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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이백 일흔두가지 말씀
1. "신은 전체적이고, 완전하고, 너그럽고, 다정하고, 시공을 넘어서 있고, 부분이나 구획이 없고, 비이원적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평등하게 존재하고, 참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로지 존재(existence)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번역상의 오류나 잘못된 해석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뿐, 사실 신은 무(無)도 아니고 빈 것도 아닙니다. 비존재(nonexistence)는 그 자체의 자기 정의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2. "의식하고 있는 그 어떤 대상이 아니라 의식 자체와 동일시하십시오. 그것이 참나에 이르는 빠른 길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곧바로 문을 통과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행입니다. 거기에는 알아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혹은 기억해야 할 것도 없습니다."
3. "이해는 비난이 아닌 연민에 이르게 해줍니다. 완전한 이해는 곧 연민입니다."
4. "우리가 우뇌와 좌뇌를 갖고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가 이 영역에서 천사가 될 예정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오직 우뇌 뿐이었을 것입니다. 좌뇌는 동물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자신에게서 무엇이든 용서해야 할 것을 본다면 그것은 거의 항상 동물입니다."
5. "나는 충분히 살았습니다. 그런 생은 이제 없어도 됩니다... 그것은 마치 너무 많은 영화를 본 것과 같습니다. 나는 영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 모든 우여곡절을 이미 다 보았습니다. 나는 연기하는 남녀 배우들을 보지 않습니다." 호박사님께선 어디선가, 당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동일시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 인류의 조건과의 동일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연민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인간의 이 무지라고 하셨지요.
6. 누군가 호박사님께 '감정은 영적 수행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물었습니다." 감정은 온전성의 수준에 의존합니다. 의식수준이 200을 넘을 때 감정은 긍정적인 자산이 되지요. 감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감정은 몰두라는 일정한 공간을 창조합니다. 온전성에 대한 몰두조차 일정한 감정성입니다. 의식수준이 높아질 수록 감정은 점점 고양되어 결국에는 사랑에 이르고, 그 너머에 헌신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헌신입니다. 사랑과 헌신이 마음집중을 이룹니다."
7. "오류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입니다. 오류는 인간적인 결함이지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사람은 전지(全知)해야 합니다. 버터를 절대로 치즈 칸에 집어넣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8. "기도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면의 무한한 현존과의 대화입니다."
9. "의식연구를 통해, 사람은 어떤 태도의 채택이 곧장 그 의식의 장 전체를 초대하고, 이 의식의 장은 그 다음에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성격과 생각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신속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 "모든 말, 행동, 의도는 영원한 기록을 창조합니다. 모든 생각은 영원히 알려지고 기록됩니다. 비밀은 없고, 아무 것도 감춰지지 않으며, 또 감춰질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공적 영역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영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시간 속에 벌거벗고 서 있습니다."
11.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낭만적 사랑은 인간의 소중한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사랑은 정열과 소유로 비춰졌지만 점차 낭만적인 것으로 묘사되면서, '사랑을 위한 희생'이 고귀한 이상이 되었습니다. 여성성의 개화와 함께 여성의 이미지는 잡일꾼/성적 대상/유모에서 소중한 친구, 동반자, 연인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것은 진정 인간의 영이 사랑을 끌어당기고 북돋우는 성질이라는 것을 일상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음을 나타냈습니다."
12. "절대적 진실은 무언(無言)입니다."
13. "에고는 극단적으로 집요해서 하나의 위치성을 놓기 전에 극단적인 조건들을 요구하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14. "에고는 그 뿌리에서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며 모든 도덕적 원리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15. "'왜'라는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본질적으로 오류인데, 왜냐하면 대답하기 위해서는 확증가능하고 관찰가능한 대상에서 오직 정신작용일 뿐인 가설적 추측으로 비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6. "사람들은 '나는 썩어빠진,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고 자책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썩어빠진 쓸모없는 인간이예요, 그래서요? 무엇에 대해 자신을 용서한다는 거지요? 당신은 나빠요. 끔찍한, 쓸모없는 짓을 했어요, 맞아요, 그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나빠도 괜찮아요. 죄의식에 탐닉하지 마세요. 죄의식은 그 자체가 보상입니다."
17. "우리는 '원인'이라는 개념의 피해자입니다."
18. 호박사님께서는 인간의 죄는 무지에서 비롯되며, 적당한 뉘우침(decent regret)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사람이 저세상에 가면 "너 여덟명 죽이고 왔지?", "미안한가?(Are you sorry?)", 라는 식으로 질문받는데 여기에 대해 영혼이, "네, 미안합니다(I'm sorry)." 이렇게 대답하면 신은, "그래? 그럼 됐다, 다시 가봐라." 하고 영혼을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고 하셨어요. 인간적 기준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들에 대해 신은 정말 쿨하십니다. 신비주의자도 그렇고요.
19. "에고의 의지와 고집이라는 이원성을 신의 진실(Truth)의 비이원성에 내맡기는 '순종'을 통해서만, 구원은 가능합니다."
20. "영적 진보가 계속될 때, 수행자의 순진함은 보다 큰 지혜와 식별력으로 대치됩니다. 여기에는 모든 무지에 대한 연민이 있지만, 온전치 못한 것은 온전치 못한 것으로 인지됩니다. 예수는 순진한 상태(예를 들면,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 혹은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적 에너지가 가슴 차크라는 물론 제3의 눈(영적 시각과 앎)으로 흐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은 드러남이 펼쳐짐에 따라 정수리 차크라로 흐릅니다."
21. "정화란 마음에서 그 환상과 집착, 영적 상투성의 반복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22. "사람들은 '세상을 구하자!'고 합니다. 그 의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습니다."
23. "모든 형상은 미적 경험이며 형상의 아름다움은 모든 성질, 의도, 혹은 욕망이 포기될 때 명백해집니다."
24. "운명 혹은 카르마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의지입니다. 의지는 성령과 직접적으로 접하는 영역이며 마음에까지 이르므로, 자아의 내재적인 힘이 작용하는 자리입니다. 형상과 형상 없음은 의지의 수준에서 '만납니다', 사랑과 헌신, 감사, 겸허함, 영감, 믿음 같은 형상 없는 것들과 관념, 생각, 기억, 갈등, 이미지의 형상들 같은 마음의 세세한 항목들은 의지의 수준에서 만납니다."
25. "당신이 정말 겸손하다면, 자신의 마음을 향해, '너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이르세요. 당신의 마음은 사건들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이 실상은 아니지요. 설명이란 실상 바깥에서 온 것입니다."
26. "나는 온 우주가 태어나기 이전에 있는 그것이고, 온 우주가 사라진 뒤에도 그와 같이 머물 것이다.
절대(the Absolute)인 나는 영원(Timeless)하며 더이상 죽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27. "지옥의 하층에서 시간은 멈추고 고통은 영원하며 결코 끝나지 않는 것으로 경험됩니다. 이렇듯 지옥의 하층에 들어가면, '희망을 영원히 버려라'는 표지판을 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인식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영혼은 신의 빛(Light of God)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차단된 듯한 끝없는 절망의 무한한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28. 혹시 여기에 '중독자'들 계신가요? 호박사님께서 같은 dvd에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중독이란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에고가 얻는 보상에 대한 것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요, '술'이나 '약' 같은 게 마음 속에 떠오른 순간, 바로 거기서 멈춰야 한다고 합니다. 첫 순간에 딱 멈추지 않으면, 그것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되고, 에고에서 욕망과 갈망의 에너지를 더 많이 끌어오면서 멈추는 게 더 어려워진다고 하지요. 마음 속에 떠오르자마자 내맡기세요. 뭐, 술이나 마약 뿐이겠습니까.
29. 오늘 'alignment'라는 dvd에서 들은 말씀인데요, 200 이하의 수준에서는, 존재의 경험은 있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성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므로 남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지만, 있음의 경험들은 있기 때문에 그 수준에서는 오직 나, 나, 나... 나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침팬지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침팬지에게는 존재에 대한 앎이 없답니다. 하지만 200의 의식수준을 넘어서면 내가 존재한다는 걸 각성하면서,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30. "일반적 충동, 혹은 에고의 끌림은 기본적으로 쾌감에 대한 욕망입니다."
31. "창조(Creation)의 완벽함에 대한 모든 반론이나 의심은 가설적 오류를 세계에 투사하는 레스 인테르나/코기탄스에서 비롯됩니다." 레스 인테르나/코기탄스... 다 인간을 가리켜요. 'res interna'는 내적 세계, 'res externa'는 외적 세계를 말한답니다. 'cogitans'는 인식하는 인간을 말하고요. "창조의 완벽함에 대한 모든 반론이나 의심은 가설적 오류를 세계에 투사하는 에고에서 비롯됩니다."
