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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 A
3월 첫 주의 마지막 평일인 금요일.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카메라 액정화면을 다시 열어봤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게 뭐예요?’하고 물어봤다면 ‘아 이거요’하고 소개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으려나.
내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담기는 사진의 대부분은 취재터에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즉 기사작성을 끝내고 나면 다시 쓸 일은 거의 없는 한시적 필요성의 ‘업무용’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끝났다고 통째로 다 삭제해버리진 않는다. 어째서인지 그 중 몇 컷은 그대로 남겨 두고서 조금 더 생명을 붙여 준다. 그것들은 다시 열어볼 때 마다 ‘아하 그 날 이런 곳에 내가 있었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눴구나’ 하고 떠올리는 기억의 파편이자 내 존재의 증명이 된다. 물론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할 생각은 없기에 이렇게 남겨진 대부분의 사진은 좋은 만남의 결과물이고 그 정도에 따라 그것을 보존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 날 남겨진 사진도 꽤 오랫동안 보존할 것 같다.
만남 - 사람좋은 소대장
의정부 경기도 2청의 도민안방 1팀을 만난 건 금요일 오후 4시. 그들은 지하철 1호선의 극동부인 녹양역 플랫폼에서 현장민원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통하는 지하철이기에 늦은 시각에도 찾아드는 사람이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1팀의 소대장은 정병윤 팀장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민원실은 마침 한산했고 덕분에 지휘관과의 즉석 브리핑이 곧장 진행됐다. 힘든 일이 뭐냐고 물으니 가장 먼저 꺼내는 것이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에도 나와 일하잖아요? 그럼 공무원이 왜 공휴일에 나와 일하느냐고 의심부터 받아요. 처음부터 녹록치가 않죠.”
도민안방 프로그램의 시작은 북부청사에서 먼저 진행됐다는 사실도 그에게서 들었다.
“원래 이거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거예요. 이래뵈도 벌써 1년 다되어 가죠. 그리고 북부에서 먼저 시작한거예요. 그 땐 각 부서에서 몇 명씩 차출되어 즉석팀을 꾸린 뒤 매일 이 곳 저 곳 다녔어요.”
기존의 민원실은 도민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장소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외곽지역 도민들을 생각한다면 거꾸로 공무원들이 찾아가 민원실을 꾸릴 필요가 있다. 이런 취지로 시작된 것이 도민안방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파일럿프로그램으로 시작됐고 어느새 내달이면 1년째를 맞는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차출되어 하루하루 급조되는 팀이 의욕적일리 만무하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을 겪던 북부 지역은 지난해 10월 남부지역도 도민안방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후발 주자로 나섰지만 그 쪽은 북부지역의 선례를 베이스로 전담팀을 꾸리는 등 보다 체계적인 진행이 처음부터 가능했다. 본청이다 보니 홍보 지원도 용이했다. 어느새 북부지역보다 더 알려지는 상황이 됐다.
북부지역도 한달 늦게 11월부터 프로그램을 전담팀 제도로 개편하기에 이른다. 도청 내 각 부서에서 도민안방 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100퍼센트 자원자로만 4팀을 구성했고 그것이 지금의 북부팀이다.
석달째 월화수목금금금의 강행군 “1명만 더”
경력이야 남부팀에 비해 앞서지만 여러모로 지원은 부족한 것이 북부팀의 현실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총괄팀의 존재여부.
“우리가 표면적으로는 하루 일하고 다음날은 비번으로 쉬는 시스템입니다만, 실은 비번인 날도 청사에 나가서 일해요. 접수받은 내용을 정리해 보고서류에 올려야죠. 또 다음번에 나갈 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일이예요.”
“따로 담당하는 접수자가 없습니까?”
“그게 총괄팀 역할인데...”
남부 쪽은 현장팀과 지휘통제실 역할의 총괄팀이 잘 꾸려져 있다고 했다. 반면 북부는 상황이 달랐다. 팀별 인원수는 1팀이 7명, 나머지 세 팀은 5명씩인데 이 중 1팀의 2명은 내근하면서 총괄업무를 담당한다. 결국 1팀도 바깥 근무자는 똑같은 5명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두사람 만으로는 네 팀에서 몰리는 것들은 도맡아 전담하기가 힘들다. 결국 각 팀원들은 쉬는 날 출근해 전날 현장에서 쌓인 민원 접수, 그리고 다음번 현장 섭외까지 일괄 처리한다.
