송이 곱게 반개(半開) 해 있는 것 같으다.
뜰 앞에서 바라보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천하의 요새(要塞)요! 풍수적으로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이다. 뒤돌아 나오니 황고문님과 김해진님은 사진촬영에 분주하시고, 뒤이어서 서부장님과 그 일행을 좇아 대성암(大聖庵)까지 나려오니, 짧은 가을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울어서 짙은 그늘에 어둠이 밀려온다.
시간이 여의치 못해 갑사(甲寺) 도량을 골고루 둘러보지 못하고, 개울건너 “공우탑(功牛塔)”과 1930년대 공주 갑부 김갑순의 별장을 디카에 담아 물러 나옵니다. “공우탑”은 갑사를 중창할 때 힘겹게 등짐을 져 날랐던 영리한 소가 있었는데, 그 소가 늙어 죽으니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것이라 한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철당간및지주(보물256호), 승탑(僧塔:보물257호), 범종(보물478호), 석조약사여래입상, 사적비, 대웅전, 강당, 표충원(表忠院), 팔상전, 대적전, 월인석보판각 등 끝없이 이어진다.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측 언덕위에 부도탑(浮屠塔)이 모셔져 있는 곳에 들러 선채로 간단히 예(禮)를 드리고 내려오니, 이제는 드는 사람보다 나는 사람이 더 많도다!
이몸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삼세(三世)의 인연따라 오고 가는 것인가
사바세계(裟婆世界)는 남의 얘기로 넘쳐 나지만
이제보니 내 자신을 찾기도 바쁘구나!
허허(虛虛)로운 맘으로 일주문을 나서니, “춘마곡(春麻谷)이요! 추갑사(秋甲寺)라!” 드니... 역시 단풍은 갑사로다!
단기 4346년(서기2013년) 10월 27일
공주시 계룡산(鷄龍山.845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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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일 '계룡산' 산행에 동참하셨던 모든님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또 진행에 수고 하셨던 벽송 산대장님을 비롯하여 구 부대장님, 박총무님,
금부총무님께도 감사를 드림니다. 아울러 사진 자료를 제공해 주신
황고문님, 김해진님, 산애님께도 감사드리며, 모든회원님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고회장님 계룡산의 역사를 다시 쓰셨습니다. ~^&^
봄은 마고사요~
가을은 역시 갑사가의 단풍이 아름답지요.~~ㅎ
즐감하고갑니다.~
이 고문님의 격려에 언제나 감사드림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장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으며,
한결같이 남산까페에 출책하셔서 늘 밝혀 주시니...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슴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명산중에 명산 국립공원 연천봉에서 바라본 장엄한 봉우리,하며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리어져있는 풍광 감탄사가 절로나옵니다.
긴 장문쓰시느라 많은수고하셨고 후일 남산산악회의 좋은 산행자료가 될것 같습니다.
벽송대장님! 산행당일 진행에 수고 많았슴니다.
아울러 늘 남산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경주 하심에 감사드리며,
변변찮은 졸문을 읽으시느라 애쓰셨슴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회장님~
산행후기 잘읽고갑니다
더불어 많은공부도 함께하고갑니다~
구슬님은 올레길 잘 다녀오셨는지요?
아름다운 가을 산행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런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계룡산의 장엄한 모습에 감탄하고 회장님의 산행 후기에 역사를 배우고 갑니다.
등산 하면서 앞으로 가다보면 눈에만 보이는 것에 빠지고...
후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황고문님께서 오셨군요! 후미에서 늘 보이지 않게 챙겨 주셔서 감사드리며,
보잘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애쓰셨슴니다.
아울러 좋은 사진들을 많이 올려 주셔서 자료로 많이 활용할 수 있어 감사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