32. "모든 것을 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크게 이용할 수 있는 생명의 산물이나 측면은 인간의 내재적 무구함이지요. 진짜 사기꾼은 사람의 내면에 저 무구함이라는 취약성이 있다는 걸 압니다."
33. "위치성을 놓으면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와 사랑스러움을 그것의 모든 표현 속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34. "지각과 본질을 구별하는 것이 영적 수행의 전부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것의 의식수준이나 에너지를 측정할 때 우리가 찾는 것은 본질이지 지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부에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이 보는 것은 양의 탈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속의 늑대입니다. 혹은 그 반대이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늑대인 척 하는데 실제로는 양이거든요(웃음). 그 사람들은 말은 거칠게 하더라도, 곁에 있어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어떤 것의 측정 수준은 그것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말해줍니다."
35. "에고는 자기 자신의 희생자입니다. 엄격한 자기성찰을 통해 에고는 사실상 자신의 재미와 놀이와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에고는 무한한 포상의 보급 창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고는 탐욕스럽게 감상을 움켜쥐고, 정당성이라는 덕목을 움켜쥐고, 희생자라는 포상을 움켜쥐고, 혹은 상실과 슬픔이라는 순교를 움켜줍니다. 거기에는 또한 좌절의 고통은 물론 승리나 획득이라는 흥분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관심이나 동정을 얻어 에고를 팽창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모든 감정이 그 자체로 에고에게 보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6. '신에게 내맡김'은 위안과 스릴을 구하여 에고를 바라보는 일을 그만두고 평화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고요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7. 호박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당신은 뒤집어진 딱정벌레 한 마리를 바로 놓아준 적이 있습니까?"
38. 어제 호박사님께서 테레사 수녀님에 대해 언급하신 대목을 들었는데요. 신비주의자들은 지복과 황홀경을 경험하는데, 그것조차 내맡겨야 하는 때가 온다고 합니다(왜 에고의 쇠사슬을 놓는 것은 쉬우나, '황홀경으로 고조된 기쁨의 황금사슬'을 놓는 것은 어렵다는 말씀이 있잖아요). 그리고 높은 길(high path)에는 어떤 형상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신성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게 어려움일 수 있다고 하셨지요.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여라'는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요.
39.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사냥꾼이 오리를 총으로 쏘았습니다. 총에 맞아 날개가 부러진 오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수컷 오리였지요. 그때 암컷 오리 한 마리가 내려와 날개를 펼쳐 상처입은 수컷 오리를 감쌌습니다. 그 장면은 사진으로 찍혔고,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냥꾼들이 놀이(sport)로서의 사냥을 포기했습니다. 가슴(heart)은 이렇게 변형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호박사님은 운동역학 테스트로, 그 사진을 보고 사냥을 그만둔 사냥꾼들의 숫자를 알아내셨지요. 4만 5천명 이상이었어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약 백년전 사건이고요, 그 당시에 신문에 보도되어 널리 알려졌던 모양이예요.
40. "행복의 능력은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행복하다면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든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복과 사랑은 모든 것을 다 긍정적인 것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이지요."
41. '신비주의자'에 대해서 설명하시던 호박사님,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적인 ‘나’는 없습니다. 내가 뭔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잘난 척(pomposity)입니다. (당신의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이시며) 내 새끼손가락 만한 힘도 없는, 자만심에 가득한 하찮은 에고가 모든 인생사를 결정하는 대 결정자(great decider)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내가 아니라) 어떤 아주아주 심원한 것이 결정합니다. 사람이 잘난 척과 과대망상을 버릴 때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적인 ‘나’는 없습니다."
42. 호박사님의 강연에는, 책에는 소개되지 않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호박사님은 8생 전에 어느 위대한 스승의 오라에서 진동하는 에너지를 '따왔다(pick up)'고 하시더군요. 그 위대한 스승의 이름이 누구인지는 안물어 보셨다고 합니다.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상당히 '빠르다'고 자찬하시더군요. 깨달은 스승의 진동하는 에너지는 제자의 오라의 맨 윗층에 머물러 있다가, '간구'와 '기도'에 따라 (깨달은 스승의) '앎', '인식'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 그런데 여기서 말한, 깨달은 스승의 진동하는 에너지를 받아오려면 직접 만나셔야 합니다. 호박사님께서 깨달은 스승과의 만남이 추구할 만한 경험이라고 하신 건 그 때문인듯 해요.
43. "생명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질량처럼, 에너지처럼 말입니다. 생명은 형태를 바꿀 뿐입니다."
44. 작년 12월 현재(2007년 12월), 세상에서 600을 넘는 분은 세 분이랍니다. 600을 넘으면 에고는 사라지지만, 완전한 깨달음(full enlightenment)에 이르기 전에 그 상태에는 어떤 미묘한 결함이 있다고 하셨지요.
45. "에고에는 단 하나의 중독이 있는데, 그것은 주관적인 쾌락/이득을 향한 것입니다."
46. "헌신의 핵심은 겸손함이며 모든 신념 체계 및 '나는 안다'는 환상을 기꺼이 내맡기려는 자발성입니다."
47. "전 인류가 사실상 내면의 사랑을 동기로 하고 있지만 그저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명백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에 대한 앎에 눈뜨지 못한 잠자는 이들처럼 삶을 살아갑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잠든 것처럼 보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48. 어제 들은 말씀입니다, "기도할 때나 간구할 때, '오, 주여(to thee, oh, Lord)...'라고 말하십시오. 신을 '주(Lord)'로 부르는 것은, 신성(Divinity)과 나와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기도할 때 '신이여, 당신께(to you, oh, God)...'라고 하면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신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신, 당신이라고 하면 내가 생기고, 이원성이 생겨납니다. 신은 이원성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궁극의 기도는, '주님, 주님께 제 생명을 봉헌하나이다."입니다.
49. "우리가 만약 모두가 항상 서로를 사랑하고, 모두가 항상 서로에게 감사하는 천국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의식의 진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린 부정적인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자기 내면의 부정성을 끌어올려서 내맡길 수 있습니다. 지상에 태어난 것은 정말 큰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십시오..."
50. 호박사님은 모든 강연을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어느 강연에서, 호박사님은 그 다음에 "그대들에게 모든 영광이 있기를, 오 주여"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 세상의 문제는 '그대들에게 모든 영광이 있기를'이 아니라 '나에게 모든 영광이 있기를'이라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들'과 '나'의 차이가 깨달음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별 거 아닙니다. 간단한, 기술적인(technical) 차이예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51. "전부가 강렬한 총천연색(Technicolor)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빛을 발한다. 전부가 의식하고 있고,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으며,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의 의식의 앎을 의식하고 있다. 전부는 존재(Existence) 자체로서의 그 광휘에 의해 증명되는 것처럼, 성스럽고(Holy) 신성(Sacred)하다. 그러므로 일체가 신성하고 성스럽게 보이며,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함께 신성하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52. "신은 무한히 자비롭습니다. 내맡기는 것은 그 자비로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과 우주의 공정함은 절대적입니다."
53. "사람들은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는 에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정치는 '~보다 낫다'가 아니라 다른 문제들이 있다는 걸 가리킬 뿐입니다. 500대는 400대에 비해 낫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문제가 다를 뿐입니다."
54. "신의 소리는 침묵입니다."
55. 요 며칠 동안, 인간의 무구함(innocence)에 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바탕에 있는 것은 때 묻지 않은, 물들지 않은 무구함이라고 하지요. 그 무구함에는 신뢰와 무조건인 사랑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들은 얘기를 그대로 믿고, 그래서 프로그램될 수 있다고 하지요. 부모님의 말이든,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든, CF에서 선전하는 내용이든... 그 바탕에 있는 신뢰와 사랑으로 하여 사람은 자신이 들은 것을 고스란히 믿고, 그대로 행동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건 무구한 밑바탕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들이라고 해요.
56. 어제 dvd를 보다가 재미있는 걸 알게 됐어요. 2002년 dvd였으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2세(cal.570)가 재임하던 시절인데, 호박사님께서는 교황님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시며, 그건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의식이 상승할 수록 움직임이 느려진다고 하시더군요. (전 그 얘기를 듣고 달라이 라마가 생각났는데, 정말 느릿느릿~ 호박사님도 그렇고요.)
