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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1. 만나와 메추라기를 40년 동안이나 먹으라구요?
본문 : 출애굽기 16장 35절, 요한복음 14장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정착지에 이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를 때까지 만나를 먹었다. <출애굽기 16장 35절,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한복음 14장 7절, 새번역>
안녕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하나님이 허락하실 축복을 가득 담아 인사를 전합니다. 어떻게 5월 한 달 잘 마무리하시고, 6월의 문도 잘 여셨습니까? 마음 모아 기도하기는 6월 한 달도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과 말씀으로 가득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에서는 6월 한 달 동안 시리즈 설교를 진행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줄여서 ‘하.오.맙’ 시리즈입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오늘 6월의 첫 번째 주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16장 35절과 요한복음 14장 7절을 본문으로 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40년 동안이나 먹으라구요?’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새번역으로 준비된 본문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정착지에 이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를 때까지 만나를 먹었다. <출애굽기 16장 35절,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한복음 14장 7절, 새번역>
혹시 여러분께서는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려 40년입니다. 40년! 어떻게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먹고 살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으면서 산단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혹독한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출애굽 이 후부터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를 때까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하자마자 고기를 달라고 투정부리며 소리치던 이스라엘 백성을 탓할 수가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라도 주셨음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만 주셨다는 것에 화가 나는 존재가 우리입니다.
그런데 화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위 ‘고기’ 요구에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주셨을까요? 왜 많은 음식들을 주실 수 있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허락하셨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꽤 오랜 시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한 후 정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인도하셨는지 정말 놀라운 은혜였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 나누기 위해 몇 가지 말씀과 질문을 좀 더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한복음 14장 7절, 새번역>
이 말씀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선을 베푼다던가, 누군가를 구제한다던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공을 세운다던가 등등 누구라도 충분히 하나님께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왜 다른 방법은 전혀 없고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없을까요?
내친 김에 또 하나의 구절을 읽어보면서 질문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새번역>
왜 우리는 '말씀'만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구약과 신약 외에는 다른 어떤 책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성경책은 왜 꼭 66권의 말씀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일까요? 성경 이외에 다른 책은 없을까요?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왜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먹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은 방금 나누었던 요한복음 14장 7절과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을 본 후 나오는 두 가지 질문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3가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바로 답을 얻기 위해 반대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고기를 요구하는 불평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것일까? 차라리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셨을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왜 살리려고 하셨을까? 그냥 창조주를 외면한 피조물로 죽음의 길에 세울 수 있으셨는데!’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을 막아 버리지 않고 왜 ‘성경’을 허락하심으로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을까? 성경을 주시지 않았으면 되는 일인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반대로 생각해본 질문들을 보면서 가만히 묵상하고 있자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독생자 아들까지 포기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허락하지 않으셔도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실 예수님과 오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엮은 성경을 허락해 주셨습니다.성경을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직접 ‘엮어’ 주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시지 않았다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도무지 알 수도 없었고, 구원의 길도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광야에서 아무 것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만약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내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물과 마른 풀정도만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쉽지 않은 광야 생활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아니었다면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지 않고 정착하려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여 소출을 얻었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그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한 번도 끊지 않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문을 허락하셨습니다.우리에게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알려주십니다.‘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고기를 달라고 소리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신실하게 충분히 고기를 먹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방법을 인정하고 ‘아멘’으로 화답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내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에 대해 '은혜입니다!'라고 반응하지 않고 '왜죠?'라고 반응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언가 단단히 꼬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위치에 대해서 명확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내 생각과 방법과 뜻이 앞서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편의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아직 모시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 언제나 '아멘'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믿음을 키우기 위한 의문은 언제나 좋습니다. 그런 질문에 하나님은 너무도 친절히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우리의 질문이 언제나 공격적인 것은 아닙니까? 불신앙을 기초로 하고, 의심을 기초로 하는, 믿음이 아닌 불신으로 향하고자 하는 질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하고자 하는 질문은 아닙니까? 그 누구보다 자신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질문이 질문인지, 불평인지 말입니다.
“왜요? 왜 도대체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어야 합니까? 다른 것도 먹고 싶습니다!저는 이 방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양식이다. 40년 동안 잊지 않고 허락해 주겠다!”
“왜요? 왜 도대체 예수님만이 구원자입니까? 다른 구원의 길도 허락해 주시면 안 되나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구요. 조금 더 쉬운 길은 없습니까?”
“내가 너희의 구원을 위하여 허락한 유일한 대속자이다. 다른 이는 없다. 좁은 길이고 유일한 길이다.”
“왜요? 왜 도대체 성경만 읽어야 합니까? 솔직히 지루하고 따분하다구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너희를 창조한 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와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것이다!”
네. 고기를 달라고 불평했던 우리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 속담이고, 하나님은 정말 사랑하셔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겠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저의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이 땅에 작은 예수가 되겠습니다.
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록, ‘성경’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사용설명서에 맞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위의 질문들과 답을 잘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불평입니까? 감사입니까? 인정입니까? 오해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입니까?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넓고 깊은 뜻을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주어진 은혜를 보면서 '의심'이 아닌 '감사'는 피조물인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계속해서 의심만 남아있고, 불만만 남아있다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고, 다시금 진리 가운데 자유케 되는 경험을 하셔야 할 때입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이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인도해 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여기까지 밖에 인도하시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며 원망이 나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절망’과 ‘난관’이 아닌 ‘은혜’와 ‘기회’라는 것을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1절, 개역개정>
이 말씀을, 이 약속을, 주시는 분이 다름 아닌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오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 고통을 주기 위해 사지로 모시는 분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더 깊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더 성숙한 신앙으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 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 새번역>
제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걷던 그 날로 갈 수 있다면, 고기를 달라며 아우성치는 이들을 향하여 저는 그 곳에서 이렇게 마음껏 노래하고 싶습니다.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충분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그 은혜로,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40년 동안이나 허락하신 만나와 메추라기는 실로 엄청난 은혜입니다. 사실은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4절, 새번역>
오늘도 주어진 모든 조건에 불평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Rn5UO-Tc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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