듣자하니 지난 11월 팀이 만들어진 이래 설날 연휴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진행된 도민안방이다. 격일 휴무라지만 실상은 매일 업무가 진행된다.
인원 확충도 아쉽다. 남부는 한 소대당 6인체제지만 이 곳 소대는 5인씩. 그 한명의 부재가 아쉽다. 한가할 때는 텅 비지만 북적댈 때는 점심도 굶으면서 줄짓는 상담자 및 이용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게 이들이었다.
이외에도 지원 내지 보강을 원하는 부분이 있는가 솔직히 답해달라고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예산적 문제를 말했다.
“곧 소개를 하겠지만 여기엔 우리팀만 있는 게 아니라 의료진, 119구조대, 변호사 등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하거든요. 이러한 분들 모실 때 점심값 정도는 저희가 부담해야죠. 1인당 7000원 가량을 지원받기는 하는데, 솔직히 상황에 따라선 식비 정도만으로는 빠듯할 때가 있어요. 추운 날은 뜨거운 차라도 한 잔씩 드려야 하고. 보다 많은 분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은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요.”
“매일 일해야 하는데 집에서 뭐라 안 해요?”
“뭐 요샌 그냥 이해하네요.”
가장 많이 찾는 코너는 의료상담
이야기 도중 이용객 한명이 자리에 앉았다. 해당 코너는 의료상담코너. 의정부 의료원에서 찾아온 유혜주 간호원이 상담을 맡는다.
민원실엔 5인의 팀원 뿐 아니라 각 관계기관에서 차출되어 온 봉사자들이 함께 한다. 우선 의료상담 코너는 의료진 2명이 늘 함께 찾아오는데 의사와 간호원이 1인씩 오거나 간호원으로만 2인조를 이룬다. 119 안심콜접수 코너는 소방서에서 1명씩 찾아와 자리를 지킨다. 가끔씩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변호인이 찾아와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무료법률상담을 맡기도 한다.
현장민원실의 상담코너는 모두 다섯개. 일자리상담, 도시주택, 생활민원, 119안심콜등록, 의료상담으로 이뤄지는데 이 중에선 단연 의료상담 코너가 가장 바쁘다. 여기에선 무료로 체성분과 단백질 등을 체크하고 당뇨, 혈압 여부 등을 진단받을 수 있어 노년층이 관심을 보인다. 오늘 하루 이용객수는 47명. 많을 때는 200명도 가뿐히 넘긴다. 안심콜 등록 역시 하루 50건에서 100건 이상의 신규접수자를 받고 있다.
“너무들 친절하게 상담해 줘서 고맙죠.”
의료상담을 받는 장금순 할머니는 전라북도에서 먼 여행을 온 타지 주민이었다. 녹양동에 사는 동생네 경사에 참석하고자 여기 경기도 의정부까지 찾아온 것. 타 도민 사람이지만 ‘도민안방’이라고 해서 경기도민과 타 도민을 가려 이용자를 받지는 않는다.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고 기다리는 게 이들이었다.
상담이 끝나자 할머니는 119구급대원이 지키고 있는 안심콜등록 코너로 자리를 옮긴다. 안심콜등록 서비스를 잠깐 소개하자면 등록자의 건강 및 신변에 문제가 생길 시, 그러니까 예를 들어 심장병을 지병으로 가진 환자가 지하철에서 쓰러졌을 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가 등록인의 정보를 토대로 보다 신속한 응급처치를 꾀할 수 있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제도다. “이렇게 의료코너에서 상담 받고 안심콜로 이어지는 사람이 많으냐”고 물으니 정 팀장은 “그런 분들이 꽤 있다”고 밝혔다.