57. "행위의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의도입니다."
58.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호박사님께 질문했습니다, "저는 누구와 만나든, 그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상대의 눈을 쳐다보며 'bless you~!'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의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 그렇게 해도, 상대에게 그런 에너지를 줄 수 있나요?" 호박사님은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이 고양되어 있을 때는 상대에게 그런 에너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침체되어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 당신이 주는 에너지는 요동한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면서 상대에게 내가 뭘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 서로가 서로의 내면에 있는 현존과 무한한 사랑을 알아본다고 생각하라. 서로가 서로의 참나를 알아보는 모습을 상상하라." .... 그래서 오늘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제가 누구를 만나든, 그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무한한 사랑의 빛을 알아보게 해주소서."
59. 이것도 어느 dvd에서 본 건데요, 어느 종일 세미나에서, 기립한 청중들을 향해 호박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옆 사람들과 인사하세요. 그리고 옆 사람들에게, 여기 있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세요." 세미나장은 곧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이 다투어 옆 사람들에게 '여기 있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느라고요.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천사'든 '악마'든 우리는 그에 대해 여기 있어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뿐이라는 걸 호박사님은 가르쳐 주셨죠.
60. "삶이 기도가 되게 하라"는 DVD의 질의응답 부분에서 본 건데요. 어떤 사람이 호박사님께 말했습니다. 자신에게는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진다고요... 타인의 고통을 보면 자신이 너무도 힘들고, 마치 가슴속에 연민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호박사님께서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하셨죠. 그건 타인과의 '과도한 동일시'라고요. "연민이란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 인간 조건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61. "지속적인 명상은, 모든 행위를 일종의 예배 행위로 바침으로써 그 행위가 모두 성스럽게 되는 무드라, 마음가짐, 태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태도가 일종의 헌신과 같이 될 때 신성은 저절로 드러납니다."
62. "삶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에 비견할 만합니다. 배의 나침반상에서 1도의 이동이 여정의 끝에서 항로를 수백마일 이탈해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63. "순종... 이것은 성숙을 회피하는 방식이며 원시성의 지속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에고중심성은 억제될 뿐이고 내면의 자기애적인 ‘왕 아기’적 태도의 전능함/과대망상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64. "에고의 핵심은 반항적 무정부주의자, 무신론자, 자기현시주의자입니다."
65. "사람은 감정적 고통을 겪기가 쉬운데 이는 자기 앎, 자기 수용의 정도와 정확한 관련을 갖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할 때, 타인은 우리의 그런 면을 공격할 수 없지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감정적으로 덜 상처받게 되고, 보다 안전하고 무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66.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를 질문하십시오. 이 질문은 말을 통하지 않고 항상 현존하는 실상(Reality)으로 곧바로 인도해주는 최고의 질문입니다.
67. "설명을 구하는 것은 에고의 성향입니다. 이것은 에고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지요... '답'은 없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답'입니다. 애매함을 그냥 받아들이세요."
68. "여러분, 자신의 카르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당신이 바로 당신의 카르마니까요. 지금의 당신이 바로 당신이 물려받은 것의 총체입니다."
69. 사람들이 호박사님께 물었습니다. "닥터, 만트라에는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호박사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만트라 자체에는 어떤 신비한 효과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트라 수행을 할 때 갖는 의도, 그것이 만트라의 효과를 결정합니다..."
70. 호박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을 빼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배고플 때 먹지 않는 것입니다. 배고픔은 프로그램입니다. 배고플 때마다 먹어주는 것은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을 강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저녁식사 시간이 6시라면 4시반에 치즈 크래커, 5시에 바나나를 먹어두세요. 나는 이것을 '예방적 먹기'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되면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71. "에고/마음은 신기한 것에 매혹되고 따라서 미친 듯이 흥미로운 형상과 감각을 구합니다."
72. "침묵은 참나에 속하고, 생각은 자기에 속합니다. 참나는 관심 에너지의 투입에 의한 격려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73.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수행자의 마음 또한 자신도 모르는 새에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스승(Teacher)이 밝혀주지 않는다면,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많지요. 많은 제자들이 '영적인 것'이 함축하는 바에 대한 고정관념에 집착합니다."
74. "만인을 위한 단 하나의 해답은 없습니다."
75. "고통과 죽음은 에고의 귀결이며, 에고 위치성과 지각의 귀결입니다."
76. "현상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사람은 현상을 경험하려는 욕망, 혹은 경험함 자체의 경험에서 '단물'을 짜내려는 욕망을 끊임없이 내맡겨야 합니다."
77. "생각은 본질적으로 허영입니다."
78. "광대한 숲의 무한한 고요 속에서 휴대용 라디오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79. 호박사님 CD에서 들은 얘깁니다. 호박사님 어렸을 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사슴 사냥을 나가셨대요. 호박사님 부친께서는 숲에서 사슴을 만나 총을 겨눴습니다. 그런데 이쪽을 바라보는 사슴의 눈동자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고 하지요. 그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걸 본 호박사님 부친께서는 총구를 내렸고, 다시는 사냥하러 나가지 않으셨대요. 호박사님도 그 얘기를 들은 후에는 살생을 하신 적이 없다고요. 그 말씀 뒤에, 운동역학 테스트로, '동물도 인간과 똑같이 여기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고, 살아있음을 사랑하는가?' 라고 물으셨지요. 답은 물론 '예스'였습니다. '모든 생명을 경외하라'는 얘기를 골백번 듣는 것보다 훨씬 쇼킹했어요.
80. "마음은 오류와 성격상의 결함을 아는 일이 많지만, 그것을 내맡길 수 있는 힘이나 동기는 결여되어 있습니다. 헌신은 가슴에 속해 있으며 단순한 정신화의 능력을 넘어서 저항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헌신적 사랑의 한 측면은 충실함과 몰두일 뿐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의 불변성입니다. 헌신은 강인함 및 노력과의 정렬을 포함하며 이 모든 측면을 결합시키는 풀과도 같습니다."
81. "깨달음(Enlightenment)은 모든 이원적 환상을 진실(Truth)에 내맡긴 결과입니다. 모든 고통은 에고의 위치성들이 해소되면서 끝납니다."
82. "인구의 65퍼센트가 텔레비전과 영화 폭력의 결과로서 다양한 정도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주목할 만한 예는 사이코 영화후 증후군이었습니다(사이코 영화는 80으로 측정).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뒤 여러 해 동안 집에서 혼자 샤워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욕실 문을 잠궜습니다. (PTSD는 공포스러운 플래시백이 특징입니다.83.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육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나는 육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육체와의 동일시를 탈피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내용이 아닙니다. 나는 맥락입니다."
84. "외양은 본질이 아니고, 지각은 실상이 아니며, 표지는 책이 아닙니다. 오류는 설득력을 갖는 일이 아주 많은데, 이것은 고려하고 수용해야 할 불유쾌한 사실이지요.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사적인 세계관이 '진짜'이고, 사실에 근거하며, 진실이라고 은밀히 믿고 있습니다."
85. 2002년 워크샵 CD에서 들은 얘깁니다. 호박사님께서 강연 중에, 문득 이런 걸 측정하셨습니다. "코끼리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코끼리의 삶을 사랑하는가?" 답은 '예스'였습니다. 고양이도 개도, 모든 동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삶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인간과 똑같은 정도로 말입니다.
86. "원폭 투하라는 사건의 영적 측면을 평가할 때 고대의 리그 베다(705로 측정)의 가르침을 언급하는 것은 흥미로운데, 리그 베다에서는 매 수준의 생명은 더 높은 수준에 있는 생명을 부양하기 위해 그 자신을 희생시키고, 그 가운데 과거의 부정적 카르마를 취소하는 것은 물론 카르마적 공덕을 쌓는다고 말합니다. 이 현상은 집단 카르마(공업)라는 개념의 바탕을 이루며, 다음과 같은 질문, 즉 '수 세기 동안, 무고한 시민들의 세대 전체를 학살했던 엄청난 무리의 집단 카르마는 무엇이고, 또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집단학살에 의해 주기적으로 쓸려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을 의미합니다."
87. " ..... 때로, 무자비하게 공격적인 대중매체는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비틀거리는 것과 같이 극히 사소한 실수를 확대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오늘날의 대중매체에 뿌리내린 존중의 결핍이 사회의 동일한 성질을 반영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무례함은 어린이들에게조차 퍼져서 미국의 보통 교실의 측정수준은 과거의 400에서 오늘날에는 190까지 하락했습니다."
