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의 회상: 두만강에서 중앙아까지 ④
두만강 말모이: 안가이와 며늘
자기 부인을 부르는 이름으로는 부인, 아내, 마누라, 집사람, 애 엄마, 아낙, 여편(네) 등 많기도 하다. 연변에서는 남편을 ‘나그네’라 하듯이 부인을 ‘안가이’라고 한다. 점잔하고 중립적인 호칭은 한자로 부인이다. 아내, 마누라, 집 사람, 애 엄마는 그냥 친구 간에 부르기 무난하고, 여편네는 하대하는 말이고 ‘집사람’이나 ‘아낙’은 비슷한 말이다. ‘아낙’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점잖게 이르는 말’, ‘남의 집 부녀자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낙네에서 ‘네’는 집(宅)이나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내의 고어는 ‘안해’이다. 18세기 기록에는 ‘올아비 안해 업수이 너기지 말며(1796)’ 라는 데에 ‘안해’가 나오고 20세기 중반까지 발간된 한글사전에도 ‘안해’로 기록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안해’는 “집안의 해‘ 라는 뜻이라고도 한다(참조: 아내, 와이프, 마누라 어원, 토픽김 한국어).
마누라의 어원은 ‘마노라', 고려 후기에 몽골에서 들어온 말로 놀랍게 궁중에서 사용됐던 극존칭이었다.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의 일가를 존칭할 때 ‘마노라’를 붙여서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라고 불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마'와 같은 궁중용어였다. 그러다가 신분 제도가 무너지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늙은 부인이나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참조: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도련님’ ‘아가씨’?”, 독서신문)
한편 연변에서 며느리는 ‘며늘’이라고 한다. ‘며늘’은 일종의 고어처럼 느껴지는데 재미있는 풀이가 있다(이건범, 김하수 외,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한겨레출판사, 2018)에서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로 이뤄진 단어인데, 여기서 ‘며늘’이란 말은 ‘덧붙어 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올케’는 ‘오라비(오빠나 남동생을 이르는 말)의 겨집(계집의 옛말)’의 준말로, 오라비의 집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시중을 들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연변 남자들이 자기 부인을 부르거나 지칭할 때 평어로 ‘안가이’라고 한다. 여자들이 남편을 ‘나그네’라고 하듯이 남자들은 부인을 ‘안가이’라고 한다. 연변영화, ‘택시운전수(出租车司机)’에 나오는 대사 중에 “구남은 달러상 아줌마에게 돈을 부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실망합니다. 구남은 달러상이 "니 안가이 바람났다"는 말을 하자 버럭 한번 하지만 이 말은 구남의 마음속에 인셉션 됩니다. 부인이 한국에 가서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는 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 달러상의 말이 머리에서 맴도는 구남”에서 보듯이 ‘안가이’는 일상어 이다. 그런데 ‘안가이’는 무슨 뜻일까? 속 시원한 어원은 못 찾았지만 안(집안, 宅) + 가이(사람, 예: 허가이/박가이)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안다’, ‘안기다’에서 ‘안아주는 사람’, ‘안기는 사람’ 이라는 뜻에서 “(안아, 안겨)주는 + 이(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연별 말모이는 부지기수이지만 특히 남기고 싶은 것은 적삼(남방셔츠), 양적삼(와이셔츠), ‘졻은 길’이란 말이 재미있다. ‘넓은 길’은 반대말이 ‘졻은 길’이다. “넓다”, ‘졻다' 아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