십수분간 이어진 상담이 끝날 무렵 마중나온 사람이 “언니!”하고 할머니를 부른다. 그제사 할머니는 “너무나 친절하게 상담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일자리 상담한 최고령자는 33년생
오후 5시가 되자 외부 봉사자들이 한발 앞서 자리를 뜬다. 의료원들은 퇴근길에 올랐고 소방서에서 온 젊은 대원은 소속팀에서 들어온 긴급출동요청에 뛰어 나갔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찾아온지라 이렇듯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했다. 다른 때라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지만 이 날은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말을 걸어볼 다른 사람을 찾았다.
“그래도 담당자님은 비교적 한가하셨겠어요.”
박남준 담당자가 오늘 맡은 코너는 일자리상담이었는데 그 시각까지 접수된 건수는 다 합쳐서 네 건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가 인터넷 등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내기에 유동인구가 드나드는 장소임에도 그리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은 다수를 통해 성과를 얻기보다는 정보나 이동능력이 부족한 소수를 위한 것이기에 북적이는 것보단 한사람 한사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덧붙인다.
“일이 없을 땐 지난날의 상담기록을 뒤적이면서 잘 되었는지 어떤지 물어요. 그럼 그것만으로도 신경 써 준다고 고맙다고들 하세요.”
솔직히 노령자의 취업 알선은 젊은이보다 몇 배 어렵다고 했다. 우선 일자리를 내놓는 업체에서 ‘실버’를 찾는 일이 드물다. 게다가 상담하러 오는 사람 중에도 절실하게 일을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거나 혹은 조건이 맞지 않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번 일을 통해 지역적 교통적 연계의 발전필요성도 관건으로 깨닫게 됐다는 게 박 담당자의 설명이다.
그가 지금껏 만난 상담자 중엔 33년생, 34년생 같이 내일모레 팔순인 사람도 있었다. 전직 CEO, 40년생의 시인 등 이력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0, 40년대에 출생한 사람을 받아줄 곳을 찾기가 쉽진 않다.
상담만 하면 바로 일자리가 구해지는 줄 알고 기대했다가 “왜 이렇게 안 되냐”고 역정을 내는 상담자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화풀이를 받아주는 것도 그는 업무로 받아들인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그는 초췌해 보였다. 집에서 건강을 걱정하거나 쉬는 날 없다고 뭐라 하진 않느냐고 했더니 “이젠 집사람도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쉬는 날 없으니 많이 싸우죠. 애들한테 신경도 못 써 주고”
“그래도 자네는 낫잖아. 나는 아예 집에서 없는 사람 취급이라고.”
옆에서 묵묵히 도시주택 코너 자리를 지키던 서성종 담당자에게도 넌지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일요일엔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배우자께 신경 써 주고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해 어쩌느냐”고 하자 “아무래도 말이 없을 순 없다”고 했다.
“아내랑 많이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 애들이 한창 커 가는 때라 신경도 써 주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자 박남준 담당자가 “그래도 자넨 낫지”하고 끼어든다.
“난 이제 뭐...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이야. 그래도 자넨 그럴 단계는 아니잖어.”
그러고보니 조금 전만 해도 있었던 팀원 한 사람이 부재중이다. 정 팀장에게 물었더니 “집안일로 조퇴했다”고 했다.
“오늘이 아버님 기일이라서 먼저 나갔어요. 집은 안산인데요, 본가는 또 충남이예요.”
팀원들은 이 코너 저 코너 가리지 않고 사람이 비면 비는대로 멀티 플레이어로 뛴다. 그래서 지금은 서성종 담당자가 생활민원 코너까지 같이 담당하고 있다. 혹독한 환경일수록 강하게 자라난다고, 어려운 여건이 업무능력을 증강시키는 웃지못할 상황이었다.
가로등 어둡다, 은행 및 파출소 설치해 달라, 버스 증편도... 밀려드는 지역 민원, 그리고 성과
오늘 들어온 생활민원 접수건은 10건 가량이다. 도시주택 관련 민원 상담은 더 많았다. 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가 물었다.
“녹양동 지역에 아직 파출소가 없어요. 은행도 없고요. 버스도 그리 많지 않아요.”