88. "의식을 무시하고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바로 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지요."
89. "어려운 점은, 언론의 자유 자체는 사실상 돈과 마찬가지로 중립적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이로운가 혹은 해로운가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언론자유의 부정적 측면은 도덕이나 윤리는 커녕 안전 교육조차 받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주는 일과 비슷합니다."
90. "전쟁에서 남자들끼리의 유대는 510으로 측정됩니다(2차대전)."
91. "다소 의미있는 발견은 축복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간의 측정치의 차이입니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기계로 만든 빵은 188로 측정되지만, 축복할 때 그것은 200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 의식과 의도의 도입이 장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하이젠베르크 원리와 유사한 독특한 사례이지요. 이는 또한 기도 자체가 단순히 소망을 담은 생각 이상의 것임을 증거합니다."
92. "우리의 출생과 삶의 환경이 카르마적으로 완전무결하다는 놀라운 사실은 의식수준 998로 측정됩니다."
93.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오류나 잘못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때 그때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선이라고 믿는 것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니까요. 인간의 유일한 오류는 진짜 선과 환상적인 선을 식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94. "용기와 품위를 갖고 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95. ..... 종교에 대한 충실함의 일차적 전제가 신앙심인 반면, 비이원성의 길을 따르는데 요구되는 필수적 성질은 겸손함, 내맡김, 그리고 길에 대한 헌신적 봉헌입니다. 종교 신도들의 특징이 경전의 권위, 교리, 역사적 선례 등을 통한 '나는 안다'는 추정이라는 것은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이원성의 영적 헌신자는 기본적이며 보다 진실한 위치, "나는 나자신에 대해, 모른다."에서 출발합니다.
96. "이용가능한 선택지들은 의식 수준에 따라 제한되어 있으며 매 수준마다 아주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각성은 분별 대신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97. "열정보다는 봉헌이 온전성의 보다 중요한 지표입니다."
98. "연민에서 솟아나는 행위들이 갖는 효과는 의도의 결과입니다."
99. "에고를 정복해야 할 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실수입니다. 에고를 그저 애완동로 받아들여 연민으로 녹이는 것이 보다 이롭습니다. 에고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간에, 그것은 강아지처럼 그 이상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에고를 악으로 몰아붙이는 일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에고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을 한계로 보기보다는 선악의 양극/이원성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또한 에고를 개인화하는 일에도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좀 더 현명했어야 했을' 에고가 사실상 그렇지 못했다고 해도 그렇지요. 현명했다면 에고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100. "주시는 일시적일 뿐인 추정된 가치를 바탕으로 취사선택하는 일입니다. 마음이 주시하기 위해 취사선택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마음의 성향은 명확해지고 매력 및 반감의 근원이 드러납니다."
101. "길고도 무미건조한 좌절의 시기로 보이는 시간을 보낸 다음이라고 해도 비관을 피하는 것이 현명한데, 왜냐하면 그러한 시기는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일이 많은 중대한 장애와 집착의 극복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2.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부여하고 덧씌우고 투사시킨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특별하거나 독특한 '가치' 혹은 '의의'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됩니다. 그러니 가치, 의의, 중요성, 관심을 철회하십시오."
103. "생각과 감정은 욕망에서 일어나고, 마음은 스스로가 가치를 부여한 것을 욕망합니다."
104. "에고가 가동시키는 의지는 에너지가 들며 수고롭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공격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적 의지(Spiritual Will)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수문을 열어젖힌 다음 뒤로 물러서는 일과 같지요."
105. "감정에 물든 경험자 밑에는 앎(Awareness)의 미묘한 침묵이 있습니다."
106. "겸손함을 가질 때, 누구나 의식 진화의 여정 어딘가에 있다는 것과, 영적 발달이 이 세상에서 인간 삶의 핵심적 목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107. "길이 곧고 좁은 것은, 내적 훈련이 없이는 영적 에너지는 각양각색의 유혹 속에서 흩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심오한 침묵은 영적 에고 및 그것의 진부한 합리화에서 나오는 넘치는 말과 행동의 홍수보다 더욱 영향력이 크고 이롭다."
108. "우리는 우리가 동일시하는 것에 종속됩니다... 한 집단의 잠재성에 귀속되면 그 집단의 카르마에 종속됩니다."
109. "오직 사랑만이 믿음을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10. "많은 전통적 영적 수행과 가르침들이 육체에서 시작하고 또 육체를 강조하는 일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차크라 시스템의 에너지를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그러한 것의 의미와 중요성, 가치는 에고에 의한 정신적/감정적 과정들의 귀결이지요. 우선 에고/자기의 해체를 강조하는 것이 더욱 큰 실용적 가치를 갖는 듯 합니다."
111. "분리의 환상을 초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 인류는 하나이며 600 이상으로 측정되는 뛰어난 존재들은 우리 모두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존재는 대양에 이는 파도의 물마루일 뿐입니다. 600 이상으로 측정되는 이들은 자신을 인류 전체와 동일시합니다. 그들은 인류를 귀중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봅니다. 누구나 그들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부를 포괄하는 무조건적인 연민 속에서 전 인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112. "영이라는 '상위 자아(higher Self)'는 전통적으로 에고에는 재앙으로 보이는 상황을 '활용'해왔습니다. 영에게 큰 기회는 전쟁이나 극단적 위험, 지진, 홍수, 화재, 가족의 붕괴, 심각한 건강 문제와 같은 표면적 재앙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중대한 순간에, 영적 원리를 따르느냐 혹은 에고의 습관적 명령을 따르느냐의 선택이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하지요."
113. "에고/마음은 신기한 것에 매혹되고 따라서 미친 듯이 흥미로운 형상과 감각을 구합니다. 이것은 거부될 수 있으며, 항상 현존하여 그저 주목하기만 하면 되는 침묵하는 무형의 기층에 대한 관심으로 대치될 수 있습니다... 이 침묵하는 무형의 기층은 그것 없이는 소리를 식별할 수 없는 침묵의 배경에 비할 만합니다."
114. "부정(denial)은 190으로 측정됩니다."
115. "의식의 무한한 장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진술은 그것이 절대(Absolute)를 나타낸다는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 절대(Absolute)에 대해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정도로서 측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6. "에고는 행(doingness)과 소유를 봅니다. 하지만 영은 감사와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압니다."
117. "절연은 하나의 생활방식입니다. 부정적인 것과 절연할 필요는 없으며, 그저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면 되지요. 이것은 양극성-위치성에 고착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118. "난도질을 당하는 게 어떤 건지 알려면 내가 그걸 당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생에는 '아,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알아'하는 자비심이 생겨나지요." 호박사님은 여기까지 말씀하신 뒤, 당신도 이전 생에 그런 경험이 있는지, 즉 난도질을 하고 - 또 당한 적이 있는지를 운동역학 테스트로 물으셨고, 답은 예스였습니다. "답은 예스입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걸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하하... 여러분, 이런 삶은 험난하지만 그러나 이 길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그것으로 있어봐야(being) 합니다. 험난하지만 그 수 밖에는 없습니다."
119. 병을 가진 사람들이 호박사님께 어떻게 이 병을 고칠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호박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시곤 했답니다. "신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끝은 다 똑같습니다. 누구나 다 이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120. "종교는 다량의 정보와 관계하지만, 신비주의자의 이해는 저절로 드러납니다."
121. "인간은 의식의 진화과정에서 수많은 동일시를 거치며,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감을 잃어버렸습니다."
122. "의식수준이 상승하면 경험의 성질이 변화합니다. 세상과 주관적 자기는 점차로 더욱 온화해지고, 연민과 사랑에 넘치게 되지요."
123. "바보인 '척'하는 것은 유익한 수행이며, 근본적 겸손함을 불러내어, 본질(Essence)이 빛을 발하게 합니다."
124. "감정에 물들어 있는 경험자 밑에는 앎의 미묘한 침묵이 있습니다. 침묵의 장 자체를 식별하는 데는 예리한 주의집중과 통찰력이 요구됩니다. 생각들의 특이성에 대한 관심을 거부하고, 생각을 인지하거나 읽어내려는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125. "의심이 바로 에고입니다. 근본적으로 에고는 복잡한 의심의 구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26. "에고/마음은 학습된 행동들의 세트입니다. 목표는 그것의 프로그래밍과 기능을 초월하는 것이지요."
127. "사람은 마음의 피해자가 아니며, 의도와 욕망으로 말미암은 (심리) 현상의 작자입니다."
