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최문순의 실수 ‘역사’ 버리고 ‘돈’ 택했나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2022년 5월5일, 어린이날을 기해 레고랜드 개장이 이뤄졌다. 레고랜드 개장과 어린이들이 놀이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언론들은 국내 최초의 레고랜드 개장을 크게 알렸다. 반면 문화재 관련 단체 및 지역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라 “문화재 보존이나 지역 일자리 창출이 거의 없었다”며 지적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타당성 검토와 시공사 교체, 유물 발굴과 공사 중단, 그리고 문화재 단체의 레고랜드 유치 반대와 강원도의 속행. 마찰과 반발 속 마침내 개장을 한 레고랜드. 아직도 약속됐던 박물관은 없다. 그간 수많은 반대와 논의 테이블을 뒤로하고 이를 강행해 온 최문순 강원지사는 말이 없었다.
문화재청 “중도개발공사가 발견 유적 보존조치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
박물관 건립 등 전시시설 공사 지연 이유 “문화재청 요구로 공사규모 확대”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많이 부는 5월. 멀리 보이는 레고랜드 시설을 제외하고는 먼지가 휘날리는 허허벌판을 돌아다녔다. 공사를 진행하는 측에서는 ‘가장 중요한’ 기반 공사를 튼튼히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취재를 위해 각종 공사 현장을 다니며 봐왔던 다른 곳과의 괴리감은 지울 수 없었고, 기사에 도움이 될 사진이라도 찍어보겠다고 더욱 돌아다녔다.
월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멀리 주차장에 서있는 차량들이 많았다. 가까이 가보니 방문객들이 꽤 있는 듯 했다. 레고랜드 측도 셔틀버스로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들과 함께 레고랜드를 찾은 어린이들이 상당수 눈에 보였다. 레고랜드 출입구 앞의 큰 상징물 주변에는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공간에 레고랜드가 세워졌는데...
현장 취재는 오히려 싱거웠다.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첫해부터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연속 3년을, 같은 장소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같은 모습의 트럭들을 또 보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멀리 넓은 벌판에 레고랜드만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었다. 트럭들은 기반 시설 조성을 위해 흙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한쪽에는 문화재 관련 단체 이름으로 텐트와 함께 레고랜드 무효화 및 중도유적 보존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이들은 “레고놀이터(레고랜드) 아래, 지금 우리 문화재가 깔려있다”라며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아낼 중도유적(보존하고) 우리 역사 파괴하는 레고랜드 몰아내자”라고 내걸었다.
현재 상황은 어디까지 진행된 걸까. 강원중도개발공사와 문화재청 등과 함께 해당 공사에 대한 책임 및 관리 권한이 있는 강원도청을 찾았다. 시청이나 도청 등 관공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순환 업무로 어쩔 수 없이 보직이 바뀐다. 해마다 만났던 담당 공무원 역시 마찬가지. 해마다 같은 이야기로 장황한 설명을 시작해야 겨우 답을 들을 수 있다.