“뜻밖이네요. 지하철 역도 개통된 곳인데 기본적 편의 여건이 아직 확충되지 않았다는 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출소 하나를 만들어달라, 은행이 필요하니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은행 지점을 하나 유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 버스 증편이 필요하다 등의 민원이 들어온다.
“어떤 지역은 2시간에 한 대 꼴인 버스 배차를 1시간에 한 대 꼴로 만들어 달라고 민원이 제기됐지요.”
“말하자면 지역 민원 발생인데, 해결이 잘 이뤄지나요?”
“사안에 따라서요. 예를 들어 버스는 각 사업장에다 상황 통보가 이뤄져요. 그런데 거기서 이에 따라 증편을 고려할지 여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죠. 은행이나 파출소 등은 접수해서 각 시 군에 알립니다. 물론 단기적인 처리는 무리고요.”
“바로바로 해결이 되는 경우는 어떤 게 있어요?”
“예를 들어 가로등 같은 시설 개선이요. 우리 동네 어디 가로등 불빛이 어둡다고 알려주면 이건 열흘 내로 바로 교체가 이뤄져요.”
정 팀장은 그간 모인 접수장을 보여준다. 재산세 거두는 것에 대한 건의사항, 임대주택 입주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 개발제한구역인 동네의 이후 변화 가능성 같은 도시개발 문제에서 놀이터의 보수까지 그간 묻고 싶은 게 많았던 도민들의 입장을 한 눈에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추위와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워... 여름은 여름대로 걱정
시간이 6시를 넘기고 점차 어둑어둑해지니 대합실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오자 사람들은 역 정문에 열린 출입문을 닫으려고 돌아다닌다.
가지고 있는 난방기구라고는 스토브 한 대였다. 그것도 기기가 얼지 않도록 한 곳에만 모셔둔다. 두 대 이상 사용하려고 해도 역내 콘센트에서 끌어온 전력으로는 무리다. 발전기는 이동하는데 거추장스러워 욕심 내지 못했다.
“어떤 때는 역 밖으로 내쫓겨서 일하기도 해요.”
어느 지하철역에선 승객들 동선에 방해된다며 역장이 이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버렸다. 덕분에 1월 엄동설한에 바깥에서 덜덜떨며 업무를 진행했는데 지금도 잊지 못할 상황이다.
정식 팀이 꾸려지기 전에도 여기 사람들은 한두번 이상 차출되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의 고충 또한 잘 안다. 곧 다가올 여름엔 선풍기 한 두 대로 더위와 싸워야 하는데 이건 이거대로 벌써 걱정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보람이 된다
일이 고된걸 알면서도 11월 팀 편성 때 자진해서 도민안방 팀에 들어온 것은 무엇때문일까. 정 팀장은 보람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물론 때때로 후회하기도 하죠. 예를 들면 그 때 눈밭으로 우릴 내몰았던 XX역의 역장이라던지.”
새로운 상담자가 찾아왔다. 녹양동에서 사는 한 어머님이 현재 실업 중인 딸의 직장 문제를 상담하고자 일자리상담 코너에 앉는다. 박남준 담당자는 ‘따님의 전공은? 원하는 분야는? 근무 가능 지역은?’하고 하나하나 묻더니 노트북과 전화로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아직 젊은 나이라 제시할 곳이 여러 곳 나온 모양이다.
상담이 끝난 뒤 돌아가는 어머니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에 그녀는 거듭 “너무 친절하고 성심껏 살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동시에 한 켠에선 한 남성이 터널 라디오 청취 문제를 건의해 온다. 인근에 임시개통한 도로 터널만 지나려면 라디오가 불통인데 이것 좀 어떻게 해 줄 수 없느냐는 거였다.