128. "현상 세계는 거대한 로르샤흐 카드와 같습니다. 그 형태는 사람이 바라는 대로 무엇이든 '의미'합니다."
129. "가치를 투사하지 않을 때, 99퍼센트의 생각은 전적으로 지루하고 진부할 뿐입니다."
130. 누군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일어나는 '기분 좋지않은' 느낌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떨쳐버릴까요?" 호킨스 박사님께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지요. "모든 '기분 좋지않은' 느낌은 마음의 그릇되고 불완전한 습관이라는 걸 아십시오."
131. "포기란 무엇입니까? 마음의 활동 및 그 쉬임없는 작용들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궁극적인 포기입니다."
132. "모든 두려움은 환상입니다."
133. "'개성'이란 관찰자가 투사한 것이지 스승의 성질이 아닙니다."
134. "인과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호킨스 박사님께서 강연을 할 때 서두에 꼭 하시는 말씀이라고 해요)
135. "개인적 에고/자기는 결코 드라마와 문제들이 떨어지는 법이 없는데, 이러한 것들은 자가 증식의 도구로서 창안되지요. 에고는 흥분에서 배제될 때 자기 방어를 위해 '지루함'을 꾸며냅니다. 에고의 게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저, 지루할 때 '나는 왜 지루한가?'하고 묻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자기탐구로 이끌고, '경험자'로 불리우는 것의 역할을 드러내줍니다."
136. "에고는 세부와 선형적 분류를 대단히 좋아합니다. 에고는, '그거 끔찍하지 않니?'와 같은 태도를 좋아하고, '어째서?'와 같은 끊임없는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등은 에고에 속하고, 조화는 영에 속합니다."
137. "영적 앎이 발전할 수록 영적 에너지의 흐름은 증가하여,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던 이전의 장애들을 초월할 수 있게 해줍니다."
138. "온전성의 보다 중요한 지표는 열정이 아닌 헌신입니다."
139. "길이 곧고 좁은 것은, 내적 훈련이 없이는 영적 에너지는 각양각색의 유혹 속에서 흩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원한 침묵은 영적 에고 및 그것의 진부한 합리화에서 나오는 말과 행위의 홍수보다 더욱 영향력이 크고 이롭습니다."
140. "'나는 존재한다'라는 축소할 수 없고,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외에, 다른 모든 것은 기껏해야 추정입니다."
141. "참나의 기쁨을 가로막는 것은 욕망입니다. 무기력의 의식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욕망은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동력이지만, 당신이 수행자라면 욕망은 장애물입니다. 욕망이 솟구친다면 그것을 신에게 내맡기고, 욕망과 집착이 가리키는 바(위치성)을 잘 관찰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세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욕망은 갈 수록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142. "실상에서 '가치'는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143. "진실은 어떤 것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무지는 진실의 적이 아니며 진실의 부재를 나타낼 뿐입니다."
144. "의식수준이 600을 넘어설 때 여러 생의 환상은 사라지고 연속되는 하나의 생이 있을 뿐입니다."
145. "측정된 의식 수준은 지각, 왜곡, 현상과 본질의 뒤바뀜으로 인해 실상(Reality)에 대한 인지 능력이 손상된 정도를 가리킵니다."
146. "신성(Divinity)은 무한히 연민과 사랑에 넘치고, 평화롭고, 말이 없고, 전지전능하며,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하고, 온화합니다. 신의 본질이 창조(Creation)로서 빛나며 그것이 무한한 전체성(Infinite Totality)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Source)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합니다. 신성(Divinity)에는 부분이나 분열이 없습니다."
147. "온 우주, 혹은 온 차원이 하나의 생각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148. "객관성이란 믿을 수 있는 진짜 '실상'을 창조하려는 인위적 정신적 관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 실패하는데 왜냐하면 겉보기에 논리적인 관념 전체가 온전히 주관과 신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어떠한 개념에도 그것에 딸린 주관적 가치 외에는 '진실'의 내재적 권위가 없습니다."
149. "영적 자부심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하나는 허영심을 증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타인에 비해 더욱 형편없다는 위치성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그분(신)이 전부이다"라고 외우는 것은 그 반대쪽 극단 만큼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쓸모없는 벌레일 뿐"이라는 위치는 의상이 아닌 누더기를 걸친 허영심에 불과합니다"
150. "가장 높은 영적 목표에 대한 헌신은 에고의 결함을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결함은 에고의 구조 속에 뿌리내린 것이므로 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에고는 진짜 '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날 때 상속받은 것입니다. 에고는 기본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 유래된 것이고, 의식의 진화는 인류 진화의 원시적 단계들을 거칩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인간 진화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1. "실상(Reality)에는 단 하나의 생이 있을 뿐인데, 주기적으로 환생하는 것은 어떤 조건들이 일정한 문제들의 해소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영혼들이 고귀한 원칙을 위해 육체의 죽음마저 불사하며 200의 선(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가는)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투우, 스카이다이빙, 오토바이 경주 등은 청년들이 육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따라서 겁을 이길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하나의 심리적 성취이긴 하지만, 큰 영적 공덕은 아직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200의 에너지장을 뛰어넘으려면 두려움을 이기는 용감한 행위가 충의, 신에 대한 헌신, 조국, 진실, 혹은 명예와 같은 보다 높은 원칙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152. "진정한 금욕주의란 진실에 대한 엄격함과 충실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육체가 아닌 영에 대한 것입니다. 경건하고, 누더기를 걸치고, 굶주리다시피 해서 피골이 상접한 인물은 제 멋에 사는 것이지 실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53. "높게 측정되는 음악은 지성과 부정적 정신작용을 즉각 우회하는 에너지장을 제공해줍니다."
154. "모든 '상실'의 고통은 사람이 잃어버린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집착 그 자체에서 비롯됩니다."
155. "사람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영적 진화입니다."
156.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잔인하거나 무례하게 보이거든, 그것을 용서하는 한편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잔인하고, 무례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면에 대해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한 면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비개인적이지만 사람은 참여하는 인간으로서 그러한 것에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157. "모든 괴로움과 감정적 고통은 저항에서 생겨납니다. 치료는 내맡김과 수용에 있으며 이를 통해 고통은 덜어집니다."
158. "신의 정의는 신성의 전능함과 전지함의 자동적 귀결입니다."
159.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모든 순간에, 최대한 가능한 것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유일한 현실입니다."
160. "지각은 선형적 독특함과 차이에, 따라서 분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참나는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161. "사람들이 원하는 걸 갖게 해주십시오.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스스로를 바꾸십시오."
162. "병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지요."
163. 방금 beyondtheordinary.net 방송에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도에 사는 어떤 분이, 호박사님의 가르침을 책과 오디오로만 접하는데, 책과 오디오가 스승의 곁에 있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호박사님께선, 'physical locality is nothing.' 즉, 육체가 어디 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라고 대답하셨지요. 스승의 가르침에 자신을 일치시킬 때 스승의 에너지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 그야말로 희소식입니다.
164. "스스로를 장애가 아닌, 진실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165. "영적 수행이란 단순히 그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는 작동되어야만 합니다."
166. 질병을 포함하여 나에게 생기는 모든 사건들(나의 행동, 성격, 충동 등)은 나의 내면에서 치유받아야 할 것들이 떠오른 것이니 그것에 감사해야 한답니다. 깨달음 이전의 호박사님은 완벽주의자였다지요.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가혹하며, 남들은 용서하지만 나는 용서하지 않고, 죄의식이 강했답니다. 온갖 병들, 예컨대 악성 위궤양, 췌장염, 담냥염, 게실염, 장염, 손가락의 괴사(그래서 엄지를 절단하신 건지), 온갖 것들에 대한 알레르기, 고혈당증, 비만, 통풍성 관절염(몇 년 동안 차에 항상 지팡이를 휴대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등에 시달리셨다고 해요. 그리고 알레르기와 고혈당증, 통풍으로 인한 식사 제한 때문에 식당에 가도 먹을 수 있는 건 양상치 밖에 없었다고 하지요. 호박사님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온갖 부정성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것은 온갖 질병으로 표현되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참나'는 '칼슘 혹은 마그네슘 대사의 이상'(호박사님께서 앓으신 어떤 병의 원인이 이 '대사 이상'이었나봐요)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겪고있는 증상에 대해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고 대사이상이니 알레르기니 통풍이니 하는 '신념체계'를 지워나가자 병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167. "질병이 온갖 부정성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을 하신 뒤, "병이란 농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농담이다."" 병은 정말로, 진짜로, 마음에서 생기고, 신념체계에서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한한 존재. 이 진실을 각성할 때 병은 더이상 사람을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이것은 호박사님께서 삶에서 직접 체득한 경험적 진실입니다.