강원도청 레고랜드지원과 측은 “박물관 건립을 위한 당사자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다. 다만 현재 자금 사정으로 조금 지연되고 있을 뿐, 내년까지 착공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이유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어 “GJC가 지난해 12월 유적공원과 박물관 관련 건축신고를 마무리했다”면서도 “하지만 착공신고는 아직 이뤄지지 못했는데 준비가 되면 착공신고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즉, 설계도면 등을 토대로 건축신고는 해뒀으나, 공사에는 들어갈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문화재청 무리한 요구로 ‘미뤄져’ 박물관과 유적공원은 마지막 순서”
레고랜드 등 중도 건설 현장에 마련된 GJC 사무실을 찾았다. GJC 측의 답변도 비슷했다. GJC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유적지 보존을 위한 유적공원과 청동기 등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 등의 건립을 위해서는 기반공사가 우선돼야 한다”라며 “일부 문화재 단체가 유적공원 등이 지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반드시 공사는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은 순서가 있다. 순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기반시설 공사를 끝내고나서 그간의 대출금 등 상환도 마무리되면 토지 매각 등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할 예정”이라며 “공사가 미뤄진 데는 이유가 있다. 사전에 공사를 제안했던 박물관이나 유적공원의 규모보다 공사규모를 더 키운 문화재청의 무리한 요구로 비용도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GJC의 답변에 따르면 모든 순서의 가장 말미에 유적공원 등의 건설이 시작되게 된다. 토지 매각대금으로 박물관 및 공원 건설을 할 예정인데, 최초 공사를 위해 낸 안을 두고 문화재청이 추가적인 요구를 하면서 비용이 확대됐다는 주장이다. 레고랜드는 이미 개장을 했는데 유물 보존을 위한 박물관은 (예측) 비용이 부족하면 공사를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요서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약 72만 제곱미터가 넘는 지역의 유물과 유적지를 확인해 GJC가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자리의 유적공원 등은 9만 제곱미터에 불과했다. 2015년부터 2021년에 걸쳐 계획했던 180억 원의 공사비가 드는 해당 보존방안은 일부 부결 및 일부 조건부 가결되면서 현재까지 흐지부지 밀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보존조치 빠른 시일 내 진행”…보존약속 이행 없으면 ‘법적 조치’
춘천시에 위치한 중도에 선사시대 유물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알려져 왔다. 다만 대부분이 사유지로 오랜 기간 경작지 용도로 쓰이고 있어 발굴은 어려웠다. 4대강 사업으로 2010년대 초반 상당 지역이 물에 잠겼고,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 이후 이 장소를 바탕으로 레고랜드 유치에 나서면서 시공사가 선정되고, 공사가 진행되면서 유물과 유적지가 드러났다.
시민단체와 문화재 관련 단체의 반대 의견과 레고랜드 유치를 주장하는 측과의 마찰은 이어졌다. 다만 최문순 지사가 3연임되면서 강원도 중도개발을 목적을 전제로 하는 레고랜드 유치 의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고, 수차례 중단되면서도 강행됐다. 강원도와 춘천시 등이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세운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이를 주도해 나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난 유물과 유적지에 비해 공사를 앞두고 확인된 양은 더 많았다. 고고문화인류학계 한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당시 해당 유물과 유적지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역사와 고고인류학계를 뒤엎을 만한 내용이었다”라며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학계가 뒤집어지고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020년 문화재청 자료가운데 ‘춘전 중도 LEGOLAND KOREA Project A~H구역 ·순환구역 내 유적 발굴조사 통합보고서’를 찾았다. 중도 전지역이 우리나라 선사시대 유적이었다. 기사 한 번에 절대 담을 수 없는 양이었다. 청동기시대 경작유구, 청동기시대 분묘, 토광묘, 철기시대(원삼국시대) 분묘와 경작유구 등 수천페이지에 달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문제되던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기 집단 유적지다. ‘박물관 우선’ 약속에도 불구하고 타당성 조사는 중단됐다. 문화재청은 강원도에 바통을 넘겼으나, 강원도는 지난해 7월부터 진행할 것이라는 답은 했지만 여전히 중단된 채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최문순 지사는 “레고랜드 150만 명 방문 예상”을 언급하며 “강원도 관광, 이제껏 겪지 못한 새로운 지평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레고랜드’ 관련 대대적 홍보 어디에도 박물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요서울이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최문순 지사를 찾아 지난 16일과 17일에 걸쳐 (아직 건립되지 못한) 박물관 약속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으나,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이와 관련 입장을 예전부터 밝혀왔기에 (임기 말 여건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전달만 받았다.
과연 강원도가 확신한 150만 명 방문에 따른 강원도 및 춘천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유적지를 내주고 레고랜드를 유치할만했는지는 훗날 평가될 일이다. 다만 강원도와 GJC가 언급한 박물관과 유적공원이 약속대로 착공에 들어갈지 이를 관리할 의무가 있는 문화재청이 제대로 단속에 나설지 강원도민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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