지나가던 한 중년여성은 이들과 면식이 있는지 “그 때 건의했던 건 어찌 됐어요?”하고 물었다. 알고보니 녹양역은 한달 전에도 이들이 현장민원실을 연 적 있었던 장소다. 그 때 찾았던 민원객이 이들을 기억하고선 묻는 거였다.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사후관리가 필요한 프로그램임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저녁 7시가 넘어섰을 때 한 노인이 이들을 보자 “밥도 안 먹고 이러느냐”며 “어묵이라도 같이 먹자”고 격려한다. 완곡히 사양하니 “그럼 다음에 사적으로 만나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말한다.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어떤 땐 과자라도 사 먹으라며 500원, 1000원을 주머니에 넣어주려는 노인들도 있다고. 그럴때마다 “이러시면 우리 큰일 난다”며 황급히 두 손을 젓곤 한단다. 물론 격려만 들어오는 건 아니다. 오늘만해도 민원실 때문에 뒤에 위치한 보증금 환급기가 잘 안보여 한참을 헤맸다며 타박하는 승객이 있었다고 했다. 때론 취객을 상대해야 하고 공무원들에 전반적으로 불신 및 불만을 가진 시민의 비난도 들어줘야 한다. 한 시간이 넘게 그것을 받아주다 보면 녹초가 된다. “그런 것도 우리가 할 일 아니겠느냐”고 웃어넘기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되자 민원실을 접는 사람들. 능숙하게 셋팅했던 것들을 모두 접어 신속하게 철수한다. 이렇게 하루 일과가 끝났다.
버스안으로 자재를 집어넣는 사람들. 버스와 자재는 내일 다른 팀이 그대로 다시 사용한다.
본래 도민안방 프로그램은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가 아니라 경기 북부의 외진 마을로 다닐 예정이었다. 시군청으로 나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의 취지엔 지금 모습보다 원안이 더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버스를 이동민원실로 사용하고자 내부까지 뜯어고쳤다. 민원 뿐 아니라 독서교실과 도서관 프로그램까지 운용 가능한 모습이다.
그런데 구제역 비상이 걸리면서 본디 성격이 달라졌다. 사람을 통해 확산되다 보니 이들의 출입 또한 자동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올해 겨울은 이렇듯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에 국한해 이뤄졌다. 구제역이 잦아들고 안정되면 그 땐 다시 외지 마을로의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다.
여기 나와 보니 공무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청사에만 있었다면 아무 일도 못했을 것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레 반주를 곁들인다. 추위속에 내몬 역장에서부터 가족 이야기까지 안주감으로 삼을 이야깃거리는 다양하다.
박남준 담당자 - “그래도 딸애들이 고맙데. 첫째도 둘째도 크면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더라고.”
서성종 담당자 - “아니 그렇게 술이 떡이 되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요?”
박남준 담당자 - “잠 잘 때 들어가니까.”
정병윤 팀장은 이곳에 나오니 공무원이 어떻게 도민을 대해야 할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청사에서 업무만 봤다면 몰랐을 거예요. 매번 하는 일이 그렇죠 뭐. 찾아온 도민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젠 자연스럽게 도민을 모신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됐지요. 진짜로 처음 나왔을 땐 막막했어요. 우리가 그냥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안 모여들어요. 그런데 한사람만 자리에 앉으면 그 때부턴 사람들이 절로 늘죠. 그걸 위해 우리들 중 한 두사람은 한가할 때마다 돌아가며 ‘삐끼’ 역할을 합니다. 처음엔 그 짓도 못했는데 이젠 아주 자연스러워요.”
“혹시 바닥에 진짜로 전단지 뿌리는 건 아니지요?”
“그건 아니고. (웃음) 궁금한것이 있느냐며 어서들 오시라고 유도하죠. 일전엔 그것도 못했어요. 만일 여기 안 나왔다면 전 공직 그만두고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젠 배추장사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도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접 전해들을 수도 있고요.”
그는 때때로 왜 지원했지 후회하면서도 가치있 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 B
금요일 늦은 시간의 귀가는 노곤했다.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1호선 안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헤어질 때 정 팀장과 주고받은 인사말이 떠올랐다.
“철수 할때까지 지켜봐 주신 게 고맙네요.”
“저야말로. 1팀을 만난건 행운입니다.”
그 때였다.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숙녀분이 “이게 뭐예요?”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본다. 화면 속에 비친 사진. 지하철역 안에 죽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나 보다.
“아 이거요? 공무원들이예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내가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나 하면서도 자진해서 사람들과 만나는 그런 사람들이요. 내일 모레도 쉬지않고 또 나오겠죠. 현장민원실인데...”
글·사진 인사이드경기 권근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