168. "'가능한 최상의 것이 됨으로써’’우리는 자동적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합니다. 아하! 자동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되는 그것으로써(by that which we have become) 사람들을 감화시킨다는 것의 살아있는 표본(a living example)과 살아있는 증명(living demonstration)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이 아닌 우리가 소리 없이 되는 그것으로써 감화시킵니다. 소리 없는 그 것에는 어떠한 방어도 있을 수 없습니다."
169. "은과 금으로 치장된 가장 소중하고 멋진 생각을 포함한 사람의 모든 생각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하하하하. 그래서 모든 생각은 무가치하다는 겸손에서 출발하십시오. 생각은 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침묵의 근원을 찾아야할까요? 생각 중에서 찾으려하지 마십시오. 거기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장의 밑(underneath the field of thoughts)을 보십시오. 생각은 바다 위를 오고 가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는 언제나 오고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다의 표면을 고요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파도에서 고요함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하하하."
170. "중요한 것은 세상사에의 관여 여부가 허영심과 연민중 무엇을 반영하느냐입니다."
171. "명상을 할 때 무엇에 대해 명상을 해야 할까요? 신에게 자신의 상태를 생각의 영역으로부터(from the realm of thoughts) 그 밑에 존재하는 무한한 침묵으로 다시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하십시오."
172. 호박사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시더니 "그런데 조지 소로스도요?" 라고 되물으셨지요. 호박사님은 고개를 갸웃한 채 한참 고민하는 척 하시다가,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Yes~!"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지요. 호박사님 말씀이, 소로스는 ***라는, 180으로 측정되는 상대주의 철학자(이름 까먹었어요)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측정된다고 하시더군요.
173. "부정적 에고는 사람들의 주시, 관심의 에너지를 양식으로 삼습니다."
174. "신성에의 간청은 원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참나에게는 역경이나 심지어 육체적 죽음이 에고를 패배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5. "삶이 간구(supplication)이 됩니다. 삶이 기도가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하는 행위도 아니며 당신이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은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모든 자연은 당신이 무엇인지 압니다."
176. "천국에 유홀 트럭을 끌고갈 수는 없습니다." 유홀 트럭은, 미국 사람들이 이사갈 때 흔히 빌리는 대형 트럭이라네요.
177. 호박사님께선 육체를 가진 존재 만이 생명은 아니라며, 아스트럴 면의 모든 실체들이 다 생명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아스트럴 면에서 인간과 교신(채널링)을 시도하는 실체들 중에는, 오래 전에(메소포타미아 시대, 3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500대 중반까지 진화했다가 추락한 존재들이 있답니다. 500대 중반은 '싯디'라는 초능력이 생겨나는 수준이죠. 그들은 그러한 초능력이 의식의 에너지장에 딸린 것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했다죠. 우리보다 더 빨리 진화한 존재들이지만, 불운하게도 높은 진실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했대요. 그들에게도 사랑과 연민을 보내라고 하셨지요.
178. 채널링을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영계를 여행하고. 호박사님께선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온갖 '초능력'들이 사실, 죽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능력이라고 하셨지요. 이러한 초능력은 의식상승에 따른 쿤달리니 에너지의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쿤달리니 에너지 자체 만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수련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호박사님께선 후자는 권장하지 않으십니다. 의식상승에 따른 '싯디'의 출현도, 영구적인 게 아니라 왔다가 가는 일시적 현상이니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고요. 신비스러운 현상이나 '초능력' 등에 끌리는 것은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179. "모든 괴로움과 감정적 고통은 저항에서 생겨납니다."
180. "일체는 오직 신에게 속해있으며, 인간은 청지기 노릇을 할 뿐입니다."
181. "소유하거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인간의 육체 자체를 포함해서). 모든 관계는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것입니다."
182. "실상은 거대한 콜로세움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콜로세움의 한 구석에 소형 2*2인치 TV를 놓고 그것만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183. 호박사님은 어느 강연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이런 자리에서 말하는 건 참 쉽다, 여러분은 마치 스펀지처럼 내 얘기를 빨아들인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같은 청중은 강연을 듣고나면 의식수준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한번은 의식수준이 180으로 측정되는 집단 앞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그 집단의 의식수준은 변동이 없었대요.
184. "문제가 어떤 것인지는 잊어버리세요. 그저 에고에 대한 보상의 에너지에 주목하세요. 그 다음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에너지에 중독되지 않도록 하는 것 뿐입니다. 에고는 스스로를 초월할 수 없습니다. 영적 의지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의지는 850으로 측정됩니다."
185. "자기애적인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절대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186. "인간관계에서 커다란 에고 에너지는 '정당성'입니다. 사람들은 정당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것입니다."
187. "그 모든 갈망이나 욕망을 중단시키는 방법은, 그것이 마음 속에 떠오른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오래 붙들고 있을 수록 그것은 더욱 강해집니다."
188. "당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당신도 당신이 아닙니다."
189. "우리가 말하는 동안, 당신이 종이 박스를 여기 놓았다고 해서 무한한 공간이 사라는 것은 아닙니다. 무한한 침묵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 신성은 신성의 초대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신성은 신성으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정체성을 상실한 것의 호소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190. 한 여자가 물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물질적 세계가 환상이라고 하셨습니다." 호박사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환상적이라는 것은 물질적 세계에 대한 지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잔인하다, 괴롭다. 등으로 보는 것 말이지요. 세계는 존재합니다."
191. 어떤 남자가 호박사님께 지극히 높게 측정되는 의식 중에는 왜 여성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호박사님께선 남성 멍청이들도 많다며, '지극히 높게 측정되는 의식'이 무엇이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분은 붓다, 예수 그리스도, 크리슈나의 예를 들었지요. 호박사님께선 의식수준이 800대에 이를 때, 인간의 신경계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이는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나타난다며, 여성의 의식수준이 800을 넘어서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즉, '생리적' 이유). 그런데 여성 개인의 카르마에 따라 800 이상으로 간 분들도 있대요.
192. 신비주의자 dvd 질의응답 마지막 부분에서요, 어떤 사람이 올라와서,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분노를 통제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호박사님께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분노의 근원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고,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찾아봐야 하지만(어린 시절부터), 당신은 먼저 설탕이나 단 음식을 끊음으로써 분노를 절반 가량 줄일 수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193. "에고가 비난을 덧댄 교묘한 수사로 이성을 제거하고 타인을 악마화하는 것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어내야(win) 하기 때문입니다. 수억년의 진화를 거치는 동안 에고는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죽었습니다. 에고에게는 많고 많은 기억과 수억년간 강화되어온 세월이 있습니다."
194.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깨달음(Enlightenment)에 대해 듣는 것은 더욱 드문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문 것은 깨달음(Enlightenment)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 호박사님께서 자주 인용하시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195. "... 우리 모두는 하나(the One)에서 일어난 불꽃들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함께 진정으로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 그리고 영원히 서로를 사랑합니다. 아멘...."
196. "에고는 어떻게 그렇게 당신을 꽉 붙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 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실 에고의 지배력을 흔들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일단 뭔가를 이해하면, 당신을 붙든 에고의 손길은 느슨해집니다. "
197. "한 사람이 겪는 감정적 고통은 자기 앎, 자기 수용의 정도와 정확히 관련됩니다."
198. "영적 앎에 이르는 길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높은 동기부여는 힘을 반영하는 에너지들에 의해서 강화되는 반면 이기적 위치들은 약하고, 제한적이며, 힘을 소진시킨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성질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처럼 긍정적 성질들 또한 서로 얽혀있고, 그래서 한 영역에서의 진보는 의식적으로 다룬 적조차 없는 다른 영역들에서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옵니다."
199. "신성(Divinity)과 물질이 교차하는 지점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200. "영적 귀의란 단순히 삶의 목표와 의미를 재맥락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 삶이 영적 수행 대 일상생활로 분리되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삶 전부가 수행이 되는데 왜냐하면 맥락이 모든 행위, 생각, 혹은 순간을 둘러싸는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균형 잡힌 관점은 이미 집착하지 않음의 정도로 귀결됩니다."
201. "무의식적인 영적 부채의 누적(카르마)은 진실을 위반하는 이들의 측정된 의식 수준을 점차로 끌어내립니다. 이들은 그러면 방어적 자부심, 분노,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궁극적인 신의 심판(Divine Judgment)에의 두려움으로 보상해야만 합니다."
202. "200 수준 이하에서는 이득을 구해 진실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식별하지 못하고, 허위가 설득력있는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됩니다. 그래서 200 이하에서는 사실상 지적 능력은 물론 현실검증력의 현저한 상실이 있습니다. (측정수준 200 이하의 사람들은 진실을 구하는데 운동역학 테스트를 이용할 수 없으며 그릇된 결과들을 얻습니다.)"
203. "인간은 선의 실상보다는 선의 환상을 구합니다."
204. "일체는 의도를 통해서 자신의 잠재성을 실현합니다. 사람은 의도와 동의를 통해서 자신의 잠재력이 됩니다."
205. 누군가 호박사님께 물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선 고통을 겪는 것이 필요합니까?" 호박사님께선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아니오, 당신은 기쁨을 통해 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맥락화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206. "에고는 에고 위치들의 내맡김이나 '상실'을 보상하고도 남는 영의 선물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207. "당신이 영적 진보에서 후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의도를 바꿔 신성(Divinity)에게 반박하는 것 뿐입니다."
208. "자발성(Willingness)의 능력은 전 인구 속에 잠복해 있으며, 대참사에 대한 한 반응으로 눈에 띄지 않게 표면화됩니다."
209. "아직도 수도승이 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하하. 수도승주의(monkism), 즉 수도생활에 대한 로맨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수도승들은 여전히 거기 그 자리에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여전히 순무와 잡초를 뽑으면서, 멀건 오트밀 죽을 아침으로 먹으면서 말입니다. 하하... 수 생 동안 멀건 오트밀 죽을 그만큼 먹었으면.. 하하. 그리고 육체의 고행. 오~ 이런 육체의 고행이라니. '날씨가 추울 때, 왜 따뜻하게 지내야하는가? - 그냥 떨면 되지. 날씨가 더울 때, 왜 시원하게 지내야하는가? 배고프다고 왜 먹어야하는가?' 이런 식으로 육신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육체와의 동일시를 벗어나게 해줄까요?"
210.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의 각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을 얻는 것조차도 잃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신념체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211. "강력한 영적 수행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카르마를 가속시킵니다. 그리고 카르마를 뛰어 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 다음 더미를 끌어 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빠른 영적 진화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 하나는 많은 시간을 환자로 지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하하하... 오늘 아침에 우리에게 모두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군요."
212. "수동성이나 무관심은 하나의 방어적 책략으로서 본원적으로 타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213. "의식수준 500 이상부터, 아름다움, 평화, 내적 고요의 매력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위대한 스승들의 영적 원리가 사람의 생활양식과 통합되고 결국에는 지배적으로 되지요.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는 용서하며 사랑이나 연민을 가질 것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러한 것을 가장 잘 실행하고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214. "의식의 낮은 수준들에서, 사랑으로 지각된 것은 조건적이며 소유, 정열, 낭만, 욕망과 동일시되는데, 이러한 것은 사람이나 대상에게 투사되어 그들에게 짜릿한 특별함과 매혹을 불어넣습니다. 그런데 그 특별함과 매혹은 높이 평가된 대상이나 관계가 손에 들어온 뒤에는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지요. 획득의 짜릿한 흥분이 희미해지면, 과장된 바람직성의 유혹 또한 희미해집니다."
215. "궁극(Ultimate)의 비선형적 실상(Reality)은 나뉠 수 없고 위치성에 기초한 에고의 개념들의 주관/객관의 이원성을 넘어서 있습니다. 모든 영적 진보는 선물이며, 겸허한 감사는 자부심을 가능하지 않게 만듭니다."
216. "사랑은 지적인 것이 아니며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슴에서 흘러나옵니다. 사랑은 타인을 고양시키며,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큰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습니다."
217. "(500을 넘어서) 진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조건적 사랑의 한계를 무조건성에 내맡길 것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 집착으로서의 사랑을 내맡길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 그것은 전반적 맥락화이자 잠재성이 되어,
분리된 존재들 사이의 배타적 감정으로라기 보다는 세상에서의 한 존재방식으로서 삶을 정렬시킬 수 있게 해주지요."
218. "동기부여가 매우 강하고, 영적으로 훈련된 집단들에서는, 구성원의 약 50-55퍼센트가 무조건적 사랑(Unconditional Love)이라는 목표에 도달합니다."
(예, 12단계 그룹, 영적/종교적 아슈람 헌신자들, 수도원의 출가자들, 선원과 같은 영적 공동체의 구성원 등).
219. "영적 에너지의 가속을 촉진하는 것은 사적인 이득의 추구와 같은 자기애적이고 이기적인 자기이익의 포기입니다."
220. "모든 제한적 신념, 위치성, 의심, 집착들의 내맡김은 영적 에너지의 유입을 허락해주는데, 이 영적 에너지는 헌신(측정수준 555)에 수반되는 것입니다. 영적 진실과 사랑에 대한 지속적 헌신이 저항의 해소를 가능케 해주지요. 초월하기 위해선 모든 집착, 심지어는 자기와 사회가 ‘책임’으로 간주한 것들조차 포기할 것이 요구됩니다."
221. "특징적으로, 정확한 가르침들은 그 스승의 의식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측정되며, 따라서 둘 사이의 모든 편차는 오독이나 오역을 가리킵니다."
222. "600에서 700 사이로 측정되는 미술, 음악, 건축물의 걸작품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더 높은 의식수준으로 데려갈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보편적으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것으로 인지됩니다."
223. "선형적 마음에서만 흘러나오는 편집과 분류가 없을 때, 일체는 똑같이 절묘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이 잡초라고 무시하는 것이 꽃의 아름다움과 똑같은 아름다움을 갖습니다."
224. "전부는 창조(Creation)로서의 신성(Divinity)의 표현입니다. 전부는 똑같이 신성하고 성스럽습니다."
225. "행동은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입니다."
226. "매우 높은 수준들에서, 존재의 주관적 경험은 자기애적 에고에 의해서나 위치성이라는 심리적 장애에 의해서 더이상 제한되지 않습니다."
227. "현상이 논리나 이성의 기대 너머에 있는 듯이 보일 때, 그것은 의도의 귀결과, 출현으로 귀착되는 맥락의 장의 반응을 가리키기 위해 '신비적, 형언할 수 없는, 혹은 기적적인'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나 '지고의 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각된 문제의 해결을 가속화하지요. 이것은 시비분별의 내맡김과 결과를 통제하려는 욕망의 내맡김에 의해 촉진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결과가 아닌 노력에 대한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
228. "결과에 대한 통제를 내맡기는 것은 그것이 결과에 대한 자기비난이나 자부심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도 이롭습니다. 어떤 결론이 바람직스럽게 보이는지 혹은 바람직스럽지 않게 보이는지 여부는 관찰자의 의식수준(즉, 위치성들)에 달려있습니다. "
229. "영적 순수성은 자기정직성의 귀결이며 이는 진정한 헌신의 결과입니다. "
230. "수많은 이들이 한때는 '탁월'했음을 유념하십시오. 그들은 유혹에 굴복하여 자기기만과 합리화 기제의 덫에 빠졌습니다."
231. "모든 생명의 그 모든 표현에 대해 무조건적인 연민과 용서를 선택하세요."
232. "위대한 화신들에 의해 창조된 에너지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떠받치고 있고 붙들고 있습니다."
233. "헌신과 봉헌은 때로 ‘지나친 야심’, 지나친 열심, 혹은 심지어 광신으로 명명되는 것이 가장 나을 만한 것으로 인도하는데, 이는 불균형을 나타냅니다. 빈번히 나타나는 오류는 인위적 연습과 수행을 통해 쿤달리니 에너지의 상승을 강제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234. "한동안 나는 사후세계에서 '마중하는 자'(greeter)였습니다. 사후세계에 온 자들에게 안전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나의 일이었습니다. 내가 마중하는 사람들은 기도덕분에 그러한 것을 얻었습니다."
235.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실제적이고 믿을 만한 지식이 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 의미를 드러내달라고 신에게 간청하세요."
236. "어떠한 일이 있든, 설령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모든 표현을 갖는 모든 생명을 경외하십시오."
237. "괴로움은 사람이 영의 발을 질질 끌고 있기 때문이고, 에고가 제 뜻대로 하겠다고 고집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으로서의 에고를 포기하고 신성(Divinity)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의식 진화를 돕는 것입니다."
238. "선한 의도들이 개인적 ‘의지력’의 암반에 걸려 좌초하는데, 개인적 ‘의지력’은 더 많은 죄책감과 자기비난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몽둥이로 자주 이용됩니다. 신에게 자신을 진정으로 깊이 내맡기는 일은, 개인적 ‘의지력’의 환상을 내맡기고 그것을 선언적 '결정'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39. "진정한 금욕주의란 단순히 노력의 경제의 문제입니다. 의미를 갖는 것은 소유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투사된 추정된 중요성이나 가치이지요. 따라서, ‘세상을 헐렁한 의상처럼 걸칠 것’이 권장되는 것입니다. 부 그 자체에는 아무런 실제적 중요성이 없는데, 그것은 기본적이고 육체적인 동물적 필요가 충족되기만 하면 내적 행복의 능력은 외부적 요소들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40. "깨달음(Enlightenment)은 모든 이원적 환상을 진실(Truth)에 내맡긴 결과입니다. 모든 고통은 에고의 위치성들이 해소되면서 끝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빛(Light)을 발하고 계심에 대해 주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241. "모두가 저 의식의 진화하는 여정에 있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외침에 의한 각성에서 연민이 태어납니다."
242. "친절함의 수행을 통해 사람은 친절해지는데, 그것은 친절함 자체가 변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243. "큰 변화들은 또한 부정적인 카르마적 채무에서 벗어난 귀결로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무의식적 마음이, 어떤 교훈이 학습되었거나 혹은 어떤 부채가 보상적 행동으로 해결된 것에 마침내 만족해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244. "중요한 것은 길을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245. "에고를 적으로 보아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에고는 사람이 물려받은 생물학적 유산이며, 에고가 없었다면 누구도 살아서 그것의 한계에 대해 한탄하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에고의 기원 및 그것이 생존에 대해 갖는 본원적 중요성을 이해함을 통해, 에고는 대단히 유익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스리기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또한 에고가 녹아지거나 초월되지 않는다면 감정적, 심리적, 영적 문제들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6. "'저것'의 원인이 되는 '이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지각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모든 것에 가득한 무한히 강력한 신은 말하자면 거대한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와 같습니다."
247. "절망의 밑바닥에서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생존에의 의지조차 말라붙습니다. 종종 지옥(Hell)과 절대적 절망의 수렁 속에서야, 심지어는 육체의 죽음이 임박한 지점에까지 가서야 에고는 내맡겨질 수 있습니다. "
248. "의식은 항상 하나의 위치성에 의해 차단됩니다. 위치성은 이원성을 창조하고, 그로 인해 누구나 잘 아는 ‘사랑과 미움’과 같은 이원성들이 일반적인 영역 안에 존재하게 됩니다."
249. "과도한 죄책감과 후회는 위장된 형태의 자만심이며, 여기서 자기는 부풀려지고, 과장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며, 그러한 것의 부정성이 에고를 먹여살립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에서 해방되려면 이 기본적 자만심을 내맡길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에고는 부정성을 통해 스스로를 재충전하기 때문입니다."
250. "개인적 분별(judgment)은 지각에 바탕을 두고, 지각은 신념과 이전의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강화되며, 그 모든 신념과 프로그래밍은 에고의 부정적 에너지라는 대가에 의해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에고는 어떤 ‘부당한’ 일로 괴로움을 겪고, 순교를 당하고, 오해받고, 삶의 부침의 끝없는 피해자 노릇을 하는 것을 ‘사랑’할 뿐입니다."
251. "에고는 자신의 한계보다 우월하다고 직관적으로 느낀 것을 시기하며 그래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쉽사리 증오하고 비난합니다...그래서 회의론자는 영적 진실이나 높은 의식, 그리고 높은 의식에서 존중되는 것(사랑, 진실, 신성 Divinity, 아름다움)을 미묘하게 증오하지요. 순수성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증오는 신성모독(피에타상을 파괴하고, 여성성을 훼손하고, 학식을 모독하며, 온전성을 깎아내리는 것 등)은 물론 외설과 야비함으로 표현됩니다."
252. "모두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그걸 알기만 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겸손함이 있을 때, 주어진 매 순간은 한계를 포함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아닙니다. 실수는 학습 과정에 고유한 것이며, 이것은 인간 조건 자체의 운명입니다."
253. "위대한 스승들은 인간의 기본적 약점이 무지라고 가르쳤지만 인간의 한계를 순진성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254. "나태가 일곱가지 대죄에 포함되는 것은, 그것은 신이 내려준 생명의 선물을 거부하는 것이고 사랑이 없는 방종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타인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나 심지어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한 적절한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와 똑같은 태도가 그 다음에 신에게 투사되는데, 신은 거부하는, 접근 불가능한, 돌봐주지 않는 존재로 보입니다.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은 결국 신은 무관심한, 비난하는, 접근 불가능한 존재라는 개념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은 희망없음과 비관주의를 낳습니다."
55. "무감정으로 보이는 것에는 사실상, '난 못해'라거나 '난 원치 않아'로 묘사되는, 미묘하게 위장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서의 강력한 내적 저항이 있습니다. 에고의 버티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에고가 자진해서 내맡길 정도로 그것과 대결하려면 전쟁이나 지진과 같은 대 참사가 자주 요구됩니다."
256. "영적 겸손함을 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인 ‘굴욕’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역설적으로, 영적으로 겸손한 이는 굴욕을 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존감의 상실 없이 결점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적 결점에 대한 인정은 시비분별 없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게 해주고, 전 인류를 향한 연민에 이르는 문을 열어줍니다."
257. "욕망하는 대상이나 사람과의 관계에 특별함이 투사되면 될 수록, 슬픔이나 상실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258. "신을 향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기도와 예배를 통해 신의 사랑을 활성화시킵니다."
259. "영적 지향이 있는 사람은 삶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하나의 경험을 영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로 봅니다."
260. "인간계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과도적이며, 진화합니다."
261. "스승의 오라는 (육체적 친견과 접촉에 더불어) 또한 마음속에 스승을 품고 있는 것, 스승의 목소리, 스승의 책에 의해서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어 박사님은 책을 읽는 것이 스승을 친견하는 효과의 60%를 가지고 있다고 측정하셨다] 당신의 정렬에 의해 당신이 어떤 스승들을 만날 것인가가 운명지어집니다. 당신의 정렬에 의해 당신은 어떤 사건들로 끌려갑니다. (스승에게서 나오는) 에너지 장은 미래의 생애[25번의 생애에 이른다고 측정됨]동안 당신과 함께 합니다."
262. "'소유'하거나 '나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관계는 일시적이고 임의적입니다. 합법성은 오직 통제할 권리만을 줍니다."
263. "'있다'는 것과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후자는 명백히 보다 초월적인 성질을 요구합니다."
264. "욕망(Desire)의 희생자들은 사실상 자신의 동기의 밑바탕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목받으려는 욕망에 중독되어 끊임없는 요구로 타인을 쫓아버립니다. 성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매력과 유혹을 찬양하는 거대한 화장품 산업과 패션 산업을 창출해냈습니다."
265. "욕망(Desire)의 수준의 기본적 문제는 내적 결핍감인데 이는 만성적 불만족, 불완전한 느낌, 부단히 구하는 행동을 낳습니다."
266. "'영혼의 어두운 밤'은 그 밑에 깔려있는 기본적 에고중심성의 포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바닥'을 치고나서 에고의 고집을 신에게 온전히 내맡길 수 있는 커다란 영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는 표면상으로 기적적인 회복과 영적 재탄생으로 귀착됩니다."
267. "기억은 환상의 창고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낮추고 거기에 에너지와 관심을 쏟지 마십시오."
268. "의식의 큰 도약은 신에게 자기자신을 아주 깊이 내맡기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바닥'을 친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지요. 고집과 자부심을 놓으면 변모가 일어납니다."
269. "에고의 핵심은 자신이 신이라는 망상적 신념입니다."
270. "자부심(Pride)의 그늘은 오만함과 부정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자부심(Pride)의 수준에서는 중독에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것은 감정적 문제나 성격상의 결함들이 부정되기 때문이지요. 부정의 문제 전체는 자부심(Pride)의 문제입니다."
271. "자부심(Pride)이라는 버팀목을 내던지고, 어떤 불멸의 근원에 속해있는 자신의 내적 실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독립적 실상으로서 자기 존재의 내적 핵심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누구'로서의 자기에 대한 그 모든 정의를 놓아버리고, 스스로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272. "세상에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현상들은 사적인 자기가 아닌 현존에서 비롯됩니다."
[출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이백 일흔두가